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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외포리(外浦里)곶창굿

작품/자료명
강화외포리(外浦里)곶창굿
전승지역
인천시 강화군 외포리
지정여부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8호(1997년 7월 14일 지정)
구분
무속의례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 외포리에서 행해지는 제천의례(祭天儀禮)이다. 어업을 위주로 하는 정포(井浦)마을과 농업을 위주로 하는 대정(大井)마을 주민들이 신주(神主)를 모시고 하는 도당굿의 일종이다. 풍농풍어(豊農豊漁)와 마을의 안녕과 태평, 번영을 비는 굿으로, 격년 또는 3년 마다 치루어 지며, 음력 2월 초에 3일 동안 보통이다. 그러나 마을마다 각기의 사정에 따라 더 자주 하기도 하고 늦추어지기도 한다. 1997년 7월 14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흐름
이곳 외포리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을의 당산에 있는 당집에서 곶창굿이 행해졌다. 이 곶창굿은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에 전하는 상산당(上山堂)의 당주로 유성할아버지라고 불리는 당주는 1810년대에서 1880년대에 살았으며, 다음으로 조복음(1880년대 중반~1930년대 말), 고기운(1879~1944)을 거쳐서 김종윤(1996년 작고) 등 그동안 맡아왔던 당주의 내력이 전해진다. 현재 당주는 최춘만(63세)으로 그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말(18~19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이 있는 도당굿임을 알 수 있다.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에 전해지는 곶창굿은 경기 도당굿의 형태를 띤 대동굿이다. 외포리는 지금도 많은 횟집이 있고, 특히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로 차를 싣고 오가는 도선(渡船)이 있어서 주말이나 휴일이면 서울과 인천 등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다. 강화읍에서 15㎞ 남짓한 외포리는 현재는 횟집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숙박시설이 있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호객꾼들로 인해 시끌벅적한 포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 80여 호 남짓한 외포리가 이제는 200여 호가 상권을 가진 마을로 변모하였다.
내용
외포리의 곶창굿은 3일간 거행하는데, 예전에는 일주일씩 계속하기도 하였다. 굿이 시작되면 당집의 앞에는 국수를 파는 집, 떡을 파는 사람들, 엿장수 등 수 많은 장사꾼들이 들어 와 난장을 벌렸고, 광대들이 들어와서 굿판에 흥을 더하기도 했으며 수 만명의 군중들이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는 고깃배가 50여 척이나 마을에 있어서 선주들이 곶창굿을 할 때 경비를 충분히 내어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예전에 굿의 경비는 쌀 석 되씩 내거나 돈을 내기도 했는데, 1997년 7월 14일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후 약간의 보조를 받아 1년에 한 차례 발표회를 갖고 있으며, 현재는 걸립이 생략되어 전승되고 있다. 당집과 당유래 외포리의 곶창굿은 어업에 종사를 하는 정포(井浦)마을과 농업에 종사하는 대정(大井)마을이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상산당을 ‘상당(上堂)’이라 하고 그 아래 산중턱에 청솔문을 세우고 황토(黃土)를 깐 곳을 ‘아랫당’이라고 불러서 상당과 하당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당굿이다. 외포리의 당집은 원래 흙벽돌에 초가이던 것을 마을 주민들이 기금을 모아서 시멘트 블록으로 만들고 양철지붕을 올렸다. 당은 5 ~ 6평 정도의 크기로 당 앞에는 넓은 공지가 형성되어 있고,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당주 최춘만에 따르면, 원래는 두 그루가 서 있었으나 한 그루는 고사했다고 하며, 이 소나무는 강화도에서는 볼 수 없는 수종이라고 한다. 당 안에는 곶창굿에 사용하는 제기들과 전선이 쌓여 있고 문을 열면 좌측 입구에 창부(倡夫)탱화가, 정면에는 좌측부터 별상, 대신할머니, 그리고 당의 주신(主神)인 득제(득태라고도 한다)장군이, 그 우측에는 군웅과 당산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린 산신도가 걸려 있고, 벽의 우측면으로는 흑마(黑馬)를 탄 장군과 삼불제석의 탱화를 모셔져 있다. 주신(主神) 외포리 곶창굿의 주신(主神)은 득제장군이다. 외포리의 주신인 득제장군을 일부에서는 바닷가의 당굿에서 많이 모시고 있는 ‘임경업 장군’이라고도 하나, 강화도의 갑곶리 현충당(옛 만수당) 어유정(魚遊井), 매음리(煤音里) 등에서 임경업장군을 모시고 있으며, 외포리 상산당에서 먼저 도당굿을 한 후에야 딴 곳에서 굿을 할 수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상산당의 당신(堂神)인 득제장군의 신격(神格)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설에는 서해안의 중부지역에는 고려 때의 장군과 관련된 제장이 많다고 하며 이는 고려조 때 왜구의 침입이나 외적과의 항쟁이 유난히 극심해서 득제장군 역시 이때 외포리와 연고를 가진 장군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기 어렵다. 연행 외포리의 곶창굿은 2 ~ 3년에 한번씩 하는데 대개는 음력 2월 초에 길일(吉日)을 택일하여 굿판을 벌인다. 마을에 사는‘당주(堂主=당지기)’가 마을의 대표들과 만나서 굿 날짜를 정한 후, 마을의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남, 녀 각 3인씩으로‘화장’을 선출한다. 그리고 나서 마을을 돌면서 굿비를 추렴하는데, 외포리에서는 어느 집을 가서 이야기를 해도 싫은 내색을 안하고 모두 협조를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곶창굿을 시작하기 전에 외포리 입구 삼거리(현 내가면 소재지로 넘어가는 길과 삼거리로 나 있는 곳) 입구에 금줄을 늘이면 밖에서 외포리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굿이 끝날 때까지 외포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화장으로 선출이 되어서 당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집 안에 부모가 죽거나 부인이 죽어도 굿이 끝날 때까지는 당에서 내려 올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마을에 임산부(姙産婦)는 굿이 끝나기 전에 해산일이 걸리면 마을 밖에 나가서 해산을 해야 하는 등 엄격한 금기(禁忌)가 지켜졌던 전통있는 도당굿이라고 한다. 무당굿의 거리는 수살굿-초부정, 추가망장군 대신굿-제석굿-선주굿-기내림굿-별살대감굿-군웅굿-뒷전 한마당 놀이굿 등 대략 총 8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①수살(守煞)굿 외포리의 서쪽에 있는 돈대 아래에 수살목(守煞木=솟대)을 세운다. 수살목은 소나무를 가지가 다섯 갈래로 벌어진 것을 다듬어서 그 위에 오리를 깎아서 세운 뒤, 곶창굿 전날 외포리에 들어 와 자고 난 만신들과 소임을 맡은 화장들만이 수살목 앞에 간단한 제물을 진설하고 난 뒤 수살굿을 한다. 돈대에서 수살굿을 한 다음에는 동쪽에 있는 갯가에 나가서 역시 수살목을 세우고 수살굿을 펼친 다음에 마을에 있는 우물에서 우물굿을 한 후 당으로 오른다. 수살굿은 바다에서 사고를 막고, 잡귀(雜鬼)를 풀어 먹이며 용왕(龍王)을 맞이하는 굿이다. ②초부정, 초가망, 장군 대신굿 무당들이 상산당(上山堂)에 오르면 당할머니신을 모시고 대동(大洞)의 부정을 풀어 낸다. 외포리에서는 득제장군을 모시고 대신(역대만신)을 맞이하여 대동 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풍어(豊漁), 풍농(豊農)을 기원하는 굿이다. 1988년 외포리 곶창굿에서 정정애에 의해서 진행된 초부정거리를 보면, 먼저 초부정 공수청배를 한 다음 노랫가락으로 청배를 하고 초부정 만수받이를 했다. 다음으로는 본향공수에 이어 옥황공수, 장군공수, 신장공수, 대감공수, 대감타령을 하고 사람들에게 공수를 준 후 다시 가망공수, 대신공수를 주고 노랫가락으로 대감타령을 한 다음 대동조상공수를 주고 마쳤다. 이 중에서 대감공수등을 주면서 외포리 당의 주신(主神)인 득제장군을 말한다. (사설 - 정정애 本) 나는 누구시리 우 높은 대감님 좌 차신 대감님 상산대감 본향대감님이시다 이 도당산 도당대감님 부군대감님 천신대감님 개비대감님 수풀대감님 사신행차 군향대감님 상산에 구목신대감님 신목신대감님 모두 하위동반 받으시구 어허냐 아랫 뜰에 용신대감님 수살대감님 앞장승 뒷장승 수문통 사슬대감님 하위동반 받으시구 오냐 보리 대동 안에서 하나같이 각성은 각본에 수 사나운 것 다 젖혀주고 도와주마 너희가 뉘 덕으로 은자보물에 녹수철량 챙겨서 사는지 알고는 있느냐 본향 할아버지 득태장군님과 대감님 월력에서 도와주니 각성 각본에 하위동반 받으시어 내가 외포리 대동에 가는 재수 손을 치구 오는 재수 몰아다가 은자보물 녹수철량 수문지철량 생겨서 금전으로 노적 쌓고 백미로 테를 두르게 도와주마 ….이하 하략… ③제석(帝釋)굿 제석님, 불사님, 칠성(七星)님을 모시고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며 대동자손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굿이다. 이 굿에는 부정한 사람들(상제, 산모, 모든 부정이 든 사람들)은 참여하지 못한다. 제석굿에서는 제석만수받이를 한다음 제석공수와 칠성공수를 주고 다시 만수받이로 무가를 부르다가 노랫가락으로 제석무가를 부른다. 다음으로는 염불을 한다음 명바라 복바라를 팔면서 바라타령을 한다. 바라를 팔면서 공수를 준 후에 불사공수, 업주공수를 주고 마친다. ④선주굿, 기내림굿 상산의 당 앞에 나무를 엮어서 기를 꽂을 수 있도록 기(旗)받이 대를 만들어 놓고 그 곳에 대동기, 장군기, 뱃기를 순번대로 세워 놓는다. 기 앞에는 선주(船主)와 마을의 각 가정에서 준비한 꽃반(=花盤)에 백미와 술잔을 진설 해 놓는다. 무당이 대동기와 장군기, 뱃기에 축원을 하고나면 기내림굿을 한다. 이때는 꽃반에 놓인 쌀을 지정한 장소에 쏟아 놓고 기내림을 하게 되며 선주들은 기를 받고 나면 고사 제물을 받아서 각기 자신의 배로 갖고 가서 뱃고사를 지낸다. 뱃고사는 배를 부리는 사람들이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위한 것으로 선주들에게 그 해의 공수를 준다. ⑤별상, 대감굿 외포리에서는 ‘남별상(男別上)’을 ‘새별상’이라고 하는데 ‘별상’은 중국의 황자(皇子)가 죽어서 그 넋이 봉명행차를 따라서 강남 해동 조선으로 나왔다가 강화에 머물게 되었는데, 사신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황자의 넋이 남아 ‘별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곳 강화는 ‘남별상’이 ‘새별상’이라 하는데, 강화도에서 여자를 얻어 신부로 맞이할 때는 ‘별상신’이 따라와 자손들이 마마를 앓는다고 하여서 ‘별상굿’을 하고 데려와야 한다고 전한다. 별상, 대감굿에서는 장군대감, 별상대감, 신장대감을 모시고 풍어와 풍농을 기원하는 굿이며 돼지고기를 제물로 진설한다. 대감거리는 먼저 대감 만수받이를 하고나서 대감타령을 노랫가락으로 부른다. 대감타령을 마친 후에는 공수를 주고 사슬을 세우며 소지를 내리고 신쌀을 내린다. ⑥군웅(軍雄)굿 상산군웅(上山軍雄), 본향군웅(本鄕軍雄), 용신군웅(龍神軍雄) 등 대동의 여러 군웅신을 모시고 농촌의 풍농과 바다에서 조업 중 인명피해와 사고의 예방을 기원하는 굿이다. 군웅굿에서는 대동의 잡신을 막아내기 위해서 화살에 떡을 꿰어서 활을 쏘고 놋대야를 입술에 붙이며, 닭 ‘사슬세우기’를 한다. 닭사슬은 설대에 닭을 꿰어 떡시루전에 세우는 사슬이며 이 사슬이 잘 서야 대동이 편안하다고 한다. ⑦뒷전 한마당 놀이굿 굿판에는 신만이 오는 것이 아니고 잡귀들도 모여든다고 한다. 뒷전은 영신, 수배 등 모든 잡귀를 잘 풀어 먹여서 퇴송(退送)을 시키고 대동의 안녕을 기원하는 굿이다. 굿이 끝나면 모든 마을 주민들과 굿판에 참석한 사람들이 다 참여하여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다. 과거에는 굿이 끝나는 시간쯤 되면 마을의 풍장패가 당 앞에 모여서 밤새도록 춤을 추고 노는데 마을의 부녀자들도 한복을 입고 고깔을 깊이 눌러쓰고 밤새도록 춤을 추고는 했다고 한다. 곶창굿이 끝나고 나서 3일 후에는 당주와 화장들이 모여서 3일고사를 모시고 난 후 떡과 술을 갖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대접을 했다고 한다. 일주일씩이나 계속해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 풍어를 위해서 굿판을 벌이던 외포리 곶창굿은 긴 시간동안 전통을 지키고 있는 굿으로 유명하다.
전승자정보
외포리 곶창굿은 강신무(降神巫)로 기능을 세습받은 기능세습무(技能世襲巫)들에 의해서 전승이 되었다. 과거의 주무인 단골들은 알 수가 없으나 현, 곶창굿의 기능보유자인 정정애(丁貞愛, 1936~ )에 따르면, 이 곳의 주무인 조화순(7년 전 76세로 사망)은 외포리의 큰만신으로 강신무였으며 곶창굿의 주무였다고 한다. 정정애는 조화순과 함께 곶창굿에서 거리를 맡아서 했으며, 오빠가 조화순의 수양아들로 현재 정정애의 외가가 된다고 한다. 조화순이 사망하고 나서 곶창굿의 주무가 된 정정애는 외포리 출신으로 결혼을 하고 나서 35세에 내림을 받고 강신무로 곶창굿의 기능을 세습받았다. 현재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곶창굿은 정정애가 기능보유자로 김연숙(여, 35세)이 전수생으로 지정이 되어 있으며 이 외에도 강창길(남무), 고순녀(무녀), 강순애(무녀), 장석출(악사) 등이 참가를 한다.
연계정보
· 관련도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기도편>,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1999 <한국의 굿놀이>, 정수미 지음 서문당, 2001 <경기민속지 Ⅱ신앙편>, 경기도박물관, 1999 · 관련사이트
용어해설
화장(火匠) : 굿을 준비하고 도움을 주는 사람. 배에서 밥을 짓는 사람. 도자기 가마에서 불을 지피는 사람. 별상 : 호구별성(戶口別星), 호구별상, 별상마마, 두신(痘神), 강남서신(江南西神), 큰마마, 손님마마, 홍진국대별상 서신국(西神國)마누라 등. 마마(마마), 천연두를 몰고 오는 역병신 중 하나이다. 천연두신을 일컫는 말로 민간에서는 손님, 손님마마, 별상애기, 별상님, 별상, 별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손님은 객의 뜻인 손과 존칭 접미사인 님의 복합명사로 내객(內客)이라는 경칭이고 별상은 특별한 내객손님이라는 뜻으로 천연두를 경외시 한데서 비롯된 명칭이다. 별상마마의 마마는 왕이나 왕족에게 붙였던 존칭어이다. 천연두를 이렇게 최고, 최상의 호칭으로 부른 것은 천연두를 앓을 경우 거의 회생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천연두를 두려워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이질병을 천연두신에 의해서 생기는 것으로 믿어 천연두신의 노여움을 풀고 은총을 빌자는 뜻에서 천연두신을 높이 떠받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별상이 질병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유행질병을 가져오는 귀신으로 여겨 별상마마를 위한 제례의식을 지내기 시작하면서 유래되었다. 사슬세우기 : 도당굿의 ‘굿웅거리’에 행해지는 의례행위로, ‘사슬세우기’는 일반적으로 소머리나 통돼지, 갈비, 족 등을 세우는데 외포리에서는 닭사슬을 세운다. 닭사슬은 설대에 닭을 꿰어 떡시루전에 세우는 사슬이며 이 사슬이 잘 서야 대동이 편안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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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당굿 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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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각 디지털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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