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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김태희
지난해 2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나왔을 때 생각했다. “야구이니까 600페이지가 넘는 책이 가능할 거야. 스포츠와 비즈니스가 결합한 최적의 경기가 야구니까. 미국 프로야구에서 알아주는 언론인 레너드 코페트가 썼고, 역시 한국 야구계에서 유명한 이종남이 번역했다니 믿을 만하군!” 그런데 이번에 축구를 다룬 똑같은 책이 나왔다. 제목도 시리즈인양 ‘축구란 무엇인가’로 달았고 책의 두께 역시 600페이지가 넘을 만큼 두툼하다. 보통 무식한 스포츠로 평가받는 축구를 두고 이토록 방대한 저술이 가능한 줄 몰랐다. 저자는 공차기를 빵만큼 사랑하는 독일의 축구전문작가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이다. 이름부터 한 축구할 것 같지만 역사철학 전공자라고 한다. 1995년 초판을 낸 이후 꾸준히 증보하고 있다. 남아공 월드컵을 겨냥한 측면이 있지만 그게 무슨 흠이랴. 이 책에 대해 차범근 감독은 이런 추천사를 남겼다. “축구 이론과 현상, 역사를 방대하고도 명쾌하게 서술한다. 우리가 축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이유, 공 하나로 하는 경기가 그토록 매력적인 이유가 이 책에 나와 있다.” 독일에서는 “축구에 대한 최고의 책”,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은 축구 책 저자 중 챔피언스 리그에 속한다” 등의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책은 축구에 대한 인문적 관심을 가진 대중의 눈높이에 맞췄다. 한때 심리학자 뵈이텐디예크는 축구의 핵심을 ‘비열한 개싸움’으로 보았고, 좀 나은 평가라고 해봤자 ‘더럽고 프롤레타리아적이고 비지성적인 스포츠”였다가, 카뮈에 이르러 ‘축구는 인생의 학교’로 승격됐다. 이후 축구가 그라운드에서는 신체의 예술이 되고 관중석의 사람은 거대한 그림이 되는 팬덤 문화가 형성되면서 축구는 삶의 일부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책은 최고의 스포츠가 된 축구의 비밀을 해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국제축구협회(FIFA) 회원국이 유엔 회원국을 능가한 이유, 단일 종목의 월드컵 경기의 열기가 전 종목이 출전하는 올림픽을 능가하는 이유를 탐색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저자의 광범한 자료 섭렵, 그리고 자료를 원료로 사유의 심지에 불을 붙여 주변을 밝히는 힘이다. 그 힘은 전적으로 저자의 성실성과 통찰력에 기대고 있다. 세계의 놀이인 축구는 이런 저자를 만날 수 있어 더욱 행복해 보인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빌 브라이슨/ 이덕환
이 책은 지난 350년간 세계의 과학을 선도하고 있는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정신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왕립학회는 1660년 11월말 평범한 저녁에 십여 명의 학자들이 스물여덟 살 젊은 청년의 천문학 강의를 들으러 런던의 한 대학 강의실에 모이면서 시작되었다. 왕립학회가 세계과학의 최첨단을 선도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적에 관계없이 아이디어들이 교환될 수 있는 철저한 국제화와 신분과 집안에 상관없이 과학적 성실성과 창의성만으로 회원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왕립학회 창립 350년을 기념으로 뛰어난 저술가들을 통하여 왕립학회 창립 후 회원들이 이룩한 영광된 성과와 논란을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 배우는 미적분학의 시조인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세기적 논쟁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있다. 생물의 다양성, 비행의 새 시대, 다윈의 이야기, 철도를 만든 엔지니어들의 빛나는 업적들, 구조생물학자 이야기 등이 각각 다른 작가들에 의해서 모두 다른 스타일로 서술되어 있어 각자의 특색에 따라 지루하지 않게 세기를 선도한 왕립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겠다. 불행히도 왕립학회는 오랫동안 여성회원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1945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왕립학회 멤버가 된 론즈테일(벤젠의 구조를 밝힘)의 과학자와 사회활동가로서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왕립학회 현 회장이며 천재물리학자인 마틴 리스는 “2060년에는 무었을 이해하고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과학은 끝이 없는 탐구라는 이야기로 향후 그의 과학의 총괄적 비전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그가 이야기하였듯이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5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었듯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이 어떤 문제에 참여하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뉴턴의 사면상(사망 직후 얼굴에서 직접 본을 떠 만든 안면상) 사진 외 여러 과학자들의 초상화, 그리고 역사적인 문서, 그림들이 삽입되어 그림을 보는 재미도 더불어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폴 A. 새뮤얼슨/ YBM Sisa 편집국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 치고 새뮤얼슨(P. Samuelson)이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대 경제학계의 전설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출중한 경제학자다. 아담 스미스(Adam Smith)로부터 케인즈(J. M. Keyne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재 경제학자들이 등장했다. 새뮤얼슨은 이 천재 경제학자들이 들어가는 명예의 전당에 마지막으로 입장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천재의 등장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새뮤얼슨이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쓴 짤막한 경제평론들을 모아서 만들었다. 아무래도 미국 경제에 관한 글들이 많지만 세계 경제 전반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썼으며, 특별히 한국 경제에 관해 쓴 글도 상당히 많다. 주로 한국에서 발행되는 영문 월간지에 기고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예상 밖으로 많은 한국 관련 글들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새뮤얼슨의 경제평론을 읽으면서 “역시 대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평생을 이론에만 몰두해온 사람답지 않게 세계 경제에 대한 이해의 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깊이도 있다. 이론에 정통한 사람은 현실 경제를 보는 눈도 날카롭기 마련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크루그먼(P. Krugman)의 경제평론을 읽을 때의 짜릿함을 느끼기는 힘들다. 노대가의 원숙함을 맛보는 데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각 글의 영어 원문이 함께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번역문과 원문을 대조해서 읽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는 뜻밖의 이득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여튼 이 책을 통해서 경제학계의 거인이 남긴 발자취의 편린이나마 접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고병수
이 책은 가정의학과 의사로 동네병원을 운영해 온 저자가 ‘온 국민 주치의 제도’를 제안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저자는 작중에 ‘유별난’이라는 이름의 의사를 등장시켜 이른바 ‘3분 진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3분 진료’란 병원에 가서 의사와 다정하게 앉아서 아픈 곳에 대해 얘기하고 다른 문제는 없는지 차분히 대화를 나누기는커녕, 몇 마디 물어보면서 청진기 한 번 대보고 처방을 받아 나오는 우리에게는 매우 친숙한, 그러나 실상은 매우 비인간적인 의료관행을 지칭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관행이 의사들이 타인에게 무관심한 이기주의자이기 때문도 아니고, 환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도 아니며,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곧 1차 의료의 허약함과 부실한 의료 전달 체계의 오랜 관행 속에서 후진적인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지속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실상을 저자는 자신의 동네병원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묘사한 후, 캐나다·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 의료 선진국의 사례를 설명한다. 이어서 주치의 제도를 시행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2015년을 가상하여 주치의 제도를 도입한 후 우리 국민들이 경험하게 될 바람직한 의료 현실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일본의 예를 들어가면서 의료 서비스는 악화되면서도 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도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가 역설한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마이클 샌델/ 이창신
한국 사람은 한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왜 우리는 한이 잘 맺히는가? 왜 우리는 이제껏 한을 안고 살아왔는가? 한은 힘없는 약자가 강자에 의해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것을 고치기는커녕 하소연 할 곳도 없게 되면 가슴 속 깊이깊이 맺히게 되는 것이다. 즉 응징되지 않는 부정의의 결과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갈 때 생기는 심리적 홧병이 바로 한이다. 선진국 사회와 후진국을 가르는 핵심적 구분은 사회 인프라가 얼마나 잘 구축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전화, 전기, 수도, 가스, 도로, 인터넷, 병원, 학교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는 것은 그 비효율성의 고통을 인내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정신적 인프라에 해당하는 사법질서와 도덕의식이 결여되어 있을 때이다. 한 사회의 정신적 인프라를 설계하는 정치철학자는 정의의 시스템을 상상해 내야 한다. 하버드 대학 최고의 명강의를 펼치고 있는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을 통해 밝히고자 하는 내용은 트렌드에 편승한 것도, 새로운 첨단 기술에 관한 것도 아니다. 2000여 년 전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라고 항변하는 트라시마코스가 얼마나 진리에 무지한지를 『국가』 ‘대화’ 편에서 확실하게 보여준다. "정치는 현상이다"라고 주장한 마키아벨리와 정반대편에 존재하는 이상주의자들의 정치철학적 논의가 이 책에서 펼쳐지고 있다. 현실정치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아니 차라리 지저분하다는 평이 더욱 맞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정의의 심판이 저 세상이 아닌 이 세상에서 실현될 것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초대형 태풍이 휩쓸고 간 지역에서 생수를 평소 가격의 10배를 받는 것은 옳은가? 자신의 병역 의무를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대신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은 정당한가? 소수 인종이라는 이유로 취업과 승진에서 유리한 혜택을 받는 것은 바람직한가?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어떤 빚을 지고 있는가? 애국심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있는가? 모든 철학적 문제가 그렇듯이, 결코 새로운 문제가 아니면서도 외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이 책에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모든 사회에 시공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정답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사회도 정의의 문제에 대한 좋은 답 없이 선진 사회에 진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지성인에게 필독서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시혁
1990년대까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린 것은 인종문제에 관한 한 인류가 짧은 시간에 많은 진보를 이룩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비록 월드컵은 열렸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아프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대륙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역사는 여러모로 한반도 역사와 닮았다는 점에서 더 이상 미지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일본의 침략에 짓밟혔던 것처럼 아프리카는 유럽 열강에게 유린됐다. 우리가 해방 후에도 좌우갈등의 대립을 겪었던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들도 내전으로 인한 아픔을 감내해야 했다. 가난과 질병, 폭력과 테러, 무지와 억압이 연상되는 대륙. 아직도 우리는 아프리카를 노예무역, 인종차별, 민족분쟁, 에이즈, 여성의 할례의식 등으로 점철된 태양의 대륙 정도로 기억하고 있기 일쑤이다. 그러나 그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프리카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생겨난 대륙이자 인류 탄생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아프리카사를 전체적으로 개관한 『통아프리카사』는 우리가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생생한 속살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처음 아프리카사를 접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하듯 써내려간 문체는 미지의 대륙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정복자인 유럽의 시각도 아니고 아시아의 방관적 시야도 경계하면서 애정을 담은 객관적 시각으로 아프리카 역사를 ‘통으로’ 전해준다. 글은 물론 현장과 인물을 담은 사진, 그리고 나라별 지도를 통해 아프리카 각 나라의 역사를 들려준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수많은 역사와 에피소드가 살아 숨쉰다. 아프리카의 맨얼굴을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서술한 『통아프리카사』는 월드컵이 끝나도 아프리카는 다시 망각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태호
여름에 어디 휴가라도 떠나게 되면 그 곳을 오래 전에 밟았던 우리 조상들의 발길을 문득 느낄 때가 있다. 길이 잘 든 문지방을 보거나, 깔끔하게 정성스레 쓸어 놓은 마당을 보거나. 넓은 마루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자리에 앉아 지금의 나와 같은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을 옛 선인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차를 타고 광화문을 바라보며 지나다보면 왼쪽의 인왕산이 늘 감동인 것도 비슷한 연유에서이다. 정선이 그렸던 인왕산과 지금의 인왕산, 바로 그 산이 거기 여전히 그림 속에 있었던 그 산과 똑같은 자태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스스로를 겸허하게 만든다. 일반인도 이러한데 화가들이 땅을 밟고 풍경을 보면서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예술성을 가미해 그려 놓은 한반도 곳곳의 비경도 있지만, 마치 실경을 보듯 그대로 그려 놓은 땅의 모습과 풍경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요즈음은 인공위성을 통해 골목 구석구석까지 그대로 화면에 담아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래도 사람의 호흡과 내음이 배어있는 땅의 모습을 담은 화폭은 역사와 인간을 깊이 느끼게 해준다. 미술사학자 이태호가 지은 이 책은 사진이 나오기 이전 먼 옛날부터 조선시대 후기와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우리 땅을 그린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과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책도 잘 만들었지만, 저자가 그 장소들을 일일이 다시 답사하여 사진을 찍고 그것들이 그림과 어떻게 다른가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공을 들였다. 문관 출신이 사생하여 남겨놓은 우리 땅의 모습도 정겹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외의 지도 그림들도 흥미롭다. 지도의 회화성에도 새롭게 눈을 뜨게 된다. 유럽의 옛 그림들을 보면 그들의 환경에서 나오는 색감이 그대로 실물과 함께 그림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그림이 우리의 환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마종기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의 첫 장을 열면 저자의 서문에 시선을 두게 된다. ‘내가 낳지도 않고, 평생의 절반도 살지 않은, 그러나 언제나 내 삶의 중심에서 나를 지탱해준 조국, 세상의 모든 비바람을 피해 늘 의지해온 내 조국에게 오래 다져온 사랑과 그리움으로 이 책을 삼가 바칩니다.’ 작가에게 조국은 모국어라고 했던 이는 얼마 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이다. 그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시인에게 조국은 더욱 더 모국어일 터이다. 이 말에 비추어 본다면 시력 50주년을 맞이해 출간된 이 책을 조국에게 바친다고 했으니 결국 이 책에 들어있는 시와 에세이들을 그는 한국어에게 바친다고 쓰고 있는 거라고 나는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인은 1966년에 이 땅을 떠나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간절한 이정표 같은 아름다운 시들을 썼다. 그는 ‘내가 시를 안 썼으면 아직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숨긴 채 스스로 선한 50편의 시에 담담하게 시의 뒷이야기를, 혹은 시가 탄생하기 이전의 이야기를, 시가 지어지는 바로 순간의 이야기를 시 옆에 펼쳐놓았다. 격렬하고 비통하기도 한 그의 자전을 통해 우리 굴곡 많은 현대사의 형편들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국경 너머의 세계를 접하다 보면 어찌된 셈인지 ‘외국에서 평생의 대부분을 살고, 외국어를 일상어로 쓰면서 모국어로 수백 편의 시를 써’ 온 그를 통해 오히려 한국어의 정서와 그늘과 뿌리와 소슬함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그에게 모국어는 두고 떠났던 그 모든 것들의 영혼을 대신하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에게 시를 쓰는 일은 또 하나의 시간이 아니라 ‘진심’을 다해 모국어로 살아가는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랬기에, <하룻밤을 더 모으면 이슬이 고일까,/ 그 이슬의 눈을 며칠이고 보면/ 맑고 찬 시 한편 건질 수 있을까,/ 이유 없는 목마름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슬의 눈」 中에서->와 같이 투명한 시를 우리가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슬은 아침이 되어서야 맑은 눈’을 뜨고 ‘간밤의 낙엽을 아껴’ 준다고 쓰는 한 시인의 시력 50년을 기념해 엮은 오십 편의 시와 오십 편의 이야기가 이 여름의 더위를 누그러뜨려주기를.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안나 글, 김영만 그림
이 그림책은 60년 전 한국 전쟁 당시 있었던 흥남 철수를 소재로 하고 있다. 흥남 철수는 북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미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흥남에 있던 군인과 무기, 물자를 모두 남쪽으로 철수한 일이다. 세계 전쟁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상 철수 작전으로 알려진 흥남 철수는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4일까지 열흘간 감행되었다. 이 그림책은 마지막 피난선인 온양호에 몸을 실은 명호네 식구 이야기다. 명호는 비록 아홉 살 어린 아이지만 할아버지로부터 만삭인 어머니와 동생을 부탁받고 피난길에 오른다. 동생을 업고 눈보라 속을 헤치며 나흘간 걸어서 흥남 부두에 닿은 명호는 거기서 다친 사람, 가족을 잃고 미쳐 버린 사람, 꽁꽁 언 시체, 배가 고파 우는 고아 등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목격한다. 명호네 세 식구는 천신만고 끝에 결국 온양호에 타게 되었고, 어머니는 온양호에서 명호의 여동생을 낳는다. 선체에 함께 탄 한 할아버지는 여동생에게 다시는 그런 모진 추위 겪지 말고 따뜻하고 환하게 살라는 뜻에서 배의 이름과 같은 ‘온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피난민들은 전쟁 중에 태어난 생명에 모두 감격해한다. 전쟁은 그것으로 인한 처참함과 비인간적 행태들 때문에 어린이에게 들려주기를 꺼려하는 이야기 주제다. 그러나 이 그림책의 글 작가인 선안나는 말한다. “어린이에게 두려움을 씌우는 것은 반대하지만, 한국 전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에서 활발히 나눌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두운 기억일수록 묻어두기보다 자꾸 밝히고 이야기할 때,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더 환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한국 전쟁 60주년을 맞는다. 이 시점에서, 앞선 세대가 겪은 전쟁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들려주되 발전적인 내일을 기약하는 어조로 들려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그림책을 추천한다. 오래 전 빛바랜 사진첩을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한편, 생생한 표정과 동작 묘사로 인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같은 느낌을 주는 그림 또한 어린이에게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종근 외
최근 몇 년 사이 한옥의 아름다움을 설명한 책들은 붐을 이뤘다. 기능적인 탁월성,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들이다. 그러나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그런 전통과 너무나도 단절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언론사 기자로 오랫동안 지역문화에 관한 저술을 발표해온 저자의 이 책은 단연 눈길을 끈다. 우선 우리 옛집의 담과 굴뚝 등 한옥 중에서도 사람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던 부분에 시선을 가져간다. 서울에서는 창덕궁 대조전, 운현궁과 석파랑, 한규설가 등을 살핀다. 지방에서는 전라도의 김성수 생가와 별장, 소쇄원, 경상도의 도동서원, 범어사 등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글이 예사롭지 않다. 여행기를 조금 넘어선 문화유산 답사기가 아니다. 옛집 하나하나에 녹아들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곁들여 이야기의 향연을 펼친다. 운현궁에서 짧게나마 흥선대원군의 인생역정을 그려내는데 압권이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은 스승 조광조의 죽음에 좌절한 소쇄공 양산보 선생이 낙향해 지은 산림 속 별장이다. 양산보의 삶을 짚어보지 않으면 소쇄원은 그저 잘 지은 옛 별장일 뿐이다. 저자는 상상한다. ‘소쇄공, 나는 과연 선비처럼 살았는가? 앞으로 당당한 선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아마도 시시각각 내려앉는 눈꺼풀을 차마 이길 수 없으면 세수를 한 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것이다. 잠시 후에 이어지는 순서는 소리 내어 문장읽기.’ 소쇄원을 찾아 양산보 선생이 경서를 읽는 소리 정도는 들어야 제대로 소쇄원을 보았다 말할 수 있으리라.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