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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립동

작품/자료명
초립동
초연장소
부민관(추정)
안무가
최승희
장르구분
1926년~1945년
출연/스태프
* 출연 최승희
내용
최승희가 스승인 이시이 바쿠에게서 한국적인 춤을 출 것을 권고받고 한성준 선생에게서 한국춤을 단시일 배운 후 안무한 여러 한국소재 작품 중 한 작품으로 우리나라 옛풍습 중 하나인 조혼제도를 소재로 하여 나이 어린 소년의 새색시를 맞는 들뜨고 기쁜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예술가
최승희 (1911~1969) 1911년 서울 출생. 숙명여학교를 졸업한 후 1926년 이시이 바쿠를 따라 도일하여 3년간 현대무용을 수련하였다. 1929년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1930년 제1회 신작무용발표회 개최 후 다섯 차례 신작무용발표회를 가졌다. 1933년 일본으로 가서 1934년부터 해마다 발표회를 가졌으며 1937년부터 미국을 기점으로 유럽과 남미에서 해외 순회 공연을 3년간 가졌다. 1941년부터 한국과 중국, 일본을 순회 공연했다. 1946년 월북하여 최승희무용연구소(1953년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로 격상)를 개설하고 1950년 북한 무용동맹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51년 중국 북경희극학원 무도반 교수를 역임하고 중국 순회 공연을 가졌다. 1955년 북한 인민배우가 됐으며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하였다. 세계청년축전예술제(폴란드, 1955)에서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북한 국가훈장 제1급 서훈을 받았다. 대표작품 <우조춤> <보살춤> <초립동> <에헤야 노아라> <고구려 무희> <광상곡>
재공연
-2001년 4월 22일~23일 한전아츠풀센터, 백향주 출연, 한전아츠풀센터 개관기념공연
기사
조선 고전 무용의 기법을 사용하고 거기에다 양무의 기법을 편용함으로써 의상은 조선 것을 채용하고 있지만 그 창작적 태도나 연출에는 서양적인 형태를 취하였다. (“서양 무용에서 기교 섭취한 방순균정한 최승희” <동아일보> 1937년 9월 9일, 오병년)
관련도서
<최승희 무용예술 연구> 이애순, 국학자료원, 2002. <우리 무용 100년> 김채현 외, 현암사, 2001. <춤추는 최승희> 정병호, 뿌리깊은나무,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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