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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작품/자료명
명성황후
초연장소
국립극장 대극장
안무가
국수호
장르구분
1981년 이후
출연/스태프
* 출연 최현, 김현자, 국수호 외 * 스태프 음악/국종묘제례악 · 모차르트(레퀴엠), 미술/ 이태섭, 의상/ 그레타 리, 미스터 리
내용
민비 시해 사건을 소재로 일본 낭인패들의 폭거, 대원군-고종-민비 간의 알력, 민비의 최후 등 민비 주변의 급박한 상황을 재연한 작품 1장 진혼 2장 인간 고종 3장 대원군 4장 민비 등극 5장 궁정에서의 시해
예술가
국수호 (1948~ ) 전북 완주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무용과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5년 박금술, 송범 선생에게 한국무용을 사사 받고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하였다. 1985년 중앙대학교 예술대 무용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88년 한국평론가협회에서 최우수 예술가로 선정되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1996년부터 1999년까지 국립무용단 단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하였다. 현재 국수호 디딤무용단 이사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동하고있다. 대표작품 <농악>(1971) <무녀도>(1984) <대지의 춤>(1987) <봄의 제전>(1991) <명성황후>(1994) <티벳의 하늘>(1998) <한국환상>(2002)
리뷰
94년 국립극장에서 국수호 춤 30년에 창작되어 공연된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의 부각이 무대화에 어려운 점을 극복하고 94년 최고의 작품상을 얻어냈었다. 음악적 특성, 즉 종묘 제례악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합성하여 비운의 왕비를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요인이 되어 음악적 선택에 탁월성을 보였고 한국 최고의 춤꾼(최현, 김현자, 국수호)의 절묘한 화합은 이 작품의 춤극적 완성도를 높이는데에 큰 기여를 하였다.
재공연
- 1995년 6월 8일~10일 국립극장 대극장, 정재만, 김현자, 국수호 외, 민비시해 100주기 기념공연 - 1998년 베세토연극제 참가공연 - 2002년 11월 5일~6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수호 안무, 디딤무용단 창단 15주년 기념공연
평론
<명성황후>에서 높이 평가할 점은 주제, 앙상블, 종묘 제례악과 모차르트의 진혼곡을 합성한 실험이었다. 국수호는 역사의 현장을 춤으로 점검하고 그 원인 또는 비극을 춤으로 춤쟁이답게 풀어나갔다. (<춤> 1994년 6월호, 김영태) 연극이 가진 서술성을 흡수하면서도 군무의 위용과 역동적인 표현성, 조명과 의상의 변화에 크게 힘입는 스펙타클함, 매력적인 주인공들의 출연에 의해 압도적인, 총체적인 극장예술이 되고 있었다. 이 작품은 우리의 극장예술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하나의 방향제시적 증표라 봐도 좋다. (<춤> 1994년 6월호, 김태원) 국수호는 이 완숙하고 난숙한 주인공들과 일사불란한 군무, 다양한 도구를 갖고 갖가지 그림을 만들어 보인다. 그의 연극적 재능이 풍족한 인적, 물적 양감(量感)의 콸콸한 흐름을 타고 시원하게 흐른 무대였다. (<춤> 1995년 7월호, 이종호)
관련자료
“대지적 감성으로 ‘비상하는 학’” <객석> 1994년 4월호, 장광열
관련사이트
국수호 디딤무용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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