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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락(船遊樂)

작품/자료명
선유락(船遊樂)
구분
정재
개요
선유락(船遊樂)은 뱃놀이 형식을 띠는 정재로 다른 정재에 비해 규모가 크고 화려하다. 창사는 어부사(漁父詞)를 부른다. 문헌에 선유락의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는 1795년(정조 19)으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 나타난다. 그러나 정조대에 궁중연향에서 연행되기 이전 지방에서는 이미 공연물로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선유락에 대한 가장 앞선 기록인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중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에 전하는 글에서 확인된다. 박지원의 기술 내용을 보면 선유락이 궁중정재로 채택되기 이전에 서도지역의 배따라기 노래를 춤으로 형상화한 형태로 공연되다가 후에 궁중으로 이입되었으리란 해석이 가능하다. 선유락이 궁중으로 이입되는 데에는 선상기(選上妓)의 역할이 큰 것으로 여겨진다. 인조대에 경기(京妓)가 폐지된 이후 생긴 향기(鄕妓)의 선상 제도는 선유락과 같은 지방의 정재가 궁중으로 이입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 궁중연향에서 선유락을 담당한 정재여령 가운데 서도지역 출신이 많은 점이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내용
1901년(신축) '여령 각정재무도홀기'에 기록된 선유락 정재의 진행순서는 아래와 같다. 악사가 아름답게 치장한 배를 이끌고 들어가 전(殿) 중앙에 놓고 나간다. 닻을 잡은 동기(童妓)와 돛을 잡은 동기가 배 가운데에서 좌우로 서로 등지고 앉는다. 내무기(內舞妓) 10인이 안에서 줄을 잡아 끌고, 외무기(外舞妓) 34인이 줄을 잡고 배를 끈다. 다음에는 왼쪽으로 돌며 서로 이어선다. 집사기(執事妓) 2인이 몸을 구부리고 조심스럽게 걸어서 북향하여 전(殿) 중앙에서 엎드려 두 손으로 소매를 들어 ‘초취(初吹)하라’는 명을 받고 나가, 정로(正路)에서 남향하여 나수(螺手)를 불러 “초취”라고 호령한다(나각을 세 번 분다). 집사기가 몸을 구부리고 조심스럽게 걸어들어와 ‘이취(二吹)하라’고 명을 받고, 앞의 방법과 같이 호령한다. 집사기가 ‘삼취(三吹)하라’고 명을 받은 것도 앞의 방법과 같이 한다. 집사기가 들어와 ‘명금이하(鳴金二下)하라’고 명을 받고 나와서, 징수를 불러 “명금이하”라고 호령한다(징을 두 번 친다). 음악이 취타를 연주한다. 집사기가 들어가 꿇어앉아 ‘행선(行船)하라’는 명을 받고 일어서서, 남향하여 ‘순령수’를 불러[여러 기녀가 응답한다.] “행선”이라고 호령한다(여러 기녀가 응답한다). 여러 기녀가 배를 끌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추면서 어부사(漁父詞)를 부른다. 귀앞에 난 머리털이 눈처럼 흰 늙은 어부가 개펄사이에 살면서 스스로 말하길, 물에서 사는 것이 산에서 사는 것보다 낫도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아침 물결이 겨우 물러나자 저녁 물결이 밀려 오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하니 배에 기댄 어부 한 어깨가 으쓱거린다 푸른 줄풀 잎사귀 위에 서늘한 바람이 일어나고 붉은 여뀌풀 꽃 둘레엔 백로가 한가롭다 돛 달어라 돛 달어라 동정호 안에 바람이 세게 불어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하니 돛단배를 급히 저으니 앞산이 홀연히 뒷산으로 되는구나 끝난다. 집사기가 들어가 꿇어앉아 ‘명금삼하(鳴金三下)하라’는 명을 받고 징수를 불러 “명금삼하”라고 호령한다. 징을 세 번 친다. 음악이 그치면 물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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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계정보
· 관련도서 <원행을묘정리의궤>, 수원시, 1996 <정재무도홀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여령정재홀기>, 인남순·김종수 공역, 민속원, 2001 <한국무용개론>, 장사훈, 대광문화사, 1992 <고종신축진연의궤 권1, 한국예술학과 음악사료강독회>, 한국예술종합학교, 2001
용어해설
초취(初吹): 처음에 나각을 불어서 경계를 시킴. 두 번째, 세 번째 나각 부는 것은 각각 이취(二吹) 삼취(三吹)라고 한다. 명금삼하(鳴金三下): 징을 세 번 침. 행선(行船): 배를 출발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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