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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작품명
떠나가는 배
저자
박용철(朴龍喆)
구분
1930년대
저자
박용철(朴龍喆)
생애(1904~1938)
호는 용아(龍兒). 1904년 6월 전남 광산에서 출생했다. 1916년 광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에 입학했다가 바로 배재학당으로 전학했다. 그러나 졸업을 몇 달 앞둔 1920년 자퇴해 귀향했다. 그뒤 일본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에 입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귀국했다.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몇 달 뒤 자퇴했다. 1930년 김영랑과 함께 <시문학>을 창간하여 시 <떠나가는 배>, <싸늘한 이마>, <비 내리는 밤>, <밤 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시문학>에 이어 <문예월간>을, 1934년 <문학>을 발간하였으며, <문예월간> 창간을 계기로 비평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창작보다 번역에 주력했으며, 평론가로 활약하다가 1938년 후두결핵으로 사망했다.
주요작품 및 작품세계
<시문학>을 창간하며, 당시 계급문학 이데올로기와 모더니즘의 경박한 기교에 반발, 문학의 순수성 추구를 표방했다. 창작시뿐 아니라 실러, 하이네 등의 시를 번역, <시문학>에 게재했으며, 해외문학파와 극예술연구회 회원으로 <인형의 집>, <베니스의 상인> 등의 희곡도 번역한 바 있다. 평론으로는 임화·김기림과 세칭 기교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올해시단총평>(1935), <기교주의설의 허망>(1936) 등이 있고 그의 시론의 근원을 보여주는 <시적 변용으로>(1938) 등의 평문이 있다. 특히 <시적 변용으로>에서는 시가 단순한 목적이나 기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인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온갖 체험들을 시인이 자신의 피 속에 용해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시인은 정치, 현실에 직접 반응하지 않고 그것을 수용, 변용하여 가공적 상상세계를 이루어낸다. 이로써, 시문학파를 당대의 다른 유파와 구별짓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으며, 시 창작과정에 대한 정치한 이론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후인 1939년 시문학사에서 2권의 전집을 발행하였다. 전집 전체 분량 1,450여 쪽 중 번역의 분량이 860쪽에 달하는 등 그의 문학활동은 시인으로서보다는 잡지 편집자와 비평가로서의 활약, 번역 작업에 치중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930년 3월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박용철의 시. 이 시는 젊은 화자의 떠나가는 사연을 통해 서러운 마음을 극복하려는 몸짓을 담고 있다. 그 떠남은 밝은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와 같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 시에는 어두운 시대를 감지한 자취가 남아 있다. 시대적인 고민을 시에 수용하고 있다는 측면은 박용철의 시를 김영랑 등 다른 시문학파 시인들과 구별짓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시는 그 떠남의 의미가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부각되지 않고,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이 시의 센티멘탈리즘적 요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감정의 절제를 통한 시적 응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감상적인 어사를 반복하고 있는 데서 그러한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시문학> 창간호에서 “한 민족의 언어가 발달의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국어로서의 존재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문학의 형태를 요구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주장한 ‘문학의 형태’는 박용철 자신의 시보다 정지용과 김영랑의 시에서 보다 선명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그의 다양한 문단 활동과 번역, 평론 작업에 비길 때, 그의 창작은 그가 말한 바 ‘시적변용’에는 이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박용철이 <시문학>에 끼친 영향은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나아가서 시문학파와 박용철의 시사적 위치는 관심의 다양화와 심화라는 1930년대의 문학적 상황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1920년대의 우리 문학이 시대의 현실이 요구하는 정론성(正論性)에만 부응하려는 모습을 보여, 문학의 자율성을 스스로 축소시키고 있었다 할 때, <시문학>의 등장은 문학에서의 편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반성케 한 구심점이 될 수 있었다. 특별히 순수시론의 논리적 근거를 탐색한 박용철의 시론은 시문학파의 문학적 특성을 대변할 만한 이론이었다. 그는 편내용주의 시들이 내세웠던 시대의식이나 사회의식을 배제, 시에서의 심미적 가치를 강조함으로써 예술로서의 시의 장르 확립과 순수시 이론의 정립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흔히 ‘존재의 시론’으로 요약되는 그의 문학관은 순수시가 지향하는 경험의 심미적 앙양을 강조함으로써, 소박한 낭만주의자의 면모에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적 변용을 두고서, 선시적 과정으로서의 시정신과 기교의 문제를 함께 천착, 창작의 과정을 원론적인 입장에서 해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론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가치를 지닌다. (······) 박용철의 문학은 김영랑의 영향권 속에서 형성되어간 것으로 믿어진다. (······) 박용철은 김영랑의 권유로 문학의 길에 들어섰으며, 뒤에 평론을 통해서 한결같이 김영랑의 시를 고평(高評)하였다. 심지어는 자작시의 대부분을 김영랑과 상의하려고 애썼다. 김영랑에 의해 “우리 서정시를 말할 때 반드시 논의되고 최고의 찬사를 바쳐야 될 걸작”이라고 상찬된 두 편의 초기시 <떠나가는 배>와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도 발표하기 전에 김영랑과 상의하였던 작품들이다. (······) 이 작품(<떠나가는 배>)을 두고서 박용철이 스스로의 문학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은 김영랑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925년 9월 5일자로 기명된 편지에는 이 작품의 시작과정을 통해서 시가 짓는 기교보다 속의 덩어리에서 나온다는 것, 분석을 초월한 시간적 연장(延長)을 떠난 한낱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느낌은 추상적 형용사로써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등을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절망과 허무의식을 표상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면에서는 1920년대 초 우리의 상징시의 문맥에 닿아 있는 작품으로 읽혀진다. 1920년대 초 우리의 감상적 상징시들은 전반적으로 좌절과 허무를 노래하였고, 현실을 벗어나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 한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패배와 절망이라는 참담한 주제를 변주하였다. 이 시 또한 문면으로는 정든 항구의 사랑하던 사람들을 두고 떠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쫓겨가는 마음”과 다를 바 없는 지향이며, “앞 대일 언덕”조차 마련 없는 출발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비애의 정서가 시대의 현실이나 삶의 표랑의식(漂浪意識)과 무관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박용철의 시가 자아의 무력화와 좌절을 선험적 조건으로 하여 출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박용철은 처음부터 자아와 외계 사이에 장애를 설정하고, 그 두 세계의 정태적 대립을 자기침식의 슬픔으로 수용하였던 것이다. (······) - ‘밀실과 절망의 순수의식’, 김명인, <떠나가는 배>, 미래사, 1991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쉬임없이 궂은비는 나려오고 지나간 날 괴로움의 쓰린 기억 내게 어둔 구름 되어 덮이는데. 바라지 않으리라던 새론 희망 생각지 않으리라던 그대 생각 번개같이 어둠을 깨친다마는 그대는 닿을 길 없이 높은 데 계시오니 아-내 마음은 어디로 가야 옳으리까. - ‘어디로’, 박용철, <떠나가는 배>, 미래사, 1991
관련도서
<박용철 전집>, 박용철, 미래사, 1991 <용아 박용철의 예술과 삶>, 광산문화원 편, 광산문화원, 2002 <우리문학100년>, 김윤식 외, 현암사, 2001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편, 서울대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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