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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칠머리당굿

작품/자료명
제주 칠머리당굿
지정여부
김윤수(무가(巫歌))
구분
무속의례
흐름
칠머리당굿은 제주시 건입동(健入洞)의 칠머리당에서 하는 당굿으로 음력 2월 1일에 열리는 영등환영제와 2월 14일의 영등송별제로 되어 있으며, 모두 영등굿(음력 2월에 영등신에게 올리는 제주도 고유의 무속의례)에 해당한다. 영등굿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8 제주목 풍속조에 보인다. 그 기록의 내용은 “2월 초하루에 귀덕(歸德), 금령(金寧) 등지에서는 목간(木竿) 12개를 세워 신을 맞이하여 제사지낸다.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떼 모양을 말머리와 같게 만들어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躍馬戱, 제주도의 영등굿에서 영등신을 치송할 때 하던 놀이)를 해서 신을 즐겁게 했다. 보름이 되어야 끝내니 이를 연등(然燈)이라 한다. 이 달에는 승선(乘船)을 금한다”고 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첫째, 이름이 연등(然燈)으로 곧 오늘날 ‘영등굿’의 ‘영등’의 한자 표기이고, 오늘날 제주도 방언에 2월을 영등달이라 하므로 이것은 제사일이 2월인 표기의 뒷받침이 된다고 하겠다. 둘째, 제일(祭日)이 2월 1일부터 15일까지로 오늘날 2월 1일에 영등신이 들어온다 하여 영등환영제를 하고 15일에 나간다고 하여 영등송별제를 하는 점과 일치한다. (칠머리에서는 14일에 영등굿을 하지만 우도에서는 15일에 송별제를 하고 있다.) 셋째, 굿이 북제주군 한림읍 귀덕리와 애월읍 애월리, 구좌읍 금녕리 등에서 성행했음을 말하고 있는데 이 마을들은 모두 해안가의 어촌들이어서 당시도 어촌의 마을제로서 성행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네 번째는 제의의 특성으로 목간 12개를 세워 영신(迎神)하여 제사를 지내고, 약마희로 신을 즐겁게 하는 점은 오늘날의 영등굿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보여진다. 다섯째, 2월에는 배에 타는 것을 금하는 관습이 있다고 말하는데, 오늘날에도 영등송별제를 지내 영등신을 보낼 때까지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 관습과 일치한다. 이러한 점으로 유추해 보건대 연등(然燈)은 바로 영등굿이고, 그 기록이 <동국여지승람>에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조 이전부터 어촌의 무속마을제로서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연등(然燈)에 대한 기록은 이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_조선 순조(純祖) 때의 학자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세시풍속서>, <탐라지(耽羅志)_조선 효종 때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동국여지승람> 및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을 참고하여 편찬한 제주도 제주목, 정의현(旌義縣), 대정현(大靜縣)의 읍지>, <남환박물(南宦博物)_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인 이형상(李衡祥)이 저술한 제주도 인문지리지> 등 여러 문헌들에 보이지만 모두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영등에 관한 이야기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명(神名)은 ‘영등’ 또는 ‘영등할망’이라 하고 제명(祭名)은 영등굿이라 한다. 둘째, 영등할망(할머니)은 2월 초하루에 강남천자국(江南天子國) 또는 외눈배기섬에서 구좌읍 우도로 제주도에 들어와서 바닷가를 돌며 미역씨, 전복씨, 소라씨, 천초씨 등을 뿌려 주어 해녀들의 채취물을 풍성하게 해주고 15일에 다시 우도를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다. 셋째, 2월이 되면 바닷가의 작은 고동이 다 속이 비는데 이것은 영등할망이 돌아다니면서 다 까먹었기 때문이다. 넷째, 영등이 들어오는 날에 날씨가 추우면 옷 좋은 영등이 왔다하고 비가 오면 우장 쓴 영등이 왔다고 한다. 다섯째, 이 기간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는 안되고 빨래를 해서도 안된다. 만일 빨래를 해서 풀을 먹이면 집에 구더기가 생긴다. 여섯째, 영등굿을 할 때 심방이 ‘미역이 풍년이 든다’, ‘조가 풍년이 든다’ 등의 예언에 따라 풍흉이 달라지며 송신(送神)한 때는 짚으로 작은 배를 만들어 갖가지 제물을 싣고 바다에 띄어 배송(拜送)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하면, 영등신은 할망(할머니)로 불리는 여신(女神)이고, 강남천자국 또는 외눈배기섬에서 왔다가 돌아가든 내방신(來訪神)이며, 바람과 비 등 기상과 관련 있는 신이기도 하고 해녀채취물의 증식과 어업, 농업 등의 풍요에도 관계 깊은 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등신에 관한 신앙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이미 해촌신앙 행사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조 이전부터 성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제주도의 영등굿은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많은 마을에서 이루어졌는데 해안가 마을뿐 아니라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마을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점차 사라지고 현재는 일부 해촌지역에만 있다. 영등굿이 어부와 해녀들의 수호신적 성격과 어촌의 풍어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칠머리당굿 역시 풍어제의 일부라 하겠다. 제주칠머리당굿은 1980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지정 당시의 기능보유자는 안사인(安士仁)이었다. 1990년에 안사인이 별세한 뒤 매인심방(마을의 당을 맡아 관리하고, 그 제의를 도맡아 하는 무당) 안사인의 소미(小巫, 수심방이 굿을 할 때 옆에서 악기를 쳐주거나 주요하지 않은 쉬운 제차를 맡아 집행하는 작은 무당)였던 김윤수가 기능보유자 인정을 받아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내용
제주칠머리당굿은 제주시 건립동의 본향당(마을 전체를 차지하여 수호하는 당신(堂神)을 모신 곳을 말함)굿으로 원래 당이 있던 곳이 일곱 개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의 지명을 “칠머리”라 하고 이 당 역시 칠머리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제주항의 확장, 방파제공사로 인하여 지금은 제주항 동편의 사라봉과 별도봉의 중간으로 옮겨졌다.) 칠머리당굿은 바로 이곳에서 매년 음력 2월 1일에서 14일에 걸쳐 영등신을 위해 올리던 무속행사를 말한다. 칠머리당에 모신 신은 "도원수 감찰지방관"과 "요왕 해신부인(龍王 海神夫人)" 이라고 하는데, 이 두 신은 부부신이다. 도원수 감찰지방관은 마을 전체의 토지, 주민의 생사, 호적 등 생활 전반을 수호해주는 본향신이며, 요왕 해신부인은 어부와 해녀의 생업, 그리고 외국에 나간 주민들을 수호해 주는 신이라고 믿는다. 이 외에도 칠머리당에서는 제주시 일도동 막은골 남당이 헐리게 되면서 그 곳의 당신인 남당하르바님과 남당할마님 부부신을 옮겨와 모시고 있으며, 해신선왕(海神船王)이라는 선신(船神)과 영등대왕(靈登大王)이라는 영등신을 모시고 있다. 칠머리당굿의 내용은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의 증식을 기원하고 어업이 번창하기를 영등신에게 비는 것이다. 칠머리당굿의 제사절차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굿의 준비
도제상(都祭床, 마을 전체의 기원용으로 올리는 제상을 말하며, 초감제상, 영등호장상, 제석상, 요왕맞이상, 요왕체사상, 대령상, 공싯상 등이 있음)의 제물이나 폐백은 선주 회장과 동장이 차리는 것이 관례이다. 굿을 처음 시작할 때 차리는 초감제상은 각 신위 앞 제단에 진설하며, 그 앞에 대령상과 공싯상이 놓인다. 대령상에는 쌀 1사발, 향로, 잔 3개, 바라 등이 올려지고 공싯상에는 떡과 과일, 쌀 1사발, 잔 3개, 명두 등이 올라간다. 요왕맞이를 할 때 사용되는 요왕맞이상은 큰 시루떡 1접시, 작은 시루떡과 돌래떡(메밀가루나 쌀가루 등으로 만든 둥글고 납작한 떡) 4접시, 과일 2접시, 계란 1접시, 채소 4접시, 잔 3개, 쌀 2사발, 명태 1, 소지 3장 등이 올려진다. 요왕체사상과 영등호장상은 당의 입구쪽에 놓는데 요왕체사상에는 시루떡과 돌래떡의 제물 3, 과일 1, 계란 3, 채소 3, 잔 3개, 쌀 2사발, 명태 1, 지전 3장, 3자씩 준비한 무명 3 등이 올라가고 영등호장상에는 시루떡 1, 돌래떡 3, 과일 3, 계란 3, 채소 3, 잔 3개, 쌀 1사발, 소지 3장, 지전 3장 등이 올려진다. 그리고 영등호장상 밑에는 전복과 소라, 문어 각 3접시, 오곡(보리, 조, 쌀, 팥, 콩)을 바구니에 넣어 올린다. 이 외에도 액막이를 할 때 사용하는 수탉 1마리와 배방선을 할 때 쓸 돼지머리를 준비한다. 도제상 외에도 마을의 각 집안에서는 축원용 제물을 각기 차려오는데, 그 제물은 밥 3그릇, 돌래떡 3접시, 계란 3접시, 채소 3접시, 과일 3접시, 술 1병, 쌀 3사발, 소지 3장, 지전 3장 등이다. 선주의 집에서는 선왕다리라 하여 시렁목 1필에 선주이름과 가족 이름들을 적은 것을 마련한다. 굿이 연행될 당에는 북쪽 돌벽에 큰 대를 세우고 앞서 말한 제물들을 진설한다. 그리고 각종 기와 오방기 등을 걸어 제장을 준비한다. 제사상이 준비되고 굿을 할 장소의 설비가 끝나면 소미(소무) 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매인심방의 가무로 초감제가 시작된다.
굿의 순서
영등굿의 제사절차는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나 큰 제차의 진행은 초감제 → 본향듦 → 요왕맞이 → 마을도액막음 → 씨드림 → 배방선 → 도진의 순서로 진행된다. 초감제는 여러 신을 청하여 좌정시키고 기원하는 절차이며, 본향듦은 본향신을 청하여 기원하고 놀리는 절차이다. 요왕맞이는 용왕과 영등신이 오는 길을 치워 닦아 맞아들이고 기원하는 순서이며, 마을 도액막음에서는 마을 전체의 액을 막는다. 씨드림은 해녀채취물인 미역, 전복, 소라 등의 씨를 뿌리고 그 풍흉을 점치는 절차이며, 배방선은 영등신을 배에 태워 본국으로 치송하는 순서이다. 마지막으로 도진은 모든 신을 돌려보내는 순서이다.
도진
당굿에 모셔졌던 여러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가십사하고 무가를 부른다. 이로써 모든 굿 절차가 끝난다.
배방선
① 송별잔 나눔 : 굿당에 모셔졌던 여러 신들끼리 서로 화해시키는 의식이며, 심방은 사설을 창하고 소무는 닭다리로 술을 적셔 제상 여기 저기에 뿌린다. ② 방선(放船) : 짚으로 약 50cm정도의 모형배를 만들어뒀다가 이 배를 굿당 가운데로 내어놓는다. 진설했던 모든 제물들을 조금씩 떠 싣고 백지와 돈까지 실은 후 어선에 이 모조선을 실어 바다 멀리 나가 띄우고 해양계의 모든 신과 영등신을 보낸다. 예전에는 방선을 하기 바로 직전에 영감놀이(제주도의 무당굿 가운데 놀이굿의 하나로 도깨비신에 대한 굿을 말함)를 했었다고 전한다.
씨드림
씨드림은 파종이라는 뜻으로 미역, 소라, 전복 등 채취물의 씨를 바다에 뿌려 많이 번식하게 하는 의례이다.
마을 도액막음
한해 동안 마을의 모든 액을 막음으로써 행운을 오게 하는 절차이다. 액을 막기 위해 사람 목숨 대신 닭을 잡아 가십사 하는 의미에서 수탉을 죽여 당 밖으로 내던진다.
요왕맞이
요왕맞이는 바다 세계의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믿는 여러 용왕신들과 밭이나 바다에 모든 씨앗들을 주고 떠난다고 믿는 영등신을 굿당으로 모셔 대접하고 기원하는 절차이다. 요왕맞이를 하기 위해서 먼저 여러 용왕들과 영등신이 올 길을 만들어 놓고 그 길을 치워 닦아놓는데, 영등신과 여러 용왕들이 올 길은 약 1미터쯤 되는 잎이 붙은 대 8개를 굿당 중앙에 2렬로 나란히 꽂아놓고 그 대에 백지와 지전, 돈 등을 걸어놓는다. 이 대 하나하나가 용왕과 영등신이 들어오는 문이며 그 사이가 여러 신들이 오는 길(요왕질)이다. ① 베포도업침 ② 날과 국 섬김 ③ 연유닦음 ④ 군문열림 ⑤ 요왕질 침 : 요왕질은 해양계의 모든 일들을 관장하는 여러 용왕신들과 풍요를 약속하는 여러가지 씨앗을 주고 떠난다고 믿는 영등신이 올 길을 치우는 절차이다. ⑥ 신청궤 ⑦ 나까도전침 : 큰 시루떡을 들어 공중으로 던졌다 잡았다 하며 춤추다 여러 신들에게 올리고 여러 하위 잡신들에게도 대접하는 절차이다. 이때의 큰 시루떡을 나까리시라고 하고 시루떡을 놀리며 춤추는 것을 ‘나까시리 놀림’이라 한다. ⑧ 방광침 : 소미(小巫)가 징을 들고 나와 칠머리당을 믿었던 주민 가운데 해녀작업이나 고기잡이 과정에 바다에 빠져 죽은 여러 원혼들에게 술을 올리고 해양계를 관장하는 여러 신들에게 좋은 세계로 인도해 주기를 기원하는 절차이다. ⑨ 요왕문 열림 : 문을 연다는 것은 꽂아 놓은 대가지들을 하나 하나 뽑아 나가는 것을 말하며, 모든 요왕문이 다 열리고 난 다음 소무는 요왕문을 상징했던 모든 것을 태워 버림으로써 요왕문 열림절차가 모두 끝난다. ⑩ 지쌈(지아룀) : 모든 주민들이 자기가 차려 온 제상을 일제히 백지에 여러 제물을 조금씩 떠넣으면 싼다. 이것은 용신이나 가족 내 영혼들에게도 바치는 것인데, 집안의 어부 또는 해녀의 수에 맞게 싼다. 이렇게 제물을 백지에 싸는 것을 ‘지싼다’고 한다.
본향 듦
제주도 무속사회에서 본향신은 한 마을의 토지는 물론 마을 사람들의 생사와 호적 등 일체를 관장하며 수호해 준다고 믿는다. 본향듦은 칠머리당의 본향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과 용왕해신부인을 굿당으로 청해 좌정시키고 축원하는 절차이다. ① 베포도업침 ② 날과 국 섬김 ③ 연유닦음 ④ 군문열림 ⑤ 신청궤 : 신이 거처하는 세계의 문이 열렸으므로 이 제차에서는 당신(堂神)을 굿당으로 청한다. 마을을 관장하고 수호해주는 본향신이 굿당으로 들어오는 절차이므로 모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양손을 모아 고개 숙인다. ⑥ 삼헌관(三獻官)은 절시킴 : 상선(上船) 대표 1명, 중선(中船) 대표 1명, 해녀 대표 1명으로 된 삼헌관이 주민들을 대표하여 상을 올리고 절한다. ⑦ 여러 자손들 소지 올림 :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차례로 10여명씩 무리를 지어 소지를 태워 올린 후 절한다. 이 절차는 주민들 개인의 소원을 본향신에게 올리는 것이다. ⑧ 도산 받아 분부사륌 : 도산 받음은 마을 전체의 일년동안 운수를 알아보기 위해 巫占으로 신의 뜻을 알아보는 것이며, 이 절차는 신의 뜻을 알아본 다음 바로 마을 사람들에게 그 뜻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⑨ 석살림 : 흥겨운 가락과 춤으로 신을 즐겁게 놀리고 나서 기원하는 절차이다. 칠머리당굿에서 석살림의 제차(祭次)가 일반 굿과 다른 점은 제주도 무속에서 신앙대상이 되는 일만팔천신위들을 모두 불러다가 즐겁게 함께 놀리는 것에 있다.
초감제
초감제는 여러 신들을 청하여 좌정시키고 기원하는 거리로 자세한 세부 절차는 다음과 같다. ① 베포도업침 : 영등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천지개벽으로부터 우주개벽, 일월성신이 발생, 국토의 형성과 국가인물이 발생 등을 부르는 거리이다. ② 날과 국 섬김 : 칠머리당의 당신인 ‘산지용궁칠머리감찰지방관’ 에게 영등신을 모셔다가 대접한 후 우도로 보내는 대제가 있을 것이라고 아뢴다. ③ 연유닦음 : 당굿을 올리게 된 연유를 여러 신들에게 고해올린다. ④ 군문열림 : 여러 신들이 굿당으로 오기 위해 신들이 거처하는 신궁의 문을 여는 거리이다. ⑤ 분부사룀 : 여러 신궁의 문들이 곱게 열림으로써 오늘 여러 신들이 굿당으로 무사히 올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을 주민들에게 알린다. ⑥ 새다림 : 신이 오는 길의 모든 사악함을 쫓아내고 굿당과 굿당에 모인 사람들을 깨끗하게 정화하는 제차이다. ⑦ 정대우 : 일만팔천신위들을 모두 굿당으로 오시도록 청해들이는 제차이다. 이 당굿이 영등굿인 만큼, 주로 해양을 관장하는 여러 신들을 불러들이는데 중점이 두어진다. ⑧ 열명(列名)올림 : 선자을 비롯하여 해녀회장, 동장, 상단골 순으로 모든 참석자들의 열명을 올려 축원하는 제차이다.
전승자 정보
안사인(安士仁, 1928~1990) 제주칠머리당굿 초대 기능보유자로 1980년에 무가(巫歌)로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제주출생이며, 21대 세습무인 임생(任生)의 아들이다. 본래 안씨 집안은 무업을 세습하는 가문이 아니었으나 그의 증조부가 구좌읍 하도리에서 19대째 세습무계를 이루고 있던 고씨(高氏) 집안의 딸과 혼인하였고, 증조부는 무업에 종사하지 않았지만 안사인의 조부와 조모가 증조모의 무업을 계승하여 심방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그 부모에게 무업이 이어져 결국 안사인이 21대 세습무가 되었다. 무계 집안에 태어난 안사인은 부모를 따라 굿판에서 성장하였고, 19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멩두, 곧 심방의 수호신의 인계를 걱정하므로 이를 물려받을 것을 약속하고 굿을 시작하였다. 23세에 입무의례인 신굿을 하여 정식 심방인 하신충이 되어 제주시 용담2동의 본향당인 까스락당의 매인심방이 되었는데, 목소리가 좋고 춤이 고와 심방으로서 명성이 높았다. 36세에 다시 신굿을 하여 중신충이 되었고, 49세에 다시 신굿을 하여 심방의 최고위인 상신충에 올랐다. 무슨 굿이든 못하는 굿이 없어 제주시와 북제주군 일대의 굿을 맡아 하였고, 또한 굿의 예술화에도 기여하였다. 특히 안사인은 자신의 굿기능을 학자들이 조사, 채록하는데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무가를 기록으로 남기는데 공헌하였으며, 1980년에 제주칠머리당굿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기능보유자 인정을 받은 후 보존회를 조직하여 소멸 위기에 처한 당굿을 부흥, 보존하는 데 힘썼다.
용어해설
약마희(躍馬戱) : 제주도 영등굿에서 영등신을 치송할 때 하던 놀이로 영등굿은 마을 사람들이 영등신에게 올리는 풍신제(風神祭)를 말한다. 영등신(靈登神)을 치송하여 어부나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사라져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영등신이 음력 2월 초하루에 북제주군 구좌면 우도를 통해 들어와 제주도의 해변을 일주한 뒤 보름이 되면 떠나며, 이 때 미역·전복·소라 등의 종자를 뿌려 번식시킨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2월 초하룻날에는 일제히 영등을 환영하는 제사를 지내고, 영등신이 떠난다는 보름날을 앞두고는 마을마다 따로 날을 잡아 송별제를 지냈는데 이것을 모두 영등굿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약마희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떼를 말머리처럼 만들고 비단으로 곱게 꾸며 약마희를 함으로써 신을 즐겁게 하였다”고 하여 영등굿놀이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을 뿐 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최근 약마희가 떼몰이놀이라는 뜻의 이두 표기라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떼몰이놀이란 영등굿 가운데 배방선(환자에게 범접해 있는 영감을 배에 태워 바다 멀리 띄워 보내는 제사 절차를 말함)을 할 때 마을 사람들이 다투어 바다로 나가 각 집에서 만든 조그마한 떼를 일제히 바다에 띄워 보내어 영등신을 치송하던 것을 말한다. 이 놀이는 20세기 초까지 행해지다가 사라졌으며, 지금은 나무나 짚으로 만든 자그마한 모조선에 제상에 진설되었던 제물을 조금씩 갖추어 실은 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것을 물 위에 띄워 보내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감놀이 : 제주도의 무당굿 가운데 놀이굿의 하나로 도깨비신에 대한 무속의례이자 연희놀이이다. 영감이라는 말은 도깨비를 높여부르는 말로 영감본풀이라는 신화에 근거한 것이다. 영감본풀이에 등장하는 신은 서울 먹자고을 허정승의 7형제로 큰아들부터 여섯째 아들까지는 각자 육지의 유명한 산들을 차지하였고, 일곱째는 한라산 일대를 차지하였는데, 이 신들은 허름한 차림에 짧은 곰방대를 물고 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날아다니고, 돼지고기와 수수범벅, 소주를 즐겨 마시며, 예쁜 여자를 좋아하여 같이 살자고 따라붙어 병을 주거나 밤에 몰래 규방에 드나들기도 한다. 영감놀이는 영감신이 여인을 범접하였기 때문에 앓는 병을 치료하려는 경우나 어선을 새로 짓고 선왕을 모셔 앉히려는 경우, 마을의 당굿 등에서 연행되는데, 오늘날은 병을 치료하는 경우만 놀아진다. 대부분은 소미(小巫) 두세 사람이 영감신의 가면을 쓰고 헌 도포, 헌 짚신, 헌 갓 등으로 꾸미고 곰방대를 입에 물며 짚 자루에 돼지고기, 내장 등을 싸들고 횃불을 치켜들어 집 밖에서 준비한다. 규모가 클 때는 7형제 중 막내만을 제외한 6형제, 즉 여섯 사람이 영감으로 분장한다. 도깨비에 대한 굿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심방 : 제주도에서 무당을 부르는 말로 제주도의 심방은 육지의 무당과는 성격이 다르다. 심방은 무의 사제권(司祭權)이 혈통을 따라 대대로 계승되는 세습무로서 영력을 중시하여 신에 대한 구체적인 신관이 뚜렷하다. 제주도의 심방은 호남지역의 단골처럼 사제권이 제도상 혈통을 따라 세습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단골이 신에 대한 인식이 극히 희박한데 비해 심방은 영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또 심방은 중북부의 무당처럼 영력을 중요시하여 신에 대한 인식이 확고하지만 심방은 보통의 강신무처럼 신이 직접 몸에 내리지 않고 제의에서 무점구(巫占具)를 통해 신의 의사를 전달 받는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제주도의 심방은 단골과 강신무의 중간형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심방의 굿은 신의 행적을 재현하는 몸짓과 춤, 노래가 본래 모습 그대로 남아 극적인 요소가 많으며, 노래로 부르는 무가도 다른 지역보다 서사적 양식이 많이 남아있다. 심방은 주로 남자이며, 간혹 여자도 있다. 남자 심방은 바깥심방, 여자심방은 안심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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