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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단오제

작품/자료명
강릉단오제
지정여부
김종군(金鐘群, 관노가면극), 빈순애(賓順愛, 무녀), 조규돈(曺圭燉, 제관)
구분
무속의례
흐름
강릉단오제는 강원도 강릉지방에서 매년 음력 5월 단오 날에 거행하는 제의행사로 대관령산신(大關嶺山神)과 대관령국사성황신(大關嶺國師城隍神)에 제를 올려 대관령의 험준한 행로에서의 안전과 생업의 풍요,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제의이자 축제이다. 제의는 음력 3월 20일 신주를 빚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5월 6일에 소제(燒祭)를 올리고 신을 봉송하는 데까지 장장 오십일 간에 걸친 대대적인 행사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제의는 음력 5월 1일부터 시작되며, 단오굿과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을 중심으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등 각종 민속놀이와 기념행사가 함께 벌어진다. 강릉단오제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그 역사와 제의의 모습을 짐작케 해주는 몇몇 기록이 전하고 있다. 강릉단오제에 관한 문헌적 전거는 조선시대 성종 때의 문신 남효온(南孝溫, 1454~1492)이 엮은 한문수필집 <추강냉화(秋江冷話)>에도 기록이 나타나지만, 경종(景宗, 1720~1724) 때 간행된 <강릉지(江陵誌)>에 의하면, 그 역사가 고려시대 초까지 올라갈 수 있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강릉단오제의 유래를 알려주는 이야기로는 대관령산신으로 모시고 있는 김유신장군에 대한 설화와 대관령국사서낭신인 범일국사(梵日國師)에 대한 설화가 있다. 그리고 후대로 내려와 국사서낭신과 부부신이 된 국사여서낭신에 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강릉단오제의 절차
강릉단오제의 시작은 신주빚기로부터 시작된다. 단오제 때에 쓸 술은 도가집에서 담그는데, 성황신께 올리는 술이기 때문에 도가는 몸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근신하여 부정을 멀리한다. 원래 신주근양은 예로부터 음력 3월 20일에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래에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고 대관령산신제를 비롯해서 강릉단오제와 관련된 신을 모시는 제를 지내기 1주일이나 열흘 전에 담그고 있다. 신주를 담글 때는 무당들이 부정치기굿을 해준다. 이 굿은 신주가 부정타지 않고 잘 담궈 지기를 기원하는 내용과 신주빚기로부터 시작되는 강릉단오제가 무사히 잘 지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굿에 쓰이는 소품인 종이꽃과 종이로 만든 용선(龍船)과 등(燈)도 이때 함께 만들어진다. 종이꽃으로는 국화, 박꽃, 연꽃 등을 만들 수 있고 꽃 이외에 연봉(蓮棒)이 있으며, 완자무늬나 기둥무늬의 호롱불, 초롱등, 굇대등, 탑등과 같은 것이 있고, 용선은 물감으로 그림까지 그려서 커다랗게 만든다. 대관령산신제(大關嶺山神祭) 대관령산신제를 지내는 산신당은 대관령성황당에서 동북쪽으로 40m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있는데 단칸의 와가로 되어 있다. 당내 정면에 높이 3척 정도의 제단이 있고, ‘대관령산신지신위(大關嶺山神之神位)’라고 쓰여진 위패(位牌)가 있으며 그 앞에 향로와 촛대가 놓여 있다. 산신은 주신이기 때문에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산신은 주인이고 성황과 부처는 손님이라고 한다. 음력 4월 15일 아침에 대관령 산신당에서 산신제가 행해지는데 관원에 의해서 삼헌이 이루어지고 홀기에 적힌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유교식 제의 형식이다. 대관령국사성황제(大關嶺國師城隍祭) 대관령국사성황제를 지내는 성황당은 당집의 형태이고 건평 5평 정도의 와가로 당내 정면(북측)벽에 제단이 있고 그 앞에는 제상이 놓여 있었다. 사당문을 좌우로 열면 국사성황상(國師城隍像)이 있고 그 앞에 촛대 둘과 향로 하나 동쪽에는 지화가 꽂혀 있다. 성황상은 궁시(弓矢)를 메 위엄 있는 노인이 백마를 타고 있으며 시종이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한 손으로는 말채를 들고 있다. 성황신의 전후에는 호랑이가 앞뒤로 호위하고 있으며 화면에 ‘대관령국사성황지신위(大關嶺國師城隍之神位)’ 라고 세로로 써 있다. 이 영정은 원래의 것이 아니고 근래에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성황당은 4월 12일에 금줄을 쳤다가 15일 제시(祭時)에 떼기 때문에 3일간은 손님을 받지 않고 금기를 지킨다. 대관령국사성황제는 유교식 형태와 무속굿 형태가 결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산리 성황제 구산동의 성황당은 맞배지붕의 와가 고옥의 당집 형태로 되어있다. 성황당 안에는 정면 왼쪽으로부터 토지지신(土地之神), 성황지신(城隍之神), 영산지신(靈山之神), 여역지신(癘疫之神)의 위패가 나란히 있다.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신을 모시고 강릉시내로 내려오다가 이곳 구산리 성황당에 잠시 들러 머무르고 이곳에서 유교식 형태와 무굿 형태의 성황제를 지내고 난 다음에 강릉 시내로 행진하게 된다. 예전에는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신을 모시고 구산리로 내려오면 그때를 즈음해서 마을 사람들이 싸리나무와 관솔을 묶어서 만든 횃대에 불을 붙여들고 국사성황신을 영접했으며 구산동 성황당에서 성황제와 굿을 하고 강릉으로 향할 때면 저녁때가 되었는데, 구산리 마을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강릉시민들 수백 명이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왔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구산(邱山)에서부터는 노화행렬(爐火行列)이 시작되었다. 학산리 성황제 학산리는 대관령국사성황신으로 좌정한 역사 속의 인물 범일국사가 탄생했다고 전하는 곳이다. 이곳에 대관령국사성황신과 그 일행이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놓고 무굿 형태의 성황제를 지낸다. 이곳에서 강릉단오제 행사의 일환으로 성황제를 지내는 것은 1999년이 처음이었다고 하며,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와서 성황제를 지내는 이유는 국사성황신이라고 전하는 범일국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성황제를 지내고 나면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신 일행은 마을에 있는 석천(石泉)을 비롯해서 마을을 한바퀴 돈 뒤에 국사성황신을 대관령국사여성황신과 함께 단오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봉안하기 위해 홍제동에 있는 대관령국사여성황사로 이동한다. 여성황제의(女城隍祭儀) 여성황사는 예전에 남문동(南門洞 : 지금의 공동변소자리)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수도관리사무소 후산록(後山麓)에 자리잡고 있다. 여성황사는 대관령국사성황의 부인인 여성황을 제사한 곳으로 세 칸짜리 와가로 되어있으며 신축이전된 지 얼마되지 않으므로 단청도 깨끗하고, 정면 벽에 여성황의 영정이 앞에는 호랑이가 그려 있다. 화상 앞에는 국사여성황신위(國師女城隍神位)라고 쓴 위패가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의 여성황은 강릉 사는 정씨(鄭氏) 가문의 딸이었다고 하는데, 여성황사의 관리도 주로 그 정씨 가문의 후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대관령에서 국사성황을 모시고 4월 15일에 내려오면 단오제가 있을 때까지 이곳 여성황사에 함께 모셨다가 단오 일에 제사를 지내게 된다. 그리고 단오 일을 앞두고 큰 굿청으로 모셔갈 때까지 약 보름동안 부부 성황이 여성황사에 머물게 되는데 그 동안은 부부가 함께 있게 되는 셈이다. 성황을 모셔 가는 날에는 여성황제를 지내는데 그 의례 절차는 대관령국사성황제와 동일하고 제물의 진설도 대관령국사성황제와 같다. 영신제(迎神祭)와 국사성황행차 음력 5월 3일에는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여성황당에서 굿청으로 모셔갈 때에 영신제를 지낸다. 조전제(朝奠祭) 조전제는 단오날 아침뿐만 아니라 음력 5월 4일부터 7일까지 아침마다 지낸다. 강릉시장이 초헌관이 되고 경찰서장이나 강릉교육장이 아헌관이 되는데, 사정에 따라 다른 기관장이 대역을 맡는 일도 있다. 조전제는 유교식으로 이루어지며, 대관령국사성황신과 대관령국사여성황신을 모셔놓은 단오장의 굿당에서 행해진다. 조전제의 의례절차는 대관령국사성황제와 동일하고 제물의 진설도 대관령국사성황제와 같다. 무속제의 강릉단오제는 영동지역에서 가장 큰 제의로 무속제의의 성격이 강하다. 5월 5일의 본제를 앞두고 남대천변의 굿당으로 모시는데 도중에 여성황의 생가라 전하는 정씨가와 옛날에는 소성황(素城隍), 약국성황에도 들러 굿을 했다고 한다. 여성황사에 합사한 수일 동안 굿을 했고 굿당에 모신 후로는 매일 조전제가 있었으니, 관원에 의한 유교제의가 끝난 다음에 무당들에 의한 굿이 있었고 단오날 무굿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1964년 당시 무녀 장대연은 열두거리라 해서 다음과 같은 거리로 구성되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① 부정굿 ② 성황굿 ③ 성주굿 ④ 군웅굿 ⑤ 세존굿 ⑥ 조상굿 ⑦ 설영굿 ⑧ 제석굿 ⑨ 당고매기 ⑩ 심청굿 ⑪ 손님굿 ⑫ 뒤풀이 한편 1999년도 강릉단오제에서 연행된 무속굿은 부정굿 - 청좌굿(골매기성황굿) - 화해동참굿(화회굿) - 세존굿 - 조상굿 - 산신굿 - 심청굿 - 천왕굿 - 축원굿 - 성주굿 - 손님굿 - 군웅장수굿 - 제면굿 - 용왕굿 – 꽃, 뱃노래굿 - 등노래굿 - 탈굿(지탈)과 같은 열일곱거리로 이루어졌다. 송신제 5월 5일 단오제를 마치고 다음 날인 6일 또는 7일에 성황신을 다시 성황사(城隍祠)에 모시기 위한 송신제가 있다. 송신제를 마지막으로 모든 제의가 종료된다.
강릉관노탈놀이
강릉관노탈놀이는 강릉단오제 기간 중에 과거 사회적 신분의 구분상 관노들이 연행했던 탈놀음이었다고 전해진다. 탈놀이는 남사당과 같은 전문 연희패들이나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주체자였던 것이 일반적인데, 강릉에서는 관노가 연희 주체자였다는 것이 특이하다. 강릉관노가면극은 대사가 없는 무언극이고 가면은 피나무나 오동나무로 제작하며 관노청에서 보관했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놀아지게 되었는지 그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900년대 초반에 전승이 중단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 학자들의 노력과 1900년대 초까지 실제로 가면극에 참여했었던 김동하(1884~1976)와 차형원(1890~1972)의 제보로 복원이 이루어졌으나 상당 기간동안 전승이 단절된 상태였기 때문에 완전한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대략 40분 정도로 복원되었다. 강릉관노탈놀이는 강릉단오제 기간 중에서 음력 5월 1일부터 단오 날까지 날마다 놀아졌다. 현재 강릉관노가면극에서 등장하는 배역은 양반(일명 양반광대), 소매각시, 시시딱딱이 2명, 장자마리 2명으로 총 6명이다.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반주음악을 담당한다. 양반과 소매각시 그리고 시시딱딱이는 그 배역에 맞는 가면이 있지만 장자마리는 그것들과는 다르게 일반적으로 얼굴에 쓰는 가면형태가 아니라 검정색 계통의 천으로 만든 커다란 포대자루와 같은 형태로서 연희자의 얼굴에서부터 몸 전체를 감싸도록 되어있다. 단오제에 행하는 강릉관노탈놀이의 연희 장소는 대성황사를 비롯하여 제관청, 여성황당 등 여러 곳에서 탈놀이를 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남대천에서 연행되고 있다. 그 어느 곳도 단오제가 행해지는 곳으로 단오제와 관노가면극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단오제에 행하는 신성제의극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강릉관노가면극은 극의 내용전개에 따라 네 과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과장은 장자마리춤 과장, 둘째 과장은 양반과 소매각시춤 과장, 셋째 과장은 시시딱딱이춤 과장, 넷째 과장은 소매각시 자살소동과 소생 및 화해 과장이다. ① 첫째과장 : 두 명의 장자마리가 놀이마당의 좌우에서 등장하여 서로 어울려서 춤을 춘다. 그러고 나서 익살맞게 춤을 추며 돌아다니면서 서로 장난하기도 하고 구경꾼들과 희롱도 하고 구경꾼들을 내몰기도 하고 서있는 사람을 앉히기도 하면서 놀이마당을 정리한다. 이렇게 놀이마당이 정리가 되면 장자마리는 퇴장한다. ② 둘째과장 : 양반과 소매각시가 놀이마당의 양쪽에서 등장한다. 양반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양반걸음으로 위엄 있게 등장하여 소매각시에게 사랑을 구한다. 그러면 소매각시는 수줍은 듯이 춤을 추다가 서로 뜻이 맞아 어깨를 걸고 놀이마당을 함께 돌아다니며 춤을 추다가 함께 퇴장한다. ③ 셋째과장 : 시시딱딱이 2명이 놀이마당 양쪽에서 등장하며 회돌이칼춤을 추며 놀이마당을 한바퀴 돌고 계속해서 시시딱딱이의 춤이 이어진다. 그리고 양반과 소매각시가 다정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고 그 모습을 본 시시딱딱이들이 양반과 소매각시를 방해하면서 춤을 춘다. 결국에는 시시딱딱이 중에 1명이 소매각시와 춤을 추게 되고 그 모습을 본 양반은 소매각시를 놀이마당 한가운데로 끌고 와 화를 낸다. ④ 넷째과장 : 화를 내는 양반에게 소매각시는 어쩔 수 없이 시시딱딱이와 춤을 추게 된 것이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하며 용서를 빈다. 그러나 양반이 화를 풀지 않자 소매각시는 양반의 긴 턱수염에 목을 매 자살한다. 장자마리 1명이 소매각시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알린다. 양반은 소매각시가 죽었다는 소식에 한탄하는데, 장자마리의 권유로 양반이 서낭신목을 모시고 와서 소매각시를 위해서 기원을 드리니 장자마리 1명에게 신이 내려 서낭신 목을 잡고 떨면서 누워있는 소매각시를 한 바퀴 돈다. 그러면 소매각시가 서서히 소생하기 시작한다. 소매각시의 소생을 확인하고서 양반과 소매각시가 서로 화해를 하고 모두 기뻐하며 춤을 춘다. 이때 구경들도 함께 놀이마당으로 나와 함께 즐겁게 춤을 춘다.
전승자 정보
강릉단오제는 크게 보유자를 비롯한 전승자가 단오제례, 단오굿, 관노가면극으로 구분되어 있다. 단오제례 부분은 현재 조규돈(曺圭燉, 제관)이 보유자 지정을 받은 상태이며, 단오굿 부분은 빈순애(賓順愛, 여, 1959년 생, 무녀)가 지정받았다. 빈순애는 신석남 무녀의 며느리로 그에게서 굿을 전수 받은 세습무이고, 현재 굿에 있어서 탁월한 예능을 보유하고 있면서 신석남 무녀 사후에 굿을 주도하고 있다. 가면극 부분은 김종군(金鐘群)이 보유자 지정을 받았다. 김종군은 농사를 생업으로 삼고 마을에 있는 풍물패에서 활동하다가 1984년부터 강릉관노탈놀이를 배웠다고 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전체적인 내용을 익히는데 주력하였고,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양반역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연계정보
· 재구성 <강릉단오제연구>, 김선풍·김경남, 보고사 1998 <강릉단오굿>, 황루시, 강릉문화원, 1999 <강릉단오제>, 문화재관리국, 1999
관련도서
<강릉단오제연구>, 김선풍·김경남, 보고사 1998 <강릉단오굿>, 황루시, 강릉문화원, 1999 <강릉단오제>, 문화재관리국, 1999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대서전 편찬위원회편, 민족문화사, 1991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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