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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현(盧壽鉉)

예술가명
노수현(盧壽鉉)
구분
동양화가
생애
노수현은 황해도 곡산 출생으로 호는 심산(心山) 또는 심산(心汕)이라 하였다. 1913년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이듬해 서화미술회(書畵美術會) 동양화과를 나와 그림공부를 하다 중국 북·남종화와 일본 채색화가 화단을 지배하던 당시 조선후기 회화의 마지막 보루였던 심전(心田) 안중식과 소림(小림) 조석진에게 그림을 배웠다. 1921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가 1923년 조선일보로 옮기고, 1926년 조선미술전람회에, 1929년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에 입선하여 금패를 받았다. 194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되고 1962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에 선임되었으며 1974년 회고전을 열었다. 조선미술상·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등을 수상하고, <고금영서(古今迎書)>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약력
1921년~1936년 서화협회전(서울) 1921년~1923년 동아일보 입사 1923년 노수현·이상범 2인전, 개성학교 / 제2회 조선미술전람회 3등상 1923년~1926년 조선일보 입사 1926년 제5회 조선미술전람회 특선 1929년 조선박람회 금메달 1934년 조선미술상 1940년~1948년 심산화숙 설립 1942년 개인전, 화신백화점 1945년 조선문화건설본부중앙협의회 동양화 부위원장 1948년 서울대 예술대학 교수 및 명예교수 1949년~1960년 국전 심사위원 1955년 서울시문화상 1957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1958년 예술원상(공로상) 195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61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명예교수 1962년 대한민국문화훈장 1964년~1967년 국전심사위원 1974년 대한민국문화훈장은관 / 회고전, 신문회관 1999년 한국미술50년: 1950~1999전, 갤러리현대
예술활동
노수현(1899~1974)은 철저한 이상적 정신미를 추구한 관념산수를 제작한 작가로, 심산유곡을 즐겨 그렸다. 이러한 산수의 조형은 작가 특유의 양식으로 이어져 산과 바위의 특질을 표현하기 위한 준법이 원용되었는데 이는 1950년대에 이르러 본격화되었다. 심산의 산(汕, 물이름 산)은 조선의 강이름을 뜻한다. 그의 이름대로 심산은 서구 미술이 화단의 주류로 자리잡아 가던 혼란한 시절에도 우리 전통화의 맥을 이어가며 박세원, 이종상, 신영상, 송영방, 이규선 등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심산 노수현이 그린 산수화에는 바위산의 힘센 골격미가 돋보인다. ‘가장 돌을 돌답게 그리는 화가’라는 화단의 평을 듣는 심산은 외형을 넘어 내면에 생동하는 기운까지 형상화해내는 일품의 솜씨를 보인다. 심산 노수현은 생전에 “흙보다는 바위산이 좋고 또 내 화의(畵意)에 맞다”라고 말하며 붉은 기가 감도는 희미한 갈색의 바위산을 그의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생전에 심산이 묘향산보다는 금강산을 더 좋아했던 것도 금강산에 빼어난 바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산촌>, <계산정취>, <도원조행> 등의 그림이 이 시기의 심산이 그린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나이 들어서도 심산은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아 붓을 굴리는 듯 독특한 흘림체 형식으로 자연을 묘사하는 몰골(沒骨)준법, 비가 내리듯 화면을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 점으로 채우는 우점(雨點)기법 등 오늘날 심산 산수화라고 일컬어지는 독창적인 기법들을 고안했다. <추강은거>, <강안추색> 등이 그의 말년에 그려진 완숙한 작품들이다.
대표작품
<산수화> <추경> <화조화>
작품 리뷰
노수현(1899~1974)이 제작한 연대미상의 이 작품은 강물에 섬이 떠 있듯이 몇 개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 강기슭에 나무가 거의 없는 기암괴석의 봉우리와 마루터기의 살색 색조가 원경을 이루고 있다. 가까운 바위산과 강 건너의 덩어리들의 조화로운 구도가 눈에 띄는 작품이다. 멀리 가물거리는 곡선의 야산이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강의 공간은 화면 전체를 넓고 크게 보여주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한 엷은 먹으로 칠한 다음 진한 붓으로 덧칠을 하여 습윤하고 뿌연 느낌을 주고 있다. 안정감 있는 구도, 고요하고 적막이 감도는 분위기가 늦은 가을의 정취를 풍긴다. - 참고: 한국의 회화 심산 노수현 화집
평론
심산 노수현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모든 예술은 시대에 따라 변천·변화하는데, 그 과정이 서서히, 그리고 내적 변화를 일으키면서 전통에서 창조에로 이행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만큼 심산은 전통적인 산수화, 특히 북종산수의 최후의 유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심산은 그의 80년에 걸친 생애에서 형식을 위주로 하는 전통을 지피고 북종화 전통의 파수병이 되었던 것이다. 심산 예술의 정체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현대 속에 북종화의 명맥을 이어왔고, 그 계승작업의 과제에서 현대적인 요소를 절충하여 새로운 회화로 만드는 데 있다. 그 구체적인 성과는 다음과 같은 세 분류로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첫째 구도법이요, 둘째 부채법이요, 셋째 독특한 준법 등이다. 첫째 구도법은 전통적인 삼원법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원경의 요원함과 중경의 아담함과 근경의 소담함이 어울려 자연천지를 형성한다. 그 사이를 새가 날고 구름이 흐르고 배가 떠내려가고 사람이 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어 예술 속에서 영속화한다. 부채법은 초기의 청록 위주에서 나중에는 청홍으로 옮겨졌다. 이는 그의 관조와 인생관의 색채적 표현일 것이다. 다음 독특한 준법이란 1945년을 분수령 삼아 그 이전과 이후로 약간의 변모를 보인다. 특히 1920년도를 전후해서 일어난 그의 만년작의 우점준은 그가 전생애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북종화적인 화격을 크게 변모시키는 일대개혁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우점준은 오유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같은 계열로 발전된 묘점(묘필이 완성)이 쌀알처럼 생긴 가로점(횡점)인데 비해 우점준은 세로점으로 산이나 바위에서뿐만 아니라 나무 묘사에도 겸용되어온 준법이었다. 77년 생애의 긴 세월을 한 줄기 회화의 길을 좇아 삶을 이어온 이 노대가의 예술은 얼마만큼의 변모를 기대할 수는 있으나 이미 이루어 놓은 발자취로서도 그가 한국근대미술이라는 황량한 시대의 한줄기 빛에 찬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예술과 인간의 올바른 평가는 그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하기에 심산 노수현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은 자연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전집 노수현>, 이경성(미술평론가), ‘북종화전통의 파수병’
관련도서
<韓國近代繪畵選集: 韓國畵>, 안중식, 금성출판사, 1990 <心汕 盧壽鉉-韓國의繪畵>, 이흥우, 藝耕産業社, 1989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노수현>, 문선호 편, 금성출판사, 1977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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