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예술지식백과

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시나위

작품/자료명
시나위
지정여부
고 지영희(池瑛熙)
구분
민속악
개요
어원에 관한 설로는 신라의 사뇌(詞腦)에서 유래하며 ‘동방고유의 노래’ 또는 ‘신라의 노래’를 뜻한다고도 하고, 메나리가 구가곡(舊歌曲)인데 대하여 신가곡(新歌曲)으로 일정한 가곡을 이름하는 고유명사화된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외래음악인 정악과 당악에 대한 토속음악, 또는 향악으로 해석하여 정악과 당악보다 천시받은 음악으로 이 두 가지보다 격이 떨어지는 음악의 일반명칭이라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세가지 설은 모두 그 근거를 신라의 ‘사뇌’와 ‘사내(思內)’에 두고 있다. 시나위에 대한 근거를 신라의 사뇌나 사내에 둔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시나위음악이 신라의 <사뇌가>에 비교될 수는 없고 더구나 신라의 사뇌가 육자배기로 된 허튼가락을 뜻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며, 당시의 사뇌는 향가 또는 무가였을 것이다. 시나위의 딴 이름인 심방곡은 무당의 음악이라는 뜻인데, 옛 문헌에는 ‘신방곡’으로도 나온다. 그러나 옛 문헌에 나오는 심방곡은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의 기악곡이라는 뜻이 아니고, 무가 또는 무가의 뜻을 담은 노랫말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오늘날의 시나위는 시나위 무악권, 즉 경기도 남부·충청도 서부·전라도·경상도 서남부지방의 무가반주음악에서 나온 것이다.
내용
시나위 무악권의 무의식에서는 무당이 남도음악 특유의 음구성과 선율진행을 보여주는 육자배기토리로 된 무가를 부르면, 피리·젓대·해금잡이는 저마다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을 무가의 대선율(對旋律)로 연주한다. 이때, 무가의 선율과 일치되지 않는 다른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다성적 효과를 나타낸다. 그런데 엄격한 이론적 체계에 의한 모방적 선율진행인 서양의 다성음악과는 달리 시나위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즉흥성에 의한 우연적인 다성진행인 것이다. 장구잡이는 무당의 무가에 바라지를 하는데, 이것도 무가와 대선율이 되는 입타령으로 되어 있다. 감상용 시나위는 미리 약속된 틀 안에서 연주하므로 완전한 즉흥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 시나위는 다성적 성격과 즉흥적인 허튼가락을 지닌 점, 그리고 유동음을 많이 사용하는 점에서 우리 음악에서 특이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심한 요성과 퇴성을 사용하므로 슬픈 느낌을 자아낸다. 시나위는 무가의 반주나 무당의 춤 반주에도 쓰이며 무의식이 아닌 민속악에도 쓰인다. 시나위권의 농악에서 태평소는 육자배기토리로 된 허튼가락을 부는데, 이때도 시나위를 분다고 한다. 또, 풀피리·퉁소·단소·젓대와 같은 민속악기도 이와 같이 연주하는데, 이때도 시나위를 분다고 한다. 예전에 시나위를 연주하던 악기로는 젓대·피리·해금·태평소·풀피리·퉁소·단소·가야금 등이 있었다. 시나위권에서는 젓대·피리·해금·가야금 등의 악기로 시나위를 순음악으로 합주하기도 하고 독주하기도 하였는데, 시나위는 조선 말기에 산조와 판소리 및 잡가 등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판소리에는 시나위의 더늠이 간혹 보이고 있다. 오늘날 시나위는 살풀이 춤의 반주로나 순음악의 합주로 주로 연주되고 있다. 무의식에 쓰이는 시나위장단에는 살풀이·도살풀이·불림·진양·안진반·덩덕궁이·신임장단(대탁놀이) 등이 쓰이고, 춤반주에는 살풀이·덩덕궁이가 주로 쓰인다.
전승자 정보
시나위는 호남을 중심으로 한 경기이남 지역의 무의식에 사용된 음악이므로 이 지역의 무속 음악인들이 주로 연주하였다. 또 풍각쟁이들도 퉁소·해금·젓대 등으로 이를 연주하였고, 일반인들도 풀피리·퉁소·태평소 등으로 연주하였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에 의한 시나위연주는 거의 없고, 풍각쟁이들도 없어졌으며,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도 독주로 산조를 연주할 뿐 시나위는 자주 연주하지 않는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영희(池瑛熙)가 기능보유자였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현재는 기능보유자가 없는 상태이다.지영희(池瑛熙 1909∼1979)는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다.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경기도 평택출신으로 국내 최초로 가야금산조부문에서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은 성금연(成錦鳶)과 부부이다. 1918년에 이석은(李錫隱)에게 승무·검무 등 여러 춤을 배웠고, 1928년에 조학윤에게서 호적(胡笛)을 배웠다. 1930년에는 정태신(鄭泰信)에게 양금·단소·퉁소를 배웠고, 1931년에 지용구(池龍九)에게서 해금·풍류 시나위를 배웠으며, 양경원(梁慶元)에게 피리 삼현육각(三絃六角)과 시나위를 배웠다. 1932년에는 김계선(金桂善)에게 대금 시나위를 배웠고, 1935년에는 지용주(池龍珠)에게 무악장단을 배웠으며, 다음해에는 박춘재(朴春載)에게 경기소리·서도소리를 배웠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가, 1975년 해외이민으로 지정이 해제되었다.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를 통한 피리산조의 길을 열게 한 뛰어난 민속음악인 중의 하나이다.
연계정보
재구성참고자료국악대사전,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84.전통음악개론, 김해숙·백대웅·최태현 공저, 도서출판 어울림, 1997.최신국악총론,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95.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91.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일조각, 1984.한민족음악론, 권오성, 학문사, 1999.www.kmusic.org 풍류마을www.ncktpa.go.kr 국립국악원www.koreandb.net 디지털한국학www.ocp.go.kr 문화재청
관련도서
개정판 국악통론, 서한범, 태림출판사, 1995. 국악개론, 장사훈·한만영 공저, 사단법인 한국국악학회, 1975. 국악대사전,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84. 전통음악개론, 김해숙·백대웅·최태현 공저, 도서출판 어울림, 1997. 최신국악총론, 장사훈, 세광음악출판사, 199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1991. 한국음악통사, 송방송, 일조각, 1984. 한민족음악론, 권오성, 학문사, 1999.
용어해설
* 메나리경상·전라·충청도에 전해 오는 민요의 한 가지. 뫼노리·미나리·산유해라고 하며, 한자로는 산유화가(山有花歌)·산유가(山遊歌)라 쓰기도 한다. 원래의 산유화가는 백제의 유가(遺歌)로서 남녀의 사랑을 읊고, 음조는 처창한 것으로 조선 초기까지 전하였다고 한다. 백제가 망함을 백성들이 슬퍼하여 산유화가 생겼다고 하는데, 현재의 가사는 뒷사람들이 지은 것으로 숙종 때 많이 유행되었다고 한다. 부여(夫餘)지방의 노래는 증보문헌비고의 내용과 같지는 않은 것 같고, 오히려 농부가에 가깝다. 경상남북도 일대에 현재까지도 산촌에서 불리고 있는 산유해의 사설 음조는 고박하고 초동목부의 티없는 소리로서 깊은 산골짜기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심방곡중대엽의 속칭이며 신방곡으로도 쓴다. <금합자보> 만대엽에 가사가 전하는데, 임진왜란 때 일본에 붙잡혀 간 도공들의 후예들이 일본 녹아도현 묘대천에 세운 옥산신사에서 연출되던 학구무가와 같은 점이 주목된다.
관련사이트
풍류마을
관련사이트
국립국악원
관련사이트
디지털한국학
관련사이트
문화재청
관련멀티미디어(전체0건)
이미지 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