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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광야에 서서

작품/자료명
새벽, 광야에 서서
초연장소
대구문예회관 대극장
안무가
장유경
장르구분
1981년 이후
출연 / 스태프
출연 장유경무용단 스태프 안무/장유경 음악/이상만 무대미술/이태섭
내용
<풍경 1 : 광야의 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 이육사의 <광야> 중에서 <풍경 2 : 침범과 고난의 행렬> 아, 가도다, 가도다, 좋아 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 쥐고 쫓아 가도다. 진흙을 밥으로 햇채를 마셔도 가졌으면 단잠을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님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을 빼서 가리라! -이상화의 <가장 비통한 慾>- “間島移民을 보고” <풍경 3 : 분열된 자화상> 마돈나! 지금은 남은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전에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 중에서- 분명 라이플 선(線)을 튕겨서 올라 그냥 화화(化華)처럼 살아서 곱고 오랜 나날 연초(烟硝)에 끄스런 얼굴을 가려선 슬픈 공작선(孔雀扇) 거칠은 해협마다 흘린 눈초리 항상 요충지대를 노려가다. -이육사 <광인의 태양> 전문- <풍경 4 : 씨뿌리는 자의 노동과 기다림 속에 환희> 내 손에는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샘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데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중에서-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이육사의 <청포도> 중에서-
창작의도
1995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이다. 국내적으로 해방 50주년과 지방자치의 원년이 되고, 국제적으로는 한국의식의 국제화와 세계화라는 목표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50년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대해 되묻게 만든다. 특히 일제 식민통치를 겪은 좌우의 야심투쟁과 동족산장의 비극을 겪은 한국의 근대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정리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암시해준다. 그것은 일단 그 무엇에도 억눌리지 않는 민족자립의 정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족자립’의 정신은 결국 그 어떤 것에도 기대지 않는 즉 우리 것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로운 것을 찾는 행위와 직접 연관된다. 부끄러워해야 할 것과 의미를 주어야 할 것 사이에 명확히 구분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올바른 지방자치와 그와 연관된 지방문화도 그러한 자립의 정신을 스스로 갖지 못하면 성립되기 어렵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내 것 없는’ 세계화는 결국 외부의 세력에 대한 종속현상을 지지해줄 뿐이다. 무용서사극 <광야의 노래>(全 4장)는 일제라는 굴욕적인 역사의 시기를 겪고 살아왔던 두 시인(詩人) - 이상화와 이육사 - 의 작품과 삶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의미를 읽어낸다. 두 시인은 우리 시야와 문화적 감각에 그 삶의 뿌리를 둔 지역출신의 시인이자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는 탁월한 민족시인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李相和는 1900년 대구시 서문로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나, 1919년 기미독립운동에도 참가했으며, 1921년에는 ‘백조(白潮)’라는 문학동인에 합류, 본격적인 시학활동을 시작하여 1920년대에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명시들은 1920년대에 이미 발표하였다. 李陸史는 1904년 경북 안동 태생으로 1920년 후반 이후 보다 적극적인 독립운동(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 등)에 연관되면서, <광야>, <청포도>, <절정>, <교목>과 같은 뛰어난 시편들을 남겼다. 두 시인 모두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민족의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졌다. 李相和가 다소 소극적인 자세에 의해 밀실에 갇혀 울분을 삭이고 서정적으로 토로하는 타이프라고 한다면, 李陸史는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상징적 이미지를 빌어 그 감정을 승화시키는 강건한 남성적 기상을 가졌다. 한 시인은 일제하라는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좌절된 낭만주의적 심성을 가져 많은 여인들과 애정을 나눴는가 하면(이상화), 한 시인은 그의 사생활이 어떠했는지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이육사). 그러나 여하튼 두 시인은 각자 어두운 시절을 지내오면서, 우리의 삶과 꿈이 구겨지지 않고 확장되기를 바랬다. 이상화와 이육사의 걸작들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광야>가 특히 그렇다. 그런 지역문화의 자존심, 그와 더불어 또한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먼데서 찾지 말고, 가까운 우리의 역사적 인물과 그들이 역사에 투영한 정신 속에서 찾자는 것이 이 무용서사극을 만들어보는 근본 동기이다.
장유경
경희대 대학원 졸업, 대구 계명대 교수, 장유경무용단 예술감독, 계명대학교 교수 (한국무용 전공), 경북여고, 경희대학교 무용학과, 동대학원 졸업, 경희대학교 이학박사, 대구광역시 지방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 이수자, (사)한국무용협회 대구광역시지회 이사, 김백봉 춤보전회 상임이사, 대구무용진흥회 이사, 한국미래춤학회 이사 대표작품 <새벽, 광야에 서서>(1996), <날개>(1996), <수로가>(1996)
리뷰
대구 출신 시인 이상화, 이육사의 저항 정신을 다룬 창작품, 이상화(김용걸), 이육사(배성철)역을 구심점으로 장유경이 물동이에 꽃을 이고 나오는 서정성이 주목된다. 물동이 들꽃을 버리는 장면은 암울했던 일제 만행 시대의 울분을 그 들꽃에 은유했다. 시 낭송, 인성 처리도 허밍으로 춤에 기여했다. (김영태 -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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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장유경 무용단
연계정보
-청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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