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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모테트합창단

단체명
서울모테트합창단
개요
맑고 깨끗한 울림, 정제된 화음, 깊이 있는 음악으로 순수합창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최고의 수준의 합창단으로 평가 받아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진정한 프로로서의 바른 정신과 수준 높은 합창음악을 통해 한국의 음악문화와 교회음악의 발전을 위해 지휘자 박치용과 열정적인 음악가들에 의해 1989년 창단 되었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등장은 자생적 직업연주단체가 없었던 우리의 합창계와 음악사회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영향을 끼쳐왔다. 그리고 한국의 합창음악과 음악계 전체에 미래를 향한 이상적인 모델로서 평가 받아왔다. 자연스러운 발성과 풍부한 배음, 환상적인 하모니로 대변되는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맑고 깊은 울림은 듣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키며 합창단의 고결하고 순수한 정신까지 느끼게 한다. 또한, 깊이 있고 영감에 가득한 음악은 인간의 내면을 위로하며 영혼까지 치유하는 음악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한다. 또한 파트 간의 균형과 조화, 단원들의 일체감 넘치는 리듬과 감정의 표출은 합창단의 풍부한 음악성과 지휘자와 모든 단원이 합창단의 정신과 음악적 이상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우리 음악계와 사회에 미래를 향한 참신하고 창조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와 같이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성실과 음악적 능력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 받아왔으며 특히 함께 협연했던 수많은 국내외 유명인들로부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최고 수준의 합창단이라는 찬사를 들어오고 있다.
창단사
‘모테트’ 라틴어이다. 원래의 의미는 경문가 인데 불교에서 염불을 외우듯이 성경의 말씀을 붙여 노래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는 이것이 다성 음악의 합창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고대와 로마시대에는 음악은 신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성가는 아무나 부르지 못했다. 사제만이 부를 수 있었고 후에는 전문 성가대만이 부를 수 있었다. 일반회중들이 찬송가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500년 전 독일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였다. 이쨌든 ‘모테트’라는 말은 로마교회(가톨릭)의 산물이었다. 이 합창단의 발족은 처음 동호인적 성격으로 출범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다니던 현 지휘자 박치용을 중심으로 동지적 결합과 신앙심이 이를 이루어냈다. 마치 캠브리지 킹스컬리지에서 함께 노래했던 사람들이 킹스싱어즈를 이룬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테트합창단의 예술적 수준은 가히 국제적이다. 그리고 400여 회에 달하는 활동 실적,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심과 순수한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항병원의 강윤식 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후원자들의 정성, 이것은 우리나라 합창음악의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나는 15년 전 모테트합창단이 창립될 때부터 그 과정을 알고 있었다. 89년 학생같은 20대의 젊은 청년이 내가 근무하던 월간 객석을 찾아왔었다. 그 당시 (주)예음이라는 곳에서 <객석>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고 있었다. 많은 출혈을 감수하면서 잡지를 내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더러는 음악가들이 도움을 구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내가 <객석>을 찾아온 박치용 씨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분명히 그를 푸대접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모테트합창단 10주년 프로그램에 도와주신 분 이름 가운데 최원명 씨의 이름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 박치용 씨의 모습은 순박하면서도 신념에 차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람을 제대로 몰라보고 오늘의 박치용을 예측 못한 것은 일생일대의 큰 실수이다. 어쨌든 15년이 지난 오늘날 모테트합창단이 우리나라 직업합창단으로 우뚝 선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이것은 그들의 종교적 신앙심이 바탕을 이룬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합창단이 직업화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주요활동내용
1989. 10. 창단 초청연주회 1990. 03. 제1회 정기연주회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1991. 01. 한국합창총연합회 심포지엄(시범합창단) / 제 5회 정기연주회 호암아트홀 ‘멘델스존의 교회 음악’ 1992. 04. 마태 수난곡 연주(서울 심포니 주최) 1993. 10. ‘성가곡과 아리아의 밤’ 단원 특별 연주회 / 이스라엘 키부츠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 1994. 08. 예술의 전당 세계 합창제 출연 / 윤이상 Opera <나비의 과부> <유동의 꿈> 3회 공연 / 백인클럽 후원의 밤 1996. 05. 카메라타 상트 페테르부르크 챔버 오케스트라 협연 / 신영옥 송년 콘서트 협연 1997. 04. 제29회 정기연주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베르트의 합창음악> / 탈북자를 위한 자선음악회 /‘3인 음악회’ 단원 특별 연주회 / 세계 현대 음악제 팬뮤직 페스티발 / 제31회 정기연주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멘델스존의 합창음악’ 1999. 07. 제37회 정기연주회 10주년 기념음악회 Bach <B단조 미사> / 평택 동방사회복지원 2000. 10. 새천년 맞이 한국작곡축제 / 제42회 정기연주회 ‘바흐 서거250주년 기념음악회시리즈Ⅳ’ 2002. 05. 독일 순회연주(5월5일~16일) / 북한 평양 연주 / 평양고려호텔/ 일본초청연주 2003. 05. 국립국악원 제56회 한국창작음악발표회 2004. 06. 제56회 정기연주회 / <KBS 1TV 문화지대> / 초청연주 / 구세군선교음악회 연세대백주년기념관 / 특별연주 / 창단 15주년기념음악회 영산아트홀 / 뮌헨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예술가
그는 순수 국내파로서 그의 철두철미함은 이미 사계에 정평이 나있을 정도이다. 수백 번 연주했던 작품일지라도 반드시 준비 연습만큼은 철저하게 라는 것이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이끄는 모토이다. 이는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존립가치를 높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모테트의 성실함, 음악적 아카데미는 창작음악, 실내악 현대음악 등 어떤 장르일지라도 저희 단체를 우선적으로 생각해 줄때 많은 보람을 찾습니다. 합창단은 트레이너, 지휘자가 다를 수 없습니다. 프로그래밍에서 연습 과정을 거쳐 무대에 오르기까지 이 공연이 마지막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긴장감을 갖고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 이장직 기자, 2004년 3월 중앙일보 “박치용. 순수 국내파. 수백 번 연주했던 작품일지라도 반드시 준비 연습만큼은 철저하게 라는 것이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이끄는 모토이다.” - <음악춘추>, 2004년 4월호 “정통 합창음악 선보이며 한국 합창음악의 방향제시”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창단은 서울대 음대의 콘서트 콰이어와 체임버 콰이어의 결합이 모태가 되었다. 서울예고에서 작곡을, 서울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박치용은 당시 콘서트 콰이어 지휘를 맡고 있던 배덕윤에게 지휘봉을 물려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합창 지휘에 입문한 그는 체임버 콰이어를 끌어들여 1989년 7월,'가장 순수하고 음악적인 합창음악의 실현', '교회음악의 바른 이상 제시'라는 모토를 내걸고 서울모테트합창단을 출범시킨 것이다. “저는 번스타인 같은 대지휘자가 꿈이었죠. 그러나 음악을 공부하면서 몇 번의 좌절을 맛보았어요. 그 과정에서 사회를 바라보게 되고, 80년대 이후 ‘대중화’라는 미명 아래 음악의 상업화 현상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을 목격했지요. '합창음악 없는 합창단'이란 불명예스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합창계의 현실이었죠. 유학을 준비하던 중 그런 합창계 현실을 직시하고 결단을 내렸지요. 수준 높은 순수 합창음악으로 ‘현재의 문화수준, 음악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보겠다’라고요.” 서울대 동문들이 주축이 되어준 프로 합창단으로 출범한 이 합창단은 창단 6개월 만인 90년 1월에 직업 합창단으로 전향하면서 단원들의 문호를 개방하고, 후원회를 결성하는 등 빠른 시일 내에 프로화 작업을 마치고 합창계 전면에 나섰다. 그리고 그 해 초 모차르트 미사 브레비스 C장조, 북스테후데의 '칸타타 도미네', 팔레스트리나의 모테트와 마드리갈, 퍼셀의 앤섬, 찬송가 등을 레퍼토리로 창단공연을 가졌다. “직업 합창단으로 재출범과 함께 장안동 폐차장 골목에 있는 재림 패션 지하창고에 연습실 겸 사무실을 내고 새 살림을 차렸지요. 후원 회원이었던 재림 패션 사장님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거든요. 하지만 환경은 참 열악했어요. 지하 창고라 여름 휴가를 다녀오면 습기가 차서 악보는 곰팡이가 까맣게 슬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지요.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들 연습했어요. 그렇게 3년을 그곳에 머무르며 기량을 탄탄히 닦아나갔지요.” 그 사이 이들은 팔레스트리나, 하슬러, 마렌치오, 몰리 같은 르네상스 시대 작곡가들의 모테트와 마드리갈을 비롯해서 스카를라티, 텔레만 등의 바로크모테트, 파헬벨, 퍼셀, 페르골레지, 비발디 등의 종교음악을 집중적으로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92년 '마태 수난곡' 전곡 연주의 성공으로 이들의 위치는 확고해졌다. -‘이 달의 음악가’, 백성현, 월간<객석>, 1999년 7월호
리뷰
“서울모테트합창단 창단 15주년 기념 바흐의‘나단조 미사’ 연주”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합창단으로 평가 받아 온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진정한 프로로서의 바른 성신과 수준 높은 합창음악을 통해 한국 합창음악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발전을 갖고 프로합창단으로서의 최고의 자리를 구축하는 데에는 지휘자 박치용(성신여대 초빙교수)의 숨은 노력이 근저에 깔려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우리 음악계에 서울모테트합창단의 등장은 자생적 연주 단체가 없었던 우리의 합창계와 음악사회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반향을 불러 모은 동시에 영향을 끼쳐왔다고 자부합니다. 창단 후 지난 15년 동안 합창음악과 음악계 전체에 미래를 향한 이상적인 모델로서 평가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연주 단체로 성장해 왔습니다.” 창단 후 지금까지 54회의 정기연주, 기획연주, 방송출연, 초청연주 등 400여 회의 경이적인 연주 기록은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성실함과 음악적 열정을 대신한다. 또한, 연주 레퍼토리를 보면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아카데믹한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모테트와 마드리갈, 창단 10주년을 기념한 바흐의 <나단조 미사>, 헨델의 <메시아> 전곡 연주, 2000년 바흐 서거 250주년 기념음악회 시리즈 등 바로크 시대의 주옥같은 합창음악의 걸작들, 그리고 고전, 낭만, 현대음악과 한국창작 음악에 이르기까지 서울모테트합창단의 영역은 다양하고 폭이 넓다. 이 외에도 레코딩 작업 또한 성실히 해오고 있는데 현재 19종의 음반을 출반, 올해도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우리 합창단의 존재의 힘은 역시 단원들의 결속력에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모두 인컴으로 모이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음악이 즐겁고 음악적인 수준을 높이는 작업을 통해서 서로 향상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화합되고 있습니다.” 15주년 기념행사는 7월17일 국내유명 연주가들과 함께 하는 특별 연주회, 10월5일 하이든의‘천지창조’ 12월21일에는 헨델의 <메시아> 전곡 연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중앙일보>, 2005년 4월 29일 “열정 하나로 15년 버텼어요” (……)국립·시립합창단 아니면 아마추어 합창단밖에 없던 시절 서울모테트합창단의 탄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대기업의 후원으로 탄생한 민간 직업 합창단인 대우합창단과 횃불합창단이 각각 창단 6년, 창단 2년 만에 아쉽게도 해산됐던 1989년의 일이다. 대우합창단과 횃불합창단이 대기업 한 곳의 후원을 받다가 얼마 못 가서 활동을 접은 데 반해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처음부터 개미 군단의 정성 어린 후원으로 출발했다. 200명의 후원 회원들이 1만원~500만원의 후원금을 매월 보내온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처음부터 연주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프로 체질로 무장했다. 한편, 현대음악 초연도 언제든지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기량도 갖췄다. 시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에도 가요와 팝송, 뮤지컬을 넣어야 하는 게 요즘 추세다. 하지만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아카데믹한 레퍼토리를 고집해 왔다. ‘모테트’(13세기 중세의 합창곡)라는 간판에도 정통 클래식을 지키려는 고집이 배어있다. 바흐의 미사곡을 모두 연주했고 연간 4회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소개한 국제 초연곡도 여럿 된다. 그렇다고 방송 출연이나 외부 초청 연주, 지방이나 병원방문 연주를 게을리 한 것은 아니다. ‘헝그리 정신’ 하나로 출발한 단체라 어려움이 많았다. 외환 위기로 후원의 손길이 뜸해졌을 땐 몇 푼 안되는 단원 월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지금도 ‘월급’이라고 해봐야 시립합창단의 절반 수준이다. 후원을 제의해 오는 기업에게 합창단 이름을 바꾸거나 음악에 간섭하지 말라고 못 박는 것도 변함이 없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대중의 시류에 영합하면서 흔들리면 안되겠다는 확신 때문이다. 지금 사용 중인 연습실도 5년 전에야 겨우 마련한 것이다. 5년 전 박 씨가 지휘하는 주님의교회 성가대 대원인 강윤식(49)원장이 서울 방배동 대항병원 신축과 함께 지하에 연습실과 사무실을 마련해 준 것.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지난 2001년 서울시로부터 <전문예술법인>으로 지정받았다. '이상만의 음악이야기’, <음악춘추>, 2004년 5월호 “서울모테트합창단이 15년을 벼텨온 것은 기적이다” ‘모테트합창단의 예술적 수준은 가히 국제적이며 300회에 달하는 활동 실적,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심과 순수한 열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수많은 후원자들의 정성은 우리나라 합창음악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서울모테트합창단은 르네상스, 바로크 합창음악과 종교곡에 관한 한 국내정상급 연주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모차르트의 경우 잘 불려지지 않는 소품 한두 곡을 제외한 미사곡 전곡을 시리즈로 완주한 바 있고, 96년부터는 바흐 칸타타 전곡 연주 장정에 올라 현재까지 21번, 67번, 140번 등을 포함해 8곡을 무대에 올렸다. 합창단이 존재하는 한 ‘평생의 작업’이 될 것이라는 이 바흐 칸타타 전곡 연주 시리즈는 종교 칸타타가 끝나면 곧바로 세속 칸타타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모차르트 미사곡의 경우 258번과 259번이 남았는데, 마저 무대에 올려 완결 지을 생각입니다. 모차르트에 이어 바흐를 택한 것은 바흐가 서양음악연구의 중심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죠. 바흐를 이해하면 서양음악의 흐름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바흐를 모테트 합창단의 중심 축으로 삼을 생각입니다. 그것도 가장 순수하고 정통적인 접근방식으로요." 이 단체가 합창 관계자들의 주목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은 1991년 1월에 열린 한국합창 총연합회 심포지엄의 시범 합창단으로 참여 하면서부터다. 사흘간에 걸쳐 올림픽 파크 호텔에서 열린 이 심포지엄에서 이들은 합창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며, 잘못된 한국 합창음악의 방향 수정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들은 그 해에 4회에 걸쳐 지방 초청 공연을 가졌다. (……) 이들은 92년에 장안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초동에 위치한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그 과정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휘자 박치용이 자신이 살던 전셋집의 전세금과 조금씩 모았던 유학자금을 털어 연습실을 임대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요. 막연하게나마 언젠가는 떠나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이 일로 인해 그 꿈을 접게 되었죠. 서울모테트합창단에 모든 승부수를 던진 것이죠.” 이들의 레퍼토리도 르네상스, 바로크 교회음악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프랑크 등을 거쳐 현대음악까지 한층 폭이 넓어졌다. 여기에 이건용과 이영조 등 국내 작곡가들의 합창음악까지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그동안 연주한 수백 곡에 이르는 합창곡 가운데 반 이상이 국내 초연이란 점도 주목의 대상이다. “몬테베르디의 '주를 두려워하는 자는 행복하도다', '나 기쁨에 충만하여' 같은 곡은 이탈리아 박물관을 뒤져 찾아낸 곡입니다. 세계적으로도 몇 차례 연주되지 않은 곡이죠. 또한, 14회 정기공연에서 선보인 프랑크의 3성의 미사곡 작품12 같은 곡은 아직 레코딩조차 되지 않았고요. 이러한 곡을 찾아내 연주하는 것은 단순히 희귀한 곡을 소개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합창음악의 맥을 제대로 짚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은 계속될 것입니다.” - 국제무대 노크하는 공격적인 프로그램 만든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반 청중들과 유리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청중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선뜻 찾아나선다. 창단 이듬해인 90년부터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방 순회공연을 하고 있고, 1993년과 1995년에는 문예진흥원의 후원을 받아 전국 고등학교 순회연주회를 했다. 또한, 1996년부터는 문화 소외지역 순회연주회, 장애인 특수학교 순회연주회를 갖고 있다. 여기에 각종 교회 연주회와 방송출연연주도 빼놓을 수 없는 공연 일정 중의 하나다. "음악은 서로 나눌 때 가치가 생기고 빛이 납니다. 대신 그 음악은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설득력을 잃지요." 이들이 청중들에게 다가가는 방법 중 보다 적극적이고 특이한 프로그램은 송년음악회다. 이들은 연초에 후원회와 일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송년음악회 때 연주될 헨델 <메시아> 연주 참여 신청서를 받아 오디션을 실시한다. 이 오디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악보를 나눠줘 연습하게 하고, 다시 가을에 이들을 모아 한 달 정도 연습을 시킨다. 그리고 단원들과 함께 메시아 공연에 출연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1996년과 1998년 송년음악회 때 두 번 그런 음악회를 했는데, 정말 신선했고, 반응도 좋았어요. 그 무대에 선 사람들은 단순한 청중 입장이 아니라, 무대를 이해하고,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으로 다가오더군요. 그동안은 격년제로 실시했는데, 가능하면 매년 그런 무대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들의 앞으로의 10년의 작업은 국제 수준의 합창단으로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권위 있는 국제 합창 콩쿠르, 국제 페스티벌 참가 등 보다 공격적인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싱어즈의 지휘자 존 루터, 독일의 유명한 합창 지휘자 베르너 파프 등으로부터 '한국에도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있다니 놀랍다'라는 평가를 받은 터이다. 그런 만큼 자신감도 충만해 있다.(……) ‘이 달의 음악가’, 백성현, 월간<객석>, 1999년 7월호
관련 음반
찬송가 6집 <오 신실하신 주>, 2003년, 서울음반 < Messiah >, 2002년, 국제음반 <명곡 모음집 그대를 사랑해>, 2002년, 서울음반 < Sacred Songs 명성가 6집 >, 2003년, 서울음반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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