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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날의 뜻 오늘의 사람들 상록수의 주인공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을 아세요
여러분들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저 80년 전 있었던 역사 속 사건에 머물지는 않았나요?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80여년 전, 우리 국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계몽운동가로서 두각을 드러낸 일제강점기의 여성이었습니다. 소설 (상록수)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 오늘날에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광복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다음 저작물들은 공유마당 CC BY 정책에 따라 출처와 라이센스를 표기했습니다. 1. BLACK BOX-South Korea-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2. 국악연주곡_설날_대금-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3. 국악연주곡_홀로아리랑-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4. [최종]12월, 광화문 거리 교항곡-안수빈(무료) *CC BY 5. 한국의 미래-민지영(무료) *CC BY 6. 국악 배경음악 #140-주식회사 아이티앤 *CC BY - 사용 폰트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1. KBIZ한마음고딕체L 중소기업중앙회(무료) 2. 수성혜정체 수성구청(무료) 3. Pretendard SIL 오픈 폰트 라이선스 4. pln옥타곤 지우소프트(Adobe Font) #안산최용신기념관 #안산용신학교 #광복80주년 #문화PD 대본 00;00;07;00 - 00;00;15;26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00;00;15;26 - 00;00;20;22 1919년 3월 1일 조선인 대표 33인은 00;00;20;22 - 00;00;25;29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00;00;25;29 - 00;00;28;29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뒤 00;00;28;29 - 00;00;32;15 조선은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벗어났고 00;00;32;15 - 00;00;37;17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홀로 섰습니다 00;00;37;17 - 00;00;42;12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는 00;00;42;12 - 00;00;46;19 독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00;00;46;19 - 00;00;52;19 이제 광복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과거의 일이 된 것일까요 00;00;52;19 - 00;00;58;20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00;01;06;25 - 00;01;10;03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산 00;01;10;03 - 00;01;15;10 강산이 여덟 번 변할 시간이라던가요 00;01;15;10 - 00;01;20;12 독립운동 당시 조그만 농촌에 불과했던 이 고장은 00;01;20;12 - 00;01;24;03 이제는 어엿한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00;01;27;11 - 00;01;31;07 모든 것이 변해 버린 듯한 도시의 한 켠엔 00;01;31;07 - 00;01;36;00 여전히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00;01;39;07 - 00;01;42;25 V5, 1 최용신 기념관은 2007년도 설립이 되었고요 00;01;42;25 - 00;01;47;03 오시는 분들한테 최용신 선생님의 업적이라든가 교육 활동이라든가 00;01;47;03 - 00;01;50;16 이런 것을 다방면에 걸쳐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00;01;50;16 - 00;01;54;13 최용신 선생님의 고향은 원래 안산이 아니고 원산입니다 00;01;54;13 - 00;02;00;21 그곳에서 어린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시게 되거든요 00;02;00;21 - 00;02;07;24 그러다가 1931년도에 23살 나이에 YWCA의 파견교사로 이곳 안산에 오시게 됩니다 00;02;07;24 - 00;02;11;23 처음에 오셨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고 해요 00;02;11;23 - 00;02;17;01 왜냐하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할까 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00;02;17;01 - 00;02;23;03 하지만 선생님의 열정적인 헌신과 봉사 정신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서 00;02;23;03 - 00;02;28;11 마을 사람들도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선생님과 친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요 00;02;54;26 - 00;02;59;13 그때 당시 우리나라 인구 중에 90% 이상이 농민들이었고요 00;02;59;13 - 00;03;02;18 그중에서 80% 이상이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00;03;02;18 - 00;03;06;24 선생님께서는 이 문맹이 빨리 퇴치되어야지만 00;03;06;24 - 00;03;11;12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농촌계몽운동에 몸을 담으셨는데요 00;03;11;12 - 00;03;14;20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이곳에 오셔서 00;03;14;20 - 00;03;19;05 여성 인권 교육이라든가 빈민구제 이런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00;03;26;14 - 00;03;30;27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강습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00;03;30;27 - 00;03;37;26 1935년 1월에 안타깝게 수업 시간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시게 되는데요 00;03;37;26 - 00;03;41;05 그런데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00;03;41;05 - 00;03;46;28 최용신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상록수 소설 책을 빼놓을 수가 없고요 00;03;46;28 - 00;03;50;10 선생님께서 너무나 안타깝게 일찍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으니까 00;03;50;10 - 00;03;54;24 그냥 보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해서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이야기하십니다 00;03;54;24 - 00;04;00;02 그래서 그때 당시 각 신문사나 잡지사에 선생님의 일대기가 다 실리게 돼요 00;04;00;02 - 00;04;02;27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이 너무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00;04;02;27 - 00;04;10;14 그분께서 최용신 선생님의 그 일대기가 실린 신문 기사를 보고 선생님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시게 되셨고요 00;04;23;02 - 00;04;30;01 흔히들 관람객들이 왔을 때도 독립운동가그러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많이 꼽으세요 00;04;30;01 - 00;04;38;04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물론 그러한 분들도 중요하지만 교육만이 우리나라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0;04;38;04 - 00;04;40;17 그래서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을 서셨고요 00;04;40;17 - 00;04;44;26 나중에 인정을 받아서 독립운동가로 추서가 되셨죠 00;04;45;22 - 00;04;51;04 최용신 선생께서 희생하며 교육의 불을 지핀 도시 안산 00;04;51;04 - 00;04;58;09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00;04;58;09 - 00;05;02;28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머문 장소에 외국인이라 00;05;02;28 - 00;05;09;10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민족정신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00;05;10;17 - 00;05;15;09 시대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 근본적인 맥락은 저는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00;05;15;09 - 00;05;21;11 그러니까 최용신 선생님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독립운동, 문맹퇴치운동이라고 했지만 00;05;21;11 - 00;05;24;06 그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다고 봅니다 00;05;24;06 - 00;05;30;26 이론적인 것으로는 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보지 않거든요 00;05;30;26 - 00;05;37;17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00;05;37;17 - 00;05;40;06 그게 교육의 본질이 돼야 된다고 보고 00;05;40;06 - 00;05;49;19 그렇다면 최용신 선생님이 하셨던 그런 일이나 지금 우리가 용신학교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나 00;05;49;19 - 00;05;53;22 큰 밑바탕의 맥락은 일치한다고 보고요 00;05;53;22 - 00;05;58;08 안산용신학교는 안산 다문화거리의 중심 00;05;58;08 - 00;06;02;12 일명 만남의 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00;06;02;12 - 00;06;09;23 1987년에 안산중앙실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곳은 00;06;09;23 - 00;06;17;12 초창기 일하는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는 야간학교, 즉 야학으로 시작했습니다 00;06;17;12 - 00;06;22;15 이후 교육 대상을 성인과 외국인까지 확장하며 00;06;22;15 - 00;06;27;25 지역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본떠 00;06;27;25 - 00;06;31;05 안산용신학교로 개칭했습니다 00;06;32;02 - 00;06;38;01 용신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00;06;38;01 - 00;06;46;29 내국인 학생들에게는 문해교육 그리고 중등 과정까지 학력 보완교육을 하고 있어요 00;06;46;29 - 00;06;52;28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두 부류의 학습자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00;06;52;28 - 00;06;59;16 이들을 같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00;06;59;16 - 00;07;08;22 직접 같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면 다문화감수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00;07;08;22 - 00;07;18;28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 연구 논문이 참이라는 것을 항상 검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고요 00;07;18;28 - 00;07;28;16 예를 들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 나라말로 사랑해요, 안녕하세요 이런 글을 예쁘게 쓰라고 하면 00;07;28;16 - 00;07;33;08 글씨만 쓰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의 국기도 그리는 근로자 있고요 00;07;33;08 - 00;07;38;03 아주 유명한 관광지 그런 것도 같이 그리면서 00;07;38;03 - 00;07;41;27 굉장히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걸 볼 수 있어요 00;07;41;27 - 00;07;49;06 자기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 우리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구나 00;07;49;06 - 00;07;52;27 내국인 학습자들도 신기한 듯이 보면서 00;07;52;27 - 00;08;00;06 아, 우리와 다른 문자가 있고 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00;08;01;02 - 00;08;06;27 이날은 마침 이번 차시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00;08;06;27 - 00;08;09;19 수업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00;08;09;19 - 00;08;14;07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00;08;14;07 - 00;08;18;05 약 3년 전 한국에 온 임올렉 씨 00;08;18;05 - 00;08;21;25 그에게 한국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00;08;21;25 - 00;08;24;29 안녕하세요 임올렉이라고 해요 00;08;24;29 - 00;08;28;17 제가 러시아에서 왔어요 00;08;28;17 - 00;08;31;14 2년 7개월 됐어요 00;08;31;14 - 00;08;35;19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00;08;35;19 - 00;08;38;16 염료를 팔고 00;08;38;16 - 00;08;43;14 지게차를 타고 제품을 받아요 00;08;43;14 - 00;08;45;23 지게차 면허는 어떻게 따셨나요 00;08;45;23 - 00;08;52;14 처음에는 러시아 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바꿨어요 00;08;52;14 - 00;08;56;04 1종 면허증 시험을 봤어요 00;08;56;04 - 00;09;02;18 합격한 다음에 1종 면허증 받았어요 00;09;02;18 - 00;09;04;27 한국에서 일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00;09;04;27 - 00;09;08;16 당연하죠 힘들어요 00;09;08;16 - 00;09;11;25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 말하면 00;09;17;11 - 00;09;20;24 이해하기가 좀 어려워요 00;09;20;24 - 00;09;26;28 근데 여기 우리 공장에서 상사들이 너무 좋아서 00;09;26;28 - 00;09;29;28 적응하는 거 빨리해요 00;09;31;24 - 00;09;33;26 (누군가를 발견한 올렉 씨) 00;09;33;26 - 00;09;38;12 (든든한 지원군 교장선생님 등장) 00;09;41;08 - 00;09;47;10 교장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00;09;47;10 - 00;09;48;04 이런 것도 찍어요? 00;09;48;04 - 00;09;49;08 먹방! 00;09;49;08 - 00;09;52;00 이거, 다 찍어야 돼요 00;09;52;00 - 00;09;54;25 선생님 이런 거 말 안 했어요 00;09;56;15 - 00;09;58;26 왜 말 안 했어요? 00;09;59;11 - 00;10;02;19 주말에는 수업 없으면 뭐 해요 00;10;02;19 - 00;10;03;25 수업이 없으면 00;10;05;03 - 00;10;07;21 딸이랑 같이 바닷가에 갈 거예요 00;10;07;21 - 00;10;08;29 딸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00;10;08;29 - 00;10;10;11 여덟 살 00;10;10;11 - 00;10;16;26 발음이 한국 사람처럼 들려요 00;10;16;26 - 00;10;19;17 알고 보니 딸바보였던 올렉 씨 00;10;19;17 - 00;10;24;06 여느 아빠들처럼 한참을 딸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00;10;26;01 - 00;10;28;01 식사도 마쳤겠다 00;10;28;01 - 00;10;31;24 이제 최용신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00;10;32;16 - 00;10;37;01 최용신 기념관에 오신 것을 너무나 환영합니다 00;10;37;01 - 00;10;39;23 저는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00;10;39;23 - 00;10;44;27 안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장은정입니다 00;10;44;27 - 00;10;47;20 일제 강점기라고 들어보셨나요 00;10;47;20 - 00;10;56;23 그 당시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서 식민지 생활을 하였던 그 시대거든요 00;10;56;23 - 00;10;58;12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0;58;12 - 00;11;00;22 그래서 이것 알고 있어요 00;11;02;22 - 00;11;10;04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지냈던 그는 관람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00;11;10;04 - 00;11;16;05 최용신 선생의 생애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00;11;17;24 - 00;11;21;14 최용신기념관 관람은 어떠셨어요 00;11;21;14 - 00;11;24;14 V5, 1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어요 00;11;24;14 - 00;11;31;28 왜냐하면 그때 밥 없고, 돈 없고 00;11;31;28 - 00;11;34;24 일본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00;11;34;24 - 00;11;38;14 최용신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00;11;38;14 - 00;11;41;03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 00;11;41;03 - 00;11;45;11 이제 알아요 대단해요 00;11;45;11 - 00;11;53;20 그 어려운 시대에 학교를 만들고 한글 가르치셨다는 게 대단해요 00;11;53;20 - 00;11;58;17 근데 일찍 돌아가셔서 좀 속상해요 00;11;58;17 - 00;12;01;05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2;01;05 - 00;12;06;19 우리도 8월 15일이 특별한 날이에요 00;12;06;19 - 00;12;14;29 절하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요 00;12;14;29 - 00;12;19;12 재미있고, 슬퍼요 00;12;19;13 - 00;12;24;00 오는 8월 15일에 뭐 하고 싶으세요 00;12;24;00 - 00;12;30;27 여기 와서 (최용신 선생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볼 수 있을 거예요 00;12;30;27 - 00;12;37;03 V5, 1 친구랑 같이 여기 영화 보러 올 거예요 00;12;38;18 - 00;12;45;06 최용신 선생님의 민족정신은 다문화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건가요 00;12;45;06 - 00;12;47;13 아뇨 당연히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 00;12;47;13 - 00;12;50;17 왜냐하면 최용신 선생님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00;12;50;17 - 00;12;55;28 교육활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이야기했던 것은, 애국심을 이야기했던 것은 00;12;55;28 - 00;12;59;06 강자들을 위한 게 아니고 약자들을 위한 거였거든요 00;12;59;06 - 00;13;05;14 안산은 진짜 다문화 도시잖아요 거대한 다문화 도시라고 해도 진짜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00;13;05;14 - 00;13;08;25 이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00;13;08;25 - 00;13;13;26 아직도 한글을 몰라서 소통을 못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00;13;13;26 - 00;13;19;08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용신 선생님처럼 교육활동을 펼친다면 00;13;19;08 - 00;13;24;12 같이 어우러지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00;13;24;12 - 00;13;32;01 우리는 보통 다문화 사회라고 할 때 인종으로 구별을 하거나 국적으로 구별을 하죠 그런데 00;13;32;01 - 00;13;35;24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00;13;35;24 - 00;13;39;29 인종이나 국적 같은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00;13;39;29 - 00;13;41;27 그리고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00;13;41;27 - 00;13;48;17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그냥 물리적으로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00;13;48;17 - 00;13;52;07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00;13;52;07 - 00;13;57;05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봅니다 00;14;01;13 - 00;14;06;25 소나무나 향나무 같은 경우에는 사철 푸르러어요 00;14;06;25 - 00;14;10;15 이런 푸른나무를 상록수라고 해요 00;14;10;15 - 00;14;13;08 책 제목이 아까 뭐라고 했죠 00;14;13;08 - 00;14;15;19 책 제목도 상록수였죠 00;14;15;19 - 00;14;21;16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00;14;21;16 - 00;14;24;12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살았잖아요 00;14;24;12 - 00;14;28;04 거기에도 굴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마음 00;14;28;04 - 00;14;33;03 그런 마음이 바로 상록수 정신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00;14;36;05 - 00;14;41;07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의 본질은 00;14;41;07 - 00;14;46;21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00;14;46;21 - 00;14;50;16 수십 년이 흐른 현대 사회에서도 00;14;50;16 - 00;14;55;28 누군가는 여전히 억압 속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00;14;55;28 - 00;15;00;10 최용신 선생께서 현대 사회를 마주하셨다면 00;15;00;10 - 00;15;05;00 바로 그들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셨을까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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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이게 실화라고... 삼일절에 아기 낳았다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퍼뜨린 어느 미국인 역대급 스토리, 결말포함 4분 몰아보기
3.1절, 서울에서 한 미국인 기자의 가족이 겪은 놀라운 실화...!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집 딜쿠샤(기쁜 마음의 궁전)는 지금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제 추방, 구두에 숨겨진 선언서, 돌아오고 싶었던 땅, 그리고 그가 끝내 묻힌 자리까지... 이 4분짜리 영상 하나로, 잊혀졌던 실화가 다시 살아납니다. #광복절 #딜쿠샤 #실화다큐 #서울 #명소 #몰아보기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Lance Conrad - Waiting and Hoping Yaniv Hayoun - I Hope Brianna Tam - Pursuit Starluxe - Lift Babies - Baby Sobbing Uncontrollably Historical Army - Rifle Gunshot, Single Shots Bullpup Firearms - Enfield L85, Cocking Gun, Loading Electric Typewriter - Write, Medium speed, Aggressive, Room Brazil Crowds - Demonstration Voices, Shouts, Applause, Chants, Sao Paulo Steps Hardwood - Dress Shoes, Jumping, Landing Elegant Footsteps - Dress Shoes, Scuffing, Dirt Steps Carpet - Sandals Running Foley, male breath, fast and slow, variation continuous Traps and Cages - Prison Cell Door Beautiful Birds - Aves Ambience in Nature - 사용 폰트 부크크 명조체 (주)부크크(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Bodoni 72 Smallcaps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Bodoni 72 Oldstyle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Apple SD 산돌고딕 Neo Apple (Apple 기기 사용자 상업비상업 사용 가능) Y이드스트릿체 (주)케이티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Sandoll 백종열필 산돌커뮤니케이션 (일반 디자인 상업적 사용 가능) G마켓 산스 TTF (주)이베이코리아 / G마켓 (상업적 사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ElevenLabs, Midjourney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딜쿠샤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시나요.조선을 사랑한 미국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곳은 딜쿠샤. 1923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가 지은 붉은 벽돌집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지요. 이 집은, 한 외국인이 조선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역사의 증거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탄생한 한 미국인 아기와 구두 덕분에,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같은 시각,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특파원으로 온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칩니다. 간호사는 황급히 메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불 밑에 종이 뭉치를 숨겼습니다. 곧 이어 병문안을 온 앨버트가 아기를 안아올리자 떨어진 종이. 그것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몰래 인쇄했던 독립선언서였습니다. 그날 밤, 앨버트의 동생은 조선을 떠났습니다. 구두 뒷축에는, 독립선언서 사본과 형이 쓴 영문 기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운동에 관한 내용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테일러는 조선을 잊지 못했습니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에 묻혔습니다. 딜쿠샤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치된 채 남아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복원 과정을 마치며 펜으로 지킨 집 딜쿠샤는 다시 시민들에게 열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펜을 든 이방인의 마음은 지금도 이 집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그곳은, 진실을 전하고 사랑한 땅에 끝내 돌아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의 딜쿠샤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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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의 길, 오늘의 나
80년 전 그날, 오늘 우리가 걷는 이유 1919년의 봄,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 그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작은 생가에서 시작된 저항은 지금도 천안의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영상은 유관순 열사 생가, 기념관부터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까지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천안 곳곳에 남겨진 과거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기증 저작물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04489menuNo=200020#self 저작권자: 소향 외 11]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CC BY 라이선스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48780menuNo=200020 저작 권자: 임다솔]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사용 폰트 조선100년체 - 조선일보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부크크 명조 - (주)부크크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VOLI의 AI보이스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과 천안 사적관리소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 니다 대본 00;00;01;05 - 00;00;03;05우리의 시간이 멈췄던 날00;00;04;00 - 00;00;05;49한(恨) 맺힌 침묵을 깨고00;00;09;32 - 00;00;11;29울려퍼졌던 한(一) 목소리00;00;13;05 - 00;00;14;53대한독립만세!00;00;16;03 - 00;00;18;11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00;00;18;36 - 00;00;19;48오늘을 걷습니다00;00;30;19 - 00;00;32;36그들이 외친 독립을 기념하는 곳00;00;33;17 - 00;00;34;44독립기념관입니다.00;00;39;12 - 00;00;41;10나라를 수호하려는 결의와00;00;44;04 - 00;00;45;29피로 지켜낸 태극기00;00;48;02 - 00;00;50;051919년 3월 1일00;00;50;40 - 00;00;52;47모두가 한 마음 한(韓) 뜻으로00;00;53;16 - 00;00;54;59독립을 말하고 있었습니다.00;01;16;25 - 00;01;18;22그날의 현장 한가운데에00;01;18;41 - 00;01;20;34한 소녀도 있었습니다.00;01;25;30 - 00;01;28;16유관순은 그날의 한 뜻을 이어받아00;01;29;59 - 00;01;31;39병천의 작은 집에서00;01;32;19 - 00;01;35;19거대한 저항을 준비했습니다.00;01;37;55 - 00;01;40;55열여섯, 어린 소녀의 저항은00;01;42;10 - 00;01;45;10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이자00;01;45;22 - 00;01;48;22그녀가 문을 나서게 했던 원천이고00;01;51;11 - 00;01;53;11독립 열사의 길이었습니다.00;01;57;19 - 00;01;59;241919년 4월 1일00;02;04;36 - 00;02;06;55유관순과 3천 군중의 외침00;02;07;35 - 00;02;09;14대한독립만세!00;02;09;56 - 00;02;11;38대한독립만세!00;02;12;12 - 00;02;13;07만세!00;02;13;38 - 00;02;14;33만세!00;02;15;37 - 00;02;18;37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앞섰던 그 순간00;02;19;31 - 00;02;23;14유관순은 그 함성에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00;02;24;45 - 00;02;28;44그날의 소리는 오늘도 이곳을 스쳐 갑니다.00;02;29;40 - 00;02;32;52보이지 않아도 들리는 기억 속 그날처럼00;02;36;15 - 00;02;38;20이제 그들의 곁에 휘날리는00;02;38;20 - 00;02;41;21태극기는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00;02;45;51 - 00;02;46;53유관순00;02;48;37 - 00;02;50;02순국자를 추모하며00;02;52;05 - 00;02;54;40그들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00;02;59;20 - 00;03;02;24그들이 있었기에 피어날 수 있었던 우리가00;03;03;00 - 00;03;04;33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00;03;28;18 - 00;03;30;54그들의 영을 위로하는 추모의 자리에서00;03;33;09 - 00;03;34;57우리는 굳게 다짐합니다.00;03;38;22 - 00;03;39;59피땀으로 지켜00;03;39;59 - 00;03;44;17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00;03;44;17 - 00;03;45;24겨레여00;03;45;24 - 00;03;47;06이 나라를 길이 빛내자00;03;50;52 - 00;03;53;07독립 열사의 희생이 이뤄낸 광복00;03;54;37 - 00;03;56;53우리의 다짐으로 지켜낸 80년00;03;58;36 - 00;03;59;09오늘00;03;59;46 - 00;04;02;17우리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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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 menuNo=200020wrtSn=13316936),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저작자표시 4.0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 용하였습니다.(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의 공공저작 물을 이용하였습니다.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55229menuNo=200020), 작성자:주식회사 아이티앤]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설화, 기증 박세임, 공유마당, CC BY - 사용 폰트 AppleGothic - apple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의 나레이션은 생성형 AI elevenlabs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정책방송원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셀수스협동조합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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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단재의 발자취를 따라
고지 사항 사용음원: 한국저작권위원회-임다솔의 우리네 소리를 듣다 은 CC BY라이선스로 제공됩니다. 사용폰트 : 고운바탕 ,에스코어드림, 굴림-Regular, KoPubWorld 바탕체-Medium, Noto Sans KR-Regular 사용 생성형 AI :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Kling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단재신채호생가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바쁜 일상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대전 중구 어남동 이곳은 단재 신채호가 1880년 태어난 생가지이다.독립운동가, 역사학자, 사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신채호 그의 유년시절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신채호는 조부인 신성우로부터 유학교육을 받게 되었는데요. 손자인 신채호에게 6살 때부터 한학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유학교육을 시켰고, 그래서 이미 10세 전으로 신채호가 통감절요나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을 이미 다 섭렵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신씨 가문의 대단한 천재가 났다. (라는) 소문들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생가지 인근에는 홍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고 있다. 제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도 다니곤 하거든요.근데 집 주변에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가 있다고 해서 관람 차 방문했습니다. Q.신채호를 어떤 인물로 알고 있는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신채호는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독립전쟁을 강조하는 독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 조선혁명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조선혁명선언문에서 신채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줄여서 대답을 한다면, 폭력혁명으로 속박상태에 있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야 된다 라는 것이었고요. 이런 폭력 투쟁론을 통해서,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을 비판하고 그걸 통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 모두가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성취해야 된다. (라는 것을)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1936년 신채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못한 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이 광복 이후 생가로 돌아왔다면 어떨까? 생가지 보고 엄청 놀라시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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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이성계가 사랑한 절에서 만난 보물 삼총사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4 양주 편
[대본]0. 인트로네 안녕하십니까?여기는 양주 회암사지 앞에 있고요저는 문화PD 김경재 PD라고 합니다!오늘 여기 양주 회암사지에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는데요?바로 어마무시한 우리나라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오늘 저와 한번 같이 떠나보실까요?1. 양주 회암사지 설명회암사지는 고려 충숙왕 때 인도의 승려 지공이 처음 지었다는 회암사가 있던 자리입니다.조선 전기까지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로 태조 이성계는 왕에서 내려온 후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성종과 명종 때 크게 확장되었으나 그 후 억불정책으로 인하여 절이 불태워져서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입니다.2. 첫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오늘 첫번째 보물을 만나러 가봅시다!첫번째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입니다.조선전기 왕실에서 건립한 진신사리탑으로* 진신사리탑: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탑보존상태가 좋으며, 왕실불교미술의 여러 요소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탑입니다.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구축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상륜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자! 그럼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3. 두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다음 보물들을 찾으러 가는 길아~~~~ 이거 맞아?야! 산이 꽤 높은데??이런 산 길을 만날 줄 몰랐던 저희는 힘들었지만우리의 아름다운 보물을 찾기 위한 여정은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드디어 찾게된 두번째 보물!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과 앞 쌍사자 석등입니다.먼저 무학대사탑은 무학대사의 묘탑으로회암사의 주지였던 무학은 이성계의 꿈 풀이를 통해왕이 될 것을 예언한 것과 한양으로 천도와 관련된 설화 등이 유명합니다.쌍사자 석등은 조선 전기 석탑 앞에 건축하는 대표적인 조형 건축물 중 하나로무학대사탑과 함께 조선 전기의 석조 작품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4. 세 번째 보물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을 찾으려는 저희 앞에 다가온 시련, 돌계단이 있었습니다.드디어 돌계단의 시련을 이겨내고 마지막 보물장소에 도착했습니다!마지막 보물은 양주 회암사지 선각왕사비 입니다.회암사터에 서 있었던 비석으로,고려말의 승려인 나옹 화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비석에는 나옹화상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 비의 몸돌이 파손되어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실시한 후 비석은 경기도박물관에,비 받침돌인 귀부는 현재장소에 놓여져 있습니다.원형을 알 수 있도록 모조비가 귀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드디어 양주 회암사지에서 보물찾기 완료!5. 마무리이상으로 양주 회암사지에서우리의 보물을 찾아보았습니다.우리가 경기도에서 찾았던 모든 보물들은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존을 할 때소중한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이상으로 문화PD 김경재 PD였습니다.시청해주셔셔 감사합니다.
김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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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
[문화PD] 어플을 활용하여 쉽게 보물을 접하는 방법이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3 수원 편
[대본]인트로안녕하세요, 여기는 수원시이고 저는 문화PD 오정은입니다.본론오늘 소개해드릴 곳은 화서문입니다. 보물 제 403호인 화서문은 조선 후기 정조 시대 때 시설물입니다. 화서문은 수원 화성의 서문인데요, 화서문의 형태를 보면 문루가 낮고 안의 전경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화서문은 창건 당시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18세기 건축 기술을 보여줍니다.화면전환(화서문 가면서 지침) 더워요..올라가지 않고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얼마 전에 기사에서 본 내용이 떠올랐다.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아서 폰을 꺼낸다.터치수원 어플 소개터치수원 어플을 통해 화서문을 구경해볼까요?터치수원은 터치 한번으로 관광 정보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어플입니다. 잠깐 터치수원을 살펴볼까요? 터치수원 첫 화면을 보시면, 로그인 후에 AI 추천 코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테마에 맞는 코스를 직접 추천해주고 있는데요, 이렇게 m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코스, 이색 탈 거리 코스 등 종류별로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그리고 추천 방문지 BEST10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top1은 방화수류정이네요! AR/VR, 오디오 가이드까지 함게 제공되고 있으니 편하게 이용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실감나게 즐기는 수원 화성이라는 탭에서는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볼거리, 탈거리,즐길거리들을 따로 소개해주고 있는데요, 한번 쭉 보시면서 원하시는 곳을 선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원 기념품까지 너무 재밌는 것들이 많네요!그럼 이제 터치수원으로 화서문을 직접 살펴볼까요?AR과 VR을 통해 화서문을 실감나게 관찰이 가능하고, 편리한 오디오 가이드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바일 화면을 360도로 회전이 가능하여 내부, 외부를 자유롭게 감상이 가능합니다.이 곳은 화서문 내부입니다. 와~ 실제랑 거의 차이가 없는 게 보이시나요?화서문의 야경은 직접 보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힐링이 돼서 힘든지도 몰랐네요. 밤에도 너무 아름다웠던 수원 화서문, 이번 주말엔 수원에 가보는 건 어떠세요?아웃트로보물은 모바일로도 실감나게 접근이 가능하다오늘은 이렇게 수원 화서문을 알아봤는데요, 다음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
오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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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3
[문화PD] 얼굴 크기만 2m? 파주 거대 불상에 얽힌 출생의 비밀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2 파주 편
[대본]안녕하세요,여기는경기도파주고,저는문화PD한서희입니다.경기도구석구석보물찾기용암사편이곳에숨겨진보물을함께찾으러가볼까요?용암사는고려시대전기에만들어진사찰인데요기도를드리는공간인대웅전안삼존불상이오늘의보물일까요?범종에숨겨진비밀이있을까요?아님계단을메우고있는꼬마좌불상이보물일까요?정답은바로계단끝에있습니다!짠!경기도파주시용암사의주인공!보물제93호로지정된마애이불입상입니다.전체길이만19.85m를자랑하는거대한두불상은천연암벽에새겨신체비율이맞지않아더욱우람하게보이는데요.둥근갓을쓰고연꽃을쥔왼쪽불상이원립불,4각형갓을쓰고합장하는오른쪽불상이방립불입니다.왼쪽불상은남상(男像),오른쪽불상은여상(女像)이라는구전이전해진다고합니다.이불상에신묘한전설이있다고하는데요.고려13대임금선종은대를이을자식이없어고민이많았다고해요.이때셋째부인인원신궁주의꿈에도승둘이나타나우리는장지산남쪽기슭바위틈에사는사람인데,배가고프니먹을것을달라고했다고해요.꿈에서깬궁주는꿈이숭숭해선종에게전했고,그얘기를들은선종이장지산바위에마애이불을새겨불공을드렸더니,그해에궁주가왕자한산후를낳았다고합니다아참,이곳의위치에도특별한사연이있다는사실,알고계셨나요?조선시대,한양과의주를잇는의주대로는중국국경을넘는유명한길이었다고해요.의연암박지원도,한국최초천주교신부김대건도모두이길을걸어국경을넘었답니다.이거대한불석은먼길을오가는사람들에게이정표역할을했다고하네요.조선의주대로78번도로는쌍미륵길이라는이름으로지금까지이어지고있답니다.웅장하고거대한보물을가지고있는이곳용암사에서보물같이소중한시간을보내는건어떨까요?이상문화PD한서희였습니다.다음보물찾기는수원에서해볼까요?
한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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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천 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대본] 천년 된 보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EP.1 하남 편 경기도에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 국보와 보물들을 찾아 그에 담긴 역사를 알아본다. 경기도의 다양한 지역별로 찾아보는 구석구석 보물찾기 여행. 여기는 경기도 하남이고요 저는 문화PD 강산입니다 경기도 하남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불을 찾아라!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588번길 125 선법사 마애 : 석벽에 글자나 그림, 또는 불상 새겼다는 뜻 약사여래 :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는 약사신앙의 대상이 되는 보살. 부처. 좌상 : 앉아 있는 모양의 불상. 그렇다면! 하남 교산동에 있는 돌에 새겨진 앉아있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오늘의 보물이겠네요!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 (河南 校山洞 磨崖藥師如來坐像) Rock-carved Seated Bhaisajyaguru Buddha in Gyosan-dong, Hanam 드디어 오늘의 보물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보물은! 언제? 어떻게? 왜? 보물이 되었을까요? 전문가를 만나보시죠!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박경이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릴 보물은 하남시에 있는 선법사라는 작은 절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 보물입니다 고려시대 때에 마애여래상들이 보통 얼굴 부분은 정교한데 반에 신체 부위나 옷 부분은 생략 또는 정교함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선법사에 있는 마애약사여래좌상만큼은 얼굴, 신체, 좌대 모든부분을 아름다움과 정교함이 어느 약사여래좌상보다 뛰어남을 인정받아서 1989년도에 보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와~ 그렇군요!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보물이 제 눈앞에 있다는 게 놀라운데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잘 보존되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거겠죠? 그럼 앞으로 다가올 천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도 잘 보존되기를 바라면서 경기도 구석구석 보물찾기 하남 편은 여기서 마치고요! 다음 보물 찾기는 경기도 파주에서 해볼까요? 우리가 지금 보물을 만났듯이 천년 뒤에도 누군가가 만날 수 있기를..
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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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네 번째 이야기 '시인 윤동주'
[대본]서시, 별 헤는 밤 등의 시로 유명한 윤동주 그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도 알려져 있는데요오늘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윤동주의 어린시절] 초등학교 시절부터 윤동주는 문학에 관심과 재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소학교 때부터 친구 들과 새명동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습니다.[윤동주의 대학시절] 1938년, 윤동주는 현재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들어가 문과에 입학해 열심히 학업에 입하게 됩니다.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윤동주는 현재 잘 알려져 있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내려고 준비하게 됩니다.그러나, 1941년에 조선어 사용이 전면 금지되고, 우리 말로 쓰여진 시집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윤동주는 시집 발간을 포기하게 됩니다.[윤동주의 일본유학] 윤동주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창씨개명이 필수 였습니다.창씨개명 전에 그는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게 됩니다. 창씨개명으로 인한 고뇌와 부 끄러움을 써내려간 시입니다. 창씨개명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것이 죠.[윤동주의 순국] 일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동주는, 방학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그러나, 윤동주 주위를 검열하던 일본 경찰들이 윤동주를 조선 독립 운동 선동죄로 체포하였고, 조선 유학생들을 모아 독립을 선동했다는 죄명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고 맙니다.그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함께 잡혀간 고종사촌 송몽규에 따르면, 윤동주가 옥중에서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 다.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나, 생체실험을 당하다가 일본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의혹 이 있습니다.광복 후, 유족과 지인들은 윤동주의 시 31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으로 시집 을 발간하게 됩니다.윤동주의 독립운동은, 총과 폭탄으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과, 끝까지 한글 시를 지켜내고자 한 저항 시인이었습니다.이러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2012년 윤동주 문학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문학관에서는 그의 업적과 작품들을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윤동주 문학관 옆 길을 통해 청운공원 주 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갈 수 있는데요.윤동주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하숙집에서 가까 운 청운공원 주변을 거닐며 서시, 별헤는 밤 등의 시를 가다듬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서시 낭독으로 오늘 영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양하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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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4
[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세 번째 이야기 '백범 김구'
[대본]김구선생의발자취는백범김구기념관에서찾을수있었다.김구선생의호백범에서도그의조국독립을향한강한의지를엿볼수있다.백범은평범한사람들이라는뜻으로,평범한사람들이곧우리의민중이고,민중은곧애국심을가지고조국독립의필요성을깨쳐야한다는의미이다.1896년3월,황해도치하포의주막에서김구는일본군중위쓰치다조스케를발견하였다.김구는그가명성황후를시해한범인일것같다는생각이들자,명성황후를시해한원수를갚고나라의수치를씻는다는우국의일념으로그를처단하였다.1910년,김구는대표적인항일민족단체인신민회에서,조국의독립운동기지건설을위한비밀회합에황해도지역자금모금책임자로참여하였다.1919년,김구는상하이로망명해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경무국장에임명되었다.그는독립운동가들을보호하고만세운동을통해독립의지를전세계에알렸다.1930년,김구는일제요인암살과식민통치기구의파괴를위한특무대한인애국단을조직했다.일제의탄압속에서도그는무장투쟁을이어가며강한독립의지를내비쳤다.1940년,김구는임시정부의국군,한국광복군을창설하였다.광복군이대일항전을전개하고국내진입작전을시도한것은조국의독립과민족의해방을자주적으로쟁취하려는한민족의자주독립에대한의지를상징하는것이었다.그리고1945년,광복군의국내진공작전직전일본의항복으로한국이광복을맞았지만,진정한대한독립을이루지못해마냥기뻐하지못한김구였다.그리고지금,우리가할수있는것.백범김구선생을기억하는것이다.우리는김구선생을기억합니다.
박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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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두 번째 이야기 '도산 안창호'
[대본][타이틀]대한민국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도산 안창호 선생.안창호 선생의 삶이 보여준 정신을 본받아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고자 도산공원이 조성되었고,공원 내부에 도산 안창호 기념관이 건립 되었다.도산 안창호 선생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도산공원을 거닐며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그가 바친 위대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한다.독립, 그 이상의 미래를 꿈꾸다 - 도산 안창호[본문]1878년 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태어났다.그가 열여섯 살 때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평양에서 전투가 벌어져 주민들이 피난하고 가옥들이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때 도산은 우리 민족의 불행이 우리에게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도산은 19세 때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평양에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결성하였고,쾌재정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첫 연설을 함으로써 탁월한 웅변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도산이 독자적인 사회세력을 결집하여 주도하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은미주의 교민사회에서 공립협회를 만든 다음부터였다.1902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그곳 동포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교민지도에 나서게 된다.그리하여 초창기 미국 교민사회에서 대중적 지도자로서 성장해 공립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공립협회는 2년 미만의 단기간에 600명의 회원을 모으고,3층 건물을 회관으로 가졌으며, 매월 두 차례 공립신보를 발간해 매우 힘있는 단체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도산이 미국에 있던 5년 동안 국내정세는 날로 위기가 깊어지고 있었다.도산은 본격적인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07년 초 귀국 길에 올랐다.이 때 그의 가슴 속에는 이미 국내에서 전개할 구국운동의 새로운 목표와 방법론, 조직형태가 그려져 있었다.귀국 즉시 도산은 국내 계몽운동의 핵심인물들을 찾았다.그는 새로운 구상을 설명하면서 비밀결사를 조직하는 일에 착수하고,한말 애국지사들의 구국운동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총지휘했던 신민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도산은 신민회를 중심으로 교육ㆍ언론ㆍ산업 등 여러 부문에 걸쳐 다양한 사업들을 벌이게 하였다.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약 3년간 그가 주도했던 신민회운동은비록 나라를 지키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일제하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1910년 5월 통합 교민단체로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이는 해외의 전교민이 도산을 대표자로 하여 하나의 조직 속에 결집한 셈이었다.국내가 일제의 지배하에 들어간 상황에서 도산은 해외에 사는 교민들이 현실적인 독립 운동의 기반이라고 생각하여 해외 한인의 총단결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여겼다.해외 한인의 대동단결이라는 과제를 일단 해결한 도산은 다음 해인 1913년 흥사단을 조직하였다.흥사단은 민족운동의 간부를 양성하려는 목적에서 만든 훈련단체로 미국에 본부를 두었다.1918년 국제 정세 속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고조되었다.이듬해 3ㆍ1운동 소식을 접한 도산은 독립운동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고,국민회의 대표 자격으로 중국에 건너갔다.도산은 국무총리 대리를 겸하면서, 임시정부의 실체를 갖추는 데 전력을 쏟았다.국민회에서 가져온 자금으로 정부청사를 얻고 각료로 추대된 각지의 인물들을 불러 모았으며 독립신문 발간과 독립운동 방략 작성을 주도했다.임정을 권위 있는 최고 지도기관으로 만들어 장기적인 독립운동에 대비하고자서울의 임시정부와의 통합을 추진하였고, 노력 끝에 결국 통합을 이루어냈다.이승만 대통령까지 합류함으로써, 임정은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 기관으로서 면모를 갖추었지만임시정부 내 갈등이 심각해졌고, 임정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임정을 사퇴하고 국민대표회 개최를 위해 노력했다.1926년 5월 말 다시 상해로 간 도산은 좌우 합작의 대독립당운동에 앞장섰다.산발적으로 논의되는 데 그치고 있던 좌우합작문제를 본격적인 실천운동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도산이었다.1931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도산은 기회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여 반일투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윤봉길 의거의 여파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국내로 끌려오게 되었다.도산은 4년 반에 걸친 두 차례의 감옥 생활 끝에 얻은 병이 악화되어1938년 3월 10일 만 59년 4개월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옥중심문에서 일본 관헌에게 도산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독립 운동가이자 겨레의 큰 스승 도산 안창호 선생.무실역행을 몸소 실천한 그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그 위대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새겨본다.
송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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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독립운동가, 그들의 발걸음 서울에서 만나다> 첫 번째 이야기 '안중근 의사'
[대본]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첫 번째 발걸음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안중근 의사 기념관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남산타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번 남산에 올라갈 때, 한 번쯤 지나쳤던 곳인데 이곳을 직접 들어와서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1층에는 안중근 의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초대 통감 이토를 하얼빈 역에서 제거한 의거를 떠올리기도 하고 뮤지컬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재판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데요 이번에 제가 다녀온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더 관심 있게 보고 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저는 사실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면 하얼빈 의거가 크게 각인 되어서 안중근 의사는 무장독립 투쟁을 하셨던 분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국내 정세가 혼잡하고 외세의 침입과 이권침탈이 잦아진 시대적 배경에서 동학농민운동에도 함께 하셨고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애국계몽을 위한 교육 운동에도 힘쓰셨던 일들이 1층 전시관에 자세하게 써있었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에 분개하고 이 내용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지식인이자 독립운동가의 모습으로 다시 안중근 의사를 볼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가문에서는 무려 15인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고 하는 데요 그만큼 가족에게 본이 되는 부모님과 그 뜻을 이어나가는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독립운동가들을 가득 배출해낸 이유인 것 같아요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본격적인 하얼빈 의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얼빈 의거 상황을 기차의 형상으로 재현한 곳이 있었는데요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현재 심경과 각오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나는 이토를 기다리기 위해 하얼빈 역 찻집에 있소 이토를 알아보고 일을 거행할 수 있을지 걱정되오 그러나 기회는 오직 이때뿐 신문에서 전하길 아침 9시쯤 열차가 여기에 도착할 것이라고 하니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반드시 이 거사를 성공시켜 곧 그를 만나게 될 것 이오 이 머나먼 외국 땅에서 당당하게 대한 만세를 외칠 것이오 아... 열차가 도착하고 있군 이만 가보겠소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면 의거가 어떻게 계획되고, 진행되었는지 당시 그곳의 상황은 어땠는지 의거 장면이 한 켠에 재현되어 있었고 왜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야 하는 지 그에 대한 히스토리가 상세하게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에서 사용하셨던 권총과 총알도 있었습니다 전시관을 따라가면 이어지는 곳은 자주독립을 향한 그의 재판 장면이 나타납니다 벽의 버튼을 누르면 재판 장면으로 꾸며진 세트장에서 조명과 함께 목소리가 나오면서 마치 연극처럼 그 상황이 재현됩니다 저도 안중근 의사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방청석에 앉아봤는데요 자리에서는 앞에 있는 화면을 통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이유이자 그의 15가지 죄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1.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7. 철도, 광산과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 이렇게 이토히로부미의 15가지의 죄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2월 13일 옥중에서 집필을 시작해서 다음 해 3월 15일까지 탈고한 자서전인데요 안중근의 탄생부터 순국 전까지의 민족과 국가를 위해 살아오신 삶에 대해 기술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관에서는 체험과 퀴즈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안중근 의사에 대해 오늘 전시를 어떻게 봤는지 정리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문제를 풀어봤는데 몇 문제는.... 틀렸더라고요 더 열심히 볼 걸 그랬나봐요 그러면서 또 많은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이렇게 안중근 의사의 발걸음을 서울에서 함께 따라가보았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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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면?
문화와 예술을 기억하고 역사로 남기는 일을 하는 곳을 소개합니다. 문화예술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며 우리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는 문화예술아카이브팀. 지금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대본]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나요? 여기 아름다운 문화 예술의 역사 그 발자취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고 예술인들의 기증 자료로 만나는 그 시절의 숨은 이야기들 향토 원로 예술인들이 직접 들려주는 영상 속 이야기 현재 지역 문화계 소식과 동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잡지까지 모든 문화와 예술이 모여 기록이 되는 곳 대구문화예술아카이브팀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대구시 문화예술아카이브 팀장 임언미입니다 문화예술아카이브라 하면 문화예술인들의 활동 기록물과 흔적이 담긴 유물들을 집적화 시키고요 그런 자료들을 모아서 시민들이 활용하실 수 있도록 돕는 중간 플랫폼 역할을 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고 예술인들의 흔적을 찾는 과정은 그들의 유족이 보관하고 계시는 유품을 수집해서 그것들을 집적화하고 분석해서 보여드리는 일을 통해서 하고요 그리고 현재 생존해 계신 원로 예술인들을 또 선별해서 구술 기록화 사업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중요한 유물들과 기록물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문화예술 행사나 또 예술인들의 활동은 문화예술기관 단체들과 또 예술기관들의 어떤 협의체를 구성을 해서 그들이 생산하는 그런 자료들을 일괄적으로 모으고 정리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그런 시스템까지 저희가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활용의 방법으로는 직접 이렇게 저희가 선별해서 선보여 드리고 있는 열린 수장고를 방문해서 활용하시는 방법도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대구문화예술 디지털 아카이브를 통해서 선별한 정보들을 보여 드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트를 접속해서 확인하시면 또 그 정보들을 열람하실 수 있고요 뿐만 아니라 디지털 변환 작업을 거친 음원 자료도 만날 수 있고 QR코드를 통해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잡지들을 모두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이 열린 수장고 공간으로 오시면 많이 감동하시고 느끼시는 게 예술가의 방을 제일 신기해하세요 왜냐하면 문화예술아카이브 자료 문화예술 기록물이라는 것들이 가까운 과거잖습니까? 솔직히 우리가 100년 200년 전 자료는 아니다 보니까 유품이나 자료를 봤을 때는 종이 한 장인데 저희 예술가의 방에 가 보시면 그 시절 예술가들이 한국전쟁에 어떻게 저렇게 저렇게 어려운 피아노로 구해서 피아노를 가르쳤을까? 어떻게 외국에 통신 수단이 좋지 않던 시절에도 유럽까지 연락을 해서 저런 편지를 요청하셨을까? 그리고 그렇게 해서 받은 편지를 간직하셨을까라는 실물들을 바로 확인하실 수 있기 때문에 저희 문화예술아카이브 열린 수장고에서 특히 예술가의 방을 들여다보시면 더 직접적으로 대구문화예술인들의 노력의 저력들 흔적들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문화예술아카이브 구축사업을 통해서 도시의 정체성 우리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 예술적인 저력을 확인할 수 있고요 그를 통해서 우리 지역의 청년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문화 예술의 살아있는 역사를 보고 들으니 문화 예술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이 기록되고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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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청년은 주목※ 청년이라면 다 누릴 수 있는 이곳! (서울청년센터 오랑)
[대본] (오프닝) 서울청년센터오랑 청년을 위한 모든 것 대한민국의 많은 청년들이 짊어진 고민과 걱정 그 고민과 걱정을 보듬어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청년이라면 누구나,도움받을 수 있는 이곳! 서울청년센터오랑으로 가볼까요? 서울청년센터 성동오랑 서울특별시 성동구 도선동292 02-2204-6487 (월-금) 10시-22시 (토) 10시-17시(일,공휴일)휴관 서울청년센터 오랑은 청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오랑은 어떤 공간인지,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볼까요? 이민선 성동오랑 바다 매니저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청년센터 성동오랑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 지원 매니저 바다,이민선 매니저입니다. 오랑은 종합상담,청년 지원 정보,커뮤니티, 교육 강의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요. 또 각 공간을 제공하고 청년에게 필요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상담 오랑이라는 프로그램은 청년 지원 매니저가 청년에게 맞는 청년 정책이 무엇인지 정보를 전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오랑에 직접 방문하거나 문자 카카오톡 전화 등으로 쉽게 가능해서 청년분들이 많이 찾는 사업입니다. 성동오랑에서는 청년의 일자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주로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을 위한 성동 성동 청년 창업스쿨과 관내 기업과 연계해서 일 경험을 하는 커넥트인턴십 10월에 진행되는 청년의 일 탐색을 위한 청년 일자리 박람회 등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단 청년이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에 저희가 홍보를 하고 있는데 그곳이 아무래도 온라인이 주가 되다보니까 온라인상으로 홍보를 많이 진행하고 있고요. 청년 몽땅 정보통 그리고 서울 공공예약 서비스,오랑 자체적으로 진행하는sns등에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공공예약서비스 청년몽땅정보통 성동오랑SNS 출처:청년 몽땅 정보통 출처:성동오랑 블로그 청년 몽땅 정보통은 오랑이 거의 진행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은데 청년 몽땅 정보통은 전국구 단위의 청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이고요. 서울시 공공 서비스 예약이라는 홈페이지는 서울시 권역에 있는 청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최대한 같은 사업이어도 다양한 플랫폼에 자체적으로 올려서 홍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청년 몽땅 정보통 전국구 단위의 청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 출처:청년 몽땅 정보통 서울시 공공 서비스 예약 서울시 권역의 청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플랫폼 저희가 홍보되고 있는 채널에서 직접 신청을 해 주시거나 아니면 저희 쪽 관내에서 문자를 드릴 수 있는 개인 정보 동의하신 분들 한해서 진행을 하고 있었고요 서울시 회원,청년 중에 저희 오랑 소식이라든가 청년 정보 받고자 하시는 분들께 문자가 가고 있고요. 서울청년센터 오랑에 대해 잘 알아보셨나요? 도움이 필요하다며 망설이지 말고 근처 오랑으로 달려가세요. 청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눠주고 있답니다. 서울청년센터 오랑,똑똑하게 잘 이용해 봐요. 대한민국의모든청년들이행복해지는그날까지,파이팅!
나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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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국내 무장애 여행지? 열린관광에서 검색하세요!
무장애 여행지란 여행의 자유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장애인과 관광 약자를 위해 이동접근성과 편의시설을 갖춘 여행지이다. 무장애 여행지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정보화한 열린관광 사이트를 통해 누구나 제약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대전 지역의 관광지들을 소개한다. ----------------------------------------------- [대본] 다음 중 여행을 좋아하는 A가 갈 수 있는 관광지는 어디일까요? 정답은 전부 입니다! 만약 같은 여행지를 B가 간다면, 그가 갈 수 있는 여행지는 어디일까요? 정답은 3번 뿐입니다. 무장애 나눔길이 조성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관광약자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 동반 가족 등을 포함해 인구의 29%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무장애 여행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데요. Barrier-free 무장애여행지 장애인, 고령자, 영유아 가족 등 모든 관광객이 이동의 불편이나 관광활동의 제약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물 없는 관광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무장애 여행지의 정보는 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하는 열린 관광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만든 무장애 관광 정보 사이트입니다. 국내의 여행 명소뿐 아니라 음식점, 숙박시설 등 주변 편의시설 정보와 다채로운 추천코스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만의 주요 특징이 있는데요. 첫째, 검색기능입니다.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영유아 가족, 고령자 등 관심 유형에 따라 여행지를 검색할 수 있습니다. 둘째, 시각적 편의 기능입니다. 저시력자 및 시각장애인들 위해 화면의 크기를 키우거나, 고대비로 전환할 수 있고, 텍스트 보기로 전환하여 스크린 리더 기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 리더 기능 : 보이스 어시스턴트, 보이스 오버 등 화면의 텍스트를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 이제 열린관광의 추천 코스를 따라 여행을 시작해볼까요? 오늘의 첫 번째 여행지는 대전 계족산에 위치한 장동산림욕장입니다. 이 곳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로 유명한 곳이죠. 장동산림욕장 숲속에서 맨발로 걸어볼 수 있는 14.5km 의 황톳길이 유명하다. 경사가 완만하며 곳곳에 편의 시설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 장애인 화장실 있음 - 출입구 단차 없음 일단 경사가 전체적으로 완만해서 고령자 분들이나 보호자가 있는 영유아 가족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 같고요. 중간 중간 쉬어갈 수 있는 데크나 벤치, 화장실이 있어서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분 좋게 황톳길을 걷고 난 뒤에 발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즐겁게 첫번째 코스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지하 200m 이하에서 분출되는 온천수를 활용한 족욕시설이다. 발을 씻고 말릴 수 있는 편의 시설이 잘 찾춰져 있다. (운영 시간 : 오전7시-오후9~10시, 연중 무휴) - 턱이 낮아 휠체어 접근 가능함 - 장애인 화장실 있음 두 번째 여행지는 유성온천의 무료 족욕체험 장인데요. 산행 뒤에 딱 적절한 코스죠? 이번엔 제가 직접 휠체어를 타고 여행해보려고 합니다. 족욕장 인근에 주차장이 있어 휠체어를 싣고 오가기에 편한 곳이었습니다. 열린관광 홈페이지에서 본 대로 턱이 낮아 접근도 용이했습니다. 아 여기는 턱이 낮아서 올라올 수 있네요 휠체어의 접근 편의성을 고려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요. 바로 근처에 장애인 화장실도 마련되어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열린 관광을 통해 무장애 여행지를 다녀보았는데요. 무장애 여행지를 만들어가는 것만큼이나 그 정보를 모으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마음 편히 여행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 날까지 더 많은 무장애 여행지와 그 정보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네요~!
이예나
조회수: 1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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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문화PD] 독립영화, 언제나 그 곳에 [인디그라운드 편]
독립영화 : 일반 상업 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중시되는 영화. 기존 영화와 주제, 형식, 제작 방법 따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검색] 이렇게 연출자의 다양한 의도를 담아낸 독립영화가 많고, 지금도 제작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막상 독립영화를 극장에서 찾아보는 것은 매우 힘든 일 입니다. 이런 독립영화의 제작, 배급, 유통을 열심히 지원하는 인디그라운드를 한번 알아볼까요?
관리자
조회수: 1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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