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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갑(閔庚甲)

예술가명
민경갑(閔庚甲)
구분
동양화가
생애
학창시절인 1956년에 국전 특선으로 화단에 등단, 그 후로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한다. 원광대학교에서 오랫동안 후진을 양성했으며 상파울루와 중국, 프랑스 등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대한민국예술문화상과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민족적 정서가 짙은 작업을 하며 독특한 발염법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대표작으로 <얼>, <생잔> 등이 있다.
약력
1956년~1963년 제5,10,11,13회 국전 특선 1957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1969년 상파울루비엔날레 초대출품 1972년∼1979년 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1979년 초대 개인전, 현대화랑 1985년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 1986년 한국화 100년전 초대, 호암미술관 / 아시아 현대 채묵전 초대, 문예진흥원 1989년∼1990년 서울특별시 예술위원회 위원 /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전시 심의위원 1994년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한국현대미술전(중국 북경전, 국제문화교류협회 주관) 1995년 한·중 미술교류북경전(문예진흥원) 1995년 한국현대미술 질·량·감전, 국립현대미술관 1996년 대한민국예술문화상 수상 1998년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정년퇴임 1999년 서울국제아트페어 초대작가상 수상 200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2000년 MANIF6! 2000 서울국제아트페어 / 초대작가전, 예술의전당 미술관 2001년 스트라스 아트페어 참가(프랑스), 서울시문화상 2001년 한국미술대표작가전, 예술의전당 미술관 2002년 대한민국은관문화훈장 2004년 제49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예술활동
유산(酉山) 민경갑의 초기 작품 경향은 발묵의 전개 속에 숲, 산, 복숭아 나무 등 재래의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번지기 효과가 강화되면서 화면 위에서 순수한 발묵이나 발색에 의한 서정적인 세계를 탐색한다. 1960년대는 화면의 평면성이 약화되고 입체적인 형태가 재등장한다. 1970년대는 다시 발묵과 번지기를 이용한 작품으로 회귀하고 있으나 초기의 과격하고 무절제한 우연을 통제된 미학으로 다듬고 있다.
대표작품
<생잔>(1961) <철쭉>(1980) <얼 95-2>(1995)
전시 리뷰
(……) 화가 유산은 평생 단 한번의 개인전도 가진 바 없다. 그러기에 이번에 개최하는 개인전은 화가 유산에게는 처음으로 갖는 개인전이다. 왜 이때까지 개인전을 안 가졌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지만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개인전을 갖는데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에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유산이 개인전을 갖는다는 것은 유산만이 갖는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겸양을 미덕으로 하는 한국사회에서 언제까지나 겸양의 미덕으로 자기를 낮게 평가한다는 것은 오히려 진실을 그르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그의 연륜과 그의 경험 그리고 예술적인 수련 끝에 개인전을 통해서 자기의 작품을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묻는다는 것은 시기에 알맞은 일이라 생각한다. 첫번째 개인전인 만큼 이제까지 자기의 예술작업의 모든 것을 동시에 제시하고자 그의 소재도 다양하다. 이와 같이 다양한 소재를 화가 유산은 솜씨 있는 기법으로 다루어서 가치 있는 화면을 형성시키고 있다. 화가 유산 민경갑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우리의 회화 전통의 주류를 이어온 남화의 멋을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재창조하는 데 있다. 다만 그의 방법에 있어서 자연형태를 액면대로 긍정하고 시각적인 진실을 추구하느니보다 구상과 추상의 거의 한계점이라고 할 만한 선까지 자기의 형태나 색으로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미에 도달하고자 한다. 따라서 절도있는 파괴는 유산의 경우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의 지침이다. 아울러 그는 이른바 동양적인 격조의 세계란 관념을 넘어서 그곳에서 오는 새로운 진상을 오늘의 회화의 미학으로 등장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방법과 정신으로 이루어 놓은 화가 유산의 작품세계와 그가 지향하고 있는 예술정신은 오늘의 한국현대 동양화가 지녀야 할 방법의 모색이고 아울러 제시되어야 할 문제점이라 생각된다. 결과 유산 민경갑의 오늘의 화단사적 위치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패기에 차고 규모가 큰 그러한 예술관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의 길은 참으로 험악하고 끝이 없기에 진정 화가 유산 민경갑이 역사에 돌출하는 예술가가 되려면 이제부터 남보다 더욱 고민을 하고 남보다 더욱 노력을 해야만 될 것이다. - ‘酉山 閔庚甲’, 이경성(미술평론가), 1979년 6월, 현대화랑
평론
(……) 그의 그림은 종이의 존재뿐만 아니라 물감 또한 중성화시킨다. 물감이라는 질료를 느낄 수 없는 것도 종이라는 재료 자체의 성질을 바꾸는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감을 종이에 일체화시킴으로써 물감으로서의 물질감을 약화시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물감이 종이에 얹혀지는 기존의 채색기법은 물감의 물질감을 고스란히 남긴다. 이에 비해 그의 경우에는 물감을 종이의 조직에 침투시킴으로써 종이와 물감을 분리시킬 수 없도록 한다. 단순한 색소의 침투, 즉 종이와 물감의 물성에 따른 삼투압 현상에 의한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처럼 종이와 물감을 일체화하는 독특한 방식을 이용한다. 물감을 종이 위에 칠한 다음 면이 고른 딱딱한 솔로 두드려 종이의 조직 속에 물감이 깊이 스며들도록 강제적인 행위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종이의 성질이 부드러워짐과 동시에 침투되는 물감은 질료의 조직 깊숙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 그의 그림에서 감지할 수 있는 깊이감, 또는 유현미(幽玄美)는 대자연이라는 실제를 직접 관찰하면서 사색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을 화면에 옮기는 서구적인 조형개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구현하려는 데 목표하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통해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뚫고 들어갔을 때 비로소 유현(幽玄)의 세계가 열린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이 그려내는 세계인지 모른다. (……) 특히 1990년대 초반부터 전체적인 색채이미지가 서서히 밝아지다가 중반에 이르면 급격히 화려한 원색조로 완전히 탈바꿈한다. 1980년대 말의 작품이 무겁고 어두웠던 이유는 수묵이 주도했던 데 연유한다. 수묵이 주도했을 때 채색은 색채의 포름에 관여하면서 수묵의 완고성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면과 면을 경계 지으면서 최소한의 형태를 구분하는 데 필요한 윤곽선의 역할을 병행했다. 아울러 닫힌 이미지를 열어주는 데 기능함으로써 시각적인 통로가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그림 너머의 정신세계로 가는 의식의 개활지로서의 의미도 부여했다. 채색은 수묵에 비해 상대적으로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음에도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했다. (……) - ‘유산 민병갑의 작품세계’, 신항섭(미술평론가)
관련도서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민경갑>, 문선호, 금성출판사, 1979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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