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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무(勝戰舞)

작품/자료명
승전무(勝戰舞)
지정여부
승전무 보존회, 한정자(고무), 엄옥자(검무)
구분
민속무용
개요
승전무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이 싸움터나 병선(兵船) 위에서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통영 교방청 그녀들로 하여금 북춤과 검무를 추게 한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또 삼도수군통제사의 하례시와 군점(軍点, 삼도수군을 집결시켜 사열, 군기, 관함, 군량점검, 연습 등을 합친 행사)에서도 북춤과 검무가 합설하여 연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춤은 후일에 충무공의 춘추향례(春秋享禮)나 탄신일 행사 때에 사당에서 헌무(獻舞)하였다가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어 그 전승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였으나 교방청 출신의 김해근 할머니의 생존 제자인 고 정순남(鄭順南)에 의해 이어져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정순남은 북춤과 검무를 같이 합연하여야 비로소 완전한 통영승전무가 성립된다고 하면서, 검무의 춤사위와 북춤의 춤사위가 유사한 부분이 많고 헌무할 때의 창사 내용이 충무공의 충의와 덕망을 추앙하며 승전을 축하하고 군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뜻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로 승전무라는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 하였다. 승전무는 1968년의 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북춤만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1987년에 검무도 추가로 문화재 지정이 이루어져 지금은 합연으로의 승전무가 전승되고 있다.
내용
승전무는 북춤과 칼춤이 합하여 연행되는 춤이다. 북춤은 고려 충렬왕 때부터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져 온 궁중무고형(宮中舞鼓形)으로 통제영의 각종 의식이나 충무공의 제례(祭禮)에서 헌무(獻舞)되어 왔다. 춤을 추는 무원은 사방색(四方色)을 뜻하는 청(동쪽), 홍(남쪽), 흑(북쪽), 백(서쪽)의 단삼(單衫)을 입은 원무(元舞) 4명과 흰 치마를 입고 12방향을 뜻하는 협무(挾舞) 12명으로 구성되며, 가운데에 북을 놓고 원무(元舞) 4인이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창을 하고 춤을 추면서 돌고, 협무(挾舞) 12인이 외곽을 에워싸고 돌면서 창을 한다. 청, 홍, 흑, 백의 단삼을 입은 원무는 머리에 족두리(花冠)를 쓰고 팔에 색동 한삼(汗衫)을 끼고, 손에 2개의 북채를 든다. 협무(挾舞)는 족두리를 쓰고 녹의홍상(연두저고리와 다홍치마라는 뜻으로 ‘젊은 여인의 고운 옷차림’을 이르는 말임)에 옥색 몽도리(조선시대 궁중 잔치에서 기녀(妓女)가 입은 무의(舞衣)를 말하며, 몽두리 또는 몽두의(蒙頭衣)라고도 한다. 춤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초록색 두루마기와 비슷한 모양으로 어깨와 가슴에 수를 놓고 붉은 띠를 맨다)를 입고 팔에 색동 한삼을 낀다. 원무(元舞) 4명과 협무(挾舞) 12명이 "지화자"를 연창하며 흩어지고 모여드는 삼진삼퇴(三進三退)의 형식을 갖춘 것이 이 춤의 특성이다. 북이 한번 울리면 집합, 두 번 울리면 공격, 세 번 울리면 퇴각을 뜻한다. 사용되는 악기는 피리 2, 저 2, 해금 1, 장고 1, 북 1 개이며, 염불도드리 장단과 타령장단, 굿거리 장단을 사용한다. 칼춤은 신라시대부터 가면을 쓰고 양손에 칼을 쥐고 추던 춤으로 조선시대에는 기녀무로 변형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당시 북춤과 함께 추게 되었다. 통영검무는 진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진주검무와 동일한 계통의 여기(女妓)검무이지만 오랜 세월을 통하여 다른 역사와 환경 속에서 자연적, 인위적 가변함수를 지니고 전승되어 왔기 때문에 무태의 특색이 매우 다르므로 승전무의 보완적인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 여기검무의 원류를 파악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된다. 무구들이 홍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검정 쾌자를 걸치고 홍띠를 두르고 전립을 쓰고 양손에 한삼을 끼고 추다가 뒤에 칼을 들고 춘다. 따라서 이 춤의 의상은 홍치마, 흰저고리, 흑쾌자, 전립, 홍띠, 색동한삼이고 무구는 칼 한쌍이다. 8명의 무원이 상대무와 상배무를 한 다음 맨손으로 칼춤의 사위를 추고 나서 앉아 손 춤을 추며 칼을 쥐고 일어나며 칼춤을 춘다. 칼춤은 먼저 앉은 자세에서 우수로 칼을 쥐고 쌍칼춤을 추고 나서 연풍대를 돌게 된다. 연풍대는 8바퀴씩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며 이 연풍대를 4번 하는데 제1형으로 1차 연풍대, 제2형으로 2차 연풍대, 제3형을 두 바퀴 돌고 제4형을 6바퀴 돌고 나서 다시 제3차 연풍대 그리고 제4차 연풍대를 제4형만으로 8바퀴 돌아 끝낸다. 칼춤에 사용되는 통영에는 교방청과 고수청이 있어 가무를 관장하였고, 여기에 매인 뛰어난 악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많은 가무에서 삼현육각을 연주하였는데 통영지방의 삼현육각은 북, 장구, 원잡이, 끝잡이, 젓대(대금), 해금으로 편성되나 지금은 해금을 치는 악사가 없어 그 대신 젓대를 원잡이와 끝잡이 둘을 쓴다. 반주음악은 염불, 타령 두 악곡을 쓰며, 타령은 춤에 따라서 늦은타령, 중타령, 빠른 타령으로 변주하여 연주한다. 칼춤의 춤사위는 걸음발사위, 인사태, 쌍오리, 머릿사위, 맥임사위, 평사위, 잦은 사위, 겨드랑 사위, 모둠겨드랑 사위, 잦은 겨드랑 사위, 돌림사위, 엇사위, 좌우돌림사위, 칼어룸사위, 외칼사위, 진격태, 연풍대 등과 같은 춤사위가 통합되어 있다. 승전무의 북춤은 협무를 할 때 치마저고리를 입은 민속의상 차림이라는 점과 발림춤으로 추면서 창사를 부르는 것, 원무가 북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 춤사위의 태가 곱고 아름다우며 몸가짐이 부드럽고 가락이 민속적이라는 점 등의 특징을 꼽을 수 있다. 또 칼춤은 진주검무의 경우 춤사위가 외향적인 대범성의 엇사위형인데 비해 통영검무의 춤사위는 내용적이며 주로 낮은 사위와 극히 세련된 겨드랑사위가 많다. 이것은 지역적 특성이나 전수과정에서 생긴 교방청 연희자 개인들의 영향도 있겠지만 통영오광대 칼춤의 겨드랑사위의 작용이 더 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승전무와 함께 협소한 연희장소에서 연행되었기 때문에 겨드랑사위가 발달하고 내형적인 세심한 춤사위로 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전승자정보
승전무의 전승은 보존회과 한정자, 엄옥자 등의 예능보유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재 지정 당시의 보유자는 정순남(무용) , 이갑조(장고), 주봉진(대금), 박삼열(피리) 등이다. 이후 정순남에 이어 한정자(고무)와 엄옥자(검무)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으며, 장고는 이기숙, 대금은 이치조-> 유덕관에게 전승되었다. 피리는 박복률과 김진규에게 전승되었다. 1) 한정자(1942년~) 1960년대에 정순남으로부터 승전무를 전수받았으며, 1976년 이수자가 되었고 1996년에 승전무 북춤으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승전무의 전수 뿐만 아니라 제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으며, 국내외에 승전무를 보급하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2) 임옥자(1943년~)승전무의 검무 분야 예능보유자이며, 취봉(翠峰) 김백봉에게 무용을 배웠다. <영남검무의 춤사위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승전무 전수에 힘쓰고 있다. 승전무 공연은 196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연계정보
재구성重要無形文化財解說(舞踊.武藝.飮食篇), 文化財管理局 編, 文化財管理局, 1990.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관련도서
重要無形文化財解說(舞踊.武藝.飮食篇), 文化財管理局 編, 文化財管理局, 1990. 한국예술사전 4권(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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