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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

작품/자료명
바리
초연장소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작/연출
홍원기 / 김효경
장르구분
1990년대 이후
출연 / 스태프
출연 바리공주/이선희,임선애 오구대왕/송용태 왕후/윤복희 마별사/유인촌,박철호 무장승/유열,유희성 삼신할미/전수경 산신령/박원묵 불탑신령/김성기 제사장/노동원 지옥장/우영하 사위/박석용,김성기,송영두 빨래터요정/김기정 공주/정혜정,양재희,정재영,이초은,진선희 스태프 제작지휘/신선희 원작/홍원기 연출/김효경 각색/김정숙 작곡/원일 음악감독/김정택 안무/안애순 무대미술/신선희 소품/천경순 조명/최형오 기술감독/이종일 성악지도/김수웅 의상/변창순
내용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 바리데기 공주는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온갖 모험 끝에 자신을 버린 아비를 구하는 신화속의 인물이다. 산처럼 든든하게 가족을 지켜 주시던 아버지가 거리를 떠돌고 어머니의 매운 눈물이 가슴시린 지금 이땅의 우리 모두가 꿈꾸는 구원의 여신과 같다. 그 인내와 시련 극복의 상징이 우리 자신을 갈고 닦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인물이다. 바리 바우먼은 버린 생모를 이해한다며 평화롭게 미소짓던 성덕 바우먼의 분신일지도 모른다. 먼 타국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도는 우리 딸들의 대명사일지도 모른다. 아니 내 땅의 못된 인심과 물질의 횡포에 삶을 빼앗기고 방황하는 허허로운 우리의 뒷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기말 이 어둠을 짊어진 우리의 고단한 삶에도 희망이 있듯이 바리의 애통한 삶은 그렇게 버려지진 않는다. 꺼져가는 목숨 속에서 전생으로의 억겁의 여행을 떠나는 바리, 황천강을 건너고 지옥과 극락을 넘나들고 하늘의 남자 무장승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자식마저도 빼앗기며 결국에는 자신을 버린 아비를 살림으로써 어느새 우리 시대의 암흑을 구원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바리. 구원은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무상의 선물이 아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일어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대가이다. 희망과 구원의 전령사인 여전사 바리는 2000년대를 맞는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리뷰
<바리-잊혀진 자장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 희미해진 전통설화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를 해외입양 고아 바리 보우만의 전생여행으로 재구성해 세기말의 어둠을 구원할 희망의 전령사로 재창조하였다. 자신을 던져 생명을 구하고 시대의 어둠으로부터 세상을 구하여 마침내 스스로를 구원하는 바리를 통해 힘겨운 오늘의 현실을 헤쳐 가는 지혜를 구하고자 기획된 공연이다. 전생의 지옥으로 고난의 여행을 떠난 바리의 여정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당대 최고의 뮤지컬 배우와 전문 스텝들이 전력을 다해 만들어 낸 야심작으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전생의 지옥과 서천세계를 표현한 화려한 무대는 도교적 우주관과 고대의 환상이 빚어내는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갈채를 받았다. 음악적으로는 ‘자장자장 우리아가’와 같이 향수를 담은 전통동요의 선율을 기본으로 한 국악선율과 현대 대중음악의 접목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담은 현대 뮤지컬 음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승과 저승의 길을 놓는 바리공주는 우리 모두가 지닌 인간정신에 의지하여 제도와 문명의 잘못을 치유한다. 버려진 자식이 왜 부모를 용서하고 지옥에 가야하는지의 의문보다는 병든 나라와 죽어가는 아비를 구해야겠다는 인간 본연의 소망과 사랑이 작은 인간을 영웅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바리데기 공주는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도 기적을 일으키는 신화가 되었다. (참고 : <1999-2000 서울예술단 Annual>)
평론
<바리데기>는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서사무가로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베풀어지는 굿에서 연창된다. ‘지노귀굿’, ‘씨끔굿’, ‘오구굿’, ‘망묵이굿’ 등이 그것이다. <바리공주>, <오구풀이>, <칠공주>, <무조전설>이라고 한다. 바리데기는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다. 즉 사령을 통제하는 신이면서 죽음이라는 현상을 관장하는 신이다. 옛날 국왕부부가 딸만 계속 일곱을 낳았다. 왕은 일곱째로 태어난 딸(바리데기 공주)을 내버렸다. 그녀는 하늘과 이웃의 도움으로 자라났다. 세월이 흘러 왕은 병이 들었고 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신령한 약물이 필요했다. 여섯 딸과 모든 신하들은 약물 구하러 가는 것은 거절했지만 그녀가 찾아와 약물을 구하겠다고 떠났다. 그녀는 약물관리자의 요구로 고된 일을 여러 해 해주고, 또한 무장승과 결혼하여 아들까지 낳은 뒤 겨우 약물을 얻어 돌아왔다. 왕은 이미 죽었으나 약물로 부친은 회생되었다. 그 공으로 그녀는 지옥을 관장하는 신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우선 무가에서는 남아선호에 관한 비판을 찾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바리데기의 잉태는 지극한 기자치성의 결과로 빚어진다. 즉 아들만을 얻고자하는 그릇된 사고가 딸을 낳게되고, 그녀를 버리는 동기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하늘이 알아주는 비범한 인물이었다. 성에 대한 편견은 이처럼 감동적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한편, 여성 스스로가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 정립해야 한다는 정신도 강조되었다. 바리는 여성이자 여성의 상징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길을 선택할 뿐만 아니라 정당하다고 믿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다. 그녀는 스스로 인격을 갖추고 인간적인 길을 감으로써 여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용서의 미학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증오는 더 큰 증오와 보복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를 통한 화해와 사랑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끝내는 죽은 부모의 생명까지 되살리는 기적을 창출한다. 우리시대에 가장 중요한 가치인 용서의 실천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 무가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바리데기가 약물을 얻기 위해 벌이는 고난의 과정이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거창한 목표설정이나 과장된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 마다의 성실한 노력과 결코 굽힐 줄 모르는 투지, 그리고 선을 향한 용기 있는 전진이 그녀로 하여금 그처럼 엄청난 고난을 이기게 한 것이다. 삶의 온당한 목표와 과정을 동시에 중시하는 진보적인 인간주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전체적으로 이 무가는 생명존중의 구원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어린 바리데기는 말 그대로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그녀가 대업을 완수했을 때 모든 사람들로부터 ‘대지같이 넓은 어머니’로서 추앙받게 된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를 부활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새 삶을 갖도록 했다. 그녀의 행위는 가족적인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인류에 대한 박애로 확산되었다. 생명존중과 구원의 실천은 이 세상에서,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고귀하고 신성한 가치인 것이다. (1999년 공연 프로그램, 서연호, '바리데기의 현대적 의의') <바리…>는 무속설화 바리데기 공주의 현대적 재구이다. 버림받은 바리데기 공주를 오늘의 해외입양아 바리로 설정했으니, 버림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떠돌았다는 공통점에 착안했다. 입양아 바리는 자신을 걸었다고 생각한 사랑에도 실패하여 자살을 기도한다. 혼수상태에서 그녀는 전생의 자신인 바리데기 공주가 되어서, 자신을 던져서 생명을 구하고 사랑을 실천한다. 비록 자신을 버렸지만 부모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생명수를 지옥과 극락을 마다 않고 찾아 나서서, 부모를 되살리고, 세상을 구하고, 마침내 자신까지 구원하는 바리가 되는 것이다. 공연은 소재의 선택과 각색(홍원기 작, 김정숙 각색)부터 적절했다. 한국 전통설화라는 점에서 의의가 클 뿐더러, 이를 적절히 현대화하여 국제적인 보편성 부여에도 큰 손색이 없었다. 즉 먼 옛날 무속설화 속의 바리를, 오늘의 자아 정체성 찾기와 연결시키고, 온갖 고통과 희생 끝에 아비는 물론 나아가서 오늘날 해체되어 가는 가족과 아비의 통치를 기대하는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로 해석되었다. 이는 곧 버림받은 바리 자신의 구원이기도 하다. 이렇듯이 ‘자아 정체성’이란 고리는 어제와 오늘을 연결시키고, <바리…>에게 세계적인 보편적 가치를 부여했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설화 자체가 한국판 죽음에 대한 순례로, 이승과 저승, 지옥과 황천강 등 우리식의 무한한 상상력과 우주관을 보여주고 있기에, <바리…>는 여전히 한국적이며 전통적이고 신비스럽다. 그리고 이 신비감은 오늘의 상상력을 여전히 자극하기에, 현대적인 것이다. 무대미술(신선희)은 작품이 갖고 있는 이색적인 분위기와 스펙타클한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실현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깊이를 살려서 복합적인 스크린을 활용하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돋우고, 회전무대와 빠른 무대전환으로 역동성을 살렸다. 특히 전생의 지옥과 황천강은 저승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여기에 의상(변창순) 역시 동양적인 환상을 더했다. 종합적으로 무대, 의상, 조명 등 국제무대에 내놓는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무대미술 이었다. 이러한 무대를 대하기는 참으로 오랜만으로, <바리…>는 우리 무대미술의 저력을 확실히 확인시켰다. 음악 역시 고무적이었다. 곡들이 클래식하면서도 대중성을 갖고 가깝게 다가오면서도 어딘가 독특했다. <바리…>가 갖는 전통성과 동양성을 가졌으면서도, 현대적이고 국제적인 감각 역시 살아 있었다. 더구나 이는 흔한 뮤지컬류가 아니면서도 그 독특함이 어색하지 않았으며, 북이나 바이올린 등 동서양의 악기와 테크노 음악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였다. 여기에 기성 뮤지컬 장르에 국한시키지 않은 폭 넓은 주역들의 캐스팅은, 시원한 가창력을 더하여서 전체적인 음악성을 한층 높였다. 음악만으로도 <바리…>는 한국적 현대 뮤지컬의 한 전형을 제시했다고 하겠다. (<세계화 시대 해체화 연극>, 이미원, 연극과인간, 2001년, '서울예술단의 새로운 변신') 샤머니즘의 바리데기 이야기가 현대의 뮤지컬 작품 <바리-잊혀진 자장가>로 거듭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서는 까닭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째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무조(巫祖) 신화가 뮤지컬이라는 예술 장르로 담겨진 양식의 측면이다. 둘째는 이야기의 서사적 도입과 결과에 현대의 버려진 아이들, 그것도 외국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이 버려진 상태로 적응하지 못한 채 자기 스스로를 다시 버릴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다가 긴 방황 끝에 자기 실현과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찾는다는 신화의 재해석이 특이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우리 뮤지컬들이 천박한 대중문화의 악극류나 미국 브로드웨이식의 뮤지컬, 아니면 전통적 창극류로 한정되는 마당에 뮤지컬 <바리-잊혀진 자장가>는 오페라 취향의 음악성이 두드러진다. 브로드웨이식이라기보다 유럽풍 뮤지컬 성향의 강한 음악이 고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고전적인 분위기는 미술장치와 조명이 만들어내는 창조적 무대디자인의 신화적 마술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어쩌면 특정 음악의 어법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연성을 갖고 서정적 친근감을 준 1막의 전체적 흐름에 반하여 2막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의 보편성이 강세를 취한다. 그것은 저승편력의 신화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이다. 현대적 감성과 전통적 몽상의 세계를 넘나들게 하는 음악(작곡 원일, 음악감독/지휘 김정택, 편곡 박준능, 성악지도 김수웅)은 드라마로서의 <바리-잊혀진 자장가>의 현대적 감성와 전통적 신화세계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바리공주는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의 버림받는 일곱번째 딸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의 도입부분은 뉴욕과 같은 현대문명 도시의 뒷골목과 청바지 세대간의 배신과 이별로 긴장을 몰아간다. 바리 보우만은 낯선 땅으로 입양된 계집아이,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양부모마저 그녀를 버렸고, 마침내 애인 토미마저 그녀를 버렸다. 버림받은 그녀가 이제는 세상을 버린다. 자지가 자기를 버림으로써 세상을 극단적으로 저주하는 바리는 투신자살을 꾀하고 신화세계로 들어선다. 그 신화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현대의 도시환경이 신화의 왕궁으로 바뀌면서 그녀를 버렸던 아비와 어미가 그녀를 버린 죄값으로 긴 세월동안 앓아왔음을 알게 되는 줄거리는 바리데기 신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작품(원작 홍원기, 각색 김정숙)에서는 죽어가는 오구대왕과 길대부인의 그림도형 같은 인물상이 자식을 버린 한 맺힌 부모상으로 승화되고 여성공주와 부마들의 권력쟁탈의 음모가 정치극 형식으로 펼쳐진다. 바리가 저승으로 생명의 꽃과 약수를 얻으러 가는 까닭은 부모가 그녀는 버렸으되 그 고통을 가슴에 새기고 결코 그녀를 잊어버리지 않았음에 기인한다. 버림받고 잊혀진 여인의 가장 비극적인 여인인 것이다. 바리는 버림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버린 부모가 불치의 병에 걸릴 정도로 그녀를 잊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버림받음으로써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한 것이 된다. (<전통과 실험의 연극문화>, 이상일, 눈빛, 2000년, '드라마조차 빨아들인 창조적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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