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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 작품/자료명

    만리장성

  • 초연장소

    국립극장

  • 작/연출

    김일민 / 박춘명

  • 장르구분

    1960년대 이전

  • 출연 / 스태프

    출연 맹진사/정남희 부인/성추월 맹강녀/신숙 시녀/조순애 석흥/조상선 만명/장영찬 정도령/김준옥 장백/백점봉 칠성/홍갑수 부장/성순종 스태프 편곡·안무/김정환 미술/김정환 장치/원우전

  • 내용

    <만리장성>은 중국의 진시황 시대 만리장성을 축성할 때 전국의 장국을 끌어 모아 강압적으로 부역케 한 상황을 배경으로 맹강녀와 만명의 비극적 사랑을 다뤘다. 진시황은 성이 자꾸 무너지자 일관에게 까닭을 묻고, 일관은 토신이 노예 만명(萬名)의 목숨을 원한다고 답하며 하지만 만명이나 죽일 수 없으니 대신 이름이 만명인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미소년 만명(萬明)이 축성의 총수 장백에게 체포됐는데, 만명은 그를 동정하는 군졸들의 힘을 빌어 탈출한다. 노한 장백은 고역에 지쳐 쓰러진 사람과 굶주린 사람, 병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생매장해 축성 현장을 생지옥으로 만들며, 군졸을 풀어 만명을 쫓는다. 남쪽으로 도망간 만명은 맹진사집 후원에 숨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맹강녀와 만나 둘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고, 맹진사는 둘의 혼인을 승낙 비밀스럽게 만명과 맹강녀의 보금자리를 꾸며준다. 그러나 맹강녀를 짝사랑하던 정도령에 의해 만명은 발각된다. 만명은 군졸들에게 끌려가고, 맹강녀가 그를 찾아 역사장으로 갔을 때는 이미 만명은 생매장당한 후였다. 절망한 맹강녀는 자살한다. 원통하게 죽은 두 넋을 극락왕생 하라고 무굿으로 끝을 맺는다.

  • 리뷰

    1945년의 민족해방은 전통예술 특히 창극을 소생시키는 계기가 되어 40년대 후반부터 50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 창극의 완성기를 이루게 된다. 이때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한 창극 단체로는 국극사, 국극협단, 김연수 창극단 등이 있다. 조상선, 정남희, 백점봉, 김재선, 강장언, 백인, 성순종, 김준옥, 장영찬 등이 중심 구성인물이었던 국극사는 ‘서동요’를 토대로 꾸민 야화 <선화공주>로 출범한 이후 거대한 스케일의 정통 창극 <만리장성>을 대표작품으로 내놓는다. 당시 대작으로 세간의 평가받은 국극사의 <만리장성>은 국립극장의 두 번째 개관피로 공연(1950년 5월 12일~16일)으로 올라갔다. 국립극장과 국극사 대표와의 계약으로 이뤄진 공연으로 창극단이 아직 국립극장의 산하 단체는 아니었지만, 해방 후 본격 창극 발전의 활로가 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창극계의 심기일전의 공연이라 할 수 있는 <만리장성> 무대 직후 6·25전쟁이 발발함으로써 기회를 잃는다. 국극사는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만리장성>을 갖고 광주와 전주를 거쳐 대전에서 공연하는 중 흩어지게 된다. 이후 창극은 한때 여성국극의 인기에 밀려 존립 위기까지 몰리게 되나 전쟁 후 국립극장 전속단체로 재구성되면서 부활하게 된다.

  • 평론

    대규모의 무대장치와 종막의 화려한 무굿놀이는 화려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창극사연구>, 박황, 백록출판사, 1776)

  • 관련도서

    <창극사연구>, 박황, 백록출판사, 1776 <한국 창극사 연구>, 백현미, 태학사, 1997 <한국연극운동사>, 유민영, 태학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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