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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평산소놀음굿

작품/자료명
황해도 평산소놀음굿
지정여부
이선비
구분
무속의례
흐름
황해도 평산소놀음굿은 황해도 평산지방의 경사굿(慶事굿, 농사나 사업, 장사 등의 번영을 빌거나 자손의 번창을 비는 듯에서 행하는 굿) 가운데 제석거리가 끝난 다음 굿판을 마루에서 앞마당으로 옮겨 만신(무당)이 소의 모습으로 꾸미고 노는 굿놀음을 말하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하나이다. 이 굿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오래 전부터 굿판에서 농경문화와 연관된 소를 등장시켜 대동적인 놀이를 벌여온 것은 확실하다. 볏짚이나 가마니 또는 멍석으로 소와 송아지를 만들어 사람이 쓰고 이것을 마부가 몰고 다니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대사를 하는 형식의 굿놀이는 현재 경기도 양주와 황해도 평산 그리고 인천 옹진의 것이 전승되고 있는데 이러한 놀이의 명칭은 소놀이굿 또는 소놀음굿이라 부르고 있다. 소를 동반한 이 굿놀이들은 가면으로 만든 소를 사람이 쓰고 이곳을 사람이 몰고 다니면서 가무악을 동반하여 구경꾼들의 흥을 돋구는데, 그 목적은 풍농을 기원하고 액을 쫓으며 마을 사람들의 대동단결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5년 8월에 인천국악원에서 재현공연이 있고 난 후부터이다. 이 공연은 당시 75세였던 황해도 평산 출신의 무당 장보배(1915~1991)가 과거 자신의 고향에서 전승되었던 것을 기억해 내 자신을 따르는 무당들과 악사들이 참여하여 이루어졌다. 재현 공연이 이루어진 후 1986년과 1987년에 공개 공연으로 일반 대중에게 선보였으며, 1988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평산 소놀음굿은 굿이 시작되는 날 밤에 이루어지며, 보편적으로 전체 경사굿 가운데 칠성, 제석거리가 끝날 무렵에 한다. 때에 따라서는 소놀이굿이 이튿날 또는 굿 마지막날 밤에 이루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모든 굿이 끝날 무렵에 한다. 소놀이굿이 반드시 제석거리 말미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칙은 없으며, 다른 굿거리 말미에 이어지기도 한다. 이 굿놀이는 무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무당들에 의해 진행되는 놀이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교적인 색채가 매우 강하다. 평산 소놀음굿의 주된 내용은 단군님을 맞이하는 것과 제석님이 강림하여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국을 개국하는 것이다. 먼저 제석이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제석이 지상에 강림하여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국을 개국한 내력을 제석이 타령으로 부르고 나졸들이 만수받이(굿에서 무가(巫歌)를 부르는 양식 가운데 하나이며, 같은 장단으로 같은 내용의 노랫말을 선창과 후창의 반복을 통해 보여 준다)로 받는다. 이어 천상의 놀이가 끝나고 지상의 놀이가 시작되면 농신(農神)이며 산신(産神)이고 수신(壽神)을 겸한 제석이 중심이 되어 마부를 상대로 타령과 대화로 엮어나가면서 마부는 소를 끌고 다니면서 밭갈이를 하고 애미보살은 씨를 뿌리고 지장보살은 김매기를 하며 신농씨는 농사일을 감독하는 동작을 놀이로 한다. 또 소를 길들여 부리는 요령, 쟁기에 보습을 맞추는 범 등을 가르치는 대목 등도 있고 제석님이 인간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방아를 찧고 그 집의 재수와 복을 주기 위하여 지경다지는 놀이도 하며 산신(産神)으로서 아기도 점지해 준다. 소놀음굿을 할 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여들어 술을 마시면서 굿판에서 춤을 추기도 하고 풍물을 울리면서 함께 어울려 즐기는데 이러한 황해도 평산소놀음굿이 가지는 오락성과 예술적 기능이 이 소놀이굿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굿에 동원되는 만신은 6명이고, 악사는 장고, 징, 저나 피리 등 셋이 된다. 굿은 해가 질 무렵에 시작하여 동이 트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구성
# 1998년 보존회 공연 당시 상황을 중심으로 서술함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은 과거 평산 지방의 큰 굿판에서 이루어지는데 평산 지방의 큰 굿판은 마을 사람들의 대동단결을 위한 대동굿, 새집을 짓고 지정을 닦으면서 하는 성주굿, 철따라 하는 철물이 굿 등의 경사굿을 말할 수 있다. 경사굿은 마을 사람들의 대동단결을 모색하고 풍농을 기원하며 장사의 번창과 자손의 번영을 비는 굿이다. 평산소놀음굿은 총 14거리로 구성되어 있는 큰 굿의 중간 부분인 제석거리 말미에 이어 연행되며, 굿의 순서는 1. 안반고사 2. 신청울림 3. 상산맞이(산천거리) 4. 초감응거리(초부정거리 포함) 5. 칠성거리 6. 제석거리(소놀음굿 포함) 7. 작두거리(쌍작두 그네타기 포함) 8. 사냥거리 9. 말명거리 10. 서낭거리 11. 타살거리 12. 대감거리 13. 조상거리 14. 터주거리 15. 마당거리 순이다. * 안반고사 굿하기 전날 밤 떡을 빚으면서 굿이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고사이다. 굿당 한 켠에 떡판을 놓고 그 위에 굿에 사용될 여러 가지 떡들을 섞어서 양 사방 귀퉁이와 중앙에다 조금씩 올려놓는다. 세 개의 술잔을 떡판 옆에다 놓는다 만신은 상장구가 반주하는 음악에 맞춰 축원한다. 축원이 끝나면 떡을 엎었다 뒤집었다 하면서 점괘를 낸다. 참관하는 사람들에게 공수를 준다. * 신청울림 굿의 시작을 알리고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거리이다. * 상산맞이(산천거리) 본격적인 굿이 시작되는 거리로 일영 상산맞이거리 또는 산천거리라고도 한다. 맑은 정기를 가진 산천의 신들, 즉 산신들을 굿청으로 모셔오는 거리이다. * 초감응거리 산상맞이 다음으로 하는 거리로서 굿청과 굿당 주위를 정화하며 굿판에 참가한 무당들은 물론 모든 참관자들에게 붙어있는 부정한 것을 물리치며 소놀음굿에서 모셔질 모든 신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좌정시킨다. 모든 신을 불러들인 다음 여러 가지의 무구들과 무복들을 가지고 놀린다. * 칠성거리 칠성거리는 안당에서 한다. 신음식은 소찬으로 장만하고 육식은 사용하지 않는다. 칠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며, 이 거리에서는 거상춤, 사면춤, 바라춤을 추고 명떡과 복떡을 팔기도 한다. 칠성거리에는 도령, 천문풍수, 부인마마, 팔선녀 등이 강림하기도 한다. * 제석거리(별상물림 및 소놀음굿 포함) 복을 비는 제석거리는 칠성복을 그대로 입은 채 이어진다. 이 거리에서는 마마병을 퇴치하는 별상물림을 하는데 이 때 가공의 배를 만들어 바가지에다 액을 담아 바다로 띄워보낸다. 제석거리가 끝나면서 곧이어 소놀음굿이 이어지는데 굿판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이 소놀음굿에 참석하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대동적인 마을굿을 벌인다. * 작두거리 일명 장군거리라고도 하다. 장군복을 입고 작두 위에서 춤을 춘다. 작두를 타는 것은 장군님의 영험력을 과시하는 것인데, 작두를 타고 있을 때 그의 영험은 극대화된다. * 사냥거리 신에게 제물로 받쳐질 소, 돼지, 닭을 상산막둥이와 경관만신이 활, 화살, 삼지창, 칼을 가지고 매타령을 하면서 사냥을 간다. 상산막둥이는 높고 깊은 산 속에 사는 청년으로 신의 부름을 받아 만신의 굿판에 온 사람이다. 그는 산길은 물론 짐승이 있는 곳을 잘 알기 때문에 만신이 사냥을 나갈 때 도와준다. 그러나 처음에는 꾀를 부려 말을 듣지 않지만 나중에는 갖은 재담과 장난을 하면서 사냥길에 나선다. * 말명거리 수많은 신을 불리다 죽은 만신이 다른 무당에 의해 신령님으로 모셔질 때 그 신을 ‘말명신’이라 한다. 그러므로 말명신은 무당들의 조상격인 셈이다. 말명거리는 주로 무당신(말명신)을 대접하고 놀리어 무당의 신명을 극대화함에 있다. 한편으로 병든 사람을 낫게 해주고 자손점지를 해주는 기능도 있다. * 서낭거리 서낭거리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축원을 하는데 만신이 집집마다 다니면서 각 가정에 일년 열두 달 만사형통과 무사대길을 축원하는 기원을 한다. 이것을 “고사반 넘긴다”고 한다. 마을을 보호하고 지키는 서낭은 육고기로 대접하는 육서낭과 소찬(채소)으로 대접하는 소서낭, 호서낭, 물아레로 기고나는 용신서낭,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사서낭, 여서낭, 남서낭 등을 축원한다. 서낭대는 소나무로 몸대를 만들고 거기에다 꽃, 솔잎, 치마와 저고리, 바지와 저고리 그리고 오색천 등을 매단다. * 타살거리 소, 돼지, 닭들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타살을 한다. 활을 가지고 사냥해 온 짐승을 굿판에 놓고 타살하여 피를 먹으면서 군웅을 푼다. 군웅은 원한이 맺혀 죽은 신들을 말하는데, 군웅신에게 제물로 올려지는 육찬들은 삼지창에다 사슬(신들이 오늘 굿을 잘 받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삼지창에 그 날의 제물을 얹어 세운다. 신의 영검함과 위엄을 한꺼번에 나타내는 절정의 순간을 나타낸다. 이것을 사슬세우기라 한다.)을 세운다. 사슬이 잘 세워지면 신이 흔쾌히 받았다는 뜻이다. * 대감거리 벼슬대감, 한량대감, 걸립대감, 터주대감, 욕심 많고 탐욕 많은 대감 등 모든 대감님들을 불러 대접하고 놀린다. 대감들은 복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때는 오방기를 뽑아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점을 치기도 한다. * 조상거리 굿을 주관하는 만신의 조상들을 불러들여 위로하고 후손들의 축복을 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의 조상들도 모셔 후손들이 잘 되기를 빈다. * 터주거리 집과 마을 그리고 나라땅의 터주신을 위한다. 터주거리를 할 때는 술과 떡 그리고 고기를 갖고 여러 곳의 터전을 다니면서 터주신을 위하는 춤을 추어 터주신이 화가 나지 않도록 달랜다. * 마당거리 일명 뒷전 또는 뒷풀이라고 한다. 마당거리는 마지막 거리로 마당으로 나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모든 잡귀 귀신들을 먹이고 놀려 보낸다. 마지막에는 무당과 참관자 모두가 어울려 한바탕 춤을 추며 논다.
전승자 정보
황해도 평산소놀음굿의 전승은 보존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전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신을 모시는 무당들과 신을 모시지 않는 남성 소놀음굿 연희자들이다. 무당들은 주로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거주하고 있으며 남성 연희자들은 평산소놀음굿을 처음 재현했던 장보배씨가 거주했던 강화군 교통면 삼선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보배씨가 사망한 후 이선비씨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장보배(張寶培, 1915~1991) 황해도 평산군 평산읍 투생으로 13살 때부터 신병을 앓았다. 19살에 평산군 안성면 제암리로 시집을 갔는데, 21살 되던 해에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정신 없는 상태에서 헛소리를 하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그때마다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곤 하였다고 한다. 시부모가 며느리의 행동에 쫓아내려 하였지만 남편이 말렸다. 그러다 당시 85세의 김씨 할머니라는 무당을 신어머니로 삼으면서 본격적으로 무업을 시작을 하게 되었으며, 무업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병환굿으로 유명했다. 일제가 물러가고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1947년 강화군 교동면 삼선리로 남하하였고 그곳에서 다시 신어머니로 해주 출신의 오씨 무당을 모시고 무업을 하였으나 얼마 후 신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신어머니가 남기고 간 신당을 맡아서 무업을 계속하였다. · 이선비(李先妣, 1934~ )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집안이 일찍이 옹진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8살 되던 해 지금의 남편과 혼인하였으며 한국전쟁 당시 남편과 함께 전남 고흥으로 남하하여 3년 정도 살다가 인천 부평과 경기도 김포 등지에서 약 1년 정도 살았으며 이후 현재의 거주지인 인천 화수동에 자리잡았다. 27살 되던 해 병이 났는데, 병원에 다녀도 낫지 않았다. 주위에서 무당을 찾아가 보라고 권유하여 여러 무당을 찾아 다녔으나 점괘가 나오지 않아 지칠 즈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겠다고 하여 소개를 받아간 집에서 무당이 말하기를 그녀의 양 어깨에 신이 실려있다고 하였다. 점보는 방안에 함께 있던 어느 할머니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이선비에게 신당에다 절을 하라고 해서 절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밥솥을 올려놓고 깜빡 잠이 들어 꿈을 꾸었는데, 신내림 받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꾼 뒤 며칠이 지나 아프던 입이 말끔히 나았다. 그러다 28살에 장사를 나가려고 하다가 몸이 비틀어지면서 영험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황해도 연안에서 내려온 돌깨만신으로 알려진 유씨 무당에게서 내림굿을 받았다. 이선비가 신내림을 받은 신어머니 돌깨만신은 장보배씨와 같은 신어머니 밑에서 신을 받은 사이였다. 돌깨만신은 이선비에게 신내림을 해주고 한달 만에 세상을 떠났는데, 이 때문에 이선비는 굿을 배울 수가 없어 직접 큰무당을 찾아 다니며 배웠다. 이선비가 소놀음굿을 장보배씨에게서 본격적으로 전수 받기 시작한 것은 1987년부터이다. 이 때부터 이선비는 평산소놀음굿에 관한 모든 문서를 신어미 장보배씨로부터 전수받았다. 평산소놀음굿의 압권은 맨발로 행하는 ‘쌍작두 그네타기’이다. 흔히 무당들이 굿판에서 여물 써는 작두에 올라가는 일은 있지만 쌍작두 그네를 타는 것은 생소하다. 이선비는 서슬이 퍼런 쌍작두로 그네를 타는데, 그녀가 쌍작두 그네를 타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40살이 되던 해 어느날 영종도로 병굿을 하러 갔는데 굿을 하는 도중 갑자기 작두를 타고 그네를 뛰고 싶었다. 신령님이 원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작두 그네를 타면서 굿을 하였는데, 굿은 순조롭게 끝나고 환자도 나았다.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아 현재는 작두 그네타기가 이선비의 특기가 되었다.
연계정보
· 재구성 <황해도평산소놀음굿;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6>,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80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0집, 문화재관리국
관련도서
<황해도평산소놀음굿;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 16>,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 ;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80호>,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0집, 문화재관리국 <한국예술사전(연극/무용/영화 편)>, 대한민국예술원,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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