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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뮤지컬의 등장과 한국적 뮤지컬의 시도
1960년대에 들어서서 뮤지컬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음악극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미국·영국 중심의 대중적 음악극인 뮤지컬을 전범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전의 음악극들과 구별되며, 미국문화의 절대적 영향을 받게 된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나라의 대중적 음악극은 이러한 뮤지컬이 주도권이 점점 상승되는 양상을 보인다. 다분히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뮤지컬이, 우리 나라에서는 5·16 이후 박정희 정권의 적극적 후원과 기획으로 만들어진 관제적 단체로부터였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1961년 창단된 ‘예그린악단’(이후 ‘국립가무단’, ‘서울시립가무단’, ‘서울시립뮤지컬단’으로 개칭됨)이 그것이며, 창단공연 <살짜기 옵서예>를 비롯하여, <대춘향전>(이후 <성춘향>으로 개칭됨), <시집가는 날>, <양반전>, <상록수> 등의 각색·재창작 작품과 <지붕 위의 바이올린> 같은 번역물을 무대에 올렸다. 뮤지컬 관객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관립단체는 비교적 안정된 제작여건을 가질 수 있었지만, 레퍼토리나 활동 방식에서 관립단체적 성격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까지 민간 단체의 뮤지컬은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그 모습을 보이는 수준이었다. 유치진이 이끈 극단 드라마센터가 뮤지컬 <포기와 베스>를 공연하기도 했지만 단발적 시도로 그쳤다. 상업적 성격을 띤 뮤지컬의 본격적인 시작은 극단 현대극장의 시도로부터였다. 1960년대 학구적이고 실험적인 동인제 극단을 이끌었던 세대들 중 몇 명이 1970년대에 이르러 좀더 전문적이고 기업화된 극단을 꿈꾸었고, 그것이 뮤지컬로 드러난 것이다. 1977년 <빠담빠담빠담>은, 창작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인기 샹송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생애를 다루고 인기 가수 윤복희를 주인공으로 출연시켜 대중의 관심을 모았고, 연극계에서는 상업주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는 대중가요 가수들을 대거 출연시킨 1979년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며, 1980년대 뮤지컬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다. 현대극장의 뮤지컬은 소재나 출연자, 원작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상업주의적 시도를 하고 있으나, 아직 뮤지컬 시장 자체가 형성되기에는 너무 이른 수준이었다. 한편, 한국적 뮤지컬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관제적 성격에 묶여 있던 예그린과, 영국·미국의 주류 뮤지컬을 전범으로 삼아 매진했던 현대극장과 구분되는, 한국적인 대중적 음악극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허규를 중심으로 한 극단 민예는, 탈춤이나 판소리 등 우리의 전통연희에 착목하여 이를 현대의 연극으로 적극적 계승을 하고자 하였고, 당연히 전통연희의 가무극적인 성격이 작품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허규의 작업은 전통의 설화·소설에 근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그린에 비해 현대적 해석이 두드러졌고, 예그린의 작업이 한국적 소재와 이야기를 브로드웨이적 색깔로 재창작하는 것에 초점이 두어져 있는 것에 비해, 민예의 작업은 현대의 연극을 좀더 한국적으로 만드는 데에 초점이 두어져 있었다. 허규 작·연출의 <물도리동>과 오영진의 희곡을 바탕으로 김영동이 작곡하고 손진책이 연출한 <한네의 승천>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마당극 운동이라 지칭된 영역에서 이루어진 활동이다. 민예가 연극계 안에서 전통연희의 현대적 계승을 실험하고 있던 것에 비해, 마당극운동은 동일하게 전통연희의 현대적 계승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연극계의 바깥인 대학이나 노동현장 등에서 민주화운동과 궤를 함께 하는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민예의 작품들처럼 마당극에서도 전통연희의 가무극적 성격이 자주 그 모습을 드러냈는데, 특히 김민기 극작·작곡, 채희완 안무·연출의 <공장의 불빛>(1978)은 거의 모든 대사를 노래로 처리하는 뮤지컬적 성격을 강하게 띤 작품이었다. 노동조합의 결성과 탄압, 해고 등으로 이어지는 당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포크, 로큰롤, 국악 등 다종다양한 음악양식으로 소화했고, 탈춤과 전통춤 사위를 공장 노동자들의 몸짓으로 안무한 획기적인 작품이다. 특히 불법 카세트테이프에 노래 전곡과 반주 음악을 실어 유포함으로써, 공식 영역 바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시도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의 김민기의 뮤지컬 작업으로 지속되었고, 마당극운동·노래운동 안에서의 노래극에 영향을 주었다. <div align=right> 이영미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원)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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