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관련 예술지식백과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의 극단활동과 극작가/무대미술가/연출가/배우, 연극/번역극/마당극/인형극/마임, 전통연희/중요무형문화재 정보
국악가/성악가/작곡가/지휘자/중요무형문화재와 연주단체/전통음악단체, 창작양악/오페라/동요/전통음악/창작국악 정보
1925년 이전부터 1981년 이후까지 시대별 근현대 무용의 양식사 개념과 전통무용, 무용가 및 무용계 중요무형문화재 정보
한국화/공예/회화/드로잉·판화/조각/사진/서예, 디자인/뉴미디어, 건축과 분야별 작가정보
1919년 부터 1990년대 까지의 극영화 독립영화와 실험단편독립영화/다큐멘터리/애니메이션 정보
시대별 국문학문헌/소설/시 정보와 고전시가, 고전산문의 주요개념 및 시인/평론가/아동문학가/수필가/소설가 등 문학인물 정보
우리나라의 누정/주거/유고/관영/불교 등의 전통건축과 1930년 이전부터 1989년 이후까지의 현대건축 정보
대학로/인사동의 문화지구와 우리나라의 각종 소공연장, 민간공연장, 국공립공연장 정보
개요
자세히보기개요
우리 나라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1956년 치약 광고를 제작해 극장에서 상영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순수 애니메이션으로는 1961년 4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제작한 <개미와 베짱이>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솝우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으로는 1967년 개봉된 <홍길동>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신동헌 화백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용유수 감독이 속편격인 <홍길동 장군>을 내놓는다. 초창기 애니메이션은 보통 영화 제작비의 열 배에 가까운 제작비가 소요되는 부담이 있었다. 그래서 주로 방학이나 명절에 어린이 대상으로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호피와 차돌바위>(1967년), <황금철인>(1968년), <보물섬>(1969년), <왕자호동과 낙랑공주>(1971년) 등이 제작, 상영되었다. 1970년대 TV 방송이 본격화되자 방송국에 의한 해외 애니메이션의 수입이 이루어지고 우리나라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 가운데 1976년에는 최근에 DVD로 복원되기도 한 <로보트 태권 V 우주작전>, <철인 007> 등이 제작되어 활기를 띠었다. 이어 1978년에는 <무적의 용사 황금날개 1.2.3>과 <77단의 비밀>이, 1979년에는 SF 애니메이션인 <우주소년 캐시>, <은하함대 지구호>, <별나라 삼총사>, 일간 스포츠 연재 만화인 고우영의 <삼국지>가 김청기 감독에 의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상영되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초창기 애니메이션에서는 박영일, 한성학, 용유수, 김청기, 신동헌ㆍ신동우 화백 형제들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81년에는 신정 프로그램으로 <엄마찾아 삼만리>, 1983년에는 <공상과학물 은하전설 테라>와 <황금연필과 외계소년>이 제작되었다. 1990년에는 롯데월드에서 자사의 마스코트 로티를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로티의 모험>을 내놓기도 했다. 1994년에는 첫 성인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오중일 감독의 <블루 시걸>이 전국 50개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1996년에는 40억이 투자된 이현세의 만화 <아마겟돈>이 나왔으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 해 7월에는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얼음별 대모험>이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 1997년부터는 월트 디즈니 작품을 비롯한 해외 유명 애니메이션이 많이 수입되어 상영되었다. 같은 시기 국내 극장 애니메이션은 부진했으나 TV 애니메이션은 여러 편 제작되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국산 캐릭터 개발도 시도되었으며, 1995년 케이블 TV 개국과 함께 애니메이션 전문채널이 선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