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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양화가

한국의 서양화가 조선시대 후기에 중국을 통해 서양화법이 어느 정도 수용되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반면 한국인이 처음으로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그리기 시작한 역사는 고희동으로부터 비롯된다. 한성법어학교에서 불어를 익히다 불어교사인 레미옹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 서양미술에 눈을 뜬 그는 을사조약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전통미술을 수학하다가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1915년 졸업한다. 그러나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은 얼마 안가 전통회화로 변신하였다. 서양화가로서 작품생산이나 예술세계를 구축하기보다는 미술의 보급과 지위향상, 화단운동에 힘썼던 이다. 그의 뒤를 이어 김관호가 1916년 동경미술학교 수석졸업 및 일본의 문전이란 전시에서 특선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역시 이내 붓을 놓았다. 그러나 그가 그린 <자화상>과 <해질녘>이란 작품은 여전히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수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서양화가는 나혜석이다. 사실 그림보다도 문학적 소양과 자질, 이혼사건 그리고 비참한 최후 등으로 더욱 잘 알려진 작가다. 1921년에는 서울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기도 했고 나름대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구미여행까지 다녀왔지만 1935년을 기점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 유학을 간 이는 이종우다. 일본을 통하지 않고 서구미술을 직접 수학했다는 점,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을 본격적으로 이해한 작가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29세로 요절한 김종태는 독학으로 서양화와 동양화기법을 접목한 그림으로 의미를 지닌다. <노란 저고리>는 그 대표작이다. 비로소 ‘조선적인’ 그림에의 요구와 모색이 있었던 것이다. 대담한 생략과 거친 필치, 과감한 색상 등으로 대상의 내면을 표출하고자 한 구본웅의 그림은 한국표현주의의 창시자로 논의되는 형편이다. 1930년대 가장 뛰어난 서양화가는 단연 이인성이다. 일제시대 ‘선전’이란 제도를 통해 가장 성공한 작가, 새로운 유화기법과 향토색 짙은 정경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형성한 천재적인 작가였다. 같은 천재작가로 그 명성이 신화화 된 작가가 바로 이중섭이다. 1956년 40세란 젊은 나이로 비참하게 죽은 그는 1950년대 전반기가 활동의 전부였다. 그 시간동안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흰소>, <가족> 등이 그것이다. 다분히 비극적인 개인사를 기반으로 타고난 솜씨와 재능, 감각적이며 장식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했던 진정한 화가였다. 식민지와 해방의 혼란, 전쟁의 비극이란 가장 공포스럽고 어렵고 궁핍한 시대를 살면서 그 모든 아픔과 비애를 그림으로 껴안고 죽어간 작가가 이중섭이다. 그 연장선상에 박수근이 있다. 유화물감을 자신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소화한 그의 기법은 가장 한국적인 분위기로 완성되었다.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소외받는 이들, 근대화의 가장 빈한한 구석을 보듬듯이 그린 그의 그림은 그래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광주화단의 거목이자 한국적인 인상파기법을 통해 구상화를 선보인 오지호는 투철한 조형의식과 예술론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의 자연조건에 맞는 조형을 추구하고자 했는데 그것이 바로 인상주의기법이며 순수한 색채와 빛의 예술, 민족미술이었다. 오지호가 인상주의를 기법으로 한 구상회화를 통해 민족미술을 구현하고자 했다면 김환기는 문인화적인 서양화, 혹은 추상화로 그려진 문인화를 추구한 작가다. 일본에서 유영국과 함께 최초로 추상화를 수학하고 돌아온 그는 무엇보다도 인생과 멋과 예술을 아는 전형적인 모더니스트로 기억된다. 청색조와 항아리, 새와 구름, 매화 등의 소재를 단순화시켜 그린 초기작에서부터 말년에 미국에서 이룬 선염의 추상화는 동일하게 한국적인 분위기와 멋, 극진한 문기가 흐르는 그런 세계의 동경이었다. 한국의 전통회화와 미의식, 사상과 정서를 서양화를 통해 구현하려는 의욕을 적극 개진한 존재가 바로 그였다. 유영국은 일관되게 자연을 소재로 해서 이를 단순화시킨 반구상화 양식과 순수한 색채의 조화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산수화의 전통과 자연, 특히 산에 대한 한국인의 기호와 신앙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손응성과 도상봉은 이른바 아카데미즘기법의 사실주의를 추구한 구상화가들이다. 손응성은 석류나 고서, 비원 등을 극세하게 그렸으며 도상봉은 백자와 꽃, 과일 등을 온화하고 건삽한 필치로 그려냈다. 이들의 화풍은 국전을 통해 오랫동안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 1960년대를 거쳐 한국의 서양화단은 급격히 서구, 특히 미국중심의 추상미술로 기운다. 이른바 앵포르멜미술, 추상표현주의 등이 전후 한국화단의 대세가 되었다. 박서보, 김창열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들이었다. 옵아트, 팝아트, 개념주의미술, 해프닝, 키네틱 아트 등 당시 서구에서 일어난 온갖 전위적인 미술운동은 곧바로 수용되고 유행되었다. 물론 그 실질적인 문맥과는 상이하거나 다분히 왜곡된 차원에서 받아들여진 것들이었다. 1960년대 말에 들어와서는 일본에서 활약하던 이우환의 영향을 통해 단색주의회화 및 다분히 동양적인 사상으로 재해석된 서구미니멀리즘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우환의 작품은 그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며 많은 추종자들을 양산했다. 박서보의 <묘법시리즈>나 윤형근, 이승조, 김기린, 하종현, 정창섭, 윤명로 등의 작업이 그 범주 안에 드는 것들이다. 비록 단색조 회화라는 흐름에 잠식되긴 했지만 이건용, 김구림, 이강소 등의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작업은 매우 주목되는 것들이었다. 특히 김구림의 기성품(오브제)를 이용한 작업 및 드로잉, 이건용이나 이강소, 성능경 등의 해프닝, 이벤트 등은 전위미술의 불모지였던 당시 한국의 관객들에게 신기한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당시 현대미술에 대한 다소 과도한 반응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현대미술이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이해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1980년대에는 민중미술이 두드러진 흐름을 선보였다. 지난 한국의 근현대미술이 지나치게 보수적, 심미적, 서구미술 중심의 전위적인 것으로만 치닫고 대중과의 소통, 한국적인 현실 소에서의 미술의 모색, 정체성 등의 문제의식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음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이기도 했다. 신학철, 임옥상, 오윤, 박불똥, 안창홍, 정복수, 최민화, 이종구, 황재형, 김봉준, 민정기, 강요배, 김정헌 등이 그 대표적 작가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추상 대신 형상, 구상을 활용해서 이야기그림, 메시지가 강조되는 미술을 지향했으며 당대 한국의 정치현실, 분단국가로서의 역사의식,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 한국미술문화의 구조적 모순 등등을 작품의 주제로 다루었다. 아울러 그간 서구미술 중심의 구도 속에서 외면 당했던 한국의 전통적인 시방식과 양식, 형식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무속화, 민화, 불화 등을 전략적으로 차용하고 있음도 눈에 띈다. 아울러 걸개그림이나 판화, 벽화 등의 형식을 빌어 대중들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접촉을 시도했다. 걸개그림에는 최병수 등이 주목되는 작업을 선보였다. 최진욱, 서용선, 오치균 등은 형상을 통한 그림의 개념성과 사회의식을 함께 도모하는 작가들로 1980년대 미술의 영향이 감지된다. 1980년대 말에 들어와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및 신세대들의 감수성과 기호에 힘입은 작업들 및 탈장르, 혼합매체, 페미니즘, 역사와 신화의 재해석작업, 평면작업과 함께 접목되는 영상과 테크놀로지작업, 설치작업 등이 주류를 이루며 확산되기 시작했다. 최정화, 윤동천, 조덕현, 권여현 등이 바로 그 지점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보여준 작가들이다. 이봉렬, 장화진, 이인현, 김춘수, 문범, 장승택, 홍승혜, 김용익, 오수환 등은 모더니즘 미술의 새로운 모색과 틈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이다. 최욱경, 김인순, 정정엽, 노원희 등은 페미니즘적 요소가 강한 그림을 제작한 작가들이다. 한운성, 한만영, 김홍주 등은 형상을 이용한 또 다른 페인팅의 가능성을 질문해보는 작가들이다. 아울러 장욱진, 이만익, 하인두, 홍정희, 김상유, 이강소의 근작, 이중희, 이희중, 전혁림 등은 한국적인 그림, 한국적인 미의식을 바탕에 둔 그림의 세계, 색채의 세계를 탐구해나가고자 하는 작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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