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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창작동요

1920년대의 동요 우리나라의 창작동요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 시작된다. 주지하다시피 1920년대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였다. 당시 학교에서는 일본창가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조선의 어린이들이 부를만한 마땅한 노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이에 뜻있는 몇몇 인사들이 모여, “조선 어린이의 심성에 맞는 새로운 노래를 창작 보급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교양을 심어주고 정서를 함양시켜 주는 동시에 노래를 통해 애국정신을 고취시키고 민족혼을 심어 주자”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즉, 우리나라의 동요는 일제치하라는 암울한 시기에, 민간인이 주도한 자생적 민족 문화 운동의 일환으로 발생이 되었고 또 전개가 되었다. 본격적인 동요 창작은 방정환을 중심으로 한 ‘색동회’가 조직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색동회는 1923년 3월 동경에서 아동문학가와 동요작곡가가 중심이 만든 단체이며, 창립동인은 방정환, 손진태, 윤극영, 정순철 등이었고, 뒤에 마해송, 정인섭, 이헌구, 윤석중 등이 가입하였다. 이후 색동회는 본격적으로 동요운동을 전개하였고 또 잡지 <어린이>를 통하여 창작동요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24년 색동회의 주요 인물이었던 윤극영은 <어린이>잡지를 통하여 한국음악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동요인 <반달>을 발표하였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라는 내용의 나라 잃고 방황하는 민족적 비운을 그린 이 노래는 잡지와 유인물을 통해 전국에 보급이 되었고,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듯이 순식간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애창이 되었다. <반달>은 한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 및 한국창작동요의 모델로서 역할을 하였다는 역사성과 상징성 그리고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말미암아 이에 앞서 몇몇 동요가 발표되었지만, 동요계에서는 <반달>을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그리고 이 곡이 발표된 1924년을 창작동요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후 윤극영은 ‘달리아회’라는 어린이 노래회를 조직하여 동요 보급에 앞장을 섰고 또 192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인 <반달>을 출판했다. 동요집 <반달>에는 <반달>(윤극영 작사)을 비롯하여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로 시작하는 <설날>(윤극영 작사), <꾀꼬리>(윤극영 작사), <귀뚜라미>(방정환 작사), <두루미>(한정동 작사), <꼬부랑 할머니>(최영애 작사),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으로 시작하는 <고드름>(유지영 작사), <흐르는 시내>(윤석중 작사), <소금쟁이>(한정동 작사), 동요극<파랑새를 찾아서>(금여수 작사) 등 10편의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윤극영에 앞서 박태준은 1920년 여러 편의 동요를 작곡하였다. 그리고 이 곡들을 1929년 자신의 창작동요집인 <중중 때때중>을 통해 발표를 하였다. 또한 같은 시기에 오늘날에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로 시작하는 <오빠생각>(최순애 작사), “책상위에 오뚝이 우습고나야…”로 시작하는 <오뚝이>(윤석중 작사),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아…”로 시작하는 <맴맴>(윤석중 작사) 등을 발표하였다. 한국 창작동요의 개척기라고 할 수 있는 1920년대에 동요를 가장 많이 작곡한 사람은 홍난파이다. 난파는 1929년 <조선동요 100곡집 상권>을 통하여 50편의 동요를 발표하였다. 그 대표곡을 살펴보면,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로 시작하는 <달마중>(윤석중 작사), “나의 살던 고향은…”으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으로 시작하는 <낮에 나온 반달>(윤석중 작사), “퐁당 퐁당 돌을 던지자…”로 시작하는 <퐁당퐁당>(윤석중 작사), “반짝 반짝 아름다운 작은 별들…”로 시작하는 <작은 별>(홍난파 작사) 등이 있다. 이중 <고향의 봄>은 한국민의 향수와 동심을 대표하는 노래로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현재까지도 널리 애창이 되고 있으며,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와 교포들도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의 하나로 애창을 하고 있다. 그런데 홍난파의 동요 중 적지 않은 곡들이 한때 가사를 바꿔서 불러야만 했다. 가사를 만든 사람이 월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원 가사보다는 개사된 가사로 알려진 경우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모니카>로, 이 곡의 가사는 원래 윤복진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욕심쟁이 작은 오빠 하모니카는…”으로 시작하는데, 후에 윤석중 작사의 “우리 아기 불고 노는 하모니카는…”으로 개사되었다. 1929년 정순철도 <갈잎피리>라는 창작 동요집을 출간하였다. 여기에는 “엄마 앞에서 짝짜궁…”으로 시작하는 <우리 아기 행진곡>(윤석중 작사)을 비롯하여, <까치야>(김기진 작사), <늙은 잠자리>(방정환 작사), <길 잃은 까마귀>(이정진 작사), <물새>(허봉 작사), <여름 비>(방정환 작사), <흰모자>(황세관 작사), <봄>(한정동 작사), <갈잎피리>(한정동 작사), <나무잎배>(방정환 작사) 등 10편의 창작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안기영은 1929년 <안기영 작곡집 제1집>을 통하여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로 시작하는 <그리운 강남>(김석송 작사)을 비롯하여 <조선의 꽃>(이은상 작사), <뜻>(주요한 작사) 등을 발표하였다. 안기영의 작품은 월북 작곡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한때 금지가 되었다가 1988년 해금이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창작 동요는 1920년대에 윤극영을 비롯하여, 박태준, 정순철, 홍난파, 안기영 등에 의해 개척이 되었다. 1920년대 동요는 민족의 비애(悲哀)를 담은 서정적인 동시에 감상적 분위기를 특징으로 하고 있고 있으며, 한국동요의 정형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는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 민경찬(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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