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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 형성의 시기: 1970년대

작품명
마당극 형성의 시기: 1970년대
구분
1970년대
개요
장 취업, 악덕기업주에 항의한 싸움과 해고, 창녀로 전락하여 비참한 최후로 이어지는 당시 기층민중 여성의 전형으로 형상화한 <미얄>(1978년), 예수의 생애를 현대 한국의 밑바닥 민중의 이야기로 바꾸어놓은 <예수전>(1978년)과 <예수의 생애>(1977년) 등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탈춤적 요소가 강한 작품들을 창작탈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의 활동으로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민중에 대한 연극교육, 예술교육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여성사업장을 중심으로 발전했던 1970년대 노동운동은,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유신체제의 강압적 분위기에서 적지 않은 사건을 남길 정도로 격앙되었다. 당시 마당극운동의 담당자들은 민주노조 안의 연극반과 탈춤반의 지도강사로 나가 이들에게 연극과 탈춤을 가르치고 이를 바탕으로 마당극 창작을 시도하였다. 이때까지 이들은 비전문인과 생산직 근로대중들에 대한 연극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돈된 인식을 가지지 못한 채 전통탈춤을 가르치는 등 대학 동아리에서와 비슷한 방식으로 활동하였지만, 바로 이러한 경험을 통해 기층민중들이 지니고 있는 자기표현 욕구와 역동성 등을 생생하게 체험함으로써 1980년대 노동자·농민 대상의 공연과 교육이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 외에 노동자들의 투쟁과 해고의 과정을 노래와 춤으로 엮어 만든 <공장의 불빛>(김민기 작사·작곡·연출, 채희완 안무)은 이후 노래운동과 춤에 큰 영향을 미쳤고,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자살한 김상진의 장례식을 공연적 이벤트로 연출하여 시도한 <김상진 장례식>(1975년, 서울대 탈춤반·문학반 등)은 이후 1980년대에 수없이 치러졌던 공연적인 대규모 의례의 시조(始祖)격이 된다. 한편 ‘민예극장’은 1974년 <서울 말뚝이>, <일설호질> 등으로 출발하여, 1975년 <덜덜다리>, 1979년 <놀부뎐>, <가로지기> 등으로 이어지는 마당극 실험을 계속해 옴으로써, 나름대로의 마당극 양식을 형성해가고 있었다. <물도리동>과 <한네의 승천> 등 전통민속연희의 요소들을 비교적 닫힌 무대에 올려놓는 실험과, 국립창극단에서의 창극 연출 등으로 현대의 한국연극과 전통민속연희의 습합 실험이, 본격적인 마당극의 양식 실험과 수반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요컨대 이 시기는 연극계 바깥에 있던 민족극 계열에서나 연극계 안의 민예극장에서나, 마당극의 양식이 형성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마당극 양식 형성의 활력은, 1980년대 민족극 계열 마당극의 양적 발전과 대형 마당놀이가 대중적으로 공연될 바탕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영미(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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