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햄릿머신

작품/자료명
햄릿머신
초연장소
성좌소극장
작/연출
하이네 뮐러 / 채승훈
장르구분
실험극
출연 / 스태프
출연 햄릿/심철종 오필리아/윤복인 왕/김충호 왕비/정희정 배우/오산,전형재,김영래,김영훈,정오섭,이용백,정성은,조은영,임덕화,김재선 스태프 작/하이네 뮐러 역/윤시향 연출/채승훈 무대/신상철 음악/정대경,김상준 조명/김종호,송훈상 분장/손진숙 의상/이인숙 소품/한동현
내용
<햄릿머신>은 뮐러가 1976년에 독일 민중극장에서 벤노 벳손 연출을 위해<햄릿>을 번역, 개작하면서 이와 병행해서 탄생했다. 마침 1976년은 싱어송 라이터인 볼프 비어만이 동독정부를 비판하는 노래를 불러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이에 뮐러를 위시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항의성명을 발표하나 무시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자 동독의 작가와 지식인들이 서독으로 망명, 이주하는 사태가 계속된다. <햄릿머신>에는 이러한 당시 동독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짙게 반영되어 있다. 한편 이 작품에는 뮐러의 개인사적 사건도 혼합되어 있다. 우선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사회민주당원이었던 뮐러의 아버지는 1933년 나치에 체포되었으나 소년 하이네는 그것을 말없이 잠든 척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뮐러는 이 경험을 <아버지>라는 단편소설로 쓴다. 그 부친은 종전 후, 동독 프랑켄베르크의 시장이 되었으나 계급투쟁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51년 서독으로 가족과 이주한다. 그러나 하이네는 혼자 동베를린에 남아 동독 건국시기를 함께 경험한다. 또 다른 경험의 그림자는 작가로서 많은 공동작품을 썼던 부인 잉에가 1966년에 자살한 것으로, 뮐러의 후기 작품에는 이 사건이 여러 형태로 반영되고 있다. 유럽역사에 대한 고찰에서 뮐러는 “유럽”이란 개념을 지리적 의미로 사용하는 동시에 유럽적-서구적 전통 학문적-기술적으로 주조된 문명에 대한 암호로 사용한다. 소비와 부당한 소유분배로 규정된 서구의 “상품세계”와 국민을 정치적으로 조종하고 개인 행동이나 결정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주의 질서 사회 모두를 뮐러는 날카롭게 비판한다. 뮐러에 의하면 진정한 이해관계의 대립은 더 이상 유럽의 내부에 있지 않고 유럽과 “제3세계” 사이에, 다시 말해 고도로 발달된 산업국가와 일찍이 정치적으로, 지금은 경제적, 과학적-기술적으로 식민화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국가들인 제3세계 사이에 있다. 뮐러는 제3세계 국가에 희망을 건다. 이들 제3세계는 정체된 유럽질서에 평등과 자결을 위한 투쟁으로 거꾸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제3세계 역시 구체적인 지리적 의미뿐 아니라 “구세계”의 각질화한 사유구조에 대한 이론적 대조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용 해석상으로 볼 때 <햄릿머신>에서 특징적인 것은 햄릿과 대조되는 오필리아 상이다. 뮐러는 여성에 대한 굴종과 모욕의 역할을 오필리아/엘렉트라에게 투사한다. 그러나 자유, 평등, 우애를 갈구하는 소망을 억압할 때 분노는 외부를 향하여 폭발하며 폭력적인 반항을 야기한다. 가부장적, 소시민적 삶에 대항하는 오필리아의 본능적 폭발은 세계혁명의 영상과 유사하며 해방과 완전한 파멸을 의미한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오필리아는 두 남자에 의해 미이라처럼 완전히 결박당하면서도 억압에 대항하는 더 강력한 투쟁, 증오에 가득찬 봉기를 알리며 협박의 말을 토한다. 이러한 능동적 복수의 태도는 변화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고 뮐러는 보고 있으며, 이 역할을 여성에게 맡기고 있다. 반면 햄릿은 역사의 폭력적 과정에 대해 무력하게 맞선다. 그는 그 과정을 방관하고 회의하면서 관찰할 따름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그러나 무익한 생각을 지긋지긋해하며 두뇌가 없는 “기계”가 되기를 원한다. 햄릿은 갑옷 속으로 들어가 맑스, 레닌, 모택동의 머리를 도끼로 쪼갠다. 그러자 눈이 내리고 빙하기가 도래하여 이념은 얼어붙고 사유의 정지상태에 도달하여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침묵이 지배하고 발전도, 생명도, 진보도 이제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다. “나는 햄릿이었다.”는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극에서 햄릿은 공산주의 독재치하에서의 지식인의 자기성찰을 드러낸다. 또한 뮐러는 <햄릿머신>에서 성과 죽음을 극단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뮐러의 관계 및 소위 그의 야만적인 단어들(살덩어리, 피, 오물, 자궁, 구멍, 살육 등)은 개인심리학적 범주로 축소해서 해석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개인적 강박관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명이 없고, 즉물화되고, 분할된 “야만적인” 역사 상황에서 유래한다. 죽음과 생명의 파괴를 표현하는 뮐러의 작품은 오히려 생명력있는 죽음을 찬미하는 춤이며 저항과 적극적 부활을 지향한다. 성 역시 뮐러의 후기작품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작품에도 행복하게 조화된 사랑의 관계는 나타나지 않으며 간격이 남자와 여자를 갈라 놓는다. 그들의 관계는 특히 후기 작품에서 양성의 폭력적 투쟁, 사랑의 황무지로 특징화 할 수 있다. 가부장적 사회구성에서 여성은 탄생과 죽음의 합일을 구현화하며 출산자이자 살인자이다. 수수께끼처럼 암울하고, 부분적으로 극도의 야수성, 공격적 테러무사로 점철된 장면으로 이루어진 회상의 영상들은 후기 작품의 특징으로써 <햄릿머신>에도 이미 나타나는데 이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첫째, 시적으로 축약되고 첨예화한 암호로서 그 영상들은 회상속에서 세계의 사건을 끊임없는 투쟁으로, 기존의 것을 지속시키려는 힘과 혁신운동의 추진력 사이의 결투로 나타낸다. 금기의 한계를 알지 못하는 뮐러의 도전적 영상창조는 관객의 정신적, 감정적 체질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수단이다. 뮐러에 의하면 공포와 경악만이 관객의 고착된 사유구조와 전통적 가치개념을 동요시킨다. 불안과 공포는 무의식속으로 침잠한 고통스러운 경험을 극복하는데 강하며 불안의 교육적, 건설적, 창조적 기능은 문제의 해결점을 제공한다. 그런 의미에서 뮐러는 부정적 패배주의자나 구제불능의 염세주의자와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 윤시향, 공연 프로그램)
평론
난해하기로 이름난 <햄릿머신>이 ‘극단 반도’에 의해 채승훈 연출로 한국 초연중이다. 구 동독 최고의 작가이자 20세기 유럽의 대표작가인 뮐러의 작품으로, 기존의 희곡개념을 거부한 <햄릿머신>은 연출가에게 도전해 볼 만한 불가해한 작품으로 꼽힌다. 지문과 대사의 구별조차도 어려운 언어의 무경계, 패러디, 은유 등으로 ‘뮐러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면서 편린적 이미지와 충격으로 점철하는 이 작품은, 실로 근대 연극의 종말을 고하며 그 이후 포스트모던한 실험을 보여준다. “글을 쓸 때 나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부담을 주어 그들이 우선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게 하고 싶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그것이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주장한 뮐러는 ‘경악의 미학’을 제시한다. 쇼크와 경악과 공포만이 고착된 사유구조와 전통적 가치개념을 동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그는 역사의 비관적 비판자이자 그 폐허를 새로움의 시작으로 고백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이기도 한다. 구 공산중의 독재치하의지식인의 자기성찰이기도 한 <햄릿머신>은 죽음과 성의 극단화를 통하여 육체적 감각의 반란으로, 햄릿으로 대표되는 이성과 역사의 사유체계를 대신한다. 이번 채승훈의 <햄릿머신>은 원작의 핵심이라 할 ‘경악의 미학’을 우리 극계수준에서 기존의 어느 공연보다 철저하게 실험했다는 점에서 우선 높이 평가된다. 뮐러의 여러 경향들 중에서 아르토의 잔혹극적 영향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면서도 역설적으로 잔혹과 외설을 깔끔한 충력으로 연출하고 있다. 기왕의 대표적인 해외공연과는 각도가 조금 다르면서도 그 본질을 함께하고 있다는 데 연출 나름의 해석도 돋보인다. 최근 일련의 에로티시즘 시비는 단지 우연하게도 이 ‘골치 아프고 까다로운’ 실험을 상업적으로 흥행이 가능하게 만든 아이러니일 뿐이다. 이번 공연을 보고 그 누가 에로시티즘을 느낄 수 있겠는가? 대담한 누드는 오히려 불쾌감과 잔혹함을 증가시키는 오브제이며, 나아가서 이러한 육체의 반란이 끝도 없는 관념적인 대사를 효과적으로 감각화 시킨다고 하겠다. 아쉬움으로는 전체적인 공연의 리듬감 부족을 꼽겠다. 주인공 햄릿(심철종 분)은 계속되는 독백적 대사들이 결국 시종일관 비슷한 효과만을 유발했으며, 계속되는 충격들도 그 효과가 계산되기보다는 나열적이어서 전체적인 리듬을 놓친 듯싶다. 한편 잔혹과 외설적 해석에 치우쳐서, 작품의 반역자적이고 역설적인 역사의식이나 페미니즘적 요소가 소홀히 처리된 감도 있다. 그러나 투철한 실험정신으로, 우리극계 ‘충격’의 기본한계에 신선하게 도전하여 실험극의 새로운 장을 열었음은 이번 공연의 공로이다. 근대극의 해체와 패러디, 이는 <햄릿머신> 공연이 가시화한 성과로 우리극계에 본격적인 포스트모던한 실험의 시작을 예고하기도 한다. (<문화일보>, 이미원, 1993년 9월 4일, '잔혹과 외설로 시도한 이성의 해체')
관련멀티미디어(전체8건)
이미지 8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
  • 관련멀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