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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朴魯壽)

예술가명
박노수(朴魯壽)
구분
동양화가
생애
1927년 충남 연기 출생. 1940년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의 문하에서 사사했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독자적인 채색과 여백의 미를 화면에 구현해 이미 28세 때 제4회 국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이화여대와 서울대학교에서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예술원상과 은관훈장을 수여받았다. 그의 작품은 북화적인 큰 스케일과 남화적인 정신세계가 잘 어울려 새로운 한국화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세련되고 계산된 공간처리의 결과로 창조해낸 단순하고 장식적인 화면, 맑고 청신한 색채는 남정의 작품을 독자적인 한국화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작품 속에 깃든 맑고 고요한 품격은 작가 자신의 드높은 정신세계를 비추고 있다.
약력
195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1949년~1981년 제1회~30회 국전 출품 1953년 국전 국무총리상 / 美協展 공보실장상 1955년 국전 대통령상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57년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화랑 초대 출품 1958년~1987년 국내 개인전 10회 1965년 개인전(日本 東京, 쿄오토) 1967년 프랑스 예술인협회 초청 출품 1961년~1973년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1962년~198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1976년~1979년 국전 운영위원 1973년 <六鎭開拓圖> 제작(세종대왕기념관 소장) 1976년 개인전, Sweden Grafioteket 화랑 1979년 수묵화 개인전, 臺北市 前鋒화랑(자유중국) 1982년 韓·中·日 동양화 3인전 출품(일본 동경)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87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7년 미국 동서문화협회 초대美展 출품(하와이) 1988년 중앙미술대전 운영위원 1989년 서울시 미술대전 추진위원회 위원장 1991년~1992년 대한민국예술원 미술분과 회장 1994년 5·16민족상 1995년 은관문화훈장
예술활동
그는 초기에 추상화된 인물 표현과 대담한 구도와 독특한 준법을 보여주면서 산수화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이 시기의 인물화는 청아한 동양적 미의 세계를 한복을 입은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고고하고 기개 높은 준발과 분방한 필세가 특징적이며, 대각구도를 바탕으로 한 청색조의 색채와 빠른 선조가 높은 화격을 구축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간결한 수묵과 현실 초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한편 진채의 장식적인 작풍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남종화에 북화의 감각적 채색 기법을 접목시켜 근대적인 기법과 감각을 병치시키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자신만의 남정 화풍을 정립하게 된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선, 투명성을 지닌 채색, 자유로운 형태를 띤 주관적인 추상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색의 농담 조절이나 대상의 간결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으로 동양화에서는 보기 힘든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느끼게 해준다.
대표작품
<선소운>(1955) <하산요수>(1960) <소년과 비둘기>(1983)
리뷰
서울 부암동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남정(藍丁) 박노수 화백의 간원(艮園) 화실. 폭염 속에서도 빽빽한 나무가 만들어내는 푸른 그늘이 시원하다. 그의 옥인동 집에서 보면 동북방에 위치한 동산이라서 간원인 이곳에 들어온 지 어느덧 20년. 이화여대(1956~1962)와 서울대(1962~1982)에서의 오랜 교수생활을 접고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76세 고령임에도 정정한 박 씨는 바깥 풍광을 바라보며 “나무는 정직해”라고 말을 꺼낸다. 박 씨의 고매한 성품은 그림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한국적인 노송과 강안(江岸)의 야트막한 산들, 청결하게 빗어 넘긴 여인의 머릿결과 잔잔히 치켜 올라간 눈매, 소년의 외로운 등 모습과 목선이 긴 한국적인 비마(飛馬)는 한국적인 비감의 정서를 무위로 관조하는 듯하다 그의 또 다른 호인 ‘심영실(心影室)’에서 알 수 있듯이 화폭에 마음의 그림자를 투영시킨다. 미술평론가 이경성 씨(전 국립현대미술관장)는 “남정 작품은 품격이 높고 예술적으로 성숙되어 정신과 기술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북화적인 큰 스타일과 남화적인 정신세계가 어울려 새로운 한국화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한다. 노화백에게 “그림이 뭐냐”고 묻자 그는 똑같은 질문을 18세 때 스승이었던 청전 이상범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며 평소 농담을 잘 하시던 청전은 한동안 무서운 얼굴로 침묵하다가 “여운이 있어야 하네”라고 답했다 한다. 그는 “여운은 화면에 무한대 공간을 도입해 생동감을 준다. 자연을 그대로 갖다놓으면 정신이 들어갈 곳이 없다. 객관인 자연에 작가의 표현 세계인 주관이 합쳐져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박 씨는 작가를 생화와 조화로 구분짓는다. 세월이 흐르면 과실을 맺는 생화와 같은 작가가 진짜라는 의미다. 그림은 곧 자신이기에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세월을 살아온 그에게서 복더위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향을 뽐내는 매화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 <매일경제>, 2002년 7월 26일, ‘박노수 한국 전통 화단의 대가’
관련도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박노수>,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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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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