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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식 예술지식백과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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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해설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발생한 문학의 한 형식으로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이다. ‘가사(歌詞)’라고도 표기했으나 지금은 ‘가사(歌辭)’로 표기한다. 가사는 작자에 따라 사대부가사·규방가사·평민가사 등으로 나뉘며, 내용에 따라 기행가사·유배가사·은일가사·도교가사·불교가사·동학가사·천주가사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한 음보는 대개 3·4음절이며, 행수는 제한이 없다. 사대부가사와 같은 정통가사는 마지막 행이 시조의 종장처럼 3·5·4·3으로 되어 있다. 가사는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라는 형태적 요건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제약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과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가사의 장르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가사의 발생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말 발생설과 조선초 발생설이 있다. 고려말 발생설의 근거는 고려말 나옹화상(懶翁和尙: 1320~76)이 지었다는 <서왕가(西往歌)>인데, 국문이 없을 때 창작되어 후대의 문헌에 실린 것이므로 나옹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조선초 발생설의 근거는 정극인(鄭克仁: 1401~81)의 만년작인 <상춘곡(賞春曲)>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후대의 문헌에 정착되었으므로 정극인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두 설이 모두 의심스럽기는 하나, 많은 가사작품이 승려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불경의 부록으로 나와 전파되었으며, <상춘곡>보다 앞선 가사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 등에서 고려말 발생설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가사의 역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임진·병자 양난을 거친 17세기 중기를 전후로 하여, 조선 전기와 후기 그리고 일제시대의 가사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선 전기 가사의 주 담당층은 송순·정철·박인로 등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다. 그들은 생활의 체험과 흥취 및 신념을 노래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강호(江湖)가사이다. 이 작품들에는 혼탁한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은 자연(우주적 질서)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높은 정조를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서정적 정조는 이 시기 가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 후기 가사는 담당층이 다양해지면서 작품의 경향도 다양해졌다.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 등 여러 방면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 및 평민 작자층의 성장에 힘입은 문제의식의 확대와 심화로 인해 그 주제를 구현하거나 표출하는 방식의 다변화가 이루어졌다. 사대부의 가사는 서정적인 기풍이 퇴조했으며, 기행가사·유배가사류 등에서 생기있게 나타나고 있듯이 구체적인 현실을 담아내려는 경향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사회적 격변기의 요구로 인해 다양함이 후퇴하고, 형태의 변화와 함께 교술적인 면이 강화되었다. 흔히 개화가사라고 하는 이들 가사는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길이가 매우 짧아졌으며, 분련형식으로 인한 후렴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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