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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섭 (1940.7.18~)

예술가명
김중섭 (1940.7.18~)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74.6.12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전수 장학생 선정 1977.2.14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이수자 선정 1980.9.1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조교 선정 1987.1.5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 보유자후보 선정
학력(계보)
1961.4. 국립국악원부설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생애(약력)
1961.4. 국립국악원 연주단원 1964.2.~1971.6. 국립국악원부설 국악사양성소 실기 강사 1964. 국립국악원아악연주단 일본, 미국, 캐나다, 이란 순회공연 1966.12. 국립국악원 별정직 6급 1971.4. 국립국악원개원20주년 근속 모범직원 표창 수여 1975. 국립국악원아악연주단 아시아민족예술제 참가 1975.12. 우수 공무원 표창 수여 1976.9. 우수 공무원 국무총리 표창 수여 1978. 국립국악원아악연주단 아시아민족예술제 참가 1979.~1982. 미국, 캐나다 순회공연 1980.3.~1982. 국악고등학교 실기 강사 1984.3.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서울예술전문대학 강사 1985. 국립국악원아악연주단 백림음악제 및 독일 순회공연 1985. 서울예술전문대학 국악과 강사, 국립국악원 연주단 악장 1987.1. 국립국악원 지도위원 1990.5. 한일아악교류연주회 처용무 공연 1993.1.~12. 국립국악원연주단 원로단원 1994.1.~1998.3. 국립국악원정악연주단 지도위원 1999.5. 울산처용문화제 처용무 지도 및 공연 1991.10. UN가입기념 문화예술단 미국 및 일본 공연 1992.5. 울산처용문화제 처용무 지도 및 공연 1992.5. 제25회 하계올림픽 참가 문화예술단 유럽 5개국 순회공연 1993. 무형문화재 <제100회 풍류의 밤> 가즌회상 완주 1993. 미국 공영TV 처용무 촬영 1993. 국립국악원연주단 원로단원 1994.12. 국악의 해 KBS-FM <국악명인전> 단소명인 출연 1995.10. 2002년월드컵유치 유럽 순회공연(러시아, 브뤼셀, 영국) 1996.3.~1998.8. 용인대학교 예술대학 강사 1996.10. 중국문화원 주관 북경한국주간 <코리아페스티발> 참가 1997.7. 울산광역시 승격 축하공연 처용무 출연(문화예술회관) 1997. 제1회 울산태화강축제 처용무 출연 1998.4.~1999.12. 국립국악원정악연주단 예술감독 1998.7. 제52회 아비뇽축제 한국주간 정악연주단 인솔 및 출연 1998. 이태리 밀라노축제 한국주간 정악연주단 인솔 및 출연 1998. 재미동포 국악강습회 단소 지도강사 참가 1998. 제10회 재미국악원 정기연주회 초청공연 1998.10. 무형문화재 발표회 1998. <가을날의 조화> 김중섭, 최충웅 2인 독주회 1998.11. 북미지역(벤쿠버, 시애틀, 오타와, 토론토) 순회공연 1999.1. 일본 아사히신문사 초청 국악공연 참가 1999. 제11회 재미국악원 정기연주회 초청공연 2000.10. 문화재청 처용무 기록영화 촬영 2000. 제12회 재미국악원 정기연주회 초청공연 2001. 국립국악원개원50주년 우리시대 예인의 무대 초청공연 2001. 우리민속 한마당 <김중섭과 구음회의 풍류세계>(국립민속박물관) 2001. 조선왕조 궁중연회 함녕전 내진연 음악기획 및 연주 2001. 제13회 재미국악원 정기연주회 초청공연 2001. <우리민속 한마당-김중섭의 무(舞), 악(樂)> 공연(국립민속박물관)
리뷰
인간문화재 후계자 34 귀신아 물렀거라 내가 왔다 1971년 1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된 처용무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궁중정재의 하나다. 처용설화가 전하고, 처용가가 남아있으며, 거기에서 비롯된 처용무가 고려와 근세조선을 거쳐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아내를 범한 역신을 노래와 춤으로 감동시켜 쫓아버렸다는 처용의 얘기와 그 춤과 노래가 궁중의 나례의식 속에서 살아 남아 천년이 넘는 나이를 먹은 것이다. 현재의 처용무는 남해용왕의 일곱아들 중 막내였다는 처용아비의 형용을 따온 크고 붉은 탈을 쓰고 동·서·남·북·중앙의 5방을 상징하는 청·백·적·흑·황의 5색의 의상을 입은 5인무로 추어진다. 음악은 수제천, 표정만방지곡, 관악영산회상, 송구여지곡 등이 기본이 되는 20박 10박 6박 타령의 느린 장단이다. 그 움직임은 크고 힘차고 장중하다. 처용무의 인간문화재는 현재 김천흥, 봉해룡, 김태섭, 김용씨가 있고 이수자는 10명이다. 1987년 보유자후보로 인정받은 김중섭씨는 위로 어른들을 모시고 젊은 전수 장학생들을 가르치는 전수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처용무는 춤사위나 발의 디딤새, 탈이나 의상이 모두 크고 우람하게 표현됩니다. 긴 한삼으로 팔의 힘과 길이를 연장하고 발을 높이 들어 힘있게 딛고 디딤새도 거인의 걸음걸이 같고 커다란 탈과 화려한 의상도 모든 것을 큼직하게 표현합니다.” 그가 본 처용무의 특성이다. “빠른 장단에도 가볍지 않고 느린 장단에도 무겁지 않은 것”이 처용무를 추는 사람의 기본자세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중섭씨는 1940년 7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나 국악원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중·고과정에서 대금전공으로 국악공부를 했다. 거기서 그는 김기수, 김천흥, 김성진씨에 사사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국비장학생이라는 것때문에 들어간 학교에서 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고 정말 좋아하는 세계를 얻은 거죠.” 졸업 후 그는 곧장 국악원연주단원이 됐고, 거기서 대금, 단소, 소금 등으로 활동을 했다. 처용무는 이왕직 아악부시절까지 전통적으로 악사들이 담당해 왔다. 궁중여령이나 무동의 차지가 아니라 어른 남자들인 악사들이 맡아온 춤이다. 그 전통대로 그 춤의 현재의 보유자 이수 전수생이 모두 성인 남성이고 음악에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다. “무용 전공자들이 처용무에 쉽게 들어오지 못합니다. 처용무의 특성이죠. 음악의 구조나 춤사위 디딤새가 하나로 연결된 힘찬 표현이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탈춤과도 다른 특이함이 있습니다. 힘만 있어도 안되고 아름답기도 해도 안 되는 거죠.” 그가 터득한 처용무의 특색이다. 그는 공연 외에도 한번씩 모여서 연습하고 가르치는 일로 처용무를 지키며 평소에는 꾸준히 몸을 준비해 놓으려 애를 쓴다. “집 근처 보라매공원에 아침마다 나가서 걷고 뒷짐지고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는 운동을 합니다. 다리 힘을 키우고 지키려는 겁니다. 산에도 자주 가고요.” 국악일생을 살아가면서 그가 전수받고 전수시키고 있는 처용무는 또 하나의 보람이다. <일간스포츠>, 구히서, 1991년 4월 27일관련가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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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연화대처용무합설(鶴蓮花臺處容舞合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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