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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음악극의 다양한 시도들
1980년대의 음악극은, 뮤지컬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1990년대를 예비하고 있었던 반면, 군부정권과 강렬한 민주화운동의 열기를 보여주는 음악극들이 한데 얽히면서 양식과 내용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시기이다. 우선 1970년대 민예에서 전통연희의 현대적 계승에 성과를 보였던 허규는 1980년 제5공화국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립극장에 취임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국립창극단의 창극 연출을 도맡으면서 창극의 질적 비약을 이룩하게 된다. 그간 판소리의 음악과 대사, 서구 근대극적 연출이 불편하고 어색하게 섞였던 1970년대 창극을 극복하고, 다양한 연극적 놀이가 가능한 텅 빈 무대로 우리 전통연희의 가변적 시공간의 특성을 살려내었고, 판소리 음악에 맞춰 춤추듯 움직이는 연기를 유도함으로써 소리꾼에게 편안한 연기 스타일을 만들어내었다. 제5공화국 말인 1987년 초에는 88서울올림픽을 겨냥한 새로운 관립 뮤지컬단인 88서울예술단(후에 서울예술단으로 개칭)이 창단하여, 총체극이라는 이름을 단 <새불>을 공연하였고, 그것의 정치적 성격은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되었다. 예그린악단도 그랬듯이, 이 단체는 관립 단체였기 때문에 대형 작품의 안정된 제작이 가능했지만 레퍼토리나 소재 등에서 상당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그에 비해 기존의 예술문화와 사회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한 진보적 예술운동의 흐름은 1980년대에 다양한 분야에서 꽃을 피웠다. 마당극이자 음악극인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를 주 관객으로 하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 연극·노래·풍물·춤·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성과가 집결되어, 적게는 수천, 많게는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되는 총체공연물인 노래판굿 <꽃다지> 시리즈로 결실을 맺었다. 한편 이러한 진보적 예술운동의 문제의식은 고급음악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중견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을 중심으로 한 한국음악극연구소는, 한국 오페라의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 편식 증상을 반성하고 소극장 오페라, 현대음악 오페라 등 다양한 오페라를 소개하는 한편, 한국의 이야기와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음악을 결합한 소극장 음악극을 선보여 음악계와 연극계 양쪽에 모두 호평받았다. 이는 1990년대 가극단 금강의 작업으로 이어진다. 뭐니뭐니 해도 1980년대의 중요성은, 미국·영국 스타일의 뮤지컬이 상업적으로 공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1970년대 현대극장의 작업들은 연극계에 뮤지컬에 적극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만해 한용운을 소재로 한 <님의 침묵> 등이 제작되었다. 또한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인 <아가씨와 건달들>은 여러 해에 걸쳐 장기공연에 성공하는 예를 보여주었고, 그 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피핀>, <레 미제라블>, <코러스라인>, <캣츠> 등 브로드웨이의 성공작들이 앞다투어 공연되었다. 이들 작품의 대부분은, 단순한 번역 뮤지컬이라기보다는, 원작 공연을 연출과 연기, 무대미술까지 거의 그대로(혹은 약간 축약·변형하여) 만든 카피(copy) 뮤지컬로, 이때까지만 해도 저작권 사용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종의 불법복제품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한국의 관객은 브로드웨이 흥행작, 대작들로 취향이 굳어지고 이런 경향이 뮤지컬의 전부인 것처럼 관점이 결정되어, 1990년대 뮤지컬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카피 뮤지컬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창작 뮤지컬의 창작·제작 역량은 그에 턱없이 부족하였는데, 크고 화려한 브로드웨이 대작 중심의 관객 취향과 우리 뮤지컬 창작역량의 큰 괴리를 카피 뮤지컬들이 채우는 관행은 이때부터 생겨났다. <div align=right> 이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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