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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제과 노동쟁의 사례극

작품명
해태제과 노동쟁의 사례극
구분
1980년대 초중반
작품소개
이 작품은 해태제과의 여성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투쟁 과정을 극화한 사례극이다. 전문인이 아닌 노동자가 만든 투쟁사례극들은 대부분 그 투쟁의 체험 주체인 노동조합이나 사업장 내의 연극반 등에서 만드는 것이 보통인데 비해, 이 작품은 노동현장 외곽인 종교단체의 노동자 모임에서 만든 것이다. 서울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1983년 10월부터 1984년 4월까지 총 24주 동안 진행되었던 문화교실 제1기에 모였던 노동자들이 문화교실을 마무리하는 졸업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이 문화교실에 참가한 노동자들 중 몇 명만이 해태제과의 노동자였고 각기 다른 사업장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해태제과의 투쟁사례를 극화하기 위해서는 직접 투쟁을 체험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과정을 거쳤다. 내용은 도급제 철폐로부터 시작한 해태제과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을 평이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문화모임 참가자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민요, 풍물, 노래놀이, 극놀이 등의 기량을 바탕으로 하여 짧은 기간 동안 준비한 것이다. 1984년 4월 부활절 기념공연으로 서울 당산동 성문밖교회에서 공연되었다. <민족극대본선 3 – 노동연극 편>, 민족극연구회 엮음, 풀빛, 1991 극작·연출 노트 몇 명의 노동자가 몇 개월간의 모임을 함께하며, 그 모임을 마무리하는 연극을 공연하기로 했다. 사실 몇 개월이라고는 하나 평일의 경우 각자의 회사에서 잔업이나 야근을 하는 일이 잦아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에야 약간의 시간을 낸 것이 전부라고 해도 좋은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힘들게 모여 지낸 시간들이었기에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했던 귀중한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임의 마무리 작업으로 결정된 연극은 4月 22日을 공연일로 잡고 2月13日부터 모두의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 ‘00제과주식회사 연극대본 작성과정 및 평가’, 산업선교회 제1기 노동자문화교실, 1984 (……) ㅈ: 시간이 별로 없었지? 그러니까 우리가 일주일 한 거지? ㅂ: 이주일 해서 만든 거야. ㅈ: 총 연습량이 다섯 번, 그러니까 일곱 번을 맞춰봤대요. 전부 다 모여본 적이 어저께 한번밖에 안돼요. ㅎ: 야. 능력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울렸어? 싸가지 없게. (웃음) ㅈ: 응, 정말 싸가지 없다. ㅎ: 아냐, 나같이 강철심장도 눈물이 나올려고 하더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옆에 콘트롤(편집자주: 콘트롤데이타코리아로, 노동자들이 다국적 기업의 횡포에 노동조합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1982년 대규모 부당해고를 당하고 말았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1984년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말이냐>를 공연했다.)에 한 친구가 앉아 있었는데, 그 애가 줄줄 흘리더라고, 그냥 잠깐 울다가 싹 모른 척하는 게 아니라 줄줄 흘러. ㅈ: 나 한참 참았어요. ㅎ: 아휴, 다 울더라. (……) ‘부활절 기념공연 평가’, 산업선교회 제1기 노동자문화교실, 1984
작품내용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간부에게 도급제를 폐지해줄 것을 연거푸 요구한다. 그러나 어용노조는 약속만 하고 실현할 생각이 없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나서서 도급제를 폐지하기로 한다. 자신들이 포장하는 과자의 단가를 계산해서 각자 일당만큼 8시간씩만 일을 하기로 한다. 작업량이 줄자 과장은 선풍기를 다네, 에어컨을 다네, 난리를 치지만 도급제는 폐지될 기미가 없고 노동자들의 태업도 계속된다. 회사는 탈의실 열쇠를 주지 않고 “이년, 저년” 욕설을 퍼붓다가 회사가 어렵다며 우는 소리를 한다. 8시간 노동을 고수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기사들과도 사이가 나빠져 욕설과 구타를 당한다. 회사는 소개업자, 일가친척까지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막으려 하지만 노동청에서 노동법에 따라 8시간 노동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리고 노동자들은 승리한다.
출연/스태프
스태프 작/공동창작 연출/공동연출
공연단체
영등포 산업선교회 1958년 설립되었으며 예장(통합) 총회의 영등포노회가 운영하는 기관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노동현장의 복음과 정의와 평화를 위한 선교적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노동현장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일구어내는 것이 노동선교의 정신이며 수난의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으로 활동하여 왔다. 1980년대 노동연극의 중요한 터전이었으며 최근 들어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50년이 넘게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거듭나는 모습으로 노동자와 민중들의 고난을 함께해 온 단체이다.
비평
(……) 10·26에서 이듬해 5·17에 이르는 시기에 정치·사회적 상황이 가히 폭발적인 국면에 접어들게 되면서 1980년 초 한국의 노동운동은 급속한 고양의 양상을 나타냈다. 불과 8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노동자들의 투쟁은 임금 및 근로조건의 유지와 개선, 체불임금과 휴폐업의 반대, 신규노조의 급속한 증대, 기존노조의 민주화, 해고노동자들의 복직투쟁 등 광범한 영역에 걸쳐 급속히 확산되어 노동쟁의 발생건수가 897건에 이르렀고, 쟁의참가 연인원도 20만 명에 육박하여 유신체제 7년 동안의 쟁의건수와 비슷했다. 1980년 3월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1979년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8시간 노동제 실시의 쟁취가 여타 제과업체에 확산되면서 다른 부문의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 한편 지식인 여성들의 단체활동과는 별도로 기층여성들은 기아적 저임금의 한계 상황 속에서, 그리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모든 사회운동에 대한 숨막히는 탄압 속에서 민주노조를 만들어내고 지켰으며 지속적, 조직적, 단체적으로 경제투쟁을 전개하여 여성조합원의 경제적 이익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켰다. 1970년대 민주노조 중심의 여성노동자 생존권 투쟁은 조직적이고 격렬하였다. (……) 제과업계의 대표 격인 해태제과는 주 7일 근무, 1일 12시간 근무, 곱빼기 작업, 일요일 특근 등장시간 노동의 온상이었는데 여성노동자들은 1976년 특근거부를 시작으로 하여 8시간 노동제의 실시를 위해 투쟁하였고 1980년 3월 드디어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였다. (……) <한국사 20 – 자주·민주·통일을 향하여 2>, 강만길, 한길사, 1994 (……) (1980년) 3월에 접어들어 해태, 롯데 등 제과업체 11개 노조가, 1979년 해태제과 노동자들이 시도한 바 있는 8시간 노동제 실시를 목표로 투쟁에 돌입했다. 투쟁은 성공적이었다. 예전에 12시간 일하고 받았던 임금을 8시간 기본급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성 노동자는 39.8%, 여성 노동자는 48.5%의 임금인상 효과를 가져왔다. 흥미 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화학본조의 협조와 서울시의 조정이 있었다는 사실인데, 이는 권력의 향배가 아직은 유동적인 상황에서 그동안 노동자에게 억압적인 자세를 취하던 자들이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제과업체의 8시간 노동제 실시는 즉각 다른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연쇄적인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 1980년에서 1990년대 초까지>, 박세길, 돌베개, 1999
관련서적
<민족극대본선 3 – 노동연극 편>, 민족극연구회 엮음, 풀빛, 1991 <한국사 20 – 자주·민주·통일을 향하여 2>, 강만길, 한길사, 1994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 1980년에서 1990년대 초까지>, 박세길, 돌베개, 1999
연계정보
-금수강산 빌려주고 머슴살이 웬말이냐
-원풍모방 놀이마당 ’79
-조선방직 노동쟁의 사례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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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산업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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