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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씨(Les Cenci)

작품명
쌍씨(Les Cenci)
작가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구분
유럽권
작가소개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 프랑스의 극작가, 시인, 배우, 초현실주의 운동의 이론가. 부르주아적인 고전극을 ‘잔혹극(théâtre de la cruauté)’으로 대치하여 인간의 잠재의식을 해방하고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원시 의식적인 체험을 시도했다. 그의 부모는 레반트 지방 그리스인의 혈통을 일부 물려받았고, 그는 이러한 배경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가 신비주의에 끌렸던 것은 그러한 영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평생을 정신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여러 차례 수용소를 들락거렸다. 초현실주의 경향의 시 작품인 <성소의 중심(L'Ombilic des limbes)>(1925), <신경체계(Le Pèse-nerfs)>(1925)를 영향력 있는 비평가인 자크 리비에르에게 보냈고, 이때부터 그 둘 사이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서신왕래가 시작되었다. 파리에서 배우 수업을 마친 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경향이 짙은 오렐리앙 마리 뤼네 포의 외브르 극장(Théâtre de l'Oeuvre)에서 처음으로 공연했다. 초현실주의의 지도자였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공산주의를 옹호하자 이들과 결별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이 지닌 힘은 정치와 무관한 것이라고 믿은 그는 또 한 사람의 이탈자인 극작가 로제르 비트라크와 합류하여 알프레드 자리 극장(Théâtre Alfred Jarry)에서 활동했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벨 강스의 영화작품 <나폴레옹(Napoléon)>(1927)에서 마라 역을 맡아 연기했고, 카를 드레예르의 고전적인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La Passion de Jeanne d'Arc)>(1928)에서는 수사로 열연했다. 그의 <잔혹극 선언(Manifeste du théâtre de la cruauté)>(1932), <연극과 그 이중(Le Théâtre et son double)>(1938)은 배우와 관객이 마귀를 쫓는 마술적인 의식 속에서 일체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배우의 몸짓, 효과음, 기이한 장면과 조명이 합쳐져서 말보다 더 뛰어난 언어가 생겨나며, 그 언어를 사용해서 사상과 논리를 뒤엎고 관객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천박성을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주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작품들은 이론서만큼 중요하지는 않으며 모두 실패작이었다. <쌍씨( Les Cenci)>는 1935년 파리에서 공연되었는데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대담한 실험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장 주네, 이오네스코, 사무엘 베케트 등의 ‘부조리극’을 비롯해 당시 연극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던 언어와 합리주의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했던 모든 예술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나서 쓴 <멕시코(Mexico)>(1936), <사회의 자살자 반 고흐(Van Gogh, le suicidé de la société)>(1947), <왕위에 오른 무정부주의자 엘리오가발(Héliogabale, ou l'anarchiste couronné)>(1934) 등이 있다.
내용
1막 쌍씨왕은 그의 폭정과 독선에 대항하여 반기를 든 반란 신하들을 죽인다. 교황은 쌍씨왕의 살인행위를 사면해주는 대신 쌍씨왕의 영토를 바칠 것을 요구한다. 쌍씨는 이에 반대하여 교황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죽여 그 시신을 신하들에게 보이며 교회에 대항하는 악의 구현을 맹세한다. 2막 쌍씨는 악을 구현할 대상으로 그의 딸 뻬아를 소유하길 원한다. 뻬아는 쌍씨의 추적을 피해 도망다니고 루크(쌍씨의 후처)는 자신의 어머니가 쌍씨의 전처였음을 알게 되어 경악한다. 또 다른 젊은 신하들은 까밀로와 만나 쌍씨에게 반란할 것을 모의한다. 3막 결국 뻬아는 쌍씨에게 능욕을 당하고 그녀의 약혼자인 오르시와 함께 쌍씨를 암살할 것을 결심한다. 한편 까밀로는 젊은 신하들에게 쌍씨가 그의 악행으로 인해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들은, 반란계획은 어쩌면 까밀로의 계략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는다. 4막 쌍씨를 죽이려 하던 뻬아는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칼을 떨어뜨리고 결국 쌍씨는 신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까밀로에 의해 체포되고 모두 처형당한다. 처형장에서 뻬아와 루크는 전염병처럼 세상을 휩쓰는 악에 대해 경종의 독백들을 내뱉는다.
국내공연연보
1990년 12월 22일~1991년 1월 28일 극단 반도 / 바탕골소극장 / 채승훈 연출 1992년 7월 10일~16일 극단 반도 / 문예회관대극장 / 채승훈 연출
예술가
채승훈(蔡昇勳, 1955~ ) 1978년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에서 연극영화대학원을 마쳤다. 극단 에저또와 신협의 상임연출을 거쳐 1988년부터 1996년까지 극단 반도의 대표 및 상임연출을 맡는다. 1993년 혜화동1번지 1기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연극연출가협회 및 한국연극협회, 국제극예술협회(ITI)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극단 창파 대표와 한국연극협회 서울지회 회장을 맡고있다.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상, 1992년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 1995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작품상, 1996년 한국연극평론가협회상, 1996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2001년 영희연극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레닌그라드에 피다>(1991), <꽃잎 같은 여자 물위에 지고>(1996), <푸른관 속에 잠긴 붉은 여인숙>(1998) 등이 있다. 극단 반도의 젊은 연출가 채승훈이 잔혹연극의 제창자인 앙토냉 아르토를 우리 무대에 처음 소개하겠다는 외침과 함께 내놓은 연극 <쌍씨>는 잔혹과 제의를 표현하려는 양식에 대한 실험도 겸한 부산하고 떠들썩한 무대였다. 교황과 왕권의 충돌, 독재와 음모, 독재자 쌍씨의 도덕에 대한 반기와 몰락 등의 얘기를 의식(儀式) 같은 몇 개의 장면으로 구성한 이 무대에서 연출은 기괴한 그림의 배경막, 높은 신, 넓은 어깨로 크게 만들어 놓은 코러스, 장식과 색조가 묵직한 의상과 분장, 웅변조의 높은 음조로 외치는 배우들의 발성과 어조 등으로 거대한 양식화에 무척 힘을 기울였다. 연출의 양식화에 대한 의지는 장식이 많고 화려한 쪽으로 갈 수 있을 만큼 가보자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크 양식처럼 거대해지려는 노력, 로코코 양식처럼 많은 장식을 원하는 마음같았고 증폭·확대·과장에 대한 욕구 같았다. 그런 욕구는 굵은 붓으로 서툴게 비뚤비뚤 그려놓은 선처럼 어둡고 강한,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함이 많은 무대, 긴장이 아닌 경직이 앞선 무대로 드러났다. 바탕골 소극장의 비좁은 무대와 이 작품의 크기를, 할 수 있는 만큼 어색하지 않게 조화시켜보려는 노력이 여러모로 울근불근 치솟는다. (…) <연극읽기3>, 구히서, 메타, 1999안토닌 아르토(Antonin Artaud)의 작품이 기성극단에 의해서는 처음으로 국내무대에 올려졌다. 극단 반도가 채승훈 번역·연출로 공연하고 있는 <쌍씨>가 바로 그것이다. 아르토의 연극이 흔히 ‘잔혹극’이라는 용어로 불리면서 여러 가지 오해를 낳고 있으나 아르토가 내세운 연극론의 본질은 오랫동안 문학에 종속당해온 연극을 연극 본래의 속성으로 귀속시키는 것이다. 아르토는 연극이 지나치게 대사에 의해 주도됨으로써 말과 작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에 반대하고 대신 음악, 춤, 회화, 마임, 제스처, 영창, 주문, 건축구조물, 조명 등에 의해 복합적으로 구성되는 ‘공간의 시’로서의 연극을 제기했다. 그는 또한 연극을 성스러운 제의라 생각하고 신화의 주술과 마력의 세계를 통해서만 이 현대인은 억압에서 깨어나 인간의 창조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잔혹의 방법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쌍씨>는 바로 이러한 아르토의 이념들이 반영된 유일한 장막희곡이다. 이 작품은 악의 화신인 쌍씨왕이 기독교적 억압에 대항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저지르는 끔찍한 반인륜적 악행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후처의 딸과 결혼했고 두 아들을 죽이며 자신의 딸을 능욕하기도 한다. 그는 결국 추기경의 사주를 받은 신하와 딸의 칼에 살해된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유로 다시 교회에 의해 처형당하는 딸은 쌍씨가 악의 전파자로서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며 저승에서 다시 만날 것에 또 한 번 전율한다. 이번 공연을 통해 나타난 아르토 연극의 실상은 그 역시 문학적 연극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여전히 스토리 중심이며 언어는 지극히 시적이다. 아르토는 자신의 혁명적인 연극이념을 당대에는 자신의 작품에서조차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으며, 그 이후 20세기 후반의 전위연극들에 의해 계승되어 참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쌍시>’, 김미도, <세기말의 한국연극>, 태학사, 1998
관련도서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사회가 자살시킨 사람 반 고흐>, 앙토냉 아르토 저, 조동신 역, 숲, 2003 <아르또와 잔혹연극론>, 박형섭 외, 연극과인간, 2003 <연극이론의 역사: 17세기 고전극 이론에서부터 20세기 브레히트·아르토에 이르기까지>, 장 자크 루빈 저, 김애련 역, 현대미학사, 2004 <잔혹성의 미학: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 연극의 미학적 접근>, 프랑코 토넬리 저, 박형섭 역, 동문선, 2001 <첸치 일가>, 앙또냉 아르또 저, 신현숙 역, 연극과인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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