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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대~1970년대 창작동요

광복이 되자 동요 또한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새롭게 개척이 되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처음 발간된 <어린이 신문> 첫 면에는 특집으로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 납니다 …”로 시작하는 <새 나라의 어린이>(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가 발표되었는데, 이 노래가 상징해 주듯이 “새 나라의 새 주인은 우리 어린이”, “어린이는 나라의 일꾼 부지런히 배우고 공부하여 새 나라의 역군이 되자”라는 내용의 ‘해방 동요’, ‘애국 동요’가 속속 창작되었다. 일제 하에서의 동요와 광복 직후에 창작된 동요는 그 성격이 달랐다. 우울하고 어둡고 그늘진 심성(心性)을 노래했던 동요가 이제 밝고 씩씩한 건설적인 노래로 바뀐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 큰 변화는 초등학교 음악교육의 중심 교재가 ‘일본창가’에서 ‘한국동요’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고 교과서는 국정(國定)이기 때문에 음악적 모국어를 형성하는데 있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비로써 우리의 동요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946년 8월 15일에는<초등 노래책>이라는 음악교과서가 발행되었다. 여기에는 “학교종이 땡땡친다…”로 시작하는 <학교>를 비롯하여, <봄나드리>, <물방울>, <나팔꽃>, <까막잡기>, <똑딱배>, <맹꽁이>, <산토끼>, <둥근 달>, <설날>, <눈 오신 아침>, <시계>, <애기별>, <키 대보기>, <안녕하세요>, <바이올린> 등 16곡이 수록되었다. 그러니까 <초등 노래책>은 광복 후 처음 간행된 음악교과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음악교과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의 특징으로는 첫째, 한국 창작 동요가 중심이 되었다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순수한 정서 함양을 목적으로 하였다는 점 셋째, 가창(歌唱) 중심이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문교부에서는 <초등 노래책>이라는 음악교과서를 발행하였다. 여기에는 <애국가>를 비롯하여, <새 나라의 어린이>, <학교 종>, <산토끼>, <강아지>, <조선의 별>, <무엇 무엇 배우나>, <눈 오신 아침>, <줄넘기>, <뱅글뱅글 돌아라>, <참새>, <고양이>, <기차놀이>, <얼룩송아지>, <나는 알아요>, <애기별>, <바위와 샘물>, <봄바람>, <비눗방울, 병아리>, <어린 음악대> 등 21곡이 수록되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의 동요는 초등학교 음악교육의 중심교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1947년에는 남북분단을 예고라도 한 듯이, 오늘날 통일의 주제가로 남북에서 널리 애창이 되고 있는 <우리의 소원>(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이른바 ‘전시동요’(戰時童謠)가 유행을 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자 새로운 동요를 만들어 보급하자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이에 KBS가 중심이 되어 이른바 ‘방송동요’를 제정·보급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동요 중 상당수가 음악교과서에 수록이 되었고 또 오늘날까지도 널리 애창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나뭇잎 배>(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 <노래는 즐겁다>(박화목 작사, 윤용하 작곡), <메아리>(유치환 작사, 김대현 작곡), <종소리>(강소천 작사, 김대현 작곡), <초록바다>(박경종 작사, 이계석 작곡>, <화음삼형제>(이계적 작곡), <파란마음 하얀마음>(어효선 작사, 한용희 작곡), <푸른잔디>(유호작사, 한용희 작곡>, <고향땅>(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 등이 있다. ‘KBS 방송동요'는 20년대 개척한 한국동요의 맥을 잇는 것으로 서정성이 풍부하고 아름답고 예술성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며, 한국동요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1960년대 들어서는 동요작곡가의 수가 증가하였고 그에 비례하여 창작동요의 수와 동요작품집의 수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동요 지도자가 배출되었고, 각종 동요 단체들이 만들어져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와중에서 중요한 변화 중의 하나는 어린이 합창단에서 우리의 동요를 중요 레퍼토리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 결과 동요가 중창과 합창용으로 다양하게 편곡되어 불렸고, 가창력이 높아졌다. 누구나 다같이 참여하여 부를 수 있던 단계에서,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분화가 된 감상용 단계로까지 확대가 된 것이다. 1970년대 역시 수많은 동요가 창작되었다. 양적으로는 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또 질적 수준도 높아졌으며 다양해졌다. 그런 와중에서 창작동요 반세기를 맞이하는 시기인 만큼 과거를 반성 및 정리하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 결실을 맺게 된다.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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