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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발레를 만든 사람들

오늘날의 발레는 19세기의 낭만발레와 고전발레, 그리고 20세기 이후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창작발레로 구분된다. 낭만발레의 온상지인 프랑스에 이어 러시아는 고전발레로 오랫동안 발레 종주국이 되었고, 20세기 중·후반에 성행한 유럽과 미국의 창작발레는 이미 각국의 고유한 발레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짧게 잡아 200년인 이 역사를 단번에 수용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발레기교 습득, 정통한 레퍼토리 확보, 새로운 창작품 안무를 병행해야 하는데 한국발레가 추구해야 할 세 가지 목표이기도 하다. 한국의 발레는 해방과 함께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한동인, 정지수를 비롯해 조익환, 진수방이 1946년에 결성된 ‘조선무용예술협회’ 발레부원 명단에 올라있다. 이들 중 한동인은 특히 1946년 ‘서울발레단’을 창단해 1950년 6·25 동란 날까지 공연을 감행하다 피랍된 한국 최초의 발레단장이다. 이 서울발레단 공연에 참가했던 한 무용가가 전쟁기간 동안 일본 유학을 마치고 1953년에 귀국하는데 그가 바로 전 국립발레단장이자 한국발레의 거목으로 알려진 임성남이다. 1973년 창단과 함께 임성남은 20년간 국립발레단을 이끌었고, 일본 안무자들을 초청해 고전발레 작품 계승을 시작했다. 임성남의 문하에서 김혜식, 김성일, 김학자, 최태지, 김순정, 문병남, 김긍수 같은 후계자들이 나왔다. 국립발레단은 이후 김혜식, 최태지 단장을 거쳐 현재의 김긍수 단장에 이르렀다. 1984년에 창단된 유니버설발레단 역시 한국발레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그 동안 발레계의 국제관행을 엄격하게 지키며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세계적인 발레단이다. 관례에 따라 창단 몇 년 전부터 선화예술중학교에 미국인 교사 에드리언 델라스를 초청했고, 거기서 문훈숙, 김인희, 강수진이 기초를 닦았다. 창단 후에는 미국과 러시아에서 초청된 역대 감독들로부터 고전발레 레퍼토리를 전수했고, 현재는 문훈숙단장이 컨템퍼러리 발레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정교한 무대와 확실한 계보로 항상 수준 높은 무대를 유지해온 유니버설발레단은 한국발레의 발전은 물론 대중적 인기 확보에서도 큰 공을 세웠다. 한편, 이 두 직업발레단이 성장하기 이전의 한국발레를 되돌려 보면, 1950년대에는 무용연구소가 유일한 무용교육기관이었지만 1960년대에는 대학에 무용과가 생기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63년 한국 최초로 개설된 이화여대 무용과 발레전공 홍정희 교수 문하에서 김화례, 신정희, 조윤라, 김명회, 신은경, 김선희 등이 배출되어 여러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세종대학교의 전신인 수도사대 무용과의 활약도 주목할만하다. 김정욱 교수 문하에서 박인자, 김복선, 장선희 등이 배출되어 역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무용과를 통해 발레인구의 증가와 사회적 인식 향상을 얻었다면 질적인 발전은 두 직업발레단이 주도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이 강력하게 추진해온 외국인 예술감독 영입, 고전발레 레퍼토리 확장은 당연히 국립발레단과 비교의식을 조장했고, 특히 1990년대 후반 국립발레단의 운영체계를 달리했던 최태지 단장 재직시에 국립발레단의 대중적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유니버설발레단 예술감독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의 명성에 대응하기 위해 최태지 단장은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초청했다. 그 결과의 하나인 <호두까기 인형>은 우리 발레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12월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올레그 비노그라도프의 키로프 버전이, 예술의전당에서는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볼쇼이 버전이 나란히 공연되었다. 한 도시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이 동시에 공연된 역사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발레는 여전히 기초가 약하다.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전문적인 발레학교가 없다는데 있다. 발레는 춤추는 생명이 매우 짧기 때문에 만 18세부터는 이미 전문가 자격을 얻어야 하므로 초·중·고등학교 연령층 교육을 위한 학교가 필수적이다. 40세 정년이지만 대부분 30대 중반이면 스스로 물러날 정도로 무서운 곳이 발레 공연장이라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는 특수한 세계다. 물론 이런 특수한 인재를 키워낼 교사의 능력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발레는 비디오나 책을 보면서 공부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몸에서 몸으로 배우는, 도제 제도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서만 교육이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정통한 발레를 원한다면 외국 발레학교 유학을 택해야 한다. 그 이후에 직업발레단의 발레리나 경력을 바탕으로 교수법을 배워야 훌륭한 발레 교사가 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한국의 발레는 과도기인 것으로 보인다. 도제식 교육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한국의 발레 무용가들로는 일본 유학을 거친 한동인, 임성남 이래로 김혜식이 영국, 최태지가 프랑스, 문훈숙이 미국, 김인희가 모나코, 김주원이 러시아, 강예나가 러시아, 황혜민이 미국 유학과 함께 전문적인 발레단 경력을 쌓았다. 또한, 모나코 왕립무용학교를 거쳐 현재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수진을 비롯, 많은 인재들이 외국의 여러 발레단에서 활약하며 미래의 한국발레 발전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김용걸,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서 희, 네바다발레단의 곽규동,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유지연, 볼쇼이발레단의 배주윤,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의 김지영, 독일 뒤셀도르프발레단의 허용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조수현과 김성민 등 일일이 상황 파악이 안될 만큼 여러 사람이 외국 발레단과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전문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무대의 기간’인 40대를 넘겨 ‘교수의 기간’에 접어들 때 한국의 발레교육은 매우 풍성해질 것이며 외국작품 재안무에서도 외국인 의존도가 낮아질 것이다. 정확한 발레교육과 명작발레 레퍼토리 확장 후, 마지막으로 한국발레는 창작품을 발표할 준비도 해야 한다. 백 년 동안 투자해서 얻은 결실이 러시아의 고전발레라면 미국은 신고전발레 작품 확보를 위해 아예 발레단 하나를 수십 년간 양육했다. 수십 년 전의 이런 투자가 오늘날 독보적인 발레 유산을 지녔다는 자신감과 함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보답을 하고 있다. 작품 소유권을 가진 단체는 그 작품을 공연하는 모든 발레단으로부터 안무비와 작품비를 받는 것이 국제관례이기 때문이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한국이 발레계의 뼈대 있는 가문이 되기 위해 매우 비싼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투자를 발판으로 새로운 발레작품을 생산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인 셈이다. 현재 한국의 창작발레는 주로 대학 교수 무용가들을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 체육대학교 제임스 전, 순천향대학교 전홍조, 한양대학교 김민희 교수 등이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제임스 전은 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자로 10년간 재직했으며 한국 발레사상 처음으로 외국에 초청되어 미국 네바다발레단 안무자로 활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작 분야는 여전히 가장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용가, 교육자, 안무가의 역할 분담이 불분명한 것과 함께 창작에 대한 전문적인 인식도 약하다. 교육제도 개선, 해외 페스티벌 참관 및 참가지원 등 안무자 육성을 위한 구체적 프로그램 준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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