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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現代詩) 약사(略史)

이 땅에 자유시라는 형식을 처음 선보인 것은 최남선이고, 이 자유시라는 형식을 가지고 시다운 시를 쓴 것이 김억과 주요한이다. 김억은 <학지광>과 <태서문예신보>를 통하여, 주요한은 <학우>, <창조>를 통하여 한국 근대시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지만, 김억은 곧 자유시를 버리고 민요조의 정형시나 한시 번역에 몰두하였고, 주요한은 해방 이후에 시인으로서보다는 정치가로 주로 활약하게 된다. 이 뒤를 이어 등장한 것이 <백조>, <폐허> 같은 문학 동인지와 함께 얼굴을 내민 시인들이다. 이중 특히 이상화는 시대를 초월하여 읽힐 몇몇 걸작을 남기게 된다. 최남선에서 이상화에 이르는 10년 남짓한 기간이 자유시라는 형식의 모색기나 실험기라고 한다면 이 땅에 자유시라는 형식을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한 시인은 김소월과 한용운이다. 1920년대 중반에 선보인 <님의 침묵>과 <진달래꽃>이라는 두 권의 시집은 자유시가 마침내 한시(漢詩)를 대신하여 이 땅의 주체적 문학양식이 될 것임을 천명하는 선언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월과 만해의 뒤를 이어 두 갈래의 중요한 흐름이 형성된다. 하나는 김기진에 의해 주창되어 임화, 이용악으로 이어지는 경향시, 프로시라고 불리우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정지용에 의해 선도되어 김기림, 김광균, 이상 등으로 이어지는 모더니즘 계열의 문학운동이다. 이 두 경향은 한국의 근대시를 서정성이라는 단색적인 흐름에서 현대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다채색의 흐름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그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해방과 6·25를 겪으며 1950년대 전반을 압도하는 시는 전쟁현장의 시였다.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구상 등은 직접 종군하였고, 이광수, 김동환 등은 납북되었고, 좌익계 시인들은 월북하는 등 문단은 재편성되었으며, 이후 분단시대의 문학이란 비극적 상황이 초래되었다. 전쟁현장을 직접 노래한 시집으로는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1951), 조지훈의 <역사 앞에서>(1959) 등이 있다. 시의 본령이 순수서정이라는 점에서 볼 때, 1950년대 시의 주류는 이동주, 박재삼, 이형기, 한성기, 박성룡, 박용래 등의 전통적 서정시와 전봉건, 김종삼 등의 풍자적이며 주지적인 서정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 김종삼과 김광림, 문덕수, 전봉건, 김종길 등을 필두로,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달리 존재에 대한 탐구와 실험적 이미지와 언어를 시도하는 새로운 시들이 쓰여지기 시작한다. 1960년대 시에서는 4·19 혁명이 중요하게 논의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그 혁명적 열정이 가장 민감하게 시적형태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4·19 혁명으로 촉발된 1960년대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 현실상황에 대한 응전의 시, 인간의 내면의식을 탐구한 실험적인 시 등의 갈래로 파악될 수 있다. 현실인식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전통적인 서정시가 차지하던 광범위한 영역이 축소되는 동시에 참여시, 실험시의 영역이 넓어지게 된 것이다. - 참고: ‘해제: 한국시사 개요’, 주승택, <한국예술총집문학편1>, 대한민국예술원, 1991 ‘해제: 한국의 현대시’, 최동호, <한국예술총집문학편2>, 대한민국예술원, 1992 본 사이트의 문학분야 예술가 정보는 대한민국예술원 문학분과 회원을 대상으로 구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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