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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별신굿

작품/자료명
남해안별신굿
지정여부
정영만(악사_피리)
구분
무속의례
흐름
남해안별신굿은 경상남도 거제도를 중심으로 통영시 일대의 어촌과 한산도, 사량도, 욕지도, 갈도, 죽도 등지에서 벌어지는 이 지역 어촌의 공동제의이다. 별신굿은 ‘별신제’, ‘별손’, ‘벨신’, ‘별신’ 등으로도 불리고 또 ‘별신한다’라고도 하는데 현재 해안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별신제는 근래에 와서는 ‘풍어제’라는 명칭으로 일반화되고 어촌의 풍어기원제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별신제는 풍어의 기원 외에도 마을의 무사와 풍농, 여행자의 교통사고 방지 등까지 다목적 성격을 띤 제의로서 대상신도 당신을 비롯한 여러 신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엄숙한 유식제사형식의 당제와는 달리 분방한 형식과 축제적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제의 지역이 좁게 한정되어 있다는 점과 별신굿의 기능자(주무급) 자체가 2~3인에 불과하여 동해안처럼 무집단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제의 시간도 2일(하루 낮 하루 밤)이 보통이고, 특별히 길어야 3일(이틀 낮 이틀 밤)인데 이 때 사제무는 주무 1인에 조무 1~2인으로 두어 명이 굿을 모두 맡아야 한다. 또, 동해안에 비해 제의 지역이 많지 않고 굿이 계속적으로 마을마다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별신굿 사제만으로는 생계를 이을 수 없고 세습무에 대한 남부지방 특유의 경시 풍조가 심해 세습무의 계승이 동해안과는 달리 어려운 입장에 있다. 반면, 세습무의 계승은 어려워지고 있으나 신이 내린 강신무는 많아지면서 이들 강신무가 제의기능 중 일부분을 맡고 있다. 그러나 강신자는 점치는 일과 비손이 본 업무이기 때문에 무가, 무악기, 무무 등 사제기술 전반에 대한 학습 문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해안 별신굿의 사제무는 동해안 지역처럼 세습무계에 의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무녀는 세습무가에서 태어나 세습무가로 출가하게 된다. 또한 남자들도 세습무계 출신으로 악사 역을 맡는데 이 지역 무속음악의 대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양중(악사들의 현지 명칭) 생활로는 생계가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별도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별신굿 기간 동안만 굿에 참여하고 있다. 남해안 별신굿은 다른 지역에 비해 신앙성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오락성이 약한 편으로 굿하는 과정에서 악기를 잡고 있는 양중과 무당이 주고받는 재담이 극히 드물고 무가 중간 중간에 사설의 삽입이 없다. 남해안 별신굿에서는 동해안 별신굿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세존굿에서의 도둑잡이(중잡이 굿), 천왕굿에서의 곤반놀이, 범굿에서의 범탈놀이 등 연극적이고 관중을 웃기는 희극적인 놀이가 없으며 결국 흥미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약하다. 그러나 제의의 신앙성이 강해 관중을 진지하게 만든다. 물론 남해안 별신굿에서도 일부 마을에서 망석 탈놀이라고 하는 해미광대놀이가 굿 과정에 있으나 현재는 거의 생략되어 있다. 사제무 쪽과 마을 대표간의 굿돈 계약처리도 특이하다. 이 굿돈 계약은 사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제무가 마을에 도착하여 제의 시작 전에 굿돈에 대하여 담합을 하거나 굿 중간에 타협을 한다. 그래서 굿돈을 놓고 마을 측과 무(巫)측은 서로 옥신각신하고 언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무당 쪽에서는 사전에 미리 계약처리가 안되었기 때문에 마을 측과 굿돈에 대한 타협을 할 때마다 시간이 길어지면 피가 마르는 것 같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 차려진 굿판에서 사제를 거부까지도 할 수 있어서 양측이 모두 유리한 입장과 불리한 입장을 함께 지니고 있는 셈이다. 사제무 일행에 대한 식사 문제는 각 집집마다 분배하여 1인분 씩의 독상을 준비하여 차리는 것이 원칙이며, 식사뿐만 아니라 무측에 대접할 음료수, 막걸리 등도 각각 분담하여 제공하는 것 등도 특이하다. 남해안별신굿에서는 동해안별신굿에서처럼 뫼산자춤이나 달넘기 춤과 같이 무녀들이 모두 나와서 함께 추는 춤이 별로 없고, 사제무가 굿을 이끌어 가면서 혼자 추는 춤이 대부분이다. 춤을 보면 대체로 발디딤의 폭이 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느린 편이고, 팔놀림 역시 폭이 크지 않고 좌우로 약간의 타원을 그리듯이 느리게 움직이는 편이 많다. 그런데 느린 듯 움직이는 그 춤동작이 아주 부드럽고 섬세하다.
내용
제의는 유식형태의 제의와 무굿형태의 제의로 크게 구분하여 볼 수 있다.
당제사
유교식 제의는 마을의 신전이라 할 수 있는 당에서 밤 자정에 지내는데, 당제는 마을에서 선정된 제관이 주관하게 되는데, 특히 별신굿이 있을 때에는 이를 굿장모라고 부르면서 이 굿장모가 당제사 뿐만 아니라 별신굿 제물까지도 모두 책임을 진다. 마을에서는 별신굿이 없는 해에도 유식형태의 당제사를 해마다 지내지만, 별신굿이 있을 때에도 마을의 당제사에 이어 별신굿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 즉, 별신굿 전날 밤 자정에 지내게 되는 것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이 당제사를 인근 스님에게 의뢰하여 스님이 당제사를 지내게 하기도 한다. 당제는 별신굿이 시작되는 전날 밤 굿장모가 간단한 제물을 준비해서 차리고 독촉을 한 후 소지를 올리고 절을 하는 것으로 끝내며 마을에 따라서 마을 입구의 장승과 우물에 가서도 간단하게 제사를 지낸다. 스님이 의뢰받았을 경우에는 제물을 차린 후 불경을 외우고 마을 축원으로 끝낸다.
별신굿의 순서와 내용
남해안 별신굿의 순서와 내용에 있어서 통영과 거제도 일원의 별신굿 사제무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마을에 따라서 진행 형식이 조금씩 다르고 그에 따라서 별신굿 순서나 굿거리도 약간씩 달라질 수는 있다. 본 별신굿의 순서와 내용은 거제도 수산마을의 것을 중심으로 하며, 인근마을과 통영의 별신굿을 참고로 하였다. 1) 들맞이 당산굿마을에 도착한 사제무 일행은 길군악을 치며 해변가에 세운 별신대 앞에 이르면 대모일행은 절을 하고 메구노리를 쳐서 마을을 굿하러 도착하였음을 알린다. 양화에서는 마을 주변의 산길, 옛날에 다니던 옛길을 밟으며 젓대잽이가 청신악을 불면서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마을에 굿하러 왔음을 알린다. 수산마을에서는 마을 이장 등 마을 대표들의 환영을 받고 곧이어 이장의 집으로 향해 굿장모댁 부정을 치게 된다. 2) 굿장모댁 부정굿 부정굿은 부정을 씻고 제단을 정화하는 굿으로 젓대의 청신악에 이어 장구잽이가 넋노래를 부르는 동안 대모는 굿채비를 한다. 준비가 끝나면 대너리장단에 맞추어 대너리춤을 추고 조너리, 푸너리 장단에 얹어 무가 사설을 읊는다. 다음에 장구잽이가 제석노리채에 맞추어 제석노래를 부른 후 덩덕궁이채에 얹어 대모는 무가 사설을 읊고 삼현장단에 맞추어 삼현춤을 춘다. 이어 공수를 하고 수부잔을 올린 후, 송신악으로 끝을 맺는다. 3) 산신제 굿장모 내외는 아직 해가 있는 오후 시간에 큰당으로 올라간다. 옷을 흰 한복 차림이며 굿장모의 부인은 얼굴에 화장을 해서는 안 된다. 담배를 피워서도 안되고 서로 말을 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불가피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종이와 연필을 가져간다. 굿장모 내외는 그날 밤을 산에서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대모 일행이 큰 당에 도착할 때까지 산신님께 정성을 드린다. 만약 비가 와서 대모 일행이 못 올라갈 경우에는 비가 그쳐 대모 일행이 올라오기까지 며칠간이라도 산에서 미리 가져 간 쌀로 조금씩 밥을 지어 먹어가며 지내야 한다. 4) 일월맞이 굿 (칠성굿) 묵은 해를 잘 보내게 된 것에 대한 감사와 새해에도 보살핌을 일월 성신에 기원하는 굿이다. 아침 먼동이 틀 무렵, 대모 일행은 옛부터 대대로 목욕하는 곳인 마을 뒷편 바다로 가서 목욕을 하고 죽을 한 그릇씩 먹은 후 산에 오른다. 당에서 일월맞이를 하는데 대모가 징을 들고 “괭, 괭, 구갱, 구갱, 갱, 개이”를 3번 반복 후 동서남북을 향해 헌배하고 다시 징을 한번 친다. 젓대가 청신악을 불고 대모는 부정소지(不淨燒紙)를 올린다. 대모는 다시 징을 치고 축문을 외우며 장단에 얹어 아왕 임금 사설을 읊는다. 다시 칠성본을 외우고 춤을 추다가 악사가 제석노래를 뒷바라지 해주면 대모는 소지를 올린다. 굿이 끝난 후, 마을의 대잡이가 대를 잡았더니 산신님이 잘 받으셨다는 응답이 왔으므로 모두들 하산할 준비를 한다. 5) 골맥이굿 골(고을), 즉 마을을 지켜주는 신에게 드리는 굿으로, 악기를 울리며 신대를 앞세우고 작은 당으로 내려와 큰 나무 아래에 간단히 제물을 차리고 매구굿을 친 후에 악사와 장단 없이 대모 혼자서 무가사설과 경을 외운다. 그리고 우물에 가서 우물굿을 한다. 수산마을의 경우 당산에서의 굿이 끝난 후 악사들이 길군악을 치며 마을 곳곳, 우물가, 집 등을 돌며 마을 돌기를 행한다. 6) 용왕굿 바다의 용왕님과 수중 고혼(孤魂)들을 위해주는 굿으로 바닷가에 선주 몇 집에서 차려 내온 상(床)들에 촛불을 켜 놓는다. 수산마을의 경우 용왕굿이 벌어질 바닷가에 각 가정의 조상상을 차리고 굿을 하는데 굿이 끝난 후에는 상에 차려진 메(밥)와 기타 제물을 바다에 던진다. 이 때 던지는 밥을 용왕밥이라고 한다. 용왕굿 다음으로 마을회관에 꾸며진 본 굿당에서 본 굿에 들어간다. 각 가정에서 제각기 차려 내온 조상상에는 모시는 조상 수에 맞추어 밥그릇을 놓는다. 처음에 부정굿을 하고 이어서 칠성굿, 가망, 제석, 서낭굿으로 들어간다. 7) 부정굿 굿청의 부정을 씻고 제단을 정화하는 굿으로 굿장모댁 부정굿과 동일하다. 8) 가망굿 경남 지방에서는 가망을 조상신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 굿에서도 조상님들 모시고 대접하는데 청신악을 먼저 부르고 넋노래로부터 시작한다. 큰 굿 이전의 굿거리에서는 매 거리가 끝날 무렵마다 공사를 주게 되는데 공사 장면이 특이하다. 사제무는 이장, 화주, 마을 임원 등 굿을 준비한 사람들을 앞으로 끌어내 꿇어앉히고 엎드리게 한 후, 처음에는 ‘북어’로 장단에 맞춰 때려주고 다음엔 ‘젓대’로 때려준 후, 소지종이에 불을 붙여 머리털을 그을리는 시늉을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바로 앉게 하여 수부잔을 돌리고 마시게 한 다음 들여보낸다. 이때, 젯상에 상돈을 놓고 가는 것이 상례이다. 9) 제석굿 제석님을 위하고 재수를 기원하는 굿으로, 제석굿의 진행을 가망굿과 같고 사설만 다르다. 10) 서낭굿 각 지역 팔도 명산의 신들을 청해 모시고 가정과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는 굿인데, 서낭풀이 뒤에 동살풀이로 넘어간다. 11) 망석놀이 경남 해안의 갈도(일명 치리섬)에서는 큰 당에 올라갈 때, 미리 탈놀음 할 재료들을 가지고 간다. 그곳에서는 굿이 진행되는 동안, 틈틈이 탈을 만들어 가지고 하산한다. 망석탈놀음은 큰 굿 들어가기 전 서낭굿 다음에 하는데, 보통 밤에 놀게 된다. 12) 큰굿 큰굿은 손굿이라고도 하는데, 이 큰굿에는 손님풀이 이외에도 열두축문, 황천문답, 고금역대, 영호찬, 환생탄일 등이 나온다. 이들 무가는 길이가 길고 읊기 전과 읊은 후에 청신악과 송신악을 불게 되어있어 각각 굿 한 거리씩으로 취급받는다. 별신굿에 나오는 갖가지 음악과 장단, 춤사위가 대부분 이곳에 집합되어 있다. 큰굿부터는 대모 일행의 굿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굿 선생님들을 모두 들먹이고 공사를 주지 않는다. ① 손굿 지동굿이라고도 하며 지동궤(마을 공동의 재산문서 궤)를 젯상 앞에 놓고 이를 관장하고 있는 ‘통대부 신령’을 위해 주는 굿이다. ② 손님풀이 마마신인 손님을 위하는 굿으로 명과 복을 기원한다. 대모는 고인수의 장고를 받아 어깨에 걸고 장고채는 그냥 둔 채 북편만 올리며, 손님풀이 무가를 부른다. 이어서 동살풀이로 넘어간다. 동살풀이 무가는 서낭굿의 서낭풀이와 손굿의 손님풀이 뒤에만 들어간다. 손님풀이 뒤의 동살풀이는 ‘살풀이’ 라고도 하며 마을에 따라서는 별도의 굿거리로 넣기도 한다. ③ 고금역대 고금역대의 영웅호걸, 절세가인도 결국 죽고 말았다는 인생의 허망함을 노래하고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굿이다. ④ 황천문답 망재가 황천으로 가서 부처님 전에 설법을 듣고 열시왕등 앞에서 생전의 선행 공덕을 고한 뒤 오구새남굿을 받아 극락천도된다는 내용의 설법이 장단 없이 구송된다. ⑤ 열두축문 망자에 대한 제사법을 차례로 기록한 축문을 읽는 형식이다. 이 때 악사는 쉬고 대모 혼자서 장구도 없이 읊어 나간다. ⑥ 환생탄일 시왕전에 망재의 인간환생을 축원한다. 생전의 공덕 외에 가족들이 굿해 준 공덕으로 이승에 환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⑦ 시왕탄일 “도시대왕님아 …… 철간지옥을 면하기고 ……”를 부르고, 나무아미타불을 한 후에 삼현(춤), 수부잔, 맘자심, 송신악으로써 큰굿이 끝난다. 수부잔 푸너리와 맘자심(대너리)때엔 악사만 장단을 치고, 대모는 무복(巫服)을 벗고 부채 정리 등을 한다. 13) 군웅굿 공사가 없고 수부잔 푸너리때에 군응장수 대신풀이를 하여 돌아가신 굿 선생님들을 다 들먹이는 점 등을 제외하면 가망굿과 같다. 14) 거리굿 남해안 별신굿에서 잡신을 위한 마지막 절차인 거리굿은 각 가정에서 내온 조상상들을 해변가에 내다놓고 삼한대 가져다 세우면 바로 시석의 굿판이 된다. 대모는 평복 차림을 하고 여러 가지 경(經)들을 읊은 후에 대를 잡게 한다. 거리굿 대잡이는 신이 내린 강신자가 한다. 대가 흔들리면 잘 받았다는 응답이 나왔으므로 대잡이는 대를 잡고 일어나 젯상과 그 주변을 돈다. 육갑풀이를 하며 제각각 자기네 상의 음식들을 조금씩 자루 속에 넣고 묶어서 메노리채를 치며 선착장 있는 바다로 나가 던진다. 이를 일러 개(바다)를 먹인다고 한다. 그리고 삼한대를 울러메고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고깃배에 올라 풍어를 기원하는 메구를 치기도 한다.
전승자 정보
정영만(1956~) 남해안별신굿 기예능보유자인 정영만은 경남 통영 출신으로 남해안별신굿과 관련된 세습무 집안에서 성장하게 되어 어린 나이에서부터 굿 전반에 대해 배웠다. 정영만의 부모는 굿과 관련된 일을 하지 않았으나 집안 형편상 할머니인 고주옥과 통영권번에서 아홉 살까지 사는 동안 춤과 음악을 배우게 된다. 남해안별신굿 보유자로 최초로 지정된 정모연도 정영만에게는 왕고모가 되며, 일찍부터 집안 어른들로부터 별신굿의 음악과 춤을 전수받아왔다. 그는 춤은 예명이 고농주였던 작은 할머니(고영숙, 고주옥의 여동생)와 왕고모인 정모연에게서 배웠고 피리는 조부인 정봉호에게서 배웠다. 1990년 타계한 할머니 고주옥에 뒤를 이어 1996년에 남해안별신굿 기예능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연계정보
· 재구성 <남해안 별신굿>, 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관련도서
<南海岸 別神굿 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96 <남해안별신굿>, 김선풍, 박이정, 1997 <남해안 별신굿>, 문화재연구소, 1998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사전 편찬위원회편, 민족문화사, 1991
관련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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