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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날의 뜻 오늘의 사람들 상록수의 주인공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을 아세요
여러분들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저 80년 전 있었던 역사 속 사건에 머물지는 않았나요?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80여년 전, 우리 국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계몽운동가로서 두각을 드러낸 일제강점기의 여성이었습니다. 소설 (상록수)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 오늘날에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광복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다음 저작물들은 공유마당 CC BY 정책에 따라 출처와 라이센스를 표기했습니다. 1. BLACK BOX-South Korea-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2. 국악연주곡_설날_대금-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3. 국악연주곡_홀로아리랑-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4. [최종]12월, 광화문 거리 교항곡-안수빈(무료) *CC BY 5. 한국의 미래-민지영(무료) *CC BY 6. 국악 배경음악 #140-주식회사 아이티앤 *CC BY - 사용 폰트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1. KBIZ한마음고딕체L 중소기업중앙회(무료) 2. 수성혜정체 수성구청(무료) 3. Pretendard SIL 오픈 폰트 라이선스 4. pln옥타곤 지우소프트(Adobe Font) #안산최용신기념관 #안산용신학교 #광복80주년 #문화PD 대본 00;00;07;00 - 00;00;15;26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00;00;15;26 - 00;00;20;22 1919년 3월 1일 조선인 대표 33인은 00;00;20;22 - 00;00;25;29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00;00;25;29 - 00;00;28;29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뒤 00;00;28;29 - 00;00;32;15 조선은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벗어났고 00;00;32;15 - 00;00;37;17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홀로 섰습니다 00;00;37;17 - 00;00;42;12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는 00;00;42;12 - 00;00;46;19 독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00;00;46;19 - 00;00;52;19 이제 광복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과거의 일이 된 것일까요 00;00;52;19 - 00;00;58;20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00;01;06;25 - 00;01;10;03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산 00;01;10;03 - 00;01;15;10 강산이 여덟 번 변할 시간이라던가요 00;01;15;10 - 00;01;20;12 독립운동 당시 조그만 농촌에 불과했던 이 고장은 00;01;20;12 - 00;01;24;03 이제는 어엿한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00;01;27;11 - 00;01;31;07 모든 것이 변해 버린 듯한 도시의 한 켠엔 00;01;31;07 - 00;01;36;00 여전히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00;01;39;07 - 00;01;42;25 V5, 1 최용신 기념관은 2007년도 설립이 되었고요 00;01;42;25 - 00;01;47;03 오시는 분들한테 최용신 선생님의 업적이라든가 교육 활동이라든가 00;01;47;03 - 00;01;50;16 이런 것을 다방면에 걸쳐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00;01;50;16 - 00;01;54;13 최용신 선생님의 고향은 원래 안산이 아니고 원산입니다 00;01;54;13 - 00;02;00;21 그곳에서 어린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시게 되거든요 00;02;00;21 - 00;02;07;24 그러다가 1931년도에 23살 나이에 YWCA의 파견교사로 이곳 안산에 오시게 됩니다 00;02;07;24 - 00;02;11;23 처음에 오셨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고 해요 00;02;11;23 - 00;02;17;01 왜냐하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할까 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00;02;17;01 - 00;02;23;03 하지만 선생님의 열정적인 헌신과 봉사 정신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서 00;02;23;03 - 00;02;28;11 마을 사람들도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선생님과 친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요 00;02;54;26 - 00;02;59;13 그때 당시 우리나라 인구 중에 90% 이상이 농민들이었고요 00;02;59;13 - 00;03;02;18 그중에서 80% 이상이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00;03;02;18 - 00;03;06;24 선생님께서는 이 문맹이 빨리 퇴치되어야지만 00;03;06;24 - 00;03;11;12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농촌계몽운동에 몸을 담으셨는데요 00;03;11;12 - 00;03;14;20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이곳에 오셔서 00;03;14;20 - 00;03;19;05 여성 인권 교육이라든가 빈민구제 이런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00;03;26;14 - 00;03;30;27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강습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00;03;30;27 - 00;03;37;26 1935년 1월에 안타깝게 수업 시간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시게 되는데요 00;03;37;26 - 00;03;41;05 그런데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00;03;41;05 - 00;03;46;28 최용신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상록수 소설 책을 빼놓을 수가 없고요 00;03;46;28 - 00;03;50;10 선생님께서 너무나 안타깝게 일찍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으니까 00;03;50;10 - 00;03;54;24 그냥 보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해서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이야기하십니다 00;03;54;24 - 00;04;00;02 그래서 그때 당시 각 신문사나 잡지사에 선생님의 일대기가 다 실리게 돼요 00;04;00;02 - 00;04;02;27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이 너무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00;04;02;27 - 00;04;10;14 그분께서 최용신 선생님의 그 일대기가 실린 신문 기사를 보고 선생님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시게 되셨고요 00;04;23;02 - 00;04;30;01 흔히들 관람객들이 왔을 때도 독립운동가그러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많이 꼽으세요 00;04;30;01 - 00;04;38;04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물론 그러한 분들도 중요하지만 교육만이 우리나라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0;04;38;04 - 00;04;40;17 그래서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을 서셨고요 00;04;40;17 - 00;04;44;26 나중에 인정을 받아서 독립운동가로 추서가 되셨죠 00;04;45;22 - 00;04;51;04 최용신 선생께서 희생하며 교육의 불을 지핀 도시 안산 00;04;51;04 - 00;04;58;09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00;04;58;09 - 00;05;02;28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머문 장소에 외국인이라 00;05;02;28 - 00;05;09;10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민족정신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00;05;10;17 - 00;05;15;09 시대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 근본적인 맥락은 저는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00;05;15;09 - 00;05;21;11 그러니까 최용신 선생님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독립운동, 문맹퇴치운동이라고 했지만 00;05;21;11 - 00;05;24;06 그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다고 봅니다 00;05;24;06 - 00;05;30;26 이론적인 것으로는 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보지 않거든요 00;05;30;26 - 00;05;37;17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00;05;37;17 - 00;05;40;06 그게 교육의 본질이 돼야 된다고 보고 00;05;40;06 - 00;05;49;19 그렇다면 최용신 선생님이 하셨던 그런 일이나 지금 우리가 용신학교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나 00;05;49;19 - 00;05;53;22 큰 밑바탕의 맥락은 일치한다고 보고요 00;05;53;22 - 00;05;58;08 안산용신학교는 안산 다문화거리의 중심 00;05;58;08 - 00;06;02;12 일명 만남의 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00;06;02;12 - 00;06;09;23 1987년에 안산중앙실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곳은 00;06;09;23 - 00;06;17;12 초창기 일하는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는 야간학교, 즉 야학으로 시작했습니다 00;06;17;12 - 00;06;22;15 이후 교육 대상을 성인과 외국인까지 확장하며 00;06;22;15 - 00;06;27;25 지역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본떠 00;06;27;25 - 00;06;31;05 안산용신학교로 개칭했습니다 00;06;32;02 - 00;06;38;01 용신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00;06;38;01 - 00;06;46;29 내국인 학생들에게는 문해교육 그리고 중등 과정까지 학력 보완교육을 하고 있어요 00;06;46;29 - 00;06;52;28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두 부류의 학습자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00;06;52;28 - 00;06;59;16 이들을 같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00;06;59;16 - 00;07;08;22 직접 같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면 다문화감수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00;07;08;22 - 00;07;18;28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 연구 논문이 참이라는 것을 항상 검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고요 00;07;18;28 - 00;07;28;16 예를 들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 나라말로 사랑해요, 안녕하세요 이런 글을 예쁘게 쓰라고 하면 00;07;28;16 - 00;07;33;08 글씨만 쓰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의 국기도 그리는 근로자 있고요 00;07;33;08 - 00;07;38;03 아주 유명한 관광지 그런 것도 같이 그리면서 00;07;38;03 - 00;07;41;27 굉장히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걸 볼 수 있어요 00;07;41;27 - 00;07;49;06 자기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 우리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구나 00;07;49;06 - 00;07;52;27 내국인 학습자들도 신기한 듯이 보면서 00;07;52;27 - 00;08;00;06 아, 우리와 다른 문자가 있고 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00;08;01;02 - 00;08;06;27 이날은 마침 이번 차시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00;08;06;27 - 00;08;09;19 수업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00;08;09;19 - 00;08;14;07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00;08;14;07 - 00;08;18;05 약 3년 전 한국에 온 임올렉 씨 00;08;18;05 - 00;08;21;25 그에게 한국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00;08;21;25 - 00;08;24;29 안녕하세요 임올렉이라고 해요 00;08;24;29 - 00;08;28;17 제가 러시아에서 왔어요 00;08;28;17 - 00;08;31;14 2년 7개월 됐어요 00;08;31;14 - 00;08;35;19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00;08;35;19 - 00;08;38;16 염료를 팔고 00;08;38;16 - 00;08;43;14 지게차를 타고 제품을 받아요 00;08;43;14 - 00;08;45;23 지게차 면허는 어떻게 따셨나요 00;08;45;23 - 00;08;52;14 처음에는 러시아 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바꿨어요 00;08;52;14 - 00;08;56;04 1종 면허증 시험을 봤어요 00;08;56;04 - 00;09;02;18 합격한 다음에 1종 면허증 받았어요 00;09;02;18 - 00;09;04;27 한국에서 일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00;09;04;27 - 00;09;08;16 당연하죠 힘들어요 00;09;08;16 - 00;09;11;25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 말하면 00;09;17;11 - 00;09;20;24 이해하기가 좀 어려워요 00;09;20;24 - 00;09;26;28 근데 여기 우리 공장에서 상사들이 너무 좋아서 00;09;26;28 - 00;09;29;28 적응하는 거 빨리해요 00;09;31;24 - 00;09;33;26 (누군가를 발견한 올렉 씨) 00;09;33;26 - 00;09;38;12 (든든한 지원군 교장선생님 등장) 00;09;41;08 - 00;09;47;10 교장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00;09;47;10 - 00;09;48;04 이런 것도 찍어요? 00;09;48;04 - 00;09;49;08 먹방! 00;09;49;08 - 00;09;52;00 이거, 다 찍어야 돼요 00;09;52;00 - 00;09;54;25 선생님 이런 거 말 안 했어요 00;09;56;15 - 00;09;58;26 왜 말 안 했어요? 00;09;59;11 - 00;10;02;19 주말에는 수업 없으면 뭐 해요 00;10;02;19 - 00;10;03;25 수업이 없으면 00;10;05;03 - 00;10;07;21 딸이랑 같이 바닷가에 갈 거예요 00;10;07;21 - 00;10;08;29 딸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00;10;08;29 - 00;10;10;11 여덟 살 00;10;10;11 - 00;10;16;26 발음이 한국 사람처럼 들려요 00;10;16;26 - 00;10;19;17 알고 보니 딸바보였던 올렉 씨 00;10;19;17 - 00;10;24;06 여느 아빠들처럼 한참을 딸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00;10;26;01 - 00;10;28;01 식사도 마쳤겠다 00;10;28;01 - 00;10;31;24 이제 최용신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00;10;32;16 - 00;10;37;01 최용신 기념관에 오신 것을 너무나 환영합니다 00;10;37;01 - 00;10;39;23 저는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00;10;39;23 - 00;10;44;27 안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장은정입니다 00;10;44;27 - 00;10;47;20 일제 강점기라고 들어보셨나요 00;10;47;20 - 00;10;56;23 그 당시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서 식민지 생활을 하였던 그 시대거든요 00;10;56;23 - 00;10;58;12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0;58;12 - 00;11;00;22 그래서 이것 알고 있어요 00;11;02;22 - 00;11;10;04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지냈던 그는 관람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00;11;10;04 - 00;11;16;05 최용신 선생의 생애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00;11;17;24 - 00;11;21;14 최용신기념관 관람은 어떠셨어요 00;11;21;14 - 00;11;24;14 V5, 1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어요 00;11;24;14 - 00;11;31;28 왜냐하면 그때 밥 없고, 돈 없고 00;11;31;28 - 00;11;34;24 일본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00;11;34;24 - 00;11;38;14 최용신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00;11;38;14 - 00;11;41;03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 00;11;41;03 - 00;11;45;11 이제 알아요 대단해요 00;11;45;11 - 00;11;53;20 그 어려운 시대에 학교를 만들고 한글 가르치셨다는 게 대단해요 00;11;53;20 - 00;11;58;17 근데 일찍 돌아가셔서 좀 속상해요 00;11;58;17 - 00;12;01;05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2;01;05 - 00;12;06;19 우리도 8월 15일이 특별한 날이에요 00;12;06;19 - 00;12;14;29 절하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요 00;12;14;29 - 00;12;19;12 재미있고, 슬퍼요 00;12;19;13 - 00;12;24;00 오는 8월 15일에 뭐 하고 싶으세요 00;12;24;00 - 00;12;30;27 여기 와서 (최용신 선생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볼 수 있을 거예요 00;12;30;27 - 00;12;37;03 V5, 1 친구랑 같이 여기 영화 보러 올 거예요 00;12;38;18 - 00;12;45;06 최용신 선생님의 민족정신은 다문화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건가요 00;12;45;06 - 00;12;47;13 아뇨 당연히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 00;12;47;13 - 00;12;50;17 왜냐하면 최용신 선생님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00;12;50;17 - 00;12;55;28 교육활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이야기했던 것은, 애국심을 이야기했던 것은 00;12;55;28 - 00;12;59;06 강자들을 위한 게 아니고 약자들을 위한 거였거든요 00;12;59;06 - 00;13;05;14 안산은 진짜 다문화 도시잖아요 거대한 다문화 도시라고 해도 진짜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00;13;05;14 - 00;13;08;25 이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00;13;08;25 - 00;13;13;26 아직도 한글을 몰라서 소통을 못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00;13;13;26 - 00;13;19;08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용신 선생님처럼 교육활동을 펼친다면 00;13;19;08 - 00;13;24;12 같이 어우러지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00;13;24;12 - 00;13;32;01 우리는 보통 다문화 사회라고 할 때 인종으로 구별을 하거나 국적으로 구별을 하죠 그런데 00;13;32;01 - 00;13;35;24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00;13;35;24 - 00;13;39;29 인종이나 국적 같은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00;13;39;29 - 00;13;41;27 그리고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00;13;41;27 - 00;13;48;17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그냥 물리적으로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00;13;48;17 - 00;13;52;07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00;13;52;07 - 00;13;57;05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봅니다 00;14;01;13 - 00;14;06;25 소나무나 향나무 같은 경우에는 사철 푸르러어요 00;14;06;25 - 00;14;10;15 이런 푸른나무를 상록수라고 해요 00;14;10;15 - 00;14;13;08 책 제목이 아까 뭐라고 했죠 00;14;13;08 - 00;14;15;19 책 제목도 상록수였죠 00;14;15;19 - 00;14;21;16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00;14;21;16 - 00;14;24;12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살았잖아요 00;14;24;12 - 00;14;28;04 거기에도 굴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마음 00;14;28;04 - 00;14;33;03 그런 마음이 바로 상록수 정신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00;14;36;05 - 00;14;41;07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의 본질은 00;14;41;07 - 00;14;46;21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00;14;46;21 - 00;14;50;16 수십 년이 흐른 현대 사회에서도 00;14;50;16 - 00;14;55;28 누군가는 여전히 억압 속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00;14;55;28 - 00;15;00;10 최용신 선생께서 현대 사회를 마주하셨다면 00;15;00;10 - 00;15;05;00 바로 그들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셨을까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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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이게 실화라고... 삼일절에 아기 낳았다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퍼뜨린 어느 미국인 역대급 스토리, 결말포함 4분 몰아보기
3.1절, 서울에서 한 미국인 기자의 가족이 겪은 놀라운 실화...!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집 딜쿠샤(기쁜 마음의 궁전)는 지금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제 추방, 구두에 숨겨진 선언서, 돌아오고 싶었던 땅, 그리고 그가 끝내 묻힌 자리까지... 이 4분짜리 영상 하나로, 잊혀졌던 실화가 다시 살아납니다. #광복절 #딜쿠샤 #실화다큐 #서울 #명소 #몰아보기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Lance Conrad - Waiting and Hoping Yaniv Hayoun - I Hope Brianna Tam - Pursuit Starluxe - Lift Babies - Baby Sobbing Uncontrollably Historical Army - Rifle Gunshot, Single Shots Bullpup Firearms - Enfield L85, Cocking Gun, Loading Electric Typewriter - Write, Medium speed, Aggressive, Room Brazil Crowds - Demonstration Voices, Shouts, Applause, Chants, Sao Paulo Steps Hardwood - Dress Shoes, Jumping, Landing Elegant Footsteps - Dress Shoes, Scuffing, Dirt Steps Carpet - Sandals Running Foley, male breath, fast and slow, variation continuous Traps and Cages - Prison Cell Door Beautiful Birds - Aves Ambience in Nature - 사용 폰트 부크크 명조체 (주)부크크(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Bodoni 72 Smallcaps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Bodoni 72 Oldstyle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Apple SD 산돌고딕 Neo Apple (Apple 기기 사용자 상업비상업 사용 가능) Y이드스트릿체 (주)케이티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Sandoll 백종열필 산돌커뮤니케이션 (일반 디자인 상업적 사용 가능) G마켓 산스 TTF (주)이베이코리아 / G마켓 (상업적 사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ElevenLabs, Midjourney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딜쿠샤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시나요.조선을 사랑한 미국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곳은 딜쿠샤. 1923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가 지은 붉은 벽돌집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지요. 이 집은, 한 외국인이 조선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역사의 증거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탄생한 한 미국인 아기와 구두 덕분에,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같은 시각,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특파원으로 온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칩니다. 간호사는 황급히 메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불 밑에 종이 뭉치를 숨겼습니다. 곧 이어 병문안을 온 앨버트가 아기를 안아올리자 떨어진 종이. 그것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몰래 인쇄했던 독립선언서였습니다. 그날 밤, 앨버트의 동생은 조선을 떠났습니다. 구두 뒷축에는, 독립선언서 사본과 형이 쓴 영문 기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운동에 관한 내용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테일러는 조선을 잊지 못했습니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에 묻혔습니다. 딜쿠샤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치된 채 남아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복원 과정을 마치며 펜으로 지킨 집 딜쿠샤는 다시 시민들에게 열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펜을 든 이방인의 마음은 지금도 이 집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그곳은, 진실을 전하고 사랑한 땅에 끝내 돌아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의 딜쿠샤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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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의 길, 오늘의 나
80년 전 그날, 오늘 우리가 걷는 이유 1919년의 봄,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 그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작은 생가에서 시작된 저항은 지금도 천안의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영상은 유관순 열사 생가, 기념관부터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까지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천안 곳곳에 남겨진 과거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기증 저작물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04489menuNo=200020#self 저작권자: 소향 외 11]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CC BY 라이선스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48780menuNo=200020 저작 권자: 임다솔]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사용 폰트 조선100년체 - 조선일보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부크크 명조 - (주)부크크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VOLI의 AI보이스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과 천안 사적관리소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 니다 대본 00;00;01;05 - 00;00;03;05우리의 시간이 멈췄던 날00;00;04;00 - 00;00;05;49한(恨) 맺힌 침묵을 깨고00;00;09;32 - 00;00;11;29울려퍼졌던 한(一) 목소리00;00;13;05 - 00;00;14;53대한독립만세!00;00;16;03 - 00;00;18;11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00;00;18;36 - 00;00;19;48오늘을 걷습니다00;00;30;19 - 00;00;32;36그들이 외친 독립을 기념하는 곳00;00;33;17 - 00;00;34;44독립기념관입니다.00;00;39;12 - 00;00;41;10나라를 수호하려는 결의와00;00;44;04 - 00;00;45;29피로 지켜낸 태극기00;00;48;02 - 00;00;50;051919년 3월 1일00;00;50;40 - 00;00;52;47모두가 한 마음 한(韓) 뜻으로00;00;53;16 - 00;00;54;59독립을 말하고 있었습니다.00;01;16;25 - 00;01;18;22그날의 현장 한가운데에00;01;18;41 - 00;01;20;34한 소녀도 있었습니다.00;01;25;30 - 00;01;28;16유관순은 그날의 한 뜻을 이어받아00;01;29;59 - 00;01;31;39병천의 작은 집에서00;01;32;19 - 00;01;35;19거대한 저항을 준비했습니다.00;01;37;55 - 00;01;40;55열여섯, 어린 소녀의 저항은00;01;42;10 - 00;01;45;10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이자00;01;45;22 - 00;01;48;22그녀가 문을 나서게 했던 원천이고00;01;51;11 - 00;01;53;11독립 열사의 길이었습니다.00;01;57;19 - 00;01;59;241919년 4월 1일00;02;04;36 - 00;02;06;55유관순과 3천 군중의 외침00;02;07;35 - 00;02;09;14대한독립만세!00;02;09;56 - 00;02;11;38대한독립만세!00;02;12;12 - 00;02;13;07만세!00;02;13;38 - 00;02;14;33만세!00;02;15;37 - 00;02;18;37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앞섰던 그 순간00;02;19;31 - 00;02;23;14유관순은 그 함성에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00;02;24;45 - 00;02;28;44그날의 소리는 오늘도 이곳을 스쳐 갑니다.00;02;29;40 - 00;02;32;52보이지 않아도 들리는 기억 속 그날처럼00;02;36;15 - 00;02;38;20이제 그들의 곁에 휘날리는00;02;38;20 - 00;02;41;21태극기는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00;02;45;51 - 00;02;46;53유관순00;02;48;37 - 00;02;50;02순국자를 추모하며00;02;52;05 - 00;02;54;40그들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00;02;59;20 - 00;03;02;24그들이 있었기에 피어날 수 있었던 우리가00;03;03;00 - 00;03;04;33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00;03;28;18 - 00;03;30;54그들의 영을 위로하는 추모의 자리에서00;03;33;09 - 00;03;34;57우리는 굳게 다짐합니다.00;03;38;22 - 00;03;39;59피땀으로 지켜00;03;39;59 - 00;03;44;17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00;03;44;17 - 00;03;45;24겨레여00;03;45;24 - 00;03;47;06이 나라를 길이 빛내자00;03;50;52 - 00;03;53;07독립 열사의 희생이 이뤄낸 광복00;03;54;37 - 00;03;56;53우리의 다짐으로 지켜낸 80년00;03;58;36 - 00;03;59;09오늘00;03;59;46 - 00;04;02;17우리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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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 menuNo=200020wrtSn=13316936),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저작자표시 4.0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 용하였습니다.(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의 공공저작 물을 이용하였습니다.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55229menuNo=200020), 작성자:주식회사 아이티앤]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설화, 기증 박세임, 공유마당, CC BY - 사용 폰트 AppleGothic - apple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의 나레이션은 생성형 AI elevenlabs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정책방송원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셀수스협동조합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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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단재의 발자취를 따라
고지 사항 사용음원: 한국저작권위원회-임다솔의 우리네 소리를 듣다 은 CC BY라이선스로 제공됩니다. 사용폰트 : 고운바탕 ,에스코어드림, 굴림-Regular, KoPubWorld 바탕체-Medium, Noto Sans KR-Regular 사용 생성형 AI :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Kling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단재신채호생가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바쁜 일상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대전 중구 어남동 이곳은 단재 신채호가 1880년 태어난 생가지이다.독립운동가, 역사학자, 사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신채호 그의 유년시절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신채호는 조부인 신성우로부터 유학교육을 받게 되었는데요. 손자인 신채호에게 6살 때부터 한학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유학교육을 시켰고, 그래서 이미 10세 전으로 신채호가 통감절요나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을 이미 다 섭렵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신씨 가문의 대단한 천재가 났다. (라는) 소문들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생가지 인근에는 홍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고 있다. 제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도 다니곤 하거든요.근데 집 주변에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가 있다고 해서 관람 차 방문했습니다. Q.신채호를 어떤 인물로 알고 있는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신채호는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독립전쟁을 강조하는 독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 조선혁명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조선혁명선언문에서 신채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줄여서 대답을 한다면, 폭력혁명으로 속박상태에 있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야 된다 라는 것이었고요. 이런 폭력 투쟁론을 통해서,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을 비판하고 그걸 통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 모두가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성취해야 된다. (라는 것을)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1936년 신채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못한 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이 광복 이후 생가로 돌아왔다면 어떨까? 생가지 보고 엄청 놀라시지 않으실까요?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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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문화PD] 경상여지도_이야기와 함께 걸어보는 부산의 '센텀중앙로'
[대본]발걸음을 옮기면서 만나는 경상의 이야기들 길 위에서 펼쳐지는 우리가 몰랐던 장소와 여러 이야기 경상 문화pd 시선으로 선정한 경상여지도를 따라 걸어봅니다.짜잔 여기가 어디일까요. 여기는 바로 부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소 센텀시티입니다. 요즘 저희가 도로명주소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오늘 저희는 이곳 센텀중앙로에서 센텀이 왜 센텀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리고 이곳에는 어떤 문화시설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할까요.2000년도부터 첨단지식집약형 산업지구를 조성하기 위해 재송동과 우동 일원에 조성된 센텀시티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고요 센텀시티는 라틴어로 100을 뜻하는 센텀과 CITY를 결합하여 100% 완벽한 첨단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미입니다. 센텀시티에는 영화의 전당 벡스코 수영만 요트경기장 등 영화ㆍ영상 산업시설 전시ㆍ컨벤션 등의 문화 콘텐츠 관련 시설대규모 주거ㆍ상업시설이 대거 입주해 있습니다.먼저 영화의 전당으로 출발해 볼게요이곳은 영화의 전당입니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으로 지어진 건물이고요 공연, 영화 등 영상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영화의 전당은 두레라움이라고도 불리는데요. 함께를 뜻하는 우리말 두레와 즐거움을 뜻하는 라움을 합쳐서 함께 모아 영화를 즐기는 자리라는 뜻으로 불립니다.매년 10월 초가 되면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데요. 여러분들도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장소 벡스코로 방문해 볼까요.센텀시티를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 벡스코는 대규모 종합 전시ㆍ컨벤션센터입니다. 2002년에는 피파 월드컵 본선 조추첨 2005년 APEC 정상회의 그리고 국제게임전시회 지스타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한데요. 이 외에도 상시로 전시 박람회가 이뤄지고 있으니까 홈페이지에서 전시 이벤트 일정 등을 참고하셔서 벡스코를 더욱더 즐기시길 바랍니다.다음 장소이자 이제 아쉽지만 마지막 장소 수영만 요트경기장으로 다 같이 떠나볼까요.부산하면 떠오르는 바다 바다를 색다른 방법으로 즐기기 위해 요트를 타러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곳 수영만 요트경기장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 건설됐고요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국제적인 요트대회와 해양 스포츠 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야간에 오시면 마린시티와 요트 계류장의 모습이 어우러져서 대한민국의 홍콩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장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어떠셨나요. 100% 완벽한 첨단 도시를 추구하는 센텀시티를 돌아봤는데요. 영화ㆍ영상 전시ㆍ컨벤션 문화 콘텐츠 등 많은 즐길 거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부산에는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긴 길들이 많은데요. 이야기와 함께 걸어보는 경상여지도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유튜브 채널 문화포털에서 경상여지도의 다른 에피소드를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윤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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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5
[문화PD] 이 세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낸 금속 활자본, 청주에서 가장 오래된 직지
[대본]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유산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 고인쇄박물관이다.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만큼은 아니지만, 초입에는 가을을 체감하기에 손색없는 나무가 있다.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길도, 바로 옆의 흥덕사지도여전히 아주 오래되었고, 조용한 바람이 불었다.내부는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역사가 있었고,한 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미디어아트가 있었다.직지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다.우리가 그 책을 한 번 더 들여다봐야할 의미는 무엇일까.직지는 금속활자로 찍은 책으로 청주 에서 가장 오래되기도 했고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책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그런 자료입니다.그래서 청주에서는 이 기록 문화도시를 되게 지금 많이 강조하고 있고 기록문화도시로서대표적인 것이 또 직지라고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우리지역에서는 직지를 간행했던 흥덕사가 지금 우리 박물관 옆에 복원이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그래서 직지를 활용해서 최근에는 2004년부터 직지축제를 개최를 하고 있습니다.얼마전에는 올해는 직지문화제로 명칭을 바꿔서 계속 하고 있지만 그런 행사도 하고 있고.또 직지상을 저희가 유네스코에서 주관하는 직지상도 제정을 해서직지상도 수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앞으로도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이 직지라는 자료는 기록문화가 굉장히 지금 중요하고현재 뭐 컴퓨터라든지 정보기술들이 어쨌든 금속활자 인쇄기술을 모태로 해서발전해서 지금까지 온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활용 해서 청주가 더 기록문화도시로서 발전할 수 있는그런 콘텐츠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그런 자료라고 생각을 합니다.직지가 우리 청주에서 간행이 됐기 때문에 청주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직지는 청주뿐만 아니라우리 대한민국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갖고 보존해야 될 그런 자료입니다.왜냐하면 그런 이유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유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직지라는 것에 대해서 지역에서만 (의) 문화로 발생할 게 아니라가치나 의미를 생각했을 때 타 지역이라든지 많은 분들이 이 직지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그걸 가지고 우리 한국 였던 그런 문화 콘텐츠 위상을 좀다시 한 번 새길 수 있는 그런 기회도 삼았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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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문화PD] 국내 최초의 빵,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두과자
[대본]문화PD님들과 톡을 하다가 보석사 은행나무에 대해 들었어요.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보석사의 은행나무였구나...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안 광덕사에 있는 호두나무가 생각나더라구요?그렇지 광덕사의 호두나무도 꽤 유명하긴 한데...호두나무... 호두... 호두과자... 호두과자?!생각해보니까 에전에 호두과자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그러니까 우리나라 최초의 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더라구요호오 이거 재밌네, 하면서 단톡에 답장을 올려봤죠(인트로 등장) 엄밀히 따지고 보면 호두과자가 최초의 빵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정확하게는 우리나라 원조 빵의 역사는 구한말로 올라간다고 해요대한제과협회에서 만든 한국빵과자문화사에 따르면 1885년에 선교사로 왔던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입국하여 빵을 구우면서, 이를 한국 최초의 빵으로 보고 있다고 해요 그렇다고 호두과자가 최초의 빵이 아니라고 보긴 어렵습니다최초로 구워진 빵이 아니라, 최초로 상표로 등록된 빵이라는 조건에서 천안 호두과자는 최초의 빵으로 인정된다고 하는데요최초의 호두과자는 1934년에 천안역 근처에서 문을 연 OO할머니 호두과자라고 하는데요이는 국내 최초의 빵집이라고 알려진 대전의 성심당(1951년), 그리고 전북 군산의 이성당(1945년)보다 훨씬 앞선 시기라고 하네요 이렇게 최초의 빵인 호두과자가 만들어지면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교통의 중심지였던 천안의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천안을 오가는 여행객들에게, 나아가 전국 휴게소의 주메뉴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죠 현재는 그 역사를 기반으로, 천안을 빵의 도시라는 타이틀로 홍보,빵빵데이라는 축제도 열렸다고 하는데요국내 최초의 빵, 호두과자에서 시작된 멋진 일들이 앞으로도 많아지겠죠? (호두과자의 변신) 시간이 흐르면서 호두과자도 다양한 변신을 해오고 있는데요이전엔 팥이 들어간 일반 호두과자만 있었다면이젠 치즈가 들어간 치즈 호두과자, 겉에 초콜릿을 묻힌 초코 호두과자바삭한 소보로를 감싸 튀셔난 튀김소보로 호두과자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서 함께 추억을 나누고 있습니다. 익숙한 모습으로, 때로는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천안의 호두과자!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어쩌면 그 시간 속에 남아있는 우리의 추억들이아름답기 때문 아닐까요?
신동익
조회수: 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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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문화PD] 천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나무
[대본]나레이션: 다들 충청도에서 오래된 것들 찾아보셨나요?나레이션: 서점을 보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옛날부터 저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책이 왜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생각나는 게 있다면 책에서 나는 향기가 참 좋았어요.종이에서 느껴지는 나무의 냄새, 그게 지금도 떠오릅니다.저는 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레이션: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지역 금산,이곳에는 천년고찰로 유명한 보석사가 있습니다.보석사는 신라시절 조구대사가 창건한 절로 초입에 자리한 전나무 숲이 매력적인 곳입니다.이곳 대웅전은 충남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경내를 돌아 옆 문으로 나오니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은행나무가 보였습니다.나레이션: 나무는 무언가를 기념하듯 다양한 글씨와 색깔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현장음: 나무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진짜 범상치 않은 나무라는 게 보자마자 딱 느껴집니다.인터뷰: 보석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이 되있고 높이 40m 둘레 10여 m로 1200여 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라 헌강왕 12년, 886년에 조구대사와 다섯 제자가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게 됩니다. 그 은행나무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하나로 뭉쳐져서 자라온 것이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어 있습니다.은행나무에는 신묘한 힘이 있어 1592년 임진왜란과 1950년 625 또 큰 가뭄이 걸렸을 때 울었다는 그런 전설이 있습니다나레이션: 10월 말 이곳에서는 보석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다가올 목신제를 앞두고 사람들의 소원을 나무에 거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어요.위기를 알리고 사람들의 소원을 잇는 나무, 나무와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습니다.1000년의 세월을 지닌 이 나무는 놀랍게도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가 아니었습니다.현장음: 저는 원래 금산에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가 오래된 은행나무인 줄 알고 그걸 찾아가고 있었는데 금산문화원장님께서 요광리 은행나무라고 훨씬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그 은행나무를 찾아가고 있습니다.아 이거구나 와~와 진짜 크다인터뷰: 요광리 은행나무는 추부면의 마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오래된 은행나무로써 유서가 깊은 나무입니다.높이가 24m 둘레가 13m 또 나이는 1400년 이상 추정이 되고, 나무 중간 부분은 수십 년 전에 벼락으로 잘라졌고 지금 둥치에서 나온 가지들이 원목을 이루고서 크고 있습니다.현장음: 와~ 한 지역에 이런 나무가 또 있다니?나레이션: 1400년 가까운 수명으로 추정되는 요광리 은행나무, 이곳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요광리 은행나무를 영험한 나무로 여기고 있었습니다.매년 10월이면 요광리 은행나무 목신제가 열립니다.나무를 둘러싼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천년의 세월을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네요.사람보다 훨씬 긴 수명을 가진 나무는 그렇게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나무의 수명은 어떻게 결정될까요?수분, 토양, 주변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은행나무는 천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나무의 냄새를 따라 찾아온 금산,이곳에서 저는 알지 못했던 나무의 시간을 알게 되었습니다.새로운 것들로 가득 차고 변화하는 세상 속, 나무의 시간은 늘 우리 곁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임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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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3
[문화PD] 6평 책방 안에 5만 권의 책이 담겨 있는 대전 동구에서 가장 오래된 책방, 고려당 서점
[대본]기사를통해알게된대전동구에서가장오래된서점인고려당서점서점이간직한역사와이야기에대해자세히듣기위해고려당서점의주인인장세철씨를인터뷰했습니다!-중앙시장A동에있는고려당서점인데50년전에개업을해서지금까지영업을해오고있습니다.-여기가그전에는원동국민학교였어요원동국민학교가있었는데시대의흐름에다라서원동국민학교가폐쇄되고이곳에동구청이들어왔었어요그러고중앙시장도생겨서A,B,C동까지있었는데화재가나가지고A동도불나고B동도불나서소실됐는데다시복구해가지고72년도에복구된중앙시장에서개업을해서지금까지계속적으로영업을하고있는겁니다그때당시에는서점이한열두군데정도가있었어요지금은서점을인터넷으로전부하기때문에지금은네군데가남아있는겁니다-그러니까이제제가50년동안있으니까계속적으로보다가정년퇴직한분들도오고사장님은어릴때부터봐온손님들이석사/박사과정을밟는것을보신적도있다고합니다책을구하기어렵던시절,공부를위해서점을찾아온학생들을떠올리시는사장님의모습은어딘가뿌듯해보였습니다-아뇨,없었어요옜날에는중/고등학교교과서만취급했기때문에책이많지않았고도서관에서받지않는책들을매입하면서이렇게많이쌓이게됐어요책이엣날에는많이없었기때문에쌓아둘수가없었는데지금은책이넘쳐흐르기때문에이렇게밖에나와있습니다-임진왜란전에있잖아임진왜란전에활자본같은거는책이귀해요그런책이있으면은후배들한테주기때문에제가가지고있는책은없어요-제가90살인데몸이건강할때까지유지를할계획입니다-지금까지50년동안변함없는사장님의따뜻한마음과세대를아우르는추억을간직한서점,고려당서점이었습니다
김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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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1490년에 쓰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대본]더빙-창윤)여러분. 저희 이번 영상 주제는 뭘로 하면 좋을까요?더빙-정은)그동안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 했으니 이번엔 아날로그 어때요?더빙-재운)사실 충청도에는 가치 있는 오래된 것들이 많죠.더빙-예나)오. 그럼 그걸 주제로 해볼까요?더빙-동익)재밌겠는데요?! 찬성합니다!!!나레이션)충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을 찾기 위해 고민하던 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가 이곳, 대전 시립 박물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박물관 가장 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직접 만나 볼 수 있었는데요.빛바랜 편지 위에 빼곡히 적힌 한글 고어가 인상적이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다행히 QR코드를 통해 현대식으로 번역된 한글 편지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함께 들어보실까요?더빙-나신걸)안부를 끝이 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서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어머님과 아기 모시고 잘 계시오.나레이션)수백 년 전 아내에게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서러움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편지라니.요즘 이야기로 치면, 회사의 지침으로 강원도 발령 가면서 아내와 함께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푸념하는 직장인의 카톡 메시지인 걸까요?해당 유물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인터뷰 음성)안정 나씨의 한글 편지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금고동 안정 나씨 묘역에서 출토된 한글 편지입니다. 안정 나씨 나신걸이 부인인 신창맹씨에게 보낸 편지입니다.나레이션)해당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는 무엇인가요?인터뷰 음성)1443년 세종대왕 때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된 것은 1446년인데요.그리고 한 오십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회덕 지방 지금의 대전광역시까지 한글이 널리 전파되고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이 됩니다.나레이션)한글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재밌는 요소가 있다는데요.인터뷰 음성)처음에는 바르게 우리가 편지 쓰는 식으로 적다가 나중에는 위쪽에 적다가 아래쪽에 적다가 아니면 거꾸로 뒤집어서 빈 공간에 쓴다든지 하면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나레이션)안정 나씨 묘에서 출토된 다른 유물은 어떤 것이 있나요?인터뷰 음성)명기나 복식과 같은 14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명기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현세와 같이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쓰는 일상 용기를 자그만 형태로 만들어서 같이 껴묻거리로 매장한 것이고요. 같이 출제된 복식 중에 치마나 바지라든지 철릭 같은 것은 당대 복식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나레이션)가장 오래된 무언가를 상상할 때, 저는 막연히 그것이 나와는 아주 먼 것, 아주 다른 것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전 유성구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 속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만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 같은 것은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그것과 다른 바 없었습니다.500여 년 전 한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는, 수백 년을 지나도 변치 않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더빙-예나)여기까지 저의 주제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였습니다!더빙-동익)와. 충청도에 저런 것이 있었군요.더빙-정은)500여 년 전 가족의 사랑이 담긴 편지라니 감동적이에요!더빙-재운)다음 주제도 정말 기대되네요. ㅎㅎ
이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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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죽음편
[대본] 앞에서는 설문대 할망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요 설화라는게 탄생이 있다면? 죽음도 있는거겠죠? 지금 저는 그래서 설문대 할망의 죽음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이곳 돌문화공원에 나와있습니다 제주 돌문화공원 위치 :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교래자연휴양림 운영시간 : 09:00~18:00 (월요일 휴무) 연락처 : 064-710-7733 주소 : http://www.jeju.go.kr/jejustonepark/index.htm 사람들이 제주도하면 원래부터 우리나라 영토였던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어떻게보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제주도 같은 경우에는 12세기 조선시대때 우리나라 영토에 편입이 된거에요 그래서 하나의 독립된 나라로 있었었는데 흔히들 들어보셨을거에요 탐라국이라고 하죠 탐라국 그게 원래는 독립된 섬나라였었던게 바로 이 제주도였습니다 그래서 설문대할망 같은 재밌는 건국신화도 있는거죠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데요 오늘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내용은 설문대할망의 결말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설문대할망과 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자세하게 소개해주실 분을 한 분 모셔봤는데요 저는 돌문화공원 안에 있는 설문대할망 전시관이랑 오백장군 갤러리, 그리고 야외전시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부탁드려요 돌문화공원은 곶자왈에 있는 공원인데요 돌을 소재로해서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을 테마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보시다시피 건물도 되게 낮은데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도록 높이도 최대한 낮추고 자연스럽게 배치하도록 의도된 공원이기도 하구요 제주도 형성과정을 볼 수 있는 돌박물관과 여러가지 예술 작품을 볼 수 있는 오백장군 갤러리 제주 돌문화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2코스, 3코스도 마련되어있습니다 지금 얘기들어보니까 설문대할망이랑도 관련이 많이 있는거 같은데 돌문화공원이랑 설문대할망은 어떤 관계가 있는걸까요? 돌문화공원 자체가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테마로해서 만들어진 공원인데요 이곳에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 전설과 관련된 여러가지 장소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조금 슬프지만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장소들을 한번 둘러 보면 좋지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면 이럴게 아니고 나가서 한번 얘기를 들어볼 수 있도록 할까요?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중 첫번째인 물장오리 관련 전설입니다 물장오리는 한라산에 있는 연못인데요 설문대할망은 자신의 큰 키를 실험하고자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녔는데요, 처음 용연에 갔을때는 본인의 발등에만 (물이) 닿았고 홍리물에서는 무릎에 닿았는데요 한껏 기고만장해진 설문대 할망은 한라산 물장오리로 가게 되었는데요 물장오리 바닥 없음 주의! 이곳이 밑이 없는 연못인지도 모르고 (물에) 들어간 설문대 할망은 영영 나올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설문대할망의 죽음과 관련된 전설중 첫번째 입니다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하는 죽솥을 형상화한 연못입니다 설문대할망은 오백장군을 낳아서 같이 생활하고 있었는데요 워낙 가족이 많다보니 가난한 삶을 살았고 가뜩이나 흉년이 겹치는 바람에 설문대할망이 자식들에게 사냥을 해서 양식을 구해오라하고 본인은 죽솥에서 자식들을 먹일 죽을 끓이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설문대할망은 죽솥에 빠져 죽게 되었구요 그 사실을 모르는 오백장군은 돌아와서 죽을... 맛있게 먹게 되었는데 맛있게 죽을 먹다가 막내가 뼈다귀를 발견하게 됩니다 뼈다귀가 어머니의 뼈임을 직감한 막내는 슬퍼하면서 차귀도로 달려가게 되었는데요 그 안에서 울며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그리고 나머지 형들도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역시 바위가 되어버렸는데 지금의 오백기암이 바로 그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했다시피 설문대할망이 빠져 죽었다고 한 죽솥이구요 그 주변을 오백장군을 형상화한 석상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실제 오백장군이 돌이 되었다는 기암들은 한라산 영실에서 보실 수가 있구요 지금 이 돌들은 그 기암들을 석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돌문화공원 내에 산재되어있는 형상물들을 보면 설문대할망의 모성애와 어머니를 잃은 자식들의 슬픔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나머지 설명은 문화PD님께서 전달해 주시겠습니다 이렇게 설문대할망과 제주돌문화공원에 대해서 알아보게 됐는데요 저는 여행지에 대한 설화나 역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게되면은 그곳이(여행지가) 조금 더 다르게 보이게 되는 경향이 생기더라구요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제주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돌도 많이 있으니까 제주돌문화공원에 방문 하셔서 이렇게 아름다운 경치 관람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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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제주 민간설화 설문대할망 -탄생편
[대본]안녕하세요문화PD 양지환 입니다저희가 오늘은 산방산에 찾아 왔는데요산방산은 서남쪽에 위치한 아주 예쁜 절벽을 이루는 산이에요여기는 오름은 아니고 약간 절벽처럼 이렇게 이루어져 있어 가지고설화가 있는데 그 설화와 산방굴사아름다운 전경과 함께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함께 가시죠저희가 이제 산방산에 도착을 했습니다산방산 안내도는 여기 앞에 있는데요함께 가보시죠여기 현 위치에 있는보니까 좀 경로가 좀 많아요절 들이 되게 많고맨 끝에 산방굴사가 있는 것 같아요저희는 쭉 올라가서 산방굴사까지 가보도록 할게요근데 굉장히 계단이 많아요한번 보여주시죠처음에 산방산에 들어오면 이렇게 보문사라고 있는데이쪽으로 올라가면 산방굴사가 나온다는데요산방굴사는 선녀와 관련된 설화가 있는데요저희가 한번 올라가서 그쪽 산방굴사를 찍으면서그 설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드릴께요사실 이런 거대한 산방산에는 재미있는 설화가 있는데요바로 설문대할망이 산방산을 만든 이야기예요옛날 제주도에는 아주 키가 큰 설문대할망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요할머니는 키가 너무 커서 한라산을 베개 삼고누우면 발이 바다에 풍덩 빠질 정도였대요할머니가 어떤 일로 굉장히 화가 나서한라산 꼭대기를 손으로 퍼다가 휙 하고 던졌는데그것이 제주도 끝자락에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고 해요산방산이 백록담 뚜껑인 거죠지름을 재보니 백록담과 산방산이딱 맞아떨어진다는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도 있습니다네 안녕하세요저희가 두 번째로 온 이 장소는 바로 알뜨르 비행장이라는 곳입니다저희가 원래는 용머리 해안을 가려고 했으나그쪽이 지금 만조상태라서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통제가 됐어요그래서 지금 여기 보이시는 알뜨르 비행장에 저희가 도착을 했습니다여기 알뜨르 비행장은이렇게 지금 옛날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하죠제주도의 아픈 역사들그런 역사들이 담긴 곳이에요다크 투어리즘이란 일제강점기시대 때제주도민이 강제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여기 전체를 비행장으로 썼는데 그런 곳에 시설을 직접 만들고그런데 좀 인력이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자세한 정보는 제가 나중에 텍스트로 남겨드릴게요여기가 바로 알뜨르 비행장격납고입니다이곳은 아까 말했던 그 비행장비행장을 만들면서 그 비행기에옛날 그 비행기 잔해가 이렇게 남겨져 있는데추모를 하는 곳인 것 같아요천들이 같이이렇게 추모를 하는 것 같습니다제주도민들이 그 일제시대에 당시에이렇게 강제적으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지금 이곳만 있는 게 아니고곳곳에 되게 많은데어떤 데가 허물어진 곳도 있어가지고 이게 제일 대표적으로 이렇게 있고학생들이나 어린 친구들도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도록내용들이 담겨져 있으니까요설문대할망탄생 그리고 산방산의 설화그리고 그 근처의 가볼 만한 곳 중 하나 인알뜨르 비행장에 다크 투어리즘까지이렇게 총 두 곳을 저희가 살펴보았는데요산방산의 전경과 그런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설화까지정말 매력적인 그런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그리고 주변에 이렇게 알뜨르 비행장이라고 있는데이것도 다크투어리즘으로써 제주도의 아픈 역사함께 같이 보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에관광객 여러분께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저는 지금까지 설문대할망의 탄생그리고 산방산의 설화 이야기를 전해 드렸고요2부에서는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관하여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감사합니다
양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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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문화PD] 대구 근대건물이 살아있다. <고모역 복합문화공간 편>
[대본]대구에는근대적건축물을리노베이션하여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활용된곳들이많습니다.대구리노베이션복합문화예술공간특별기획근대건물이살아있다으로총4개영상으로구성됩니다.오늘은대구리노베이션복합문화예술공간시리즈4탄입니다.고모역복합문화공간이근혜주임*모든질문과답변은서면인터뷰로진행하게되었습니다.*Q1.고모역의근대로부터현대까지변화과정1925년개통한고모역은통근열차와완행열차등이정차했던대구선의작은역이었습니다.한때는인근에서생산된농산물을유통하려는상인들,통근열차를이용하는직장인과학생들,인근군부대군인들그리고입영열차를타는아들을먼발치서라도지켜보려는부모님들로북적이던장소였습니다.대구철도노선이설사업에따라대구시가지를관통하던대구선노선이폐선되면서자연스레고모역에정차하던열차도줄어들면서2004년에여객운송이종료되고2006년화물운송또한종료되면서역운영이중단되어폐역이되었습니다.Q2.고모역의현재역할및근황고모역복합문화공간은지역민의향수와추억,시대의애환과사연을담고있는장소로역사와문화가살아숨쉬는공간입니다.단절된폐역사를살아있는역사로재생하여고모역의의미를재발견하고새로운문화적가치를창조하고있는공간이기도합니다.세대와세대를이어주는의미있는장소로써어른들께는지난시대에대한향수를아이들에게는역사를되돌아보며앞으로다가올미래를이야기하고있는복합문화공간입니다.Q3.고모역관광객수나현황저희고모역복합문화공간을찾아주시는관람객분들께서는주로주말에많이방문해주시고계십니다.평일엔어린이집이나단체관람객분들이주로찾아주시구요,주말엔친구와연인,가족들과의나들이를오신관람객분들이많이방문해주시고계십니다.Q4.앞으로의고모역운영에관하여빠르게변화하고발전하는시간속에서고모역은자리에그대로멈춰있는듯하지만다른사람들의추억을기억하기위해천천히운행하고있는기차와같은공간입니다.저희고모역복합문화공간을찾아주시는분들의소중한순간들이예쁘게기억되고추억될수있도록다시오고싶은공간이될수있도록노력할계획입니다.지금까지고모역복합문화공간이였습니다.총4개의대구의리노베이션복합문화공간을소개해드렸는데요.저희가소개해드린장소4곳이외에도대구를비롯한전국각지에수많은리노베이션복합문화공간이있습니다.기회가되신다면,전국리노베이션복합문화공간을하나씩정복해나가보시는건어떠신가요?또는우리집근처에는이런공간이없는지찾아보시는것도추천드리겠습니다.이것으로대구리노베이션복합문화예술공간시리즈를마무리하겠습니다.시청해주셔서감사합니다.
엄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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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문화PD] 대구 근대건물이 살아있다. <수창청춘맨숀 편>
[대본]대구에는 근대건축물을 리노베이션 하여 복합문화 예술공간으로 활용되는 곳들이 많습니다대구 리노베이션 복합문화예술공간 특별기획 시리즈 근대건물이 살아있다는총 4개의 영상으로 구성됩니다오늘은 대구 리노베이션 복합문화예술공간 시리즈3탄 수창청춘맨숀입니다안녕하세요 수창청춘맨숀 김향금 관장입니다수창청춘맨숀이 과거에는 구KTG 연초제조창직원들의 관사로 사용되었던 공간입니다근데 20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가2017년도에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에 선정이 되면서지금 현재 청년예술가를 지원하는청년 융복합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Q 수창청춘맨숀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하는 공간이다50년의 역사의 흔적이 외, 내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고요현대적으로 다시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느낌도 남아있고요이 공간에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미래를 향한 꿈을 펼치는 공간이라서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Q 어떤 작품들을 볼 수 있나요?이번 기획 전시의 주제가 결혼입니다청년의 눈을 통해서 본 지금 변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의결혼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어떤 만남이나 관계 맺음에 대한이야기를 드러내고 있는 전시인데요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한번 확인해 보는전시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Q 수창청춘맨숀의 매력포인트는?그 시간여행을 떠나온 느낌으로 공간을 한번 탐색하듯이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외부에도 테라스에 작품들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고요ㄷ자 형태로 이어진 공간들이 약간 미로 찾기처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거든요전시장 말고도 복도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숨겨져 있습니다배전함 속에 먼지까지도 같이 예술작품들과 함께어우러져 있는 공간적 재미가 있기 때문에탐색하듯이 공간을 둘러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Q 방문객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A동 1층 입구에 무인카페가 있습니다그 무인카페는 이 공간을 방문하시는 모두가내 공간인 것 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성이 되어 있는데요거기서 직접 커피를 내려드시고 차를 만들어 드시고 설거지까지 하시고책도 읽으시고 이런 공간입니다그러니까 문화공간을 내 공간처럼 내 집처럼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놨습니다꼭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김동민버려진 건물이 청년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공간으로시민들의 발걸음과 휴식의 공간으로지금까지 대구 리노베이션 복합문화예술공간 근대건물이 살아있다 시리즈 3탄 수창청춘맨숀 이었습니다다음 시리즈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정차역 고모역 복합문화공간입니다.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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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문화PD] 대구 근대건물이 살아있다. <북성로 편>
[대본]대구에는 근대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하여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는 곳이 많습니다. 대구 리노베이션 복합문화예술공간 특별기획 시리즈는 총 4개의 영상으로 구성됩니다.오늘은 대구 리노베이션 복합문화예술공간 2탄 북성로입니다.북성로 믹스 카페를 운영하는 대표 김헌동입니다. 이 공간은 외면적으로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건축물은 근대 건축물로서 일제강점기때부터 지어진 목조주택과 1950년대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 2개의 건축물이 한 공간에 같이 붙어서 있기 때문에시간과 공간이 중첩되고 또 만나는 사람의 다양성이 존재하고 그래서 카페 이름에서 보듯이 믹스카페에서 믹스는 그런 조화와 상생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 북성로라는 도로명에서 보듯이 대구에는 조선시대 읍성을 통해서 네 방위를 통한 큰 길들의 이름이 지금도 쓰이고 있고 그래서 해방 이후에 대구의 중심가가 북성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때 존재했던 건축물들이 아직 많이 존재하고 요즘 현대 건축물은 재료나 질감이 유사한데 비해서 옛 건축물은 의외로 집주인이나 건축주에 따라서 모양이 색다릅니다. 그래서 이 믹스카페는 전면부의 파티션이라던지. 내부로 들어와서 마당과 목조 이런것들이 다른 건축물보다 좀 더 다이나믹하고 시대적인 그런 것들을 많이 갖고 있고 또 구조적인 특성이나 감성들이 이 곳을 택하게 된 계기라고 봅니다. 젊은 친구들은 옛것에 대한 새로움이나 호기심이 많고 나이가 드신 분들은 오히려 그런 향수나 익숨함에 많이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연령대가 다양하고 또 거기에 따라서 국내인뿐만 아니고 외국인들도 대구를 찾았을 때 대구의 근대 역사가 깃든 이런 건축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또 좋아하십니다. 제가 이곳에 들어온 시기가 2014년인데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그 당시는 이쪽이 인구 유입이라든지 지가 상승이 낮은 노후된 지역이었지만, 지자체의 노력의 일환으로 재생이 되고 복원 되면서 근대로의 발자취를 많이 잘 살려서 분위기를 이끌어 오던 중에 행정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면서 새로운 현대적인 건축물이 또 길 건너편에 들어서고 그래서 크게 보면 모든것이 상대적이니까 무엇이 좋다 나쁘다라고 우리가 구분짓기보다는 그 변화속에서 그냥 할 수 있는 것들. 또 지킬건 지키고 바꿀건 바꾸고 그런 큰 의미에서 보면은 좋은 쪽으로 긍정적으로 노력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식되어지고 존재하는 것들 그것이 이제 어떤 시간이든 공간이든 그 의미의 가치든 간에 모든 것들이 좋은 도시 좋은 국가는 다양성을 품고 또 그런것들에 대해서 조화가 생기고 그래서 미래지향적이면서 소통되고 그런것들이 물질이든지 정신적인 측면이든지 같이 일어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는 이 북성로는 옛것에 대한, 그 다음에 조금만 벗어나면 현대적인 것 이런 것들이 대구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고, 가치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것을 품고 우리가 인식을 하고 서로 존중하고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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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문화PD] 대구 근대건물이 살아있다. <대구예술발전소 편>
[대본]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역에는 근대 역사로부터의 수많은 흔적이 담겨진 공간들이 남아있습니다.문화적, 예술적인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이러한 공간들은 최근 현대식으로 다시 재건축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닌 채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이러한 건물들은 그 자체로 역사를 보존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지도 몰랐던 과거의 건물을 새로 창조해냄으로써 문화적인 의의가 더해지게 되었죠.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건물은 바로 대구 예술 발전소입니다.(옛날 건물 사진) 이 건물은 어떤 회사의 연초제조장의 별관 창고로 쓰기 위해 지어졌지만, 지금은 청년예술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대구예술발전소의 개막식에는 국내외 작가 150여 명의 작품 약 300점이 전시되기도 했습니다.
황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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