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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단체명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구분
국공립단체
개요
천안은 예부터 많은 유랑집단이 거쳤던 곳으로 한창 때는 3~4개의 집단이 이곳 저곳에서 연희하던 고장이다.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은 남사당패에 가담했던 쌍용동의 토착민 중요무형문화재 11-나호 기능보유자 이돌천 옹에 의해 1987년 창단되었다. 40여 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81년 KBS사장기 농악경연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천안의 흥타령축제, 천안예술제, 전국국민생활체육대회 등 다양한 공공 행사에 참여하여 천안의 농악을 알리고 있다. 소재지 : 천안시 백석동 251-1
주요활동내용
풍물단의 주 공연인 판굿은 길놀이 – 인사굿 – 돌림벅구1 – 당산벌림1 – 오방진 – 당산벌림2 – 사통백이 – 횡대옆치기 – 종대옆치기 – 쩍쩍이춤 – 돌림벅구2 – 개인놀이(벅구, 버나, 살판) – 무동놀이 – 열두발상모 – 인사굿 진풀이로 진행된다. 가락이 빠르고 힘이 있어 경쾌하며 맺고 끊음이 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천안민속의 유래
현 천안흥타령풍물단 고문 인태경(82세) 씨에 의하면 대대로 이어져온 풍습으로 천안시 쌍용동 방축골 새말 안동네 마을 입구의 샘과 느티나무에서 매년 첫 용날(初辰日)에 용왕제와 목신제를 드렸다 한다. 마을에서는 용왕제라 하나 산신제, 거리제, 정제가 복합되어 나타나는 형태다. 마을 주민 중 생기복덕을 가려서 제관 4명을 선정하고(제주 1인, 축관 1인, 유사 2인) 마을 입구와 제장의 주위에 금줄을 늘여서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제한시킨다. 제관들은 술·담배를 금하고 냉수에 목욕하며 바깥 출입을 금하고 근신하며 있다가 제에 임한다. 제일이 되면 먼저 농악대를 앞세워 아랫샘, 윗샘을 깨끗이 청소한 후 가급적 마을 밖으로의 출타를 금했다. 젯상은 산신제를 올리는 산상의 느티나무와 마을 가운데 샘에 진설하며 먼저 풍물을 두드려 부정을 쫓고 산에 가서 산신제를 올린 다음 마을의 느티나무에서 거리제를 지내고 논 가운데 샘에 가서 용왕제를 올린다. 아직까지도 제관이 이동할 때에는 농악이 앞서서 인도하며 제수 비용을 마련할 때에도 농악이 집집마다 다니며 축원을 해주고 걸립을 한다. 용왕제는 저녁 6시쯤에 시작하면 11시쯤에 끝난다고 한다. 그리고 매 3년마다 윤달이 끼는 해에 동리 주민들이 모여서 집집마다 다니며 짚을 거두어서 줄을 꼬아 줄다리기를 했는데, 천안시 쌍용동 방축골에서는 15~20년 전만해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주위의 미라골, 사당골 등에서 주민들이 농악을 앞세우고 모여들어 줄을 당겼다. 암줄, 숫줄로 나뉘어진 줄은 한편의 길이가 30m, 용목의 지름이 1m 정도가 되는 큰 줄이었다. 숫줄은 남자가 암줄은 여자들이 당기는데, 마을의 양편에서 풍물을 치며 서로가 힘써 줄을 당겼다. 여자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 하여 일부러 져주었다고 하기도 하고 서로 힘을 합하여 줄을 당김으로써 1년 동안 풍농을 기원하고 마을 주민 전체가 단결을 꾀하는 대동의 잔치놀이였다. 줄다리기를 마친 줄은, 암줄은 밑에, 숫줄은 위에 둘둘 말아서 마을 입구에 쌓아두었다 한다. 그 외 논매기 때면 두레 농악을 하였으며 음력 칠월 칠석날이면 농악대가 다니며 걸립하고 원하는 곳에서는 덕담풀이와 지신밟기를 하였다. 이렇게 오랜 전통을 이어가며 풍물놀이를 이어온 주역은 쌍용동 방축골 농악대였다. 1940년경부터 음력 8월의 5일간 전국씨름대회와 농악경연대회가 열리는 큰 난장이 있었는데, 농악대회에서는 쌍용동 방축골 농악대인 고 이돌천, 인태경 변상남, 김종한, 조병국, 오우섭, 김윤환 등이 주를 이루어 1등을 도맡아 하였다. 주로 신방동 농악대, 오룡동 농악대 등이 참가하였으나 다른 농악대와는 겨룰 수 없을 정도로 잘했다 한다.
예술가
이돌천(1919~1994) -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11-나호 경기평택농악 기능보유자 지정 - 1987년 천안흥타령풍물단 창단 방축골 농악대를 이끌어온 고 이돌천 선생은 천안의 토착민으로 12세 때부터 농악을 시작 하였다. 이 옹은 고향 천안에 농악대를 구성하는 것이 늘 소원이어서 1980년 초부터 애를 쓰다가 1987년에 천안시립흥타령 농악대를 구성하였다. 이 옹은 예산 실내원에 거주하던 나비상의 일인자 박지삼과 김종필에게서 쇠와 벅구를 배웠으며 그들과 함께 벅구잽이로 유랑하다가 18세부터는 걸립패인 박운선 행중에서 남운용 등과 함께 다녔고, 남사당의 상쇠인 이원보 패에도 가담했었다. 어려서부터 유달리 흥이 많았던 이 옹은 모를 심다가도 농악소리가 들리면 다 팽개치고 좇아가서 함께 끼어들기가 일수였다고 한다. 최은창 옹은 이돌천 옹보다 10여 년 후에 행중에 들었으며 서울 남사당의 김재원 옹도 7, 8년 늦게 행중에 들었다고 한다. 고 이돌천 선생의 집에 남운용, 이원보, 김기복, 김재원, 최성구, 방영태 등이 몇 개월씩 묵으며 농악을 쳤던 것이 오늘의 천안흥타령 농악을 성장시킨 배경으로 일컬어진다. 조한숙 (1960~ ) - 천안 태생 - 1984년 천안조한숙무용학원장 - 1996년 한국국악협회 천안시 지부장 - 1998년 중요무형문화재 11-나호 평택농악 이수자 - 현 흥타령풍물단 단무장 초대 단장인 고 이돌천의 계보를 이어온 조한숙(46세)은 고전무용을 배우던 16세 때 이 옹을 만나 농악을 배우게 되었다. 조한숙은 고 이돌천 옹과 함께 백제문화제 등 수많은 농악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고 이돌천 선생의 뜻을 받들어 없어져가는 가락을 천안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이돌천 옹의 생전, 농악의 모든 것을 채록하고 녹음하면서 천안 웃다리농악 도보를(1991)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현재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1999년에는 전주대사습놀이 농악경연대회에 장원을 수상하고, 2000년 충청남도 대표로 선발되어 천안광풍중학교 풍물단 연출·지도를 맡아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 개최된 제7회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 밖에 천안흥타령풍물단을 이끌고 3·1절, 8·15광복절 행사, 불교행사, 백제문화제, 전국국민생활체육대회, 천안예술단의 반딧불가족음악회, 풍물단 정기공연 등 각종 정기적인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연계정보
-천안시립합창단
-천안시민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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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립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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