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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날의 뜻 오늘의 사람들 상록수의 주인공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을 아세요
여러분들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저 80년 전 있었던 역사 속 사건에 머물지는 않았나요?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80여년 전, 우리 국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계몽운동가로서 두각을 드러낸 일제강점기의 여성이었습니다. 소설 (상록수)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 오늘날에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광복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다음 저작물들은 공유마당 CC BY 정책에 따라 출처와 라이센스를 표기했습니다. 1. BLACK BOX-South Korea-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2. 국악연주곡_설날_대금-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3. 국악연주곡_홀로아리랑-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4. [최종]12월, 광화문 거리 교항곡-안수빈(무료) *CC BY 5. 한국의 미래-민지영(무료) *CC BY 6. 국악 배경음악 #140-주식회사 아이티앤 *CC BY - 사용 폰트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1. KBIZ한마음고딕체L 중소기업중앙회(무료) 2. 수성혜정체 수성구청(무료) 3. Pretendard SIL 오픈 폰트 라이선스 4. pln옥타곤 지우소프트(Adobe Font) #안산최용신기념관 #안산용신학교 #광복80주년 #문화PD 대본 00;00;07;00 - 00;00;15;26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00;00;15;26 - 00;00;20;22 1919년 3월 1일 조선인 대표 33인은 00;00;20;22 - 00;00;25;29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00;00;25;29 - 00;00;28;29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뒤 00;00;28;29 - 00;00;32;15 조선은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벗어났고 00;00;32;15 - 00;00;37;17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홀로 섰습니다 00;00;37;17 - 00;00;42;12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는 00;00;42;12 - 00;00;46;19 독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00;00;46;19 - 00;00;52;19 이제 광복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과거의 일이 된 것일까요 00;00;52;19 - 00;00;58;20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00;01;06;25 - 00;01;10;03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산 00;01;10;03 - 00;01;15;10 강산이 여덟 번 변할 시간이라던가요 00;01;15;10 - 00;01;20;12 독립운동 당시 조그만 농촌에 불과했던 이 고장은 00;01;20;12 - 00;01;24;03 이제는 어엿한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00;01;27;11 - 00;01;31;07 모든 것이 변해 버린 듯한 도시의 한 켠엔 00;01;31;07 - 00;01;36;00 여전히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00;01;39;07 - 00;01;42;25 V5, 1 최용신 기념관은 2007년도 설립이 되었고요 00;01;42;25 - 00;01;47;03 오시는 분들한테 최용신 선생님의 업적이라든가 교육 활동이라든가 00;01;47;03 - 00;01;50;16 이런 것을 다방면에 걸쳐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00;01;50;16 - 00;01;54;13 최용신 선생님의 고향은 원래 안산이 아니고 원산입니다 00;01;54;13 - 00;02;00;21 그곳에서 어린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시게 되거든요 00;02;00;21 - 00;02;07;24 그러다가 1931년도에 23살 나이에 YWCA의 파견교사로 이곳 안산에 오시게 됩니다 00;02;07;24 - 00;02;11;23 처음에 오셨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고 해요 00;02;11;23 - 00;02;17;01 왜냐하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할까 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00;02;17;01 - 00;02;23;03 하지만 선생님의 열정적인 헌신과 봉사 정신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서 00;02;23;03 - 00;02;28;11 마을 사람들도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선생님과 친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요 00;02;54;26 - 00;02;59;13 그때 당시 우리나라 인구 중에 90% 이상이 농민들이었고요 00;02;59;13 - 00;03;02;18 그중에서 80% 이상이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00;03;02;18 - 00;03;06;24 선생님께서는 이 문맹이 빨리 퇴치되어야지만 00;03;06;24 - 00;03;11;12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농촌계몽운동에 몸을 담으셨는데요 00;03;11;12 - 00;03;14;20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이곳에 오셔서 00;03;14;20 - 00;03;19;05 여성 인권 교육이라든가 빈민구제 이런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00;03;26;14 - 00;03;30;27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강습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00;03;30;27 - 00;03;37;26 1935년 1월에 안타깝게 수업 시간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시게 되는데요 00;03;37;26 - 00;03;41;05 그런데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00;03;41;05 - 00;03;46;28 최용신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상록수 소설 책을 빼놓을 수가 없고요 00;03;46;28 - 00;03;50;10 선생님께서 너무나 안타깝게 일찍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으니까 00;03;50;10 - 00;03;54;24 그냥 보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해서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이야기하십니다 00;03;54;24 - 00;04;00;02 그래서 그때 당시 각 신문사나 잡지사에 선생님의 일대기가 다 실리게 돼요 00;04;00;02 - 00;04;02;27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이 너무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00;04;02;27 - 00;04;10;14 그분께서 최용신 선생님의 그 일대기가 실린 신문 기사를 보고 선생님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시게 되셨고요 00;04;23;02 - 00;04;30;01 흔히들 관람객들이 왔을 때도 독립운동가그러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많이 꼽으세요 00;04;30;01 - 00;04;38;04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물론 그러한 분들도 중요하지만 교육만이 우리나라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0;04;38;04 - 00;04;40;17 그래서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을 서셨고요 00;04;40;17 - 00;04;44;26 나중에 인정을 받아서 독립운동가로 추서가 되셨죠 00;04;45;22 - 00;04;51;04 최용신 선생께서 희생하며 교육의 불을 지핀 도시 안산 00;04;51;04 - 00;04;58;09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00;04;58;09 - 00;05;02;28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머문 장소에 외국인이라 00;05;02;28 - 00;05;09;10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민족정신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00;05;10;17 - 00;05;15;09 시대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 근본적인 맥락은 저는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00;05;15;09 - 00;05;21;11 그러니까 최용신 선생님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독립운동, 문맹퇴치운동이라고 했지만 00;05;21;11 - 00;05;24;06 그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다고 봅니다 00;05;24;06 - 00;05;30;26 이론적인 것으로는 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보지 않거든요 00;05;30;26 - 00;05;37;17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00;05;37;17 - 00;05;40;06 그게 교육의 본질이 돼야 된다고 보고 00;05;40;06 - 00;05;49;19 그렇다면 최용신 선생님이 하셨던 그런 일이나 지금 우리가 용신학교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나 00;05;49;19 - 00;05;53;22 큰 밑바탕의 맥락은 일치한다고 보고요 00;05;53;22 - 00;05;58;08 안산용신학교는 안산 다문화거리의 중심 00;05;58;08 - 00;06;02;12 일명 만남의 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00;06;02;12 - 00;06;09;23 1987년에 안산중앙실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곳은 00;06;09;23 - 00;06;17;12 초창기 일하는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는 야간학교, 즉 야학으로 시작했습니다 00;06;17;12 - 00;06;22;15 이후 교육 대상을 성인과 외국인까지 확장하며 00;06;22;15 - 00;06;27;25 지역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본떠 00;06;27;25 - 00;06;31;05 안산용신학교로 개칭했습니다 00;06;32;02 - 00;06;38;01 용신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00;06;38;01 - 00;06;46;29 내국인 학생들에게는 문해교육 그리고 중등 과정까지 학력 보완교육을 하고 있어요 00;06;46;29 - 00;06;52;28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두 부류의 학습자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00;06;52;28 - 00;06;59;16 이들을 같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00;06;59;16 - 00;07;08;22 직접 같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면 다문화감수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00;07;08;22 - 00;07;18;28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 연구 논문이 참이라는 것을 항상 검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고요 00;07;18;28 - 00;07;28;16 예를 들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 나라말로 사랑해요, 안녕하세요 이런 글을 예쁘게 쓰라고 하면 00;07;28;16 - 00;07;33;08 글씨만 쓰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의 국기도 그리는 근로자 있고요 00;07;33;08 - 00;07;38;03 아주 유명한 관광지 그런 것도 같이 그리면서 00;07;38;03 - 00;07;41;27 굉장히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걸 볼 수 있어요 00;07;41;27 - 00;07;49;06 자기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 우리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구나 00;07;49;06 - 00;07;52;27 내국인 학습자들도 신기한 듯이 보면서 00;07;52;27 - 00;08;00;06 아, 우리와 다른 문자가 있고 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00;08;01;02 - 00;08;06;27 이날은 마침 이번 차시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00;08;06;27 - 00;08;09;19 수업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00;08;09;19 - 00;08;14;07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00;08;14;07 - 00;08;18;05 약 3년 전 한국에 온 임올렉 씨 00;08;18;05 - 00;08;21;25 그에게 한국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00;08;21;25 - 00;08;24;29 안녕하세요 임올렉이라고 해요 00;08;24;29 - 00;08;28;17 제가 러시아에서 왔어요 00;08;28;17 - 00;08;31;14 2년 7개월 됐어요 00;08;31;14 - 00;08;35;19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00;08;35;19 - 00;08;38;16 염료를 팔고 00;08;38;16 - 00;08;43;14 지게차를 타고 제품을 받아요 00;08;43;14 - 00;08;45;23 지게차 면허는 어떻게 따셨나요 00;08;45;23 - 00;08;52;14 처음에는 러시아 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바꿨어요 00;08;52;14 - 00;08;56;04 1종 면허증 시험을 봤어요 00;08;56;04 - 00;09;02;18 합격한 다음에 1종 면허증 받았어요 00;09;02;18 - 00;09;04;27 한국에서 일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00;09;04;27 - 00;09;08;16 당연하죠 힘들어요 00;09;08;16 - 00;09;11;25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 말하면 00;09;17;11 - 00;09;20;24 이해하기가 좀 어려워요 00;09;20;24 - 00;09;26;28 근데 여기 우리 공장에서 상사들이 너무 좋아서 00;09;26;28 - 00;09;29;28 적응하는 거 빨리해요 00;09;31;24 - 00;09;33;26 (누군가를 발견한 올렉 씨) 00;09;33;26 - 00;09;38;12 (든든한 지원군 교장선생님 등장) 00;09;41;08 - 00;09;47;10 교장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00;09;47;10 - 00;09;48;04 이런 것도 찍어요? 00;09;48;04 - 00;09;49;08 먹방! 00;09;49;08 - 00;09;52;00 이거, 다 찍어야 돼요 00;09;52;00 - 00;09;54;25 선생님 이런 거 말 안 했어요 00;09;56;15 - 00;09;58;26 왜 말 안 했어요? 00;09;59;11 - 00;10;02;19 주말에는 수업 없으면 뭐 해요 00;10;02;19 - 00;10;03;25 수업이 없으면 00;10;05;03 - 00;10;07;21 딸이랑 같이 바닷가에 갈 거예요 00;10;07;21 - 00;10;08;29 딸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00;10;08;29 - 00;10;10;11 여덟 살 00;10;10;11 - 00;10;16;26 발음이 한국 사람처럼 들려요 00;10;16;26 - 00;10;19;17 알고 보니 딸바보였던 올렉 씨 00;10;19;17 - 00;10;24;06 여느 아빠들처럼 한참을 딸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00;10;26;01 - 00;10;28;01 식사도 마쳤겠다 00;10;28;01 - 00;10;31;24 이제 최용신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00;10;32;16 - 00;10;37;01 최용신 기념관에 오신 것을 너무나 환영합니다 00;10;37;01 - 00;10;39;23 저는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00;10;39;23 - 00;10;44;27 안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장은정입니다 00;10;44;27 - 00;10;47;20 일제 강점기라고 들어보셨나요 00;10;47;20 - 00;10;56;23 그 당시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서 식민지 생활을 하였던 그 시대거든요 00;10;56;23 - 00;10;58;12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0;58;12 - 00;11;00;22 그래서 이것 알고 있어요 00;11;02;22 - 00;11;10;04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지냈던 그는 관람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00;11;10;04 - 00;11;16;05 최용신 선생의 생애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00;11;17;24 - 00;11;21;14 최용신기념관 관람은 어떠셨어요 00;11;21;14 - 00;11;24;14 V5, 1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어요 00;11;24;14 - 00;11;31;28 왜냐하면 그때 밥 없고, 돈 없고 00;11;31;28 - 00;11;34;24 일본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00;11;34;24 - 00;11;38;14 최용신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00;11;38;14 - 00;11;41;03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 00;11;41;03 - 00;11;45;11 이제 알아요 대단해요 00;11;45;11 - 00;11;53;20 그 어려운 시대에 학교를 만들고 한글 가르치셨다는 게 대단해요 00;11;53;20 - 00;11;58;17 근데 일찍 돌아가셔서 좀 속상해요 00;11;58;17 - 00;12;01;05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2;01;05 - 00;12;06;19 우리도 8월 15일이 특별한 날이에요 00;12;06;19 - 00;12;14;29 절하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요 00;12;14;29 - 00;12;19;12 재미있고, 슬퍼요 00;12;19;13 - 00;12;24;00 오는 8월 15일에 뭐 하고 싶으세요 00;12;24;00 - 00;12;30;27 여기 와서 (최용신 선생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볼 수 있을 거예요 00;12;30;27 - 00;12;37;03 V5, 1 친구랑 같이 여기 영화 보러 올 거예요 00;12;38;18 - 00;12;45;06 최용신 선생님의 민족정신은 다문화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건가요 00;12;45;06 - 00;12;47;13 아뇨 당연히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 00;12;47;13 - 00;12;50;17 왜냐하면 최용신 선생님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00;12;50;17 - 00;12;55;28 교육활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이야기했던 것은, 애국심을 이야기했던 것은 00;12;55;28 - 00;12;59;06 강자들을 위한 게 아니고 약자들을 위한 거였거든요 00;12;59;06 - 00;13;05;14 안산은 진짜 다문화 도시잖아요 거대한 다문화 도시라고 해도 진짜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00;13;05;14 - 00;13;08;25 이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00;13;08;25 - 00;13;13;26 아직도 한글을 몰라서 소통을 못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00;13;13;26 - 00;13;19;08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용신 선생님처럼 교육활동을 펼친다면 00;13;19;08 - 00;13;24;12 같이 어우러지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00;13;24;12 - 00;13;32;01 우리는 보통 다문화 사회라고 할 때 인종으로 구별을 하거나 국적으로 구별을 하죠 그런데 00;13;32;01 - 00;13;35;24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00;13;35;24 - 00;13;39;29 인종이나 국적 같은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00;13;39;29 - 00;13;41;27 그리고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00;13;41;27 - 00;13;48;17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그냥 물리적으로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00;13;48;17 - 00;13;52;07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00;13;52;07 - 00;13;57;05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봅니다 00;14;01;13 - 00;14;06;25 소나무나 향나무 같은 경우에는 사철 푸르러어요 00;14;06;25 - 00;14;10;15 이런 푸른나무를 상록수라고 해요 00;14;10;15 - 00;14;13;08 책 제목이 아까 뭐라고 했죠 00;14;13;08 - 00;14;15;19 책 제목도 상록수였죠 00;14;15;19 - 00;14;21;16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00;14;21;16 - 00;14;24;12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살았잖아요 00;14;24;12 - 00;14;28;04 거기에도 굴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마음 00;14;28;04 - 00;14;33;03 그런 마음이 바로 상록수 정신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00;14;36;05 - 00;14;41;07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의 본질은 00;14;41;07 - 00;14;46;21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00;14;46;21 - 00;14;50;16 수십 년이 흐른 현대 사회에서도 00;14;50;16 - 00;14;55;28 누군가는 여전히 억압 속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00;14;55;28 - 00;15;00;10 최용신 선생께서 현대 사회를 마주하셨다면 00;15;00;10 - 00;15;05;00 바로 그들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셨을까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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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이게 실화라고... 삼일절에 아기 낳았다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퍼뜨린 어느 미국인 역대급 스토리, 결말포함 4분 몰아보기
3.1절, 서울에서 한 미국인 기자의 가족이 겪은 놀라운 실화...!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집 딜쿠샤(기쁜 마음의 궁전)는 지금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제 추방, 구두에 숨겨진 선언서, 돌아오고 싶었던 땅, 그리고 그가 끝내 묻힌 자리까지... 이 4분짜리 영상 하나로, 잊혀졌던 실화가 다시 살아납니다. #광복절 #딜쿠샤 #실화다큐 #서울 #명소 #몰아보기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Lance Conrad - Waiting and Hoping Yaniv Hayoun - I Hope Brianna Tam - Pursuit Starluxe - Lift Babies - Baby Sobbing Uncontrollably Historical Army - Rifle Gunshot, Single Shots Bullpup Firearms - Enfield L85, Cocking Gun, Loading Electric Typewriter - Write, Medium speed, Aggressive, Room Brazil Crowds - Demonstration Voices, Shouts, Applause, Chants, Sao Paulo Steps Hardwood - Dress Shoes, Jumping, Landing Elegant Footsteps - Dress Shoes, Scuffing, Dirt Steps Carpet - Sandals Running Foley, male breath, fast and slow, variation continuous Traps and Cages - Prison Cell Door Beautiful Birds - Aves Ambience in Nature - 사용 폰트 부크크 명조체 (주)부크크(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Bodoni 72 Smallcaps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Bodoni 72 Oldstyle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Apple SD 산돌고딕 Neo Apple (Apple 기기 사용자 상업비상업 사용 가능) Y이드스트릿체 (주)케이티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Sandoll 백종열필 산돌커뮤니케이션 (일반 디자인 상업적 사용 가능) G마켓 산스 TTF (주)이베이코리아 / G마켓 (상업적 사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ElevenLabs, Midjourney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딜쿠샤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시나요.조선을 사랑한 미국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곳은 딜쿠샤. 1923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가 지은 붉은 벽돌집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지요. 이 집은, 한 외국인이 조선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역사의 증거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탄생한 한 미국인 아기와 구두 덕분에,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같은 시각,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특파원으로 온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칩니다. 간호사는 황급히 메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불 밑에 종이 뭉치를 숨겼습니다. 곧 이어 병문안을 온 앨버트가 아기를 안아올리자 떨어진 종이. 그것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몰래 인쇄했던 독립선언서였습니다. 그날 밤, 앨버트의 동생은 조선을 떠났습니다. 구두 뒷축에는, 독립선언서 사본과 형이 쓴 영문 기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운동에 관한 내용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테일러는 조선을 잊지 못했습니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에 묻혔습니다. 딜쿠샤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치된 채 남아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복원 과정을 마치며 펜으로 지킨 집 딜쿠샤는 다시 시민들에게 열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펜을 든 이방인의 마음은 지금도 이 집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그곳은, 진실을 전하고 사랑한 땅에 끝내 돌아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의 딜쿠샤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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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의 길, 오늘의 나
80년 전 그날, 오늘 우리가 걷는 이유 1919년의 봄,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 그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작은 생가에서 시작된 저항은 지금도 천안의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영상은 유관순 열사 생가, 기념관부터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까지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천안 곳곳에 남겨진 과거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기증 저작물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04489menuNo=200020#self 저작권자: 소향 외 11]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CC BY 라이선스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48780menuNo=200020 저작 권자: 임다솔]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사용 폰트 조선100년체 - 조선일보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부크크 명조 - (주)부크크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VOLI의 AI보이스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과 천안 사적관리소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 니다 대본 00;00;01;05 - 00;00;03;05우리의 시간이 멈췄던 날00;00;04;00 - 00;00;05;49한(恨) 맺힌 침묵을 깨고00;00;09;32 - 00;00;11;29울려퍼졌던 한(一) 목소리00;00;13;05 - 00;00;14;53대한독립만세!00;00;16;03 - 00;00;18;11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00;00;18;36 - 00;00;19;48오늘을 걷습니다00;00;30;19 - 00;00;32;36그들이 외친 독립을 기념하는 곳00;00;33;17 - 00;00;34;44독립기념관입니다.00;00;39;12 - 00;00;41;10나라를 수호하려는 결의와00;00;44;04 - 00;00;45;29피로 지켜낸 태극기00;00;48;02 - 00;00;50;051919년 3월 1일00;00;50;40 - 00;00;52;47모두가 한 마음 한(韓) 뜻으로00;00;53;16 - 00;00;54;59독립을 말하고 있었습니다.00;01;16;25 - 00;01;18;22그날의 현장 한가운데에00;01;18;41 - 00;01;20;34한 소녀도 있었습니다.00;01;25;30 - 00;01;28;16유관순은 그날의 한 뜻을 이어받아00;01;29;59 - 00;01;31;39병천의 작은 집에서00;01;32;19 - 00;01;35;19거대한 저항을 준비했습니다.00;01;37;55 - 00;01;40;55열여섯, 어린 소녀의 저항은00;01;42;10 - 00;01;45;10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이자00;01;45;22 - 00;01;48;22그녀가 문을 나서게 했던 원천이고00;01;51;11 - 00;01;53;11독립 열사의 길이었습니다.00;01;57;19 - 00;01;59;241919년 4월 1일00;02;04;36 - 00;02;06;55유관순과 3천 군중의 외침00;02;07;35 - 00;02;09;14대한독립만세!00;02;09;56 - 00;02;11;38대한독립만세!00;02;12;12 - 00;02;13;07만세!00;02;13;38 - 00;02;14;33만세!00;02;15;37 - 00;02;18;37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앞섰던 그 순간00;02;19;31 - 00;02;23;14유관순은 그 함성에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00;02;24;45 - 00;02;28;44그날의 소리는 오늘도 이곳을 스쳐 갑니다.00;02;29;40 - 00;02;32;52보이지 않아도 들리는 기억 속 그날처럼00;02;36;15 - 00;02;38;20이제 그들의 곁에 휘날리는00;02;38;20 - 00;02;41;21태극기는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00;02;45;51 - 00;02;46;53유관순00;02;48;37 - 00;02;50;02순국자를 추모하며00;02;52;05 - 00;02;54;40그들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00;02;59;20 - 00;03;02;24그들이 있었기에 피어날 수 있었던 우리가00;03;03;00 - 00;03;04;33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00;03;28;18 - 00;03;30;54그들의 영을 위로하는 추모의 자리에서00;03;33;09 - 00;03;34;57우리는 굳게 다짐합니다.00;03;38;22 - 00;03;39;59피땀으로 지켜00;03;39;59 - 00;03;44;17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00;03;44;17 - 00;03;45;24겨레여00;03;45;24 - 00;03;47;06이 나라를 길이 빛내자00;03;50;52 - 00;03;53;07독립 열사의 희생이 이뤄낸 광복00;03;54;37 - 00;03;56;53우리의 다짐으로 지켜낸 80년00;03;58;36 - 00;03;59;09오늘00;03;59;46 - 00;04;02;17우리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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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 menuNo=200020wrtSn=13316936),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저작자표시 4.0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 용하였습니다.(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의 공공저작 물을 이용하였습니다.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55229menuNo=200020), 작성자:주식회사 아이티앤]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설화, 기증 박세임, 공유마당, CC BY - 사용 폰트 AppleGothic - apple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의 나레이션은 생성형 AI elevenlabs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정책방송원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셀수스협동조합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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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단재의 발자취를 따라
고지 사항 사용음원: 한국저작권위원회-임다솔의 우리네 소리를 듣다 은 CC BY라이선스로 제공됩니다. 사용폰트 : 고운바탕 ,에스코어드림, 굴림-Regular, KoPubWorld 바탕체-Medium, Noto Sans KR-Regular 사용 생성형 AI :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Kling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단재신채호생가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바쁜 일상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대전 중구 어남동 이곳은 단재 신채호가 1880년 태어난 생가지이다.독립운동가, 역사학자, 사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신채호 그의 유년시절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신채호는 조부인 신성우로부터 유학교육을 받게 되었는데요. 손자인 신채호에게 6살 때부터 한학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유학교육을 시켰고, 그래서 이미 10세 전으로 신채호가 통감절요나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을 이미 다 섭렵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신씨 가문의 대단한 천재가 났다. (라는) 소문들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생가지 인근에는 홍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고 있다. 제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도 다니곤 하거든요.근데 집 주변에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가 있다고 해서 관람 차 방문했습니다. Q.신채호를 어떤 인물로 알고 있는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신채호는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독립전쟁을 강조하는 독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 조선혁명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조선혁명선언문에서 신채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줄여서 대답을 한다면, 폭력혁명으로 속박상태에 있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야 된다 라는 것이었고요. 이런 폭력 투쟁론을 통해서,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을 비판하고 그걸 통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 모두가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성취해야 된다. (라는 것을)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1936년 신채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못한 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이 광복 이후 생가로 돌아왔다면 어떨까? 생가지 보고 엄청 놀라시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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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LA한국문화원] 한국 역사문화 교육자 세미나 (5일)
내레이션LA한국문화원은 2016년 6월 20일부터 6월 24일까지 5 일동안 한국역사문화 교육자 세미나를 개최했습니다. Korean Cultural Center Los Angeles held the Korean History and Culture Seminar for American Educators for 5 days starting from June 20th to June 24th, 2016. 인터뷰:김성순nkss디렉터이 세미나의 목적은 미국 교육자들에게 한국 역사 문 화 강의와 체험을 통해서 한국을 전파하고, 또 궁극적 으로는 학생들에게 한국을 가르치게 하는 데 있습니다. 2004년도에 처음 이 세미나가 시작된 이래로 이제까지 전국적으로 약 2000여 명의 미국 정규학교 초중고와 대학의 교육자들이 이 세미나에 참석해왔습니다. Upon the inception of the seminar in 2004, about 2,000 American educators from accredited K-12 to universities have attended this seminar. The purpose of this seminar is to promote Korea to American educators though lectures and workshops on Korean history and culture, and ultimately extend to teach their students about Korea. Now, I will play the seminar video that highlights the lectures and workshops. 인터뷰:Susan GoldmanYou know it's sad because I know so little.But like third of my student is Korean so I thought like after so many years I need to come here to learn about Korea.제가 한국에 대해 너무 모르는것 같아 아쉬웠어요. 제 학생들 3분의 1이 한국 학생들이거든요. 몇년이 걸렸 지만 드디어 한국에 대해 배우기 위해 여기를 찾았어 요.왜냐하면 제 학생 중에 한국인이 정말 많거든요. 전 한 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어요. 음식 빼고요. 하 지만 오늘 보니 한국음식에 대해서도 많이 모르는 것 같네요. 연설:총영사님대한민국 성장의 열쇠는 첫번째 가장 큰 요인인 교육, 두번째 한국인의 부지런함에 있습니다. 또한 리더십과 물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도움 역시 빼놓 을 수 없습니다.Pay attention to Korean then you will be paid. Thank you.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세요. 분명히 값진 경험이 될것입니다. 선생님I have to be honest with you. Reason that I came here is I was really devoided of information about the Korean culture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한국 문화에 대해 너무 몰라서 여기를 오게 되었어요. 선생님Hmmm Only thing I really know about Korea before was about Korea war which is something that lot of textbooks really stressed a lot was about the Korean war other than that lot of my students are in K-POP전에는 한국에 대해 아는거라고는 한국전쟁 뿐이었어 요. 책에서는 한국 전쟁에 대해 많이 집중해서 가르쳐 요. 그리고 제 학생들이 K-POP에 관심이 많아요. 선생님but today this is whole new thing It's like a full course in history which is that's why I'm like a student. So I'm thinking everything in the first time.오늘은 정말 달라요. 전 오늘 학생처럼 한국 역사를 처 음 배우는 자세로 임할거에요. 모든걸 처음으로 접하 는거죠. 선생님I've known that Korean art was very influenced by Chinese ideas and Chinese art.It was very interesting to learn the way that Korean art is distinct. Ceramics and Scholar official painting and the Silla crown. It takes some ideas and gives some ideas to other cultures. Developed its own traditions artistically. It's fascinating.제가 알기로는 한국 예술에 중국의 영향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한국 예술이 뚜렷하게 다르다는것을 듣고 신기했어요. 도자기와 학자들의 그림, 그리고 신 라 왕관까지. 영향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며 한국만 의 예술적인 전통을 만들었네요. 정말 놀라워요. 선생님I had a Korean student last four years and his family was first generation here so it's hard for me to communicate so when I saw this it was opportunity for me to know a little bit.I'm not gonna learn the whole languagebut least I learn how to say hello, thank you and i think that's important to make them feel welcomed to the class.4년전에 한국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 가족이 1세대 이민가족이었어요. 소통하기가 정말 어려웠죠. 그래서 이번 기회로 좀 더 배울수있겠다 생각했어요. 뭐 한국 어를 다 배울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안녕하세요, 감사 합니다 라는 간단한 인사 정도만 배워도 좋을것같아요. 학생들이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갖는게 중요하거든요 선생님We had the previledge of making the roll of 김밥 and I think that in itself is an amazing collabortive assignment to bring to the classroom the Korean cultural food and what they know as well in relative and maybe make a connection to other types of food. So, international food, sushi technique that but I think that's an assignment that we can actually do to and I appreciate the collaboration of it doing it as one roll and that was really fun activityYes, enjoyed a lot.And it was delicious.김밥을 만들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이런 기회를 통 해 모두가 협력하여 한국 문화를 교실로 가지고 올수 있고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정보와 비교해서 다른 종류의 음식과 연결해 생각할수 있는것 같아요. 그래 서 김밥 마는것은 우리가 실질적으로 할수 있는 일인 것 같고, 다같이 하나의 김밥을 만드는 엑티비티는 정 말 즐거웠어요.네, 정말 재미있게 했어요.아 그리고 정말 맛있었어요. 선생님:아직 먹어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한과를 먹기 전에 차를 먼저 다 마시지 않으면 차의 맛을 음미할 수 없다 고 했거든요. 선생님:맛이 훨씬 좋은데요? 엄청 과일향이 강할 거라고 생각 했거든요. 선생님:이제 떡을 조금 먹어볼 겁니다.하하. 발음 좋아요.왜요? 떡 맞아요. 이 분은 제 발음을 놀리고 계시네요. 선생님:I'm not strong in languages but it was so well developed graphically, and explained so well.Illustrations and 'cutting edge' as far as the graphics.very very well made.제가 언어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이 영상은 그래픽과 설명이 정말 뛰어났어요. 그림들과 그래픽이 정말 최첨 단이었어요! 정말 잘 만든 것 같아요. 선생님:안녕하세요, Aaron입니다. 반갑습니다. 선생님:지금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어요. 마이라 입니다. 반갑 습...제가 제일 어려워했던 부분이에요. 반갑습니다 선생님:(Yunme Hanks가 쓴 시조 한글번역본)고향이 어디오하면 엘에이라 대답하지 선생님:너무 예뻐요.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저는 한국이 미국에게 우정의 종각을 선물했다는 사실 을 몰랐어요. 놀라워요. 강의자:생각해보세요. 1950년대에 미국에는 한국을 알거나, 심지어는 한국이 지도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강의자:그리고 나서 우린 태평양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죠. 바 다에 나간지4일째 되는 날 이틀동안 폭풍우가 불었고 모두가 병이 났어요. 건강하던 사람들까지도요.결국 다들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탄약이 다 떨어지고 있다고 했죠. 한사람이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지거든요. 선생님:이건 뭐랄까, 평생 기억할만한 일인 것 같아요.정말 신기했어요. 재밌었어요. 저 종을 치는 것이 매우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게 종을 치는 것 같아요. 그리고 ( 저 진동을) 바닥에서도 느낄 수 있죠. 강의자:I'm actually the rarest type of Korean.I'm true third generation Korean decendant of first wave of Korean immigration ealy 1900.My father when he was younger, never ever thought Korea was ever gonna be break.전 정말 보기 드문 한국 사람입니다. 전 3세대 한국 사 람으로서 이민 열풍이 처음 불었던 1900년대 초기의 이민자들의 후손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는 한 국이 이렇게 자유를 누릴 수 있을거라고 상상도 못하 셨답니다. 인터뷰: 김성순nkss director재밌게 보셨나요? 지금 보신 내용 이외에도 참가자들 이 교실에 돌아가서 당장 쓰실 수 있는 교육 자료들과 교수 방법들을 제공했습니다.특별히 금년부터는 Common Korea와 세미나 전체 강의를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온라인상에서 보실 수 있 도록 했습니다.내년에는 더 많은 선생님들을 만나뵙기를 바랍니다.Did you all enjoy the video? Aside from the video you just watched, I’ve also provided educational material and teaching methods that can be utilized in classrooms.Especially starting this year, you’ll be able to view the Common Core:Korea and all the lectures online.I hope I can meet even more teachers next year 선생님:Look this is gonna be perfect for my students. And for me because they know more than I do about their Korean cultures. So this would be for me to refer back.이건 저희 학생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거에요. 물론 저에게도요. 저보다 제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더 많이 알거든요. 앞으로 이 책을 참조해야겠어요. 강의자:파워포인트 파일이에요. 한국 역사에 대한 내용이 담 긴 40개의 파워포인트 파일입니다. 강의자:this is ten years work of blood and sweat. And if you take anything from today I want you to say 'what you learn here', Leaves here.Correct. So you are going to share with your colleagues and friends what you learned today.이건 십년동안 흘린 피와 땀이에요. 오늘 만약 이곳에 서 배운것이 있다면 이렇게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여 기서 배운것은,” “이 교실 밖으로 나간다.” (all teachers answer)맞아요. 나가서 직장동료들과 친구들과 오늘 배운것에 대해 나눴으면 좋겠어요. 세미나 추천의 말 시작 So this whole week has been one of the most wonderful learning experiences that I've ever had.이번 한주는 정말 가장 훌륭한 학습 경험중에 하나였 어요. You know, I just wanna highly recommend this seminar It's been simply phenomenal all the presentation we had this week have really enhanced my knowledge on Korea. I can't wait to go visit.정말 이 세미나를 추천하고 싶어요. 정말 경이적인 경 험이었어요. 모든 프렌젠테이션들이? 한국에 대한 저의 지식을 높여주었어요. 빨리 한국에 놀러가고 싶어요. Workshops and our lectures, it's just, everything was amazing. and I highly recommend this seminar to any educator in the United States abroad. 모든 워크샵들과 강의는 정말놀라웠어요. 미국과 전세 계에 있는 모든 교육자들에게 매우 추천합니다. I just loved it. It was great. I think that right now there's lot of hateful things in media like 트 럼프 things but this kind of space really built community and empathy among people so we can learn from each other and have a peaceful world. 정말 너무 좋았어요. 요즘에 매체들에 여러 안좋은 얘 기들이 많이 떠도는데 이런 공간은 공동체를 만들고 사람들 사이에 공감대를 생성해서 서로로부터 많이 배 우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수 있게 도와주는것 같아요. Everything is so positive, and everybody is so nice, and helpful, and hardworking and we help each other. I was able to form a network with other friends like another attendants and now i have friends that I've never known before. So..keep it up. It's wonderful experience. Thank you.모든게 정말 긍정적이고 모두가 정말 친절하고 서로를 도와주며 열심히 했어요. 전에는 한번도 본적 없는 사 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친구가 되었어요. 계속 힘 써주세요.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So I just wanted to say thank you very much. I told many of the people involved that i feel like i would been attending the United Nation summit on South korea I've learned so much and the quality of the speakers, presentations, activities have been phenomenal.i think people will pay thousands of dollars to attend sessions like this. I can't wait to introduce this course to my colleagues, friends and principals, other teachers, family members.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여기 있는 많은 사 람들에게도 이미 얘기했지만, 정말 한국의 UN 정상 회 담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많은것들을 배웠 고 프렌테이션과 연설자들 그리고 엑티비티가 정말 훌 륭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천불단위로 돈을 주고 올 만 한 세션인것 같아요. 빨리 제 동료들과 주위 교장 선생 님인 친구들에게 소개 해주고 싶어요. what a great experience thank you!we will come back!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저희 꼭 다시 올거에요!
김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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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주LA한국문화원] "정악과 정재" 공연
내레이션7월 22일 금요일. LA한국문화원의 3층 아리홀에서 2016 공연작품 공모전인 아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정악과 정재'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한국음악무용예술단 김동석 단장이 국립국악 중, 고등학교 미주동문회와 함께 궁중음악(정악)과 궁중무용(정재)을 선보였습니다. On July 22nd, on a Friday night, the “Traditional Court Music and Dance” performance was held at Ari Hall located on the 3rd floor of the LA Korean Cultural Center. As part of the 2016 Ari Project, Dongseok Kim, leader of Korean Classical Music Dance Co. collaborated with the American alumni association of Gugak National Middle and High School and presented court music (jeongak) and dance (jeongjae). 인터뷰I really enjoyed it. I had not (more..current..) much traditional korean music and dance before and I was very interestedand so it was excited to get the opportunity and it was very very beautiful it was very comming the music and dance looks really precise which i really appreciated and...uh..it was very (intrigue with) and really enjoyedjust in general with the costumes were beautiful all of them. overall very enjoyable. really learned a lot.정말 잘 봤어요. 관심은 많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전통 음악이나 춤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볼수 있어서 너무 신났었어요. 춤과 노래가 정말 아름다웠고, 음악은 고요하고 춤은 정교해서 제가 정말 잘 감상했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특히 의상들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정말 즐겨보았고 많이 배웠어요.1.정악 합주(Court Music Ensemble)상령산(Sang Ryung San)단소(Danso) 김동석(Kim Dongsuk)피리(Piri) 윤정림(Yoon Jungrim)해금(Haegum) 김미자(Kim Mija)가야금(Gayageum) 김영희(Kim Younghee)거문고(Geomungo) 이성기(Lee Seongki)2.무용(Court Dance)태평무(Taepyong-Mu)김민정(Kim Minjung)3.18현 가야금 독주(18 Strings Gayageum Solo)춘설(Spring Snow)가야금(Gayageum) 김영희(Kim Younghee)장고(Janggo) 김동석(Kim dongsuk)4.정악 합주(Court Music Ensemble) 천년만세(Cheon Nyeon Man Se)단소(Danso) 김동석(Kim Dongsuk)피리(Piri) 윤정림(Yoon Jungrim)해금(Haegum) 김미자(Kim Mija)가야금(Gayageum) 김영희(Kim Younghee)거문고(Geomungo) 이성기(Lee Seongki)5.무용(Court Dance)춘앵전(Chun Aeong Jeon)최은아(Choi Eunah)6.거문고 독주(Geomungo solo) 산조(Sanjo)거문고(Geomungo) 이성기(Lee Seongki)장고(Janggo) 김동석(Kim dongsuk)7.가곡(Gagok)언락, 편락(Unrak, Pyunrak)노래(Singer) 김동석(Kim dongsuk)가야금(Gayageum) 김영희(Kim Younghee)거문고(Geomungo) 이성기(Lee Seongki)장고(Janggo) 장경선(Chang Kyungsun)피리(Piri) 윤정림(Yoon Jungrim)해금(Haegum) 김미자(Kim Mija)?
김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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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문화직업30] 패션디자이너 편
문화직업30 패션디자이너 편황재근 / 패션디자이너 ※ 영상의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포함한 대본을 제공합니다. 질문 패션디자이너에 대하여 인터뷰안녕하세요. 패션디자이너 황재근 입니다. 패션디자이너는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직업이에요. 의류를 포함해서 뭐 사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들어간다고 보면 되요. 그,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다. 패션쇼 할 때 모델 있지요, 옷 있지요, 에어 메이크업 있지요, 신발 있지요, 가방 있지요, 이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다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다. 질문 패션디자이너의 업무 인터뷰패션디자인은 항상 짧게는 6개월부터 길게는 1년까지 앞서나가요. 올해 여름이지만 내년 여름에 무엇이 유행할지 예측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예측을 한 다음에 영감을 찾아요. 어떤 스타일의 옷을 만들겠다. 그래서 자료 수집을 먼저 한 다음에 그것에 맞춰서 이제 스케치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패턴이 나오고 패턴으로 이제 한 번 만들어 보는 거에요. 원단을 입혀서 대보고 아, 이 원단이 났겠다. 여기는 파란색 여기는 빨간색 이게 났겠다. 아니야, 한톤이 났겠다, 이런 것을 정해요. 정한 다음에 옷을 만들어보고 그걸 샘플이라고 하거든요. 그 다음에 이제 그게 공장으로 가요. 생산 공장, 500개를 만들겠다, 천개를 만들겠다, 스몰 사이즈, 미디엄 사이즈, 빅 사이즈 이런 식으로 나눠가지고.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면 옷이 최종 매장으로 갈 때 까지. 거기가 끝이에요, 패션디자이너가 관리하는. 예, 굉장히 복잡하죠. 아주 많아요(과정이). 많아요. 날마다 정신없어요. 질문패션디자이너의 가능성 인터뷰패션디자인은 굉장히 범주가 넓어요. 단순히 옷이라고 하기에 굉장히 범주가 넓고 의식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아무리 불황이어도 브랜드가 망해도 또 그만큼 브랜드가 생겨나고 그다음에 사실 경기가 안 좋으면 사람들이 옷을 안산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안 사지는 않고 싼 옷을 사게 되거든요. 없어지지 않을 분야이기도 하고 그다음에 그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적인 것을 추구하는 모든 영역 중에 가장 중심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아주 멀 것 같지만 자기 생활하고 너무 가까워요. 옷을 안 입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질문 디자이너로서의 보람 인터뷰디자이너는 사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쓱 그림 그리면 알아서 옷이 나오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 옷을 직접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 옷이 맨 처음에 기획 되어서 디자인 되어서 상점으로 출고 되어서 사람들이 입을 때 까지 모든 과정을 점검하고 검토하고 또 확인하고 확인하고 하나의 실수가 없도록 다 책임 관리하는 지휘자와도 같아요. 그런 일이 패션디자이너의 직업이기 때문에 옷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어서 나와서 매장으로 갔을 때 정말, 이걸 정말 어떻게 이야기 하지? 작품이라기보다는 아이가 생긴 것 같이 보람이 될 때가 많고 그 옷을 누군가가 입고 다니는 것을 봤을 때 다시 한 번 (보람을)느끼게 되지요. 질문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 인터뷰일단은 패션을 아주 좋아해야 되요. 좋아해야 하고 자기가 옷을 잘 입는 것으로부터 일단 출발을 하게 되지만 그것 이외로 남에게 어떤 옷을 입히면 좋을까, 이런 옷을 디자인해서 이렇게 한 번 개발을 하면 어떨까라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 어떻게 이야기해야하지? 그냥 패션을 사랑하면 되요. 하하하. 왜냐면 대부분 처음에 패션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학생들을 보면 그냥 멋있고 화려해보이니까 이런 경우가 매우 많아요. 실질적으로 실무를 접하게 되거나 공부를 접하게 되거나 이러한 경우에 인내해야하는 과정이 많기 때문에 정말 패션을 좋아하지 않으면 취미 이상으로 직업적으로 좋아하지 않으면 패션디자이너를 할 수가 없어요. 수많은 과정들을 계속 관리하면서 또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일이 많아요. 중고등학교 때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초등학교 때도 많이 생각하지만 중 고등학교 때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이 생기게 되니까. 예술적인 것들에 대해 많이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보기도 하고 그 다음에 그림 그리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고 컬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파운데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의상 학교에 가면 맨 처음 하는 것들이 그런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서 연습하게 되거든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림을 반드시 잘 그려야 되느냐는 아니에요. 하지만 잘 그리든 못 그리든 그려본 것과 그려보지 않은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 질문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인터뷰도전해야 되요. 도전해야 되요. 도전하세요. 도전하세요. 그 다음에는 힘들거에요. 그 다음에는 인내하세요. 인내 그 다음에는 자기의 꿈을 활짝 펼칠 기회가 옵니다. 왜냐면 패션디자이너는 평생 하는 직업이에요. 일 년 안에 내가 정말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어야지 이렇게 될 수가 없는 구조에요. 오래 걸려요. ----------------------------------------------------------------------------- 직업안내 패션디자이너가 되려면?교육/자격/훈련 _창의성과 색채감각, 조형미, 미적 감각, 유행 감각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예술형과 탐구형의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하며 적응성, 혁신, 인내심 등의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패션디자인, 의류제작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워크넷 www.work.go.kr 한국직업정보시스템)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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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주스페인한국문화원] 제 3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제 3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열렸습니다!세종학당에서 1년간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을 배운 스페인 학생들이 대회에 참여하여 한국어 실력을 뽐냈는데요!한국의 보물을 주제로 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대 본 --------------------------------------------------제목 : 제 3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안녕하세요. 저는 모니카입니다.안녕하세요. 저는 마리아에요.제 이름은 헨리입니다.저는 줄리아입니다. 반갑습니다.내래이션 지난 5월 주스페인한국문화원에서 제3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내래이션 세종학당 학생들이 지난 일 년간 공부해온 한국어 실력을 뽐내는 자리로 마련되었는데요.내래이션 대회는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보물’에 대해서 3분간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레오노라 _ 사회자 주스페인한국문화원은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스페인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개최한 이 행사가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특별한 경험으로 남길 바랍니다.여러분들은 자신이 고른 주제에 대해서 삼분의 시간 동안 발표를 하게 됩니다.내래이션 학생들은 한국에 여행했던 경험을 발표하거나 방탄 소년단, 한식, 한강 등을 한국의 보물로 꼽았습니다.내래이션 그럼 스페인 세종학당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 한번 들어보도록 할까요?1. 첫 번째 한국 여행 (한국여행기) _ 라껠 Raquel저는 지난 가을에 처음으로 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유럽만 여행했었기 때문에 한국여행에 대한 기대로 매우 들떠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이틀 동안 한국의 다양한 장소를 방문했는데, 친구 중 한 명인 모니카가 전에 한국에 와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저희는 길을 헤매지 않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가을이어서 날씨가 맑고 기온이 온화했습니다. 한국에서 먹은 음식은 모두 맛있었습니다. 지금도 가금 한국에서 먹었던 매운 음식과 캔커피가 생각납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첫 번째 한국 여행은 참 즐거웠습니다. 꼭 다시 돌아갈 수 있겠죠? 감사합니다.2. 시인 김수영 (김수영) _ 네가르 Negar오늘은 한국의 시인 김수영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192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시는 사랑과 자유를 노래합니다. 초기에는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쓰다가 나중에는 다른 스타일로 변했습니다. 사회문제를 제기했을 때 쉬운 언어를 때로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시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해방 후에 등장한 시인들 중에 김수영 같은 시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사후에 비평가는 그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김수영 씨를 한국의 보물로 여깁니다.3. 나의 한국 이야기 _ 에두와르도 Eduardo오늘은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 관점에서 본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저는 제 한국어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한글을 공부하실 때 처음에는 하나도 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한국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비록 ‘뭐라고요?’, ‘천천히 말씀해주세요’ 라고 여러 번 물어 볼 수도 있지만요.한국사람들은 한국어를 배우려는 우리의 노력을 굉장하다고 생각하고 항상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도와주려고 할 겁니다. 모두 힘내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래이션 유창하진 않았지만 서툴게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의 보물에 대해 말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숨은 노력이 보이는 듯하였습니다. 내래이션 모든 사람의 발표가 끝난 후 심사 전 막간을 이용하여 서예 시연이 펼쳐졌는데요. 자신의 이름이나, 좋아하는 단어들을 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내래이션 긴장되는 1위 발표의 순간, 1위의 영광은 시인 김수영에 대해 발표한 negar 에게 돌아갔습니다.내래이션 주스페인 한국 문화원이 주최한 이 행사는 한국어를 스페인에 널리 알리고, 한국어 학습을 장려하기 위해 개최되었습니다.
이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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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다시, 한복
절은이들은 한복을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것이라는 편견과 다르게, 2016년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한복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한복은 어떻게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일까요? 그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제목 다시, 한복10대부터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한복을 입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연인,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놀이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내레이션 다시, 한복자막 다시, 한복내레이션 특히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다양한 SNS에 오르면서 한복은 더욱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그 요인을 한번 알아볼까요?자막 SNS를 타고 부는 한복 열풍, 1020 여성들이 주도하다.자막 한복이 다시금 주목을 받기까지에는 어떤 힘이 작용했다고 보시나요?인터뷰, 자막 한복더하기 대표 이진아한복 입으면 음료 할인 이런 식으로 이렇게 한복에 대해 긍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퍼뜨려주니까오히려 학생들도 한복 입고 다니면서 해택 누리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그런 나라와 시민들의 전체적인 긍정적인 이미지잖아요? 한복은.그런 마음들이 모여가지고 이런 유행이 되는 것 같아요. 서로 뿌듯하니까.자막 한복의 강점은 무엇일까요?인터뷰, 자막 와서 입어보면 편하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한복이 다른 옷보다 좀 더 좋기도 하고또 편한데도 한복이 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있어서 한복은 치마도 곡선이고 저고리도 곡선이고 어깨도 더 둥그스름하게 잡아주기 때문에애들이 입었을 때 태가 너무 예쁜 거에요. 자막 어떤 한복이 인기가 있나요?인터뷰, 자막 여자들은 조금 화려한 거 나는 황진이처럼 입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고어떤 친구들은 나는 우아하고 파스텔 톤의 느낌을 입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그래서 그렇게 두 분류로 나뉘어서 고르기 때문에 저희도 그런 쪽 디자인을 좀 많이 하기도 하고.자막 한복을 입은 소감이 어떠세요?인터뷰, 자막 딱 붙지 않고 커서 굉장히 편해요. 조금 덥기는 하지만.자막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인터뷰, 자막 궁만큼은 옛날 느낌이 그대로 있으니까 여기서 만큼은 한복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처음에 그렇게 입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자막 한복의 강점은 무엇일까요?인터뷰, 자막 일상을 탈출한다는 느낌도 있고, 예쁘잖아요.그리고 앉을 때 여자들은 치마 같은걸 신경을 써야 하는데 치마가 길다 보니까 그런 것 신경 안 써도 되고 편한 점이 많아서 입었던 것 같아요.자막 1020 여성들의 한복열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인터뷰, 자막 되게 좋은 것 같긴 한데 그것을 향유하는 층이 젊은 여성들 밖에 없는 게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한복이 남자들도 있고 어르신들도 있는데 꼭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만 일어나니까 그게 아쉬운 것 같아요.자막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인터뷰, 자막 저희는 대학교 4학년인데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고자 여기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SNS에서도 많이 한복 입고 촬영을 하시는데 너무 예뻐서 친구들이랑 오게 됐습니다.자막 한복의 강점은 무엇일까요?인터뷰, 자막 일단은 한복이 선이 정말 예쁜 것 같아요. 입었을 때 떨어지는 선들이 정말 예쁜 것 같고.두 번째로는 색감이 예쁘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저희가 더울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시원해서 좋은 것 같아요. 자막 한복을 평소에도 입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동참할 생각이 있나요?인터뷰, 자막 요새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한복을 입게 되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데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잖아요.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한복을 많이 입어서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고 우리한복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문화가 형성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내레이션 고궁에서 한복 입고 사진 찍기, 이제는 외국인들의 의례적인 이벤트가 아니라한국여성들의 놀이 트렌드로도 자리 잡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사용된 BGMON MY WAY HOME - YouTube Music Library
문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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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주동경한국문화원] 천연당 사진관 아트 프로젝트 도쿄전
이주용 교수 인터뷰 : “사라져가는 사진관이 그동안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었는지에 대한 기념비를 만들고 싶었고, 제일 중요한 것은 천연당 사진관에서 직접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경험하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일한국문화원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공동으로 [천연당 사진관-도쿄전]을 열었다. 천연당 사진관은 1907년에 서예가 김규진이 지금의 서울시 중구에 개관했으며, 일본에서 배운 사진술을 바탕으로 초상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한 근대 사진관이다. 전시기간 동안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이자 사진작가 이주용 씨가 직접 관람객들의 초상사진을 찍어 선물하였다.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았으며, 특히 직접 한복을 준비해 멀리 오사카에서 일부러 한국문화원까지 방문한 모녀는 이번 프로젝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 개화기와 사진 발명 초기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진기를 함께 전시하여 그 당시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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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뚝딱, 가족과 함께 하는 목공예 체험 활동
뚝딱뚝딱 가족과 함께 하는 나무공예 체험 활동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엔 과거 상봉역에서 춘천까지 연결되었던 경춘선 노선 중 마지막 간이역인 옛?화랑대역이 있습니다. 이 역은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역이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명소입니다. 이곳을 마주하고 있는 목공예 체험교실인 ‘목예원’에서는 가족단위의 체험객들이 방문하여, 직접 목공품들을 만들어 보고 집에 가지고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함께 미취학 아동이 나무로 만들어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문화PD와 함께 목예원으로 가보실까요? ----------- 대본 ------------ 1. 구 화랑대역 내레이션_ 2010년 폐쇄된 구 화랑대역은 더 이상 기차가 오가진 않지만, 기찻길 위로 예쁘게 핀 꽃들이 이 곳을 찾는 시민들을 향해 활짝 피어있습니다. 기찻길 건너엔 화랑대역을 마주보고 있는 목공예 체험 공간인, 목예원이 있습니다. 2. 목공예체험장 외부 내레이션_ 이곳에선 고사목, 태풍 피해목 등을 재활용한 목공품을 직접 만들 수 있습니다. 체험장으로 향하는 길에 목공재료가 될 나무들이 놓여있습니다. 목공예체험장 앞에 나무로 만든 책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예쁜 목공품들도 함께 우리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3. 목공예체험장 내부 , 활동 모습 내레이션_ 체험교실 안에선 목공작업이 한창입니다. 교실 한편엔 오늘 만들 목공품의 재료인 나무들과 망치가 준비되어 있고, 그 옆엔 공예품들이 놓여있습니다. 오늘 만들 목공품은 원목 의자입니다. 체험가족 모두가 목수 선생님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빠와 함께 나무 위치를 맞춰보기도 해보고, 아이들이 직접 나무에 풀도 바르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원목 의자를 만들어갑니다. 윙윙거리는 전동 드릴과 함께, 이쪽저쪽 꼼꼼하게 사포질을 하며 의자의 모습을 점차 갖춰나갑니다. 땅땅땅 망치를 두들기기도 하고, 목판에 그림들을 새겨 넣습니다. 마지막 손질을 거치면 내손으로 직접 만든 원목의자가 완성됩니다. 인터뷰_ 이경호_ 서울시 중랑구 묵동 조금 새로운 경험이었고, 아이들이 방학이라 같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인터뷰_이효연_서울시 묵동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가져가기 때문에 정말 좋은 것 같고, 돈도 많이 들지 않은 것 같아서 괜찮은 것 같아요. 4. 나무상상놀이터 내부 내레이션_ 목공체험장 건너에는 아이와 함께 나무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상상놀이터가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장난감과 함께 마음껏 뛰어다니고 소꿉놀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나무를 통해 온 가족이 언제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 곳, 목예원으로 한번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14기 서동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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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주시드니한국문화원]Korean Mama's Storytelling
제목: Korean Mama’s Storytelling 자막 Korean Cultural Centre Australia Story Time 자막 주시드니한국문화원은 지난 3월에 진행되었던 ‘스토리텔링 강사 양성 교육’을 통해 배출된 강사들을 중심으로 하여 ‘Korean Mama’s Storytellin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막 스토리텔링 강사들은 한국문화원 뿐만 아니라 지역 공공 도서관 및 교육기관 등에 파견되어호주 어린이들에게 한국 전래동화를 전달하고, 동화와 관련된 창작활동을 통해 새로운 문화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막 Manly Library Story Time Jason Miller 인터뷰정말 좋았어요! 아이들이 다른 나라의 의상과 사람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그리고 일부 이야기와 노래는 언어가 달라도 (호주의 것과) 비슷했어요.딸이 매우 좋아했습니다. Vicky Smith 인터뷰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한복은 매우 아름다웠어요.아이들이 멋진 의상을 보고 정말 신이 난 것 같았어요.그리고 그들이 얌전히 앉아 이야기를 즐기는 것에 놀랐습니다.지금 아이들은 자기만의 예쁜 신발(고무신)을 만드는 데에 신이 나있습니다.반응이 좋아서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자막 For more information, visit Koreanculture.org.au or www.facebook.com/koreanculturoo음원 Carefree Melody - Twin Musicom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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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7
[문화TV] 북바이북 미니콘서트 - 전영세 트리오
동네 곳곳 숨겨져 있는 문화공연을실시간으로 생중계하는 "문화TV LIVE!"상암동 북카페 '북바이북'에서 진행된'전영세 트리오의 미니콘서트' 다시보기 서비스가수 휘성, 조규찬, 거미, 바비킴, 리쌍 BMK 등다양한 뮤지션의 세션으로도 참여한전영세 트리오의 코리안 재즈감성을 느껴볼 수 있는 시간!!*문화TV란?국민 모두가 시간, 공간적 제약 없이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인터넷 생중계 서비스*문화체육관광부 문화포털 http://www.culture.go.kr/*문화포털 문화TV 다시보기http://www.culture.go.kr/mov/tvReviewList.do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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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디자이너들의 이유있는 연대, 보부상회 디자이너들을 만나다.
보부상회는 독립 디자이너들이 뭉쳐, 협동조합의 형태로 디자이너들의 연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 보부상회 디자이너님들의 인터뷰를 통해그들이 뭉치게 된 이유?그룹을 통해 이뤄내고자 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 ---------------------------- 인터뷰 대본 ? ? [ 보부상회 황병준 대표 ]: ? 보부상회는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직접 운영을 하고 그 안에서 물건을 제조하고 판매하고 디자인하는 활동들을 함께하는 협동조합입니다 . ? 서비스 형태에서 벗어나서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드는 제품들을 판매를 하고 그 디자이너들이 또 모여서 서로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 만들어졌고요 디자이너들이 많이 모여서 서로 협력해서 새로운 제품도 만들어 내고 작업도 하고 전시회도 하고 이 공간을 통해서 많은 시너지가 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 전시는 디자이너들이 홍보를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저희들이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 [ 김원란 도자작가 ]: ? 제가 우연한 기회에 10 년 전에 유럽에 전시를 가면서 그쪽 디자인 작가들이 굉장히 윤택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 대체 왜 윤택하게 잘하는지 알아봤더니 디자인 조합이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 그것으로 인해 창작활동을 아주 편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 그래서 우리도 이런 것이 있으면 좋겠구나 생각해서 마침 인터넷을 찾아보니 디자인 협동조합 있길래 내 발로 찾아갔죠 . ? [ 김한수 신발 디자이너 ]: ? 단지 디자이너 분들이 각 개별적인 분야에서 한정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또 한편으로는 요즘은 콜라보라는 개념을 가지고 지금 현재 저희가 활동하는 것처럼 저희처럼 신발 쪽을 디자인하는 사람들과 조명이나 가구 도자기 이런 여러 가지 다른 질감의 느낌과 다른 아이템이 합쳐져서 좋은 디자이너들이 같이 협업해서 만드는 제품들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또 그러기 위해서 저희가 만나서 회의도 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디자인을 창출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 ? ? ? [ 보부상회 황병준 대표 ]:( 클로징 ) ? 요즘에 독립 디자이너들이 많이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 ? 보부상회가 선배 된 입장에서 여러 디자이너들의 활동이나 전시회나 이런 것들을 지원하고 소통하면서 디자이너들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같이 함께해 나가는데 도움이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 ? ?
박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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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주브라질한국문화원] 브라질 인사이드 E6. 브라질 사람이 전을 만났을때
브라질 사람이 전을 만났을때 자막) 제 이름은 아기니 쓰입니다. 제가 이것을 시식해보겠습니다. 이름이 뭐였죠? 전. 자막) 아니요 자막) 한국 음식은 김치 빼고 한 번도 안 먹어봤어요 자막) 아니요, 이 음식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어요 자막) 떨려요 자막) 한꺼번에 먹어야 해요? 맙소사.. 자막) 알겠어요 알겠어요 자막) 이거요 자막) 저는 이 초록색이 가장 맛있어요 자막) 이게 제일 맛있어요 자막) 제 소감은 제가 먹어본 브라질 음식이랑 조금 비슷한 것 같아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자막) 사실 다 맛있었어요 자막) 많이 달라요(브라질 음식이랑) 자막) 저희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 같아요 자막) 한국 음식이 브라질 음식이랑 매우 다르지만 맛있어요. 튀김이랑 색감이 너무 예뻐서 브라질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브라질 사람들 입맛도 맞아서 많이 좋아할 것 같아요.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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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주동경한국문화원] 길위의 인문학-일본속의 한국을 찾아서
[길 위의 인문학-일본 속의 한국을 찾아서] 주일한국문화원에서 6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일본 속에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장소에 대해 강연회와 답사를 통해 배우고, 양국 간 오랜 교류의 역사를 재발견하는 [길 위의 인문학-일본 속의 한국을 찾아서]를 개최했습니다. 주제는“고려군과 고려신사”로 고고학자 다카하시 카즈오씨를 초빙하여 고려군과 고려신사에 대한 강연을 들어보았습니다. 또 24일과 25일은 고려신사를 직접 방문하여, 고려신사의 궁사(신관) 와 다카하시 카즈오씨로부터 고려군과 신사의 성립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신사 외에에도 연관이 있는 사찰 쇼덴인과 고마왕묘등을 견학하였습니다. 고려신사는 고구려 계통의 이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서기 716년에 고구려 왕족인 약광 등 1799명의 유민이 현 히다카시 일대에 정착해나간 것이 시초입니다. 고려신사에서는 지금도 고려왕 약광을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번 강연회와 답사를 통해 고대부터 한반도와 일본간의 문화,인적 교류가 활발했었음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습니다.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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