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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의 기적

  • 작품/자료명

    피리의 기적

  • 작/연출

    최독견

  • 장르구분

    1960년대 이전

  • 출연 / 스태프

    배구자 악극단 단원들

  • 배구자 (1907~?)

    일제시대에 활약한 신무용가. 민속무용의 무대화 및 발레 수요에 크게 기여한 무용가이다. 1915년 일본의 덴가쓰 마술단에 입단하여 레뷰 전문의 예능인으로 활동했다. 1926년 덴까스 마술단을 탈퇴하여 한국에 귀국한 후 한국 전통 무용의 현대화라는 소신과 서양무용의 적극적인 수용에 관심을 가지고 무용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1928년에는 미국 유학을 위한 <배구자 고별음악무도회>를 열고 몇 가지 서양 무용과 창작 무용인 <아리랑>을 선보인바 있으며, 미국유학이 보류되자 1929년 7월 서울 신당동에 한국 최초의 무용연구소인 배구자무용연구소를 열고 그 해 9월에 제1회 공연을 가졌다. 1931년 1월의 배구자예술연구소 제1회 공연은 <양산도>, <오동나무>, <도라지타령> 등 민요를 춤으로 형상화한 가무극 공연이었다. 배구자는 한국의 전통적 미감을 대중적인 가무극 형식으로 재현하려고 애썼으며, 일제강점기에 항거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소품 공연을 해 한때 고초를 겪기도 했다. 배구자는 이외 <복수의 칼>, <파계>, <멍텅구리 미인탐방>등의 가무극을 공연했다. 1935년에는 남편 홍순언과 함께 동양극장을 설립해 공연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한국무용 <아리랑>을 비롯한 무용극, 무용, 독창, 합창, 연주, 촌극을 섞은 공연을 했다. 해방 후 무용계 일선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건너가 미국으로 갔다.

  • 최독견 (1901~1970)

    황해도 신천 출생의 연극인, 소설가, 언론인. 본명은 상덕(象德), 필명은 독고독(獨孤獨)이다. 1921년 중국 상해의 혜령 전문학원 중문과를 졸업하고 바로 ‘상해일일신문’ 기자를 거쳐, 1926년부터 1928년까지 ‘중외일보’ 학예부장을 지냈고, 연극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29년 11월 토월회가 박승희의 <아리랑고개>를 재기공연으로 상연할 당시 참여하면서부터이다. 이어 동양극장 지배인(1932), 동양극장 사장 서리(1938)가 되어 운영 및 극작에 힘썼다. 그 후 연극협회 이사(1940), ‘평화신문’ 부사장, ‘서울신문’ 편집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대표적 소설로는 <승방비곡>(1927), <자색봉투>(1928), <낭만시대>(1964)이며 그의 주요 희곡으로는 동양극장 개관공연 악극<피리의 기적>, <쌍동의 결혼>(1932)을 비롯하여 <승방비곡>(1935), <춘향전>(1936), <사의 찬미> 등이 있다.

  • 배구자 악극단

    1920년대 말 일본에서 무용가 배구자가 조직한 악극단. 배구자는 1920년대에 배충자, 홍청자 등 무용과 노래에 뛰어난 소녀들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악극단을 조직했다. 악극단은 일본에서 소녀가극을 하다 1930년 10월 귀국 공연을 시발로 국내에서 공연활동을 벌였다. 귀국 공연 작품으로 비가극 <무궁화>(성태삼 작·연출)와 희가극 <라 말세이유> 그리고 촌극과 노래와 춤을 공연했다. 배구자 악극단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만주 일본 등지를 자주 순회공연했다. 그 뒤 1935년 11월 배구자가 동양극장을 건립하고부터는 주로 국내에서 공연하면서 틈틈이 해외공연을 하였다. 동양극장 개관기념 공연으로 <멍텅구리 2세>, 촌극 <월급날>, 무용극 <급수부> 등과 20여명으로 구성된 소녀관현악단의 무대연주 <조양곡>, 클래식, 재즈, 탭 등 5종의 무용, 조선무용 <아리랑>, 독창, 합창 등을 무대에 올렸다. 1936년 다시 동양극장에서 <안녕합쇼 서울>, <마음의 등불>, <사랑은 허무하기 물거품 같더라> 등의 작품들을 공연했다. 1937년 배구자의 남편 홍순언이 죽자 배구자 악극단도 흩어지고 만다. 배구자악극단은 다른 악극단들보다 인적구성과 쇼에서 특히 뛰어났는데, 단원들이 대부분 일본의 덴까스 예술단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무용, 쇼, 연기가 뛰어났으며, 특히 단장 배구자의 춤과 노래와 연기는 특출하여 인기를 끌었다. 무대장치, 의상, 조명도 일본에서 들여와 호화로운 무대를 보여줬다.

  • 리뷰

    악극이란 ‘대사와 동작과 노래와 무용과 경음악으로 엮어 나가는 연극’으로, 악극은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대중의 인기를 누리면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벌였다. 1930년대에는 권삼천 악극단, 악극단 낭랑좌 등이 있었는데, 이중 30년대 악극의 주역은 단연 무용가 출신의 배구자가 이끄는 배구자 악극단이었다. 본격 연극 전용 극장 동양 극장을 개관한 배구자 악극단은 소녀관현악단까지 이끌 정도로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꽤 높은 수준을 갖고 있었다.

  • 평론

    배구자 악극단 석별흥행주간 10월 8일부터 12일 까지 … 1. 최독견 작 악극 <피리의 기적>, 2. 동극문학부 제공 악극 <쌍동의 결혼>, 촌극 <아첨하다 참변> 1경, 소녀관현악단 무대 연주 각종 무용. (<매일신보>, 1935년 11월 9일) 참고 : <한국근대연극사>, 유민영, 단국대출판부, 1996

  • 관련도서

    <한국연극>, 박노홍, 1978년 6월~1979년 4월, '한국악극사' <음악동아>, 황문평, 1985년 6월, '에피소드로 본 한국가가요사 ④' <한국근대연극사>, 유민영, 단국대출판부, 1996

  • 연계정보

    -동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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