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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태(李惟台)

예술가명
이유태(李惟台)
구분
동양화가
생애
이당 김은호 문하에서 전통화법을 익히고 동경제국미술대학으로 유학, 전통적인 화법과 세련된 채색법을 가미하여 자신만의 섬세한 채색과 독특한 화면구도를 확립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 확립되어 1960년대 후반에 절정에 이른 그의 화폭의 일관된 주제는 우리나라의 산수와 울창한 수목이었다. 초기에는 섬세한 필치의 인물화, 정형적 화조화를 많이 그렸고 1960년대 이후에는 주로 산수화를 그렸다. 정확한 관찰을 통해 오묘한 자연의 표정들을 찾아내어 재창조한 자연을 그렸다. 세필과 채색에 의해 유현(幽玄)하고 격조있는 화풍을 이루었으며 탈속(脫俗)의 분위기와 선경의 정취를 자아내는 특성이 있다. 이화여대에서 오랫동안 후진을 양성했으며, 대한민국문화예술상과 금관훈장을 수상하였다.
약력
1916년 서울 출생 1935년 이당 김은호 선생 문하 사사 1936년 후소회 창립전 첫 출품 1938년~1940년 일본 동경제국 미술학교에서 수학 1939년 조선미술전 19회 <현학(玄鶴)> 입선 1944년 제1회 개인전, 화신화랑 1947년~1972년 이화여대 교수 및 학장 1951년 미 10군단 사령부 전사과 작전지도 제작관으로 6개월 근무 1952년 제2회 개인전,마산문화회관(피난지) 1955년~1970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1957년 백양회 창립 회원전 1961년~1967년 국전 심사위원 1965년 제3회 개인전, 신문회관 1967년 문화공보부 프랑스예술인협회 공동 주최 한국미술전 출품 참가 1968년 문화공보부 주최 문화예술상 심사위원 1969년 제4회 개인전, 신세계화랑 1970년~1975년 국전 운영위원 1973년 한국 현대작가 100인전 추진 부위원장 1974년 국민훈장동백장 수여 / 퇴계 이황선생 영정 제작(한국은행 소장) 1975년~1976년 미술회관 운영위원장 1977년 이화여대 교수 퇴임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82년 한·중예술원협회 부회장 1983년 제6회 개인전, 동산방화랑 1987년 제7회 개인전, 문예진흥원 1988년 제20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 1992년 예술문화대상 수상(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1999년 84세 별세, 금관문화훈장
예술활동
현초(玄艸) 이유태(1916~1999)는 이당(以堂) 김은호의 문하생으로 스승의 인물화와 산수화에 크게 영향받았다. 초기에는 섬세한 필치의 인물화, 정형적 화조화를 많이 그렸다. 이때 주로 그린 인물화가 <탐구>나 <화음>이다. 실제 모델을 대상으로 한 사실적인 화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전의 미인도 양식과는 다른 근대 여성의 이상적인 미를 그렸다. 1960년대 이후에는 주로 산수화를 그렸다. 정확한 관찰을 통해 오묘한 자연의 표정들을 찾아내어 재창조한 자연을 그렸다. 이러한 양식은 점점더 성숙하여 <설악연운>은 안개와 구름에 뒤덮인 설악산 영봉들의 빼어난 비경을 그린 것으로, 실경을 통한 연운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통해 자연의 오묘한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근경의 소나무 숲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 중간 여백에 새를 점묘(點描)하여 심원한 공간감을 조성하고 있다. 안개 위로 솟아 있는 산악들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대표작품
<화음>(1944) <탐구>(1944) <토왕폭>(1967) <설악연운>(1985)
평론
(……) 8·15해방과 더불어 현실시각의 정밀한 채색화 기법은 곧 일본화의 추종이었다는 무조건적인 비판적 분위기에서 현초도 한 때 자신의 새로운 방향정립에 고심해야 했으나, 그 동안 그가 두드러진 역량으로 각광을 받았던 채색화 수법을 헛되게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다만, 전통적 필치의 새로운 관심과 채색수법을 변화있게 조화시키는 시도로 차근한 자기변모를 도모하였다. 해방 직후, 이당의 동문 선배인 장우성을 비롯하여 이응노, 김기창 등과 우리의 전통회화의 창의적인 모색을 의도했던 결성과 몇 번의 출품작 등에서 그 의지가 표명되었다. (……) 현초는 그 실경화의 기법과 취향면에서 처음부터 독특한 현대적 성격이었다. 옆으로 넓은 시야로 펼쳐지는 중경, 원경의 첩첩 산자는 수묵으로 표현되고, 근경에 암벽과 더불어 나타나는 울창한 수목의 계절 색은 치밀한 필선과 선려한 채색으로 그려졌다. 그 수려한 풍경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체험적인 감흥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구도를 잡아 심상화시키는 수법으로, 대개는 한국의 자연미를 비특정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이지만, 설악산의 토왕폭 또는 청옥산의 쌍폭 등을 주제삼은 실경대작과 역작들도 있다. 현실적인 시각이 강조된 사실적 수법과 심정적인 사의(寫意)가 결합되고 조화되는 현초의 산수풍경 형식은 그의 전형적인 특질로 정립되었다. 가령 그의 산수풍경에서 수림의 맑고 눈부신 현실감의 단풍색은 사실적인 세심한 표현감각으로 그려지지만, 그 속에 곁들여지는 청색이 더러 내포되기는 하지만 수묵화적인 표상으로 형식화시킨다. 그러한 양면성의 조화는 이당의 기법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현초는 장송의 묘사에서의 현필묵법을 암벽과 먼 산 형상의 기법 및 그 농담변화의 수묵화 요소와 관련짓게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수묵화의 일면을 구현하는 특질적인 작풍을 성립시키고 있다. 한편 현초의 심산 풍경에는 대개 산사나 정자가 화면상의 의도적 배려로 호젓하게 나타나고, 자욱하게 안개가 깔리는 산곡의 깊은 원근공간에는 새떼를 날게 하는 등 면밀한 시점이 도입되곤 하지만, 인경은 일절 배제된다. 그 점에 대하여 현초 자신은 어느 잡지에 쓴 글에서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산수화에 인물이 들어있어야 좋아하지만, 막상 대자연을 접하게 되면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케 된다. 대자연 속의 인간이란 그저 미물에 지나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현초는 그의 산수경에 인물 점경을 넣지 않는다는 태도이다. 그러나 그는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그림 수업단계에서부터 인물화 기량을 충실히 쌓은 화가로서 별도 작업의 인물상과 초상화에 손대는 일은 있다. 1974년에 제작된 <퇴계 이황선생상>(한국은행 소장)등이 그 대표작이다. 그런가 하면, 그는 채색화로 정밀한 꽃그림과 수묵담채 및 부분적인 설채의 화조화도 가끔 그리며 폭넓은 역량을 발휘한다. 그러나 현초가 실현시키고 있는 뚜렷한 독자적 세계는 풍부한 자연과 깊은 정취가 표현되는 실경과 심의의 산수풍경들이다. 1965년에 제작된 야심적인 대역필 <강산무진> 4부작(각각 8폭 병풍 연작)을 비롯한 많은 역작에서 그 일취경(逸趣境)을 보게 된다. (……) - ‘현초예술의 반세기와 자연애’, 이구열(미술평론가)
관련도서
<韓國近代繪畵選集: 韓國畵>, 안중식, 금성출판사, 1990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이유태>,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7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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