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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동(趙興東)

예술가명
조흥동(趙興東)
활동분야
한국무용
생애(약력)
유년시절부터 무용 외길 인생을 예고라도 하듯 놀이패와 굿판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마을 춤꾼들의 춤사위에 젖어 살았던 조흥동은 경기도 이천의 대지주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춤꾼으로의 인생에 발을 딛는다. 전통춤판의 이름있는 대가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한국춤을 사사하였으며, 당시만해도 여성 일색인 무용계에서 남성으로서의 좁은 입지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춤세계를 꿋꿋하게 일구어온 무용가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조흥동은 1962년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본격 춤무대에 등장. 1968년 첫 개인무용발표회 이후 전통춤만으로 무대를 꾸미기도 하고 어느 때는 신무용류로, 또 어느 때는 무용극 양식이나 완전히 다른 창작춤의 모습을 견지하기도 한다. 1967년 동남아 6개국 순회공연을 필두로 1984년 L.A.올림픽 문화축전, 1996년 미주공연을 비롯 인도, 중국, 일본 등 아시아지역과 유럽 각국 순회공연을 포함 1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고, 40여 편의 작품을 안무해오며 한국춤의 표현영역을 끊임없이 확대해 오고있다. 1964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1995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수료 1966년 동명여자고등학교 교사 역임 1982년 한국무용평론가협회 회원, 한국남성무용단 창단 1990년 국립무용단 상임 안무가 1991년~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이수자 1993년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 1995년 <태평무> 보존회 회장 2001년~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 2003년~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초빙교수,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상훈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 입상(1979) / 제3회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1981) / 서울특별시 문화상(1992) / 한국예술가평론가협의회 최우수예술가상(1993) /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문화체육부) (1995) / 제27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5) / 대한민국 문화훈장 옥관장(2000) / 이천시 예술부문 문화상 (2003)
출연작
1997년 <원효대사> 1981년 <황진이> 1982년 <썰물> 1986년 <은하수> 1999년 <한량무> <우리 아버지> <회상>
안무작
1968년 <귀향> <선화무> <고풍의 연가> 1969년 <광영> <벌의 상태> <회한> 1971년 <춘향전> 1974년 <제신의 고향> 1976년 <이차돈> 1978년 <탑교놀이> 1979년 <푸른 흙의 연가> 1981년 <춤과 혼> <회상> 1983년 <맥> <부마사랑> 1984년 <부운> 1985년 <젊은 날의 초상> 1986년 <대(代)> 1988년 <길놀이> 1989년 <신> 1990년 <흙의 울음> 1992년 <강강술래> 1993년 <환> 1994년 <무천의 아침> 1997년 <우리 춤 그 맥> <회상> <김삿갓> 1998년 <비나리 98> 2000년 <우리 춤 그 맥 2000> <연인> <나흘간의 춤 이야기> 2001년 <황진이>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002년 <조흥동 춤의 세계> <화합의 빛> <마의 태자> 2003년 <우리 춤 맥> <삼별초 혼>
주요저서(대본)
<제신의 고향>(1974) / <춤과 혼>(1981) / <맥>(1982) / <부운>(1983)
창작노트
나는 이번 작품을 안무하면서 굳이 ‘무용극’이란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무용이란 그 자체가 곧 극(劇)이라 생각되며, 음악은 소리로, 미술은 그림으로, 그리고 무용은 춤으로 어떤 극적인 상황도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무용은 추상적 상징의 예술이기 때문에 어떠한 극을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철학과 상상력이 내재되어 있는 작품이 되어야 관객들의 반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 - 국립무용단 56회 정기공연 <신(神)>, ‘안무자 노트’
리뷰
조씨 춤은 백과사전과도 같다. 이름난 춤꾼들을 스스로 찾아가 배우기를 거듭해, 스승 숫자를 세기도 벅찰 정도다. 우선 김진걸, 송범에게서 기본을 배웠다. 김천흥의 <처용무>, <춘앵전>, 한영숙의 <승무>, <살풀이 춤>, 이매방의 <승무>, <오고무>, 은방초의 <살풀이>, <무당춤>, 전사섭의 <설장고>, 황재기의 <소고무>, 장홍심의 <장고무>를 익혔다. 김백봉, 김윤학, 주만향의 기법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굿쪽엔 김석출의 <동해안 별신굿>, 안사인의 <제주굿>, 우옥주의 <황해도 만구대탁굿>을 섭렵했다. 임준동, 박송암 스님에게서 불교의식 무용도 배웠다. 1992년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첫 남자이수자가 돼 공식적으로 한성준-강선영 계보를 잇게 됐다. - <조선일보>, 1997년 11월 11일 (……) 스승들에게 배운 전통춤을 배운 그대로 추기를 거부한다. 자기식의 춤제를 가미해 새로운 구성과 기법으로 소화해 놓는다. 그렇지만 철저하게 전통적인 범주안에서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전통춤꾼으로 칭하는 데에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 없다.(……) 조흥동의 춤은 일단은 유려하고 기품이 넘친다. 팽팽한 긴장감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순응적이며 여백을 즐길 줄 아는 여유가 내포돼 있다. 그것은 타고난 그의 심성과도 관계되고 출생 및 성장과정 그리고 춤 학습내력과도 맞물리면서 한편으로는 궁중문화가 뿌리깊게 잔존하고 있는 중부권 문화 특징의 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 <전통의 변용과 춤 창조>, 성기숙, 현대미학사, 1998 (……) 1986년 초연된 <시나위춤>은 호적을 주악기로 하며 사물장단이 받쳐주는데, 장단벽화에 걸맞는 다양한 춤적 기교가 볼만하다. 농악가락에 춤사위를 한참 먹어주다 살짝 채어 넘긴다거나, 두 팔을 높이 둥글게 들었다가 ‘턱-’하고 내려놓을 때의 찰나적 맛과 멋, 한 발 딛어 앞으로 전진, 곧 이어지는 후퇴 등 조흥동의 춤사위는 일면 즉흥적인가 싶다가도 다양한 민속가락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부분에서는 철저하게 계산된 몸놀림의 결과로 비춰지기도 한다. (……) - <무용예술>, 1997년, 5월호, ‘딸의 죽음을 <귀천(歸天)>으로 풀어내’
관련도서
<전통의 변용과 춤 창조>, 성기숙, 현대미학사, 1998 <2004년 한국의 무용가>, 댄스포럼 춤연감간행실 편, 댄스포럼, 2004
연계정보
-무천의 아침
-강강술래
관련사이트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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