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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봉(都相鳳)

예술가명
도상봉(都相鳳)
구분
서양화가
생애
함경남도 홍원(洪原)에서 출생하여 일본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였고, 광복 후 숙명여대 교수로 있으면서 ‘국전’ 창설에 가담, 제1회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미협이사장 등 미술 관련단체를 주도하면서 미술행정가로서도 활동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서양화가로서 고전적인 예술세계를 지키는 데 충실하였으며, 도자기의 샘물[도천(陶泉)]이라는 호에서도 알 수 있듯, 한국의 백자를 사랑하여 백자(白瓷)나 라일락을 소재로 한 많은 정물화와 풍경화를 부드러운 필치로 묘사하였다. 정물화는 탄탄한 구성과 완벽한 형태, 여기에 조선백자를 중심으로 목가구 등을 배열해 격조 높은 화면을 완성한 작가라는 평을 얻었다. 예술원상·국민훈장모란장·문화예술상 등을 받았으며, <백자 항아리가 있는 정물> 등이 대표작이다.
약력
1920년 보성고등보통학교 졸업, 고희동에게 서양식 그림을 배움 1921년 도일(渡日), 명치대법과(明治大法科)에 입학하였으나 미술로 전향 1922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27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 졸업, 졸업 후 연수과에 남아 연구를 계속함 1928년 개인전, 함흥상업학교 강당 1930년 개인전, 종로 모나미다방 1931년 명륜동에 양화연구소인 숭삼화실 개실 1946년 고희동, 장발, 이종우 등과 대한미술협회 창설 1948년 숙명여자대학교 미술과 교수 겸 미술과장으로 재직 / 문교부 예술분과위원회 미술위원 역임 1949년~1975년 국전 창설에 가담, 제1회 국전 서양화부 심사위원,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1954년 문총 최고위원에 피선 1955년~1958년 대한미술협회 위원장에 피선 1955년~1959년 개인전, 동화화랑 1960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 제1회 3·1문화상 수상 1961년 국전제도가 개선됨에 따라 국전 고문으로 위임 1964년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 1965년~1966년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역임 / 국제조형작가회의(IAA) 한국위원회 위원장 1966년 제5회 IAA 동경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 1967년~1969년 개인전, 신세계화랑 1968년 제17회 국전 심사위원장 / 신문화 60년 유공자상 수상(대통령 표창) 1969년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 위원장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에 선임 1970년 엑스포 한국관 미술진열 책임자로 도일 / 대한민국국민훈장모란장 수상(대통령 표창) / 제2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수상(대통령 표창) 1970년~1975년 개인전, 현대화랑 1975년 개인전, 한일화랑 1987년 10주기전, 현대화랑 1992년 자주독립운동 헌신에 대한 공로 표창(대통령 표창) 1994년 개인전, 송원화랑 2000년 개인전, 노화랑 2001년 국가유공자 증서 수여
예술활동
서양화가 1세대인 도상봉은 우리나라의 첫 서양화가인 고희동으로부터 그림을 배우고 1922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하면서 조선백자에 매료돼 조선백자의 소박하고 부드러운 선과 색채는 평생 그의 주요 소재가 되기도 했다. 도상봉의 그림은 크게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인물화는 초반기에 해당하는 1930년~1950년대에 주로 제작됐다. 도쿄미술학교 수학의 영향으로 정확한 형태감각과 아카데미즘에 기초한 엄격한 조형미가 특징이다. 그의 인물화에서 대상은 무엇보다 ‘확실한 존재’이고 그 대상은 사실주의적 기법에 따라 엄격한 구성으로 조절된다. 인물화에도 도자기는 작품의 주요 소재가 되고 있다. 또한 당시 일본 화단에서 성행하던 밝은 외광 속에서 인물이나 사물의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강조하여 그리던 인상파 경향은 도천의 예술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도상봉 그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백자 항아리에 안개꽃이나 국화, 라일락이 가득히 꽂혀 있는 유형의 정물화는 안정된 구도 속에 다른 형태와 크기의 백자를 적절히 배열하고 색채를 대비적으로 배치하여 조화롭다. 이런 정물화를 전 생애에 걸쳐 가장 많이 제작했다. 후반기로 갈수록 도상봉은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특히 자신의 주변의 풍경을 많이 그리는데, 이것은 회화는 생활의 반영이어야 한다는 그의 사고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주로 그린 것은 비원, 광릉 등 고궁이나 전통 가옥이다. 수평구도와 투시도법을 중심으로 특유의 균형감각과 함께 한국적인 정취와 운치가 물씬 풍긴다. 도상봉의 회화는 낯선 모티프에로의 확장이나 실험을 꿈꾸는 대신 비교적 단조로운 소재들을 반복해 다루면서 부드러운 필치로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에서 온화하고 여성적인 독특한 미적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부드러운 붓 터치와 마티에르 속에 대상물의 숨결과 색채를 따사롭게 피워내기도 하고 잠재우기도 하는 그의 원숙함은 한국적 정서를 서양화 기법으로 담고, 동양화 기법을 더한 새로운 회화의 경지를 개척한 작가로 꼽히게 한다.
대표작품
<명륜당>(1933) <한정>(1949)
전시 리뷰
정물화는 고리타분한 주제다. 꽃이라든지, 백자라든지, 식탁 위 과일 바구니에서 도대체 무슨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도천(陶泉, 도자기의 샘) 도상봉(都相鳳, 1902∼1977)의 정물화는 다르다. 대상이 볼 때마다 새롭다. 편하고 따뜻하다. 손녀이자 서양화가 윤희 씨(41)는 “이번에 할아버지 작품을 다시 보면서 그리는 대상과 화가와의 진지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그림이 생명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고 말했다. 뚫어지도록 오래 봐야 움직임이 감지되는 대상이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말이다. 도상봉이 그린 백자를 오래 보면 미묘한 움직임이 전해온다. 극도로 단순화한 선 처리와 음영은 무한의 깊이를 전해준다. 작가가 대상에서 비밀스럽게 포착한 아름다움이 저것이었구나 하는 울림이 전해진다. 정물화라고 해서 대상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만이 갖고 있는 시선으로 사물을 재창조했다는 느낌이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미니멀리즘’이다. <비원풍경>(1973) 같은 작품에서 보이는 단순한 구도, 터치와 선 처리는 절제의 백미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 밑바닥에는 진하고 무거운 페이소스가 깔려 있다. 그의 페이소스는 슬픔이 아니라 나른함이다. (……) 작품은 인물화와 정물화, 풍경화로 크게 구분된다. 정물화는 꽃, 과일, 조선백자, 목기, 서양식 술병 등이 화폭에 담겼고, 풍경화는 그가 살던 혜화동 인근 모습이 담겨 있다. 인물화는 1930~1950년대 작품으로 동경 미술학교 시절의 영향을 지니고 있던 때로 정확한 형태감각과 엄격한 조형미가 돋보인다는 평이다. (……) - <동아일보>, 허문명, 2002년 10월 15일, ‘덕수궁 미술관 도상봉 화백 탄생 100주년 기념전’
평론
도상봉의 예술세계를 그렇게 부각시킨 것은 화랑가나 어느 누구의 어떠한 작용이 있었다기보다도 작가 자신의 엄격하고 체질적인 자기 집중적 화면작업과 그 내실성이 궁극적으로 가져다 준 것이었다. 그는 육중한 체구에 고집과 자존심이 강한 스스로의 권위로 오로지 자신의 예술 관념과 사실적 기법의 객관적 엄격성을 철저히 고수하는 태도로 일관한 유화가였다. 그 점에서 그는 스스로 각별한 예술적 무게와 깊이를 구현시켰다. 그는 꾸준한 제작생활로 전통적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정신을 자신의 회화세계로 실현시킨 특질적인 대가로 우리의 근·현대 미술사에 큰 빛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예술의 뚜렷한 내면성은 195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 그 이전의 작품이라고는 東京미술학교 유학 직후인 1930년 전후에 일반적 재현주의 수법으로 그려진 풍경화·인물화·정물화 몇 점이 전해질 뿐이다. 그리고 1945년의 민족해방 전후 시기까지의 우리 미술계 상황과 사회현실은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충분치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위축시켰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배경에서 都相鳳의 제작생활도 그만큼 여의치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1949년의 제1회 國展에서부터 양화계의 중진으로 추천작가 및 심사위원이 되면서 그의 제작활동은 새로운 의욕의 단계에 접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1950년의 6·25전쟁 발발로 인해 그 제작 의욕은 수년간 다시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 열정이 두드러지게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53년의 휴전 직후부터였다.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일각을 침통하게 그린 <폐허>와 전쟁이 지나간 가을의 고요한 <성균관 풍경>(호암미술관) 등 대작을 비롯하여 인물화, 정물화가 피난지 釜山에서 돌아온 뒤에 성북동집 화실에서 잇따라 제작되었다. (……) 그 작품들의 전형적인 ‘도상봉 수법’은 모두 대상의 엄격하고 명확한 객관적 관조(觀照)와 독특하게 깊이 있고 무게가 있는 색조 분위기, 그리고 구도의 확실한 안정감 등으로 특색을 성립시키는 세계이다. - ‘엄격한 객관적 표현과 무게 있는 색조 분위기’, 李龜烈(미술평론가)
관련도서
< To Sangbong>, 도상봉, 국립현대미술관, 2002 <20인의 한국현대미술가>, 오광수, 시공사, 1997 <韓國近代繪畵選集: 洋畵 >, 李龜烈 편, 금성출판사, 1990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 도상봉>, 금성출판사, 1976
관련사이트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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