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순이삼촌
- 작품명
- 순이삼촌
- 저자
- 현기영(玄基榮)
- 구분
- 1970년대
- 작품소개
- 개요 1978년 9월 <창작과비평>에 발표된 현기영의 중편소설.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작품은 첫째, 제주사건을 민중적 시각에서 조명하려 했다는 점, 둘째, 서북청년단 출신 순경의 작태를 고발하여 제주도에서 벌어진 반인륜적 행위를 폭로했다는 점, 셋째, 역사적 사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가열한 비판의식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지나간 시대의 역사 속에서 왜곡된 부분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작가정신과 치열한 참여정신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내용 ‘나’는 8년 만에 조부모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 제주를 방문하였다가 거기서 순이(順伊) 삼촌(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부른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순이 삼촌은 집을 나간 지 20여 일 만에 일주도로변의 당신 소유 밭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사인은 자살이었다. 친척들은 그 돌연한 죽음을 지병인 신경쇠약의 악화 때문이라고들 했다. 순이 삼촌은 작년 한 해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식모 노릇을 하던 그녀는 쌀 문제로 아내와 말다툼을 하게 된다. 결국 사위 장씨가 그녀를 모시러 왔던 날, ‘나’는 그를 통해서 순이 삼촌이 환청증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4,5년 전 이웃집에서 메주콩을 잃은 일로 싸운 적이 있는데, 이웃이 경찰서로 가자고 말하자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앉아 범인으로 오해 받으면서 환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순이 삼촌의 파출소 기피증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음력 12월 18일 마을사람들은 국군에 의해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였다. 군인 가족, 경찰, 공무원, 대동청년회, 국민회 간부와 가족들이 차례로 분리되자, 마을에는 불이 질러지고, 마을사람 오륙백 명은 참살 당했다. 순이 삼촌 역시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옷을 벗기우기도 하고 도리깨로 매질을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순이 삼촌은 그후 경찰에 대한 심한 기피증이 있었고, 또한 ‘콩 사건’으로 결벽증까지 생기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환청 증세도 겹치게 된다. ‘나’는 양민을 폭도로 매도하는 고모부의 의견에 항의했다. 섬사람들이 30년이 지나고도 고발하지 못하는 것은 레드컴플렉스 탓이다. 순이 삼촌은 밭에서 뼈와 탄피를 보며 그날의 일을 환청으로 들었다. 그녀의 죽음은 한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30년 전의 죽음인 것이다.
- 저자
- 현기영(玄基榮, 1941~) 1941년 제주 출생. 오현고를 거쳐 서울사대 영어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유년기적 체험을 바탕으로 제주도 4·3 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1978), <도령마루의 까마귀>(1979), <해룡 이야기>(1979)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제주도 4·3 사건을 소재로 하여 역사의 왜곡된 구조, 정치권력과 이념에 희생된 제주 민중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고발정신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그의 문학은 이념 문제를 정치적 차원이 아니라 민중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고, 사실주의적 인식을 기반으로 현실을 철저히 해부하고 분석하여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설집으로는 <순이 삼촌>(1979), <변방에 우짖는 새>(1983), <아스팔트>(1986), <바람타는 섬>(1989), <젊은 대지를 위하여>(1989), <위기의 사내>(1991), <지상에 숟가락 하나>(1999) 등이 있다.
- 리뷰
- (……) 현기영의 문학활동은 유신시대의 한중간인 1975년부터 시작된다. 박정희의 장기집권욕으로 인해 온갖 권리와 자유가 차압되었던 시절, 현기영의 문학은 그러한 폭압적인 정치와 부자유한 사회상황에 대한 비판적 의식으로부터 시작한다. 당대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니라 4·3사태를 배경으로 한 데뷔작인 <아버지> 역시, 불안감을 느끼는 소년의 심리를 묘사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린 소년에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억압기제에 대한 분명한 비판의식을 담아 내고 있다. 그 억압기제는 그러나 분명하게 분석되지 못한다. 다만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서 고향이 앗아간 사태 ‘전반’이 의식될 뿐이다. (……) 이처럼 초기작들의 경우에는 제주도의 ‘지방성’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도시사회의 일반인이 겪음직한 일반적인 상황을 그려 나가는 데 주의가 기울여지고 있다. 그려지는 인물들이 개성적으로 살아나지 못하고 따라서 이들 작품이 그다지 독자들의 뇌리에 남지 않는 것은, 다름아니라 지나친 일반화 때문일 것이다. 현기영에게서, 현대 도시인의 좌절감을 일반화하는 모더니즘적 경향을 넘어서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제주도의 민중사와의 만남이며, 그것이 최초로 본격화한 작품이 바로 그의 실질적인 출세작에 해당하는 <순이삼촌>이다. 그것은 만남이 아니라 오히려 귀환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미 <아버지>에게서 현기영은 4·3을 은밀하게 드러낸바 있다.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앞서 암시했듯,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단지 일 개인의 심리에 상흔을 남긴 배경으로서만 의미를 지녔다. 아울러 조선 후기의 관에 의한 인민 수탈상을 고발한 <소드방놀이>도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제주도의 특수한 ‘지방성’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제주도로 하여금 조선 전체의 일반적인 상황을 대표시킨 데 불과했다. 반면 <순이삼촌>(및 그 연장선상에 있는 <도련마루의 까마귀>나 <해룡 이야기>)에 이르면 제주도의 역사는 드디어 제주도만의 역사로 그려진다. 그것은 이중의 의미에서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제주도가 한갓 배경이나 주인공의 출신지로서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주도에서만 일어났던 특수한 역사적 경험 자체가 형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다른 지역과는 무관한 제주도만의 일인 듯이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순이삼촌>이 앞선 작품들의 무매개적 일반화의 경향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전자의 측면에서다. 곧 작품 속의 사건을 구체적인 시공간적인 배경 속에 투사함으로써, 달리 말하면 역사화함으로써 현기영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에 바탕한 리얼리즘에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아울러 이로써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제주도 민중의 터무니없던 수난사가 우리의 의식 속에 부활할 수 있기도 했다. 한 3백 명 되는 좌익의 ‘무장폭도’를 사냥한다는 목적으로 5만여 명의 양민까지 학살한 그 엄청난 사건을 다시금 기나긴 은폐의 장막을 걷고서 폭로해 낸 그 점만으로서도 사실 이들 작품은 의미가 없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의 측면은 바로 전자의 긍정적 측면을 날카롭게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역사적 사태가 어떠한 궁극적 원인에 의해, 어떠한 사회관계로부터 발생했는지를 탐색하는 데로 맞추어지지 않고, 단지 쉬쉬하며 숨겨졌던 당시의 사태를 ‘고발’해 내는 데로 치중한다. ‘미친 역사’에 의해, 좌익 폭도와 토벌대 양자의 틈새에 끼여 영문도 모른 채 희생당한 ‘양민’들, 그 억울한 사연을 고발해 내는 것, 그 ‘사실 탐구’의 정신은 물론 현기영이 초기의 모더니즘적 색채를 불식하고 리얼리즘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디딤돌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고발정신’ 내에는 지나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복원하려는(사실상은 불가능한) 정신만이 아니라, 당시 역사에 대한 일정한 선이해가 개입되어 있다. 양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책임은 토벌대만이 아니라, 그 계기를 제공한 ‘폭도’에게도 돌려지고 있으며, 섬 사람과 육지 사람들 간의 지방적인 대립관계가 사태의 중요한 원인인 듯이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제주도라는 지방이 지니는 지방적 특수성은 감안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야말로 지방간의 대립관계로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배후에 또 다른 사회관계가 가로놓여 있는 것인지는 따져져야만 한다. 그 작업이 결여된 가운데 지역간 대립을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설정하는 것은 아직 지방사를 민족사 내지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뜻하게 된다. 결국 이 시기까지만 해도 현기영의 작품은, 당시 사태의 진정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진지한 탐색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단지 제주도에서만 일어났던 한 특수한 사태를 고발해 내는 데 치중함으로써 한층 높은 경지의 민족문학으로 구현되지는 못했다고 보아야 할 듯 싶다. (……) ‘고발과 화해정신을 넘어서서 역사적 현실의 형상화로’, 신승엽, <순이삼촌 외>, 동아출판사, 1995
- 작가의 말
- (……) 유신 권력의 핵이 암살당할 무렵에 그러한 필화를 입었던 나는 그 이듬해까지 포함해서 거의 일 년 반 동안 내내 울분과 절망 속에서 펜대를 꺾은 채 술로 허송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여인이 나타나서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나자빠져 있는 나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무섭게 야단치는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은 내가 작품 속에서 창조한 순이삼촌이었다. 그때 나는 가공의 인물인 그 불행한 여인이 나의 분신으로서 나의 내면에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내가 소설 쓰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변신의 매력이다. 소설가는 자기 자신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자기 자신 속에 가지려 하는 자이다. 소설가는 변신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작중인물들을 창조해낸다. 작중 인물은 작가의 분신이면서 동시에 별개의 존재이기도 하다. 아무튼, 자기 자신의 삶 외에도 다른 여러 사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소설가의 특권인데, 나 또한 그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 예컨대 나의 내부에 거주하는 캐릭터들 중에는 노예 신분에서 용약(勇躍)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프랑스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이재수라는 청년이 있는데, 그의 궐기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기분이 좋다. “소인이 비록 미천한 노예라 할지라도, ‘옳을 의(義)’자를 위해 죽지도 못합니까? 외적과 난신적자를 토멸하는 데 어찌 반상(班常)의 구별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나는 먼 과거 속의 인물들은 나름대로 만들어 봤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대 소비사회의 소비자로서의 인물은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소비사회의 한가운데 서서 자신의 환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인물로 변신해 보는 것이 내 꿈인데, 그게 나로서는 여간 어렵지 않다. 작가의 변신은 독자의 변신 욕구에 부응한 것이다. 독자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작중인물과 동일시함으로써 변신을 꾀한다. 그리고 독자가 작중인물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사회적 책임은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독자의 천박한 취향에 영합한 베스트셀러 통속문학이,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순수문학의 이름으로 행세하는 세상이다. 통속문학이 비판되지 않으면, 사회의 가치 체계는 전도되게 마련이다. 한국인들은 똑 같은 책을 보고, 똑 같은 화면을 보고, 똑 같은 사고를 한다고 말해도 그리 과언은 아닐 것이다. 베스트셀러들은 대개 상투적인 이야기에 가짜 해결, 혹은 너무도 손쉬운 해결, 상처에 마약 바르기 식의 해결이기 쉽다. 회의하고 질문하는 문학, 요컨대 사고하는 문학이 너무도 드물다. 지금의 소비사회는 인간을 끝없는 소비 욕망의 포로로 만들어 놓고, 늘 새로운 감각, 새로운 쾌락을 좇아 다니게 한다. 상품에 저항하여 인간에게 소비 대신 사고를 되돌려 주는 문학,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본래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그러한 문학을 나는 꿈꾼다. ‘변신의 즐거움’, 현기영,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열화당, 2004
- 관련도서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장석주, 시공사, 2000 <순이삼촌 외>, 현기영, 동아출판사, 1995
- 관련멀티미디어(전체2건)
-
이미지 2건
해당 이미지는 예술지식백과 저작권 문제로 인해 이미지 확대보기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