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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들이 웃는 날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사진들을 모아 AI로 영상 복원하였습니다. 흑백 사진 속 독립운동가들은 다시 움직이고, 그 순간의 표정과 시선을 통해 시대의 숨결을 후대에 전합니다. 지금, 그 역사와 마주해주세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SunoAI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음원명 815_music (생성형 AI 사용)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 사용 폰트 [무료] 감탄로드고딕체(산돌구름), 코트라손글씨체(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ChatGPT, KlingAI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웃던 날 (대본) 나라를 빼앗긴 후 민족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들의 싸움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어 모든 이들을 목청껏 소리치게 했다 나라는 저물어갔지만 그 어떤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헌신했다 자신의 재산도 자신의 젊음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 처절하게 휘둘렀다 시대에 떠밀려 나라를 떠나왔어도 그 삶이 끝없이 척박했어도 늘 고국 생각 뿐이었다 성별도 상관 없었다 신분도 무의미했다 오직 독립 만을 꿈꿨다 너무 많은 희생 속에서 해방을 맞이하던 날 모두 달려나와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웃었다 해방된 나라에서 그들의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먼 미래 누군가의 현재를 위해 싸웠다 그들이 웃는다 그토록 갈망했던 순간이었다
관리자
조회수: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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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 기억광장을 걷다
광복은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 피어난 기억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역사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단순한 구조물의 재현이 아닌, 각각의 장소가 담고 있는 상징성과 감정을 한자리에 모으는 기억의 재배치에 있다.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공간들을 한 장(場)에 엮어냄으로써, 우리는 광복이라는 거대한 이 야기를 보다 입체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의 경험을 유도하고자 한다. 본 영상에는 클로바더빙(CLOVA Dubbing)의 AI 보이스가 사용되었습니다. #클로바더빙 #고은 바로 가기 URL: https://clovadubbing.naver.com 사용폰트 GS칼텍스- 한용운체, GoogleXAdobe -본명조 사용음원 한국저작권위원회(https://www.copyright.or.kr/main.do) - 국악연주곡_묵념 Korean by CrazyTunes CrazyTunes Korean(유료) original_soundtrack Korea(유료) Tatamusic Korea(유료) (라이센스 보유) 본 저작물는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유마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70920menuNo=200018, (저 작권자: 한국정책방송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유마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70998menuNo=200018, (저 작권자: 한국정책방송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유마당: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68384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한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유마당: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85937division=img, (저작권자: 국가유산청)]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유마당: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68387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68418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70429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70417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76428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68363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recommendIdx=68382division=img, (저작권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대본 여러분은 독립운동이 어디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립운동은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서울 곳곳, 거리와 공원, 광장마다 그날의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 흩어진 기억들을 디지털 공간 위에 다시 모아보려 합니다. 그 여정은 광화문에서 시작됩니다.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해체됐다가, 2010년이 되어서야 제자리를 되찾았습니다. 그 복원은 단순한 건축이 아니라,되찾은 기억의 상징입니다.저는 이 광장을 무대로 직접 3D 스캔한 장소들을 다시 엮어보려 합니다. 포토그래메트리는 사진을 통해 실물을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기술입니다. 이 방식을 통해, 각기 다른 장소들을 하나의 기억 광장 안에 연결하고자 합니다. 처음 찾은 곳은 서대문독립공원입니다. 독립문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 자취입니다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기 전, 이 문에는 자주와 개혁을 향한 민중의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은, 20년 뒤 3.1 만세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탑골공원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이 평화로운 공원은 민중의 외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외침은 조선 전역을 흔든독립의 불꽃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성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이 놓인 자리입니다. 이 소녀상은 평화의 나비를 품고, 우리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 손엔 과거를 넘어, 미래와 연대를 향한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구서울역 앞 광장입니다. 이 광장에서 1919년 강우규 의사는 조선총독을 향해 폭탄을 던지며 대한의 독립정신을 알렸습니다. 서울역은 귀환의 장소이자, 목숨을 건 저항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제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태어난 기억들을 하나의 광장에 다시 모읍니다. 현실에 존재하진 않지만,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싶은 모습입니다. 이제 광복: 기억광장을 소개하겠습니다. 독립을 향한 선언, 민중의 외침, 아직 끝나지 않은 증언, 그리고 기꺼이 맞선 저항. 이 모든 기억은 광복을 향한 여정의 일부였습니다. 도시 곳곳의 흔적과 사람들의 뜻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습니다. 기억은 연결될 때 힘을 가집니다. 우리가 기억할 때, 역사는 이어집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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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삶의 터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마지막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 문화공간 이육사를 직접 방문해, 이 육사의 활동과 삶의 흔적을 따라가보았습니다. 그리고 [청포도] 시에 담긴 마음도 잠시 들여다보며,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그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이육사가 간절히 기다렸던 손님 광복.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지금 시작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Pixabay 에 따라 [ 픽사베이 https://pixabay.com/ko/music/, 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Billy_Ziogas,Huynhhoa89]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Documentary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 - Classical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 - Camelot Master Track (무료-Pixabay/제작자: Billy_Ziogas) - instrumental piano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Huynhhoa89) - 사용 폰트 (윤디자인)만세체/(류양희)고운바탕체/(산돌구름)에스코어드림/조선일보명조체/조선100년체/(정선군)정선아리랑체/ 노토 산스체/Anton체/210 디딤고딕체 (상업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이육사문학관, 국가유산청,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문화공간 이육사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12;17 - 00;00;16;19 서울 성북구 종암동. 이 조용한 골목 안에, 00;00;16;19 - 00;00;20;06 한 시인의 흔적이 고요히 숨 쉬고 있습니다 00;00;20;06 - 00;00;24;25 강철 같은 의지로 시를 쓰고, 민족을 위해 싸웠던 이육사. 00;00;24;25 - 00;00;27;12 우리는 지금, 그를 다시 만납니다. 00;00;30;24 - 00;00;35;17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00;00;35;17 - 00;00;39;29 그는 조국의 자유를 꿈꾸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00;00;39;29 - 00;00;45;27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264번 수인번호를 지닌 채 옥고를 치렀습니다. 00;00;45;27 - 00;00;49;01 그 숫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이유... 00;00;49;01 - 00;00;54;19 (나의)고통과 저항의 흔적을 시 속에 남기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00;01;03;16 - 00;01;10;19 서울 종암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한 문화공간 이육사. 이곳은 시인 이육사의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입니다. 00;01;12;15 - 00;01;17;02 1930년대 후반, 끊임없는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00;01;17;02 - 00;01;20;08 이육사는 서울 종암동에 터를 잡습니다. 00;01;20;08 - 00;01;27;07 V3, 내용 이곳은 그의 마지막 집이자, 광야와 절정 같은 대표작이 탄생한 공간입니다. 00;01;27;07 - 00;01;33;18 V3, 내용 이육사의 시는 단순한 언어가 아닌, 민족의 미래를 향한 간절함이었습니다. 00;01;37;00 - 00;02;07;10 1930년, 이육사는 1월 10일부터 대한청년동맹 간부라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1932년, 윤세주의 권유로 의열단장 김원봉이 설립 중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로 입교하였습니다. 1939년, 서울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였고,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에서 순국하였습니다. 00;02;10;05 - 00;02;15;11 전시관 안에는 이육사의 시를 직접 따라 써보는 공간도 있는데요. 00;02;17;26 - 00;02;21;08 글씨를 한 자 한 자 눌러 쓸수록, 00;02;21;08 - 00;02;28;15 시를 통해 무언가를 간절히 전하고자 했던 이육사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어요. 00;02;28;15 - 00;02;31;09 이육사의 대표 시 청포도. 00;02;31;09 - 00;02;36;03 이 시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9년에 발표되었지만, 00;02;36;03 - 00;02;42;20 단 한 번도 억압이나 식민지라는 말 없이 강한 저항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00;02;42;20 - 00;02;46;21 푸른 청포도는 그가 꿈꿨던 조국의 미래였고, 00;02;46;21 - 00;02;49;28 기다리는 손님은 바로 광복이었겠죠. 00;02;49;28 - 00;02;53;22 광복 80주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00;02;54;03 - 00;02;58;05 조국을 위해 붓을 든 한 시인의 이야기 00;03;02;14 - 00;03;05;09 이육사의 시가 다시 울리는 지금, 00;03;05;09 - 00;03;08;11 우리는 그 시를 살아갑니다
관리자
조회수: 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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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9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의 땅을 걷다. 유적지에서 마주한 독립의 기억
종소리로 시작된 충청권 만세운동의 현장인 공주 제일교회, 외침이 거리를 가득 메웠던 3.1 중앙 공원, 그리고 그날의 기록을 간직한 공주 독립운동기념관. 이 공간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느낀 감정과 생각은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과 연결된 살아 있는 기억이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공주 광복 유적지를 찾아가보았습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mountain-path-125573 (무료- 저작권 없음) Forest Lullabye - Asher Fulero (무료- 저작권 없음) Swans In Flight - Asher Fulero (무료- 저작권 없음) Ceremonial Library - Asher Fulero (무료- 저작권 없음) - 사용 폰트 G마켓 산스-g마켓(무료)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정림사지체 -부여군(무료)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KOHI나눔-한국보건복지개발인력원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00;00;07;00 - 00;00;10;26 V3, 1 80년 전 우리는 잃었던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00;00;11;04 - 00;00;13;29 V3, 1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과 용기 00;00;14;11 - 00;00;16;18 V3, 1 그리고 조용히 이어진 저항과 기도가 00;00;16;21 - 00;00;18;20 V3, 1 이 땅의 광복을 가능케 했습니다 00;00;19;23 - 00;00;23;22 V3, 1 공주는 충남 지역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00;00;23;26 - 00;00;28;13 V3, 1 31운동 이후 공주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만세 시위에 나섰고 00;00;28;13 - 00;00;33;05 V3, 1 학생, 기독교인, 지역 지식인들이 주도적으로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00;00;33;05 - 00;00;36;13 V3, 1 그 중심에 공주 제일교회가 있었습니다 00;00;36;13 - 00;00;40;01 V3, 1 예배당은 믿음의 공간이자 교육과 계몽 00;00;40;01 - 00;00;42;12 V3, 1 그리고 조용한 저항의 시작점이었습니다 00;00;45;14 - 00;00;49;28 V3, 1 선교사들은 이 예배당을 중심으로 충청 지역 최초로 00;00;49;28 - 00;00;52;28 V3, 1 사립인 영명 여학교와 영명 남학교를 세우고 00;00;52;28 - 00;00;55;05 V3, 1 독립 운동을 전개 했다고 합니다 00;00;55;05 - 00;00;58;20 V3, 1 이 제일 교회를 직접 걸어보고 듣고 00;00;58;20 - 00;01;02;27 V3, 1 광복의 시작이 이곳에서 어떻게 울리게 되었는지 00;01;02;27 - 00;01;07;04 V3, 1 전시실을 관람 하면서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00;01;07;04 - 00;01;09;04 V3, 1 교회에 처음 도착하면 00;01;09;04 - 00;01;12;24 V3, 1 최초 예배당이라는 문구 아래에 벽화를 볼 수 있는데요 00;01;12;24 - 00;01;19;09 V3, 1 사애리시 선생님과 유관순 열사를 표현한 벽화가 전시 되어있습니다 00;01;23;20 - 00;01;26;04 V3, 1 제일교회 기독교 박물관 내에는 00;01;26;04 - 00;01;30;04 V3, 1 약 만여점의 근대 기독교 문화 유산을 소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00;01;31;16 - 00;01;34;12 V3, 1 1919년 3월 1일 이후 공주시에도 00;01;34;12 - 00;01;37;01 V3, 1 만세 시위의 물결이 확산되었습니다 00;01;37;10 - 00;01;40;25 V3, 1 공주읍 장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공주의 만세 시위는 00;01;40;25 - 00;01;44;08 V3, 1 담임 목사 뿐만 아니라 공주읍 교회의 임원이며 00;01;44;08 - 00;01;47;11 V3, 1 영명학교 교사였던 이들과 영명학교 학생 등 00;01;47;11 - 00;01;50;25 V3, 1 공주지역 감리회 공동체가 주도하여 진행되었습니다 00;01;51;23 - 00;01;55;11 V3, 1 근대기 공주시 사회복지와 교육을 주도 하였으며 00;01;55;11 - 00;01;58;15 V3, 1 민족의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함께 견뎌낸 00;01;58;15 - 00;02;02;00 V3, 1 공주제일교회와 공주 기독교 박물관 예배당은 00;02;02;00 - 00;02;05;11 V3, 1 공주시 근현대사가 집약된 역사의 현장입니다 00;02;07;02 - 00;02;11;18 V3, 1 여기 보면 유관순 열사의 그릇이라고 00;02;11;18 - 00;02;14;22 V3, 1 유관순 열사가 직접 썼던 그릇까지 00;02;14;22 - 00;02;16;13 V3, 1 안에 전시가 되어있는데요 00;02;20;09 - 00;02;24;11 V3, 1 이런 것들을 보면 유관순 열사도 어린 학생이었을 텐데 00;02;24;11 - 00;02;28;08 V3, 1 독립운동을 했다는 게 같은 청년으로서 00;02;28;08 - 00;02;33;08 V3, 1 정말 마음이 무거워지고 좋지 않네요 00;02;36;11 - 00;02;38;22 V3, 1 전시관을 걷다 보면 00;02;38;22 - 00;02;41;16 V3, 1 역사책 속 이름 하나가 마음을 두드립니다 00;02;42;27 - 00;02;43;26 V3, 1 유관순 00;02;44;21 - 00;02;48;21 V3, 1 열여섯, 꽃 같은 소녀였던 그녀는 바로 이 교회에서 00;02;48;21 - 00;02;50;02 V3, 1 예배를 드렸습니다 00;02;50;20 - 00;02;55;05 V3, 1 공주 제일교회 그녀가 어린 시절 손을 모아 기도하던 이 곳은 00;02;55;05 - 00;03;00;24 V3, 1 믿음과 배움 그리고 저항의 뿌리가 함께 자라던 공간이었습니다 00;03;00;24 - 00;03;04;29 V3, 1 그리고 그 중심엔 한 부부의 조용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00;03;04;29 - 00;03;06;17 V3, 1 사애리시 00;03;06;17 - 00;03;09;08 V3, 1 그녀가 심은 믿음과 교육의 씨앗은 00;03;09;08 - 00;03;12;29 V3, 1 이 작은 제일교회 공주라는 도시에서 퍼져나가 00;03;12;29 - 00;03;15;21 V3, 1 한 민족의 깨어남으로 이어졌습니다 00;03;17;06 - 00;03;22;07 V3, 1 사애리시 선생님은 유관순 열사를 양녀로 삼고 00;03;22;07 - 00;03;25;24 V3, 1 교육을 한 유관순 열사의 첫 스승이라고 합니다 00;03;25;24 - 00;03;31;13 V3, 1 사애리시 선교사들에 관한 글들이 전시가 되어있습니다 00;03;33;02 - 00;03;36;19 V3, 1 유관순 열사가 공주에서 영명학교를 다니던 시절 00;03;36;19 - 00;03;39;10 V3, 1 이 교회를 2년간 다니면서 예배를 드렸고 00;03;39;10 - 00;03;41;23 V3, 1 민족 대표 33인 중에 1인인 00;03;41;23 - 00;03;46;04 V3, 1 신홍식 목사님과 함께 예배를 드린 장소라고 합니다 00;03;49;00 - 00;03;54;26 V3, 1 교회 앞에는 신홍식 목사님의 동상이 전시가 되어있는데요 00;03;54;26 - 00;03;59;17 V3, 1 신홍식 목사님은 3.1운동 때에 목사로서 처음으로 00;03;59;17 - 00;04;02;03 V3, 1 참여 의사를 밝힌 인물이기도 합니다 00;04;02;03 - 00;04;05;15 V3, 1 당시 체포된 그는 법정에서도 일제가 제시한 00;04;05;15 - 00;04;08;06 V3, 1 동양평화론의 허구성을 질타 하면서 00;04;08;06 - 00;04;12;10 V3, 1 독립에 대한 확신을 피력한 인물 중에 한 명이라고 합니다 00;04;12;10 - 00;04;16;09 V3, 1 교회에서 선교사들이 주도적으로 3.1운동에 참가 했다는 것은 00;04;16;09 - 00;04;18;13 V3, 1 저도 처음 안 사실이었습니다 00;04;18;13 - 00;04;23;23 V3, 1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조금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는 기회였고 00;04;23;23 - 00;04;26;10 V3, 1 그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관련 없이 00;04;26;10 - 00;04;30;04 V3, 1 민족을 지켜내야 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00;04;30;04 - 00;04;35;07 V3, 1 독립운동을 전개 했다는 사실이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00;04;35;07 - 00;04;39;10 V3, 1 그럼 저는 두 번째 장소로 이동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00;04;44;24 - 00;04;47;00 V3, 1 여기는 공주독립운동기념관이라고 00;04;47;00 - 00;04;52;15 V3, 1 영명중학교 영명고등학교와 같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00;04;52;15 - 00;04;57;05 V3, 1 옆으로 가시면 유관순 열사의 학교 였던 00;04;57;05 - 00;04;59;08 V3, 1 영명고등학교가 옆에 있습니다 00;04;59;29 - 00;05;04;18 V3, 1 공주독립운동기념관에는 공주와 충남지역에서 활동한 00;05;04;18 - 00;05;09;16 V3, 1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영명학교에 대한 역사가 전시 되어있습니다 00;05;10;16 - 00;05;13;10 V3, 1 이곳은 단지 한 지역의 기억을 넘어 00;05;13;10 - 00;05;17;17 V3, 1 충청권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수많은 무명의 이들이 00;05;17;17 - 00;05;20;20 V3, 1 목숨을 걸고 지켜낸 정신의 터전입니다 00;05;20;20 - 00;05;25;22 V3, 1 3.1운동 이후 공주에서는 수백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고 00;05;25;22 - 00;05;28;18 V3, 1 학생과 교사까지 거리로 나섰습니다 00;05;29;27 - 00;05;34;09 V3, 1 일제의 감시 아래에서도 비밀결사 조직, 청년운동이 00;05;34;09 - 00;05;36;07 V3, 1 이곳에서 조용히 이어졌습니다 00;05;38;11 - 00;05;42;02 V3, 1 공주 거점으로 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00;05;42;02 - 00;05;45;14 V3, 1 옛날 사진들이 벽면에 붙어 있습니다 00;05;45;14 - 00;05;48;19 V3, 1 실제 신홍식 목사님의 사진입니다 00;05;48;19 - 00;05;51;01 V3, 1 벽면에 사진을 보시면 00;05;51;01 - 00;05;56;11 V3, 1 영명학교와 관련된 옛날 사진들이 전시가 되어있습니다 00;05;56;11 - 00;06;01;29 V3, 1 1915년 7월에 촬영된 영명학교 단체 사진인데요 00;06;01;29 - 00;06;03;24 V3, 1 이 사진이 굉장히 특별한 이유는 00;06;03;24 - 00;06;08;07 V3, 1 유관순 열사의 어릴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00;06;08;07 - 00;06;12;27 V3, 1 정말 학생들이 다 어리고 조그마한 여학생들인데 00;06;12;27 - 00;06;17;03 V3, 1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항일운동의 주역이 됐다는 것이 00;06;17;03 - 00;06;20;11 V3, 1 굉장히 큰 의의가 있고 깊은 울림을 받는 00;06;20;11 - 00;06;22;20 V3, 1 그런 사진인 것 같습니다 00;06;26;00 - 00;06;29;02 V3, 1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00;06;29;02 - 00;06;32;26 V3, 1 목숨을 내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열사들의 00;06;32;26 - 00;06;34;27 V3, 1 흔적들이 기록 되어 있는 곳입니다 00;06;34;27 - 00;06;38;22 V3, 1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도 있는데 00;06;38;22 - 00;06;42;29 V3, 1 1920년대 1940년대에 걸쳐서 조선총독부에서 00;06;42;29 - 00;06;45;26 V3, 1 제작된 카드라고 추정하고 있고요 00;06;45;26 - 00;06;50;10 V3, 1 독립운동을 연구하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로 평가가 되고 있으니 00;06;50;10 - 00;06;53;26 V3, 1 여기 와서 한 번 이것도 유심히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00;06;53;26 - 00;06;59;20 V3, 1 성명, 본적, 출생지, 생년월일 그리고 죄명까지 00;06;59;20 - 00;07;02;26 V3, 1 공주에 왔으니까 공주시에서 활동한 00;07;02;26 - 00;07;05;16 V3, 1 독립운동가들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00;07;08;18 - 00;07;10;18 V3, 1 지역별로 한 번 가볼까요 00;07;10;19 - 00;07;12;18 V3, 1 지역지도가 나오는데요 00;07;12;21 - 00;07;15;22 V3, 1 이렇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공주에서 00;07;16;13 - 00;07;19;01 V3, 1 독립운동 전개를 했다고 합니다 00;07;19;01 - 00;07;20;12 V3, 1 클릭을 하시면 00;07;21;20 - 00;07;29;09 V3, 1 독립운동가의 성명과 출생, 본적, 설명이 간단하게 나와있어요 00;07;29;09 - 00;07;32;04 V3, 1 학생의 입장으로서 학생운동에 또 굉장히 00;07;32;18 - 00;07;34;26 V3, 1 저는 가장 많이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00;07;34;26 - 00;07;38;16 V3, 1 학생운동에는 공주에서 활동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이 00;07;38;16 - 00;07;40;03 V3, 1 총 다섯 명 이렇게 있네요 00;07;40;17 - 00;07;44;01 V3, 1 눌러보면 똑같이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00;07;44;09 - 00;07;47;20 V3, 1 다들 정말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고 00;07;47;20 - 00;07;52;03 V3, 1 퇴학을 당하고 일본군에게 잡혀가고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는게 00;07;52;03 - 00;07;55;17 V3, 1 정말 마음이 아프고 00;07;55;17 - 00;07;58;13 V3, 1 저라면 과연 그때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00;07;58;13 - 00;08;02;12 V3, 1 반성과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순간인 것 같습니다 00;08;03;10 - 00;08;08;29 V3, 1 독립운동기념관 옆에 공원이 하나 있거든요 00;08;08;29 - 00;08;13;22 V3, 1 3.1중앙공원이라고 공주에서 가장 오래된 00;08;13;22 - 00;08;15;12 V3, 1 공원으로 전해집니다 00;08;15;12 - 00;08;20;22 V3, 1 공원 뒤쪽으로 오면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도 있기 때문에 00;08;21;01 - 00;08;22;29 V3, 1 일대기까지 한 번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00;08;22;29 - 00;08;24;04 V3, 1 일대기까지 한 번 읽어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00;08;27;14 - 00;08;30;06 V3, 1 독립 운동을 했던 유관순 열사의 00;08;30;06 - 00;08;33;29 V3, 1 일대기를 따라서 이 장소를 직접 걸어보고 00;08;33;29 - 00;08;34;01 V3, 1 자료들을 직접 보고 00;08;34;01 - 00;08;40;00 V3, 1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들을 직접 느껴보니까 00;08;40;00 - 00;08;46;28 V3, 1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평안하고 또 자유롭게 이 나라에서 00;08;46;28 - 00;08;48;18 V3, 1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00;08;48;18 - 00;08;51;23 V3, 1 한 번 쯤은 우리 마음 속에서 깊이 생각을 할 수 있는 00;08;51;23 - 00;08;55;28 V3, 1 그런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00;08;58;07 - 00;09;02;28 V3, 1 우리가 유적지를 찾는 이유는 단순히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00;09;03;22 - 00;09;06;15 V3, 1 그날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무엇을 지키며 00;09;06;15 - 00;09;08;20 V3, 1 살아가는지 되묻기 위해서 입니다 00;09;09;15 - 00;09;12;26 V3, 1 공주의 독립운동 유적지 세 곳을 따라 걷는 여정은 00;09;13;06 - 00;09;16;12 V3, 1 한 세기 전의 청춘들이 외쳤던 자유의 의미를 00;09;16;15 - 00;09;18;21 V3, 1 오늘의 청춘이 새기는 과정입니다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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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디지털시대, 우리가 역사 속 인물을 기억하는 방법
경기도 화성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전시가 열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김진경 문화PD..!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독립운동 정신을 전시를 통해 배우고 언리얼 엔진으로 조문기의 메타휴먼을 제작한다! [고지사항] - 사용 음원 1. On DeadIy Land - 브금대통령 2. In Desert - 브금대통령 3. 6.6 - 브금대통령 **Music provided by - 브금대통령**Track : 6.6 - https://youtu.be/LrtnRjRTADE?feature=shared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Track : On Deadly Land - https://youtu.be/qfbt2catqVg? feature=shared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Track : In Desert - https://youtu.be/DEBEMV27sL4? feature=shared - 사용 폰트 프리텐다드 - 길형진(orioncactus)(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한글재민체3.0 - 박재갑(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KCC손기정체 - 한국저작권위원회(출처(저작자)만 밝히면 상업/비영리목적으로 이용가능, 2025 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OOO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시의 자료를 일부 촬영하여 제작 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내레이션) 독립운동가 조문기는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함께 지낸 외할아버지의 항일애국정신에 영향을 받은 조문기는 일찍이 식민지 국가의 현실을 깨닫고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1945년 3월 한국으로 돌아온 조문기는 유만수와 강윤국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친일파 박춘금을 비롯한 친일 거두와 식민통치기관을 처단하는 목표를 세운다. 때마침 박춘금이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은 직접 제작한 시한폭탄을 대회장에 설치하여 박춘금이 연설하고 있을 무렵 폭탄을 터트렸다. 성공적으로 마친 부민관 폭파 의거는 일제의 패망 직전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마지막 의거였다. 부민관 폭파 의거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문기가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문기는 부끄러웠다. 온전한 한 나라의 독립이 아닌 독립 이후 분단된 나라 그리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고 있는 현실에 독립운동가로서 통일된 자주 독립의 나라를 만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광복 이후, 친일청산은 현시대의 독립운동임을 외치며 친일청산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떳떳한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었던 조문기는 친일청산이라는 과업을 후대에라도 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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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소설가 이순원의 강릉단오제 이야기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196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13호로 등록된 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강릉단오제는 우리민족 전통 민속축제의 원형성을 간직한 단오축제이다.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등록되며 전 세계의 인류가 보존해야할 축제로 부상한 강릉단오제를 체험해보고 축제가 전승되는 과정을 알아본다. ----------대본---------- 내레이션 뜬금없이 단오라니, 그건 이미 잊혀진 명절이 아닌가 여기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옛날엔 단오가 4대 명절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드물지요. 민족의 큰 명절인 설외에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그렇게 네 명절을 크게 쇠었던 거지요. 볍씨가 못자리로 나가 싹이 나고 푸른 모로 자라 모내기를 할 때 온산에 짓게 물든 녹음처럼 단오가 다가왔던 겁니다. 어린 시절, 단오는 나에게 꿈이었습니다. 단오는 일 년에 딱 하루, 내가 태어난 대관령 아래의 산골마을을 벗어나 사람 많고 자동차 많은 강릉시내 구경을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손을 놓쳐 길이라도 잃을까봐 형제가 손을 꼭 잡고 다녀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진기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 난전과 그네뛰기, 농악놀이, 씨름대회, 곡마단 등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인터뷰 조규돈 / 강릉단오제보존회장일제침략기 때의 탄압 속에서 한 해 (강릉단오제를)안 지냈더니 가뭄이 들었어요. 그러니 민심이 흉흉한 거야, 단오제 안 지냈다고. 그러니 일본군수가 할 수 없이 (강릉단오제를) 지내라고. 그래서 기우제를 지냈어요. 그런데 남대천변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전에 물에 떠내려갔어. 그 다음부터 일본군수도 막지 못했던 것이 단오제이고 내레이션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축제입니다. 옛날 고대 부족국가 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풍습에서 비롯된 단오는 신을 모시는 날이기도 합니다. 본래 김유신 장군이었던 대관령 산신과 범일국사였던 대관령국사성황신 그리고 정씨처녀였던 국사여성황신 이 세분의 신이 바로 강릉단오제의 주신입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이 세분의 신이 지역의 안녕을 지켜주고 질병을 막아주고 풍년이 들게 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인터뷰 황루시 관동대학교 인문학장김유신 장군은 삼국을 통일한 장군이고 범일국사는 고려 건국에 힘을 보탰던 승려거든요. 역사에서 승리한 분을 신으로 모시는 거죠. 그런가하면 여성황은 호랑이에 물려죽은 여자거든요.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는 것은 가장 실패한 인생인거지요. 그런데 강릉단오제에서는 승리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처참하고 반복하면 안타까운 실패한 삶을 항상 기억한다는 것이죠. 내레이션 강릉 단오의 준비는 단오가 꼭 한 달 남은 음력 4월 5일에 관청과 백성이 함께 정성스럽게 쌀을 모아 단오신주를 빚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정성으로 모아진 쌀을 헌미봉정이라고 하는데 모아진 헌미로 단오제 기간 동안 중요한 제례에 쓰일 술도 만들고 또 떡도 만들어 나중에 단오제에 참가하는 시민들에게 그대로 돌려줍니다. 술은 열흘쯤 지나면 아주 잘 익습니다. 그러면 음력 4월 15일에 신주를 정성스럽게 차려들고 대관령으로 올라갑니다. 먼저 대관령 산신당에 가서 산신제를 올리고 다시 그 옆에 있는 국사성황사에 가서 성황님을 강릉으로 모셔가는 국사성황제를 올립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산신제와 국사성황제를 지낸 다음 신장부가 더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가면 무당들이 그 뒤를 따라갑니다. 과연 어느 나무에 신이 내렸을까 이건 매년 음력 4월 15일에 대관령에 올라오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일입니다. 이 신목이 바로 단오기간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신의 몸이 됩니다. 국사성황신의 혼이 깃든 신목을 앞세우고 정씨처녀의 위패가 있는 여성황사로 이동하는 것이 국사성황행차입니다. 나무에 몸을 빌려 강릉으로 내려온 국사성황신을 국사여성황신 곁에 모셔왔다가 단오가 지난다음 다시 대관령으로 모셔다 드리는 동안의 축제가 바로 강릉단오제입니다. 단오를 이틀 앞둔 음력 5월3일 국사여성황사에서는 강릉단오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영신제가 펼쳐집니다. 영신제는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을 단오터에 마련된 단오제단으로 모셔가는 의례입니다. 영신제를 마치고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의 신위와 신목은 영신행차라는 거리행차를 통해 단오제단에 모셔집니다. 영신행렬은 시민들과 만나게 되고 시민들과 하나로 어우러져 이동합니다. 단오의 아침은 시민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조전제로부터 시작됩니다. 조전제는 풍년과 태평의 기원을 담아 대관령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 두 신께 제사를 받드니 잘 보살펴 달라는 기원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단오제 기간 동안 단오굿은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대관령에서 모셔온 국사성황님과 국사여성황님께 우리 모두 잘되게 해달라고 비는 굿입니다. 사람들은 가족 잘되게 보살펴 달라고 무당에게 돈을 건네기도 하고 부정을 없애고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하여 소원이 적힌 종이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는 소지를 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단오를 제일 재미있게 보내는 방법은 단오장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갖가지 진귀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는 난전을 구경합니다.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난전이 길 옆으로 자그마치 일 킬로미터나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팔도 음식을 파는 음식 난전 역시 그만큼 길고 다양합니다. 또 단오 신주와 수리취떡을 놓아두고 단오에 이 동네를 찾아온 외지 사람들에게 이곳 음식을 맛보이기도 합니다. 창포물에 머리 감는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단오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면 머리에서 윤기가 나고 향긋한 냄새가 납니다. 여름만 되면 마귀가 돌림병을 퍼뜨린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이 여름이 시작되는 단옷날에 향긋한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길 바랬던 겁니다. 단오를 정리하는 송신제를 끝으로 강릉단오제는 막을 내립니다. 인터뷰 최명희 강릉시장강릉단오는 천년동안 우리 강릉시민과 함께 내려온 삶의 현장, 문화의 현장, 소통의 현장, 만남의 광장인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는 없는 우리 시민들 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릉 단오제가 얼마 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중의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그때 함께 신청 접수된, 단오명절의 유래와 기원의 원전이 되는 중국의 단오를 누르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에 이어 세 번째로 선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터뷰 김귀배 유네스코한국위원회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의 전승통로이자 재창조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기준 중의 하나인 문화다양성과 창조성이 단오제에서 행해지는 의식이나 행사를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이 판단했습니다. 내레이션 그 시절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 모든 고장의 단오가 다 이런 줄 알았습니다. 자라면서 세계에서는 우리나라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장만 이렇게 옛 풍습 그대로 단오를 지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무엇보다 강릉단오제는 신이 납니다. 하루 이틀의 축제가 아니라 한 달도 넘는 기간 동안의 축제입니다. 단오가 되면 백리 밖의 사람들까지 다 단오장에 모여듭니다. 왜 그런지 한번만 와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그 축제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설날에 세뱃돈을 주지 않던 어른들도 단오가 되면 집집마다 아이들에게 조금씩 용돈을 주었습니다. 형제가 함께 그 돈을 받아들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 강릉시내의 단오장을 찾아가던 일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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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8
[한국문화100]애환이 깃든 다듬이질
청아한 다듬이질소리는 우리 정서의 대표적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독특한 가락의 오묘한 음악도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우리의 잃어버린 소리를 다시금 기억하고 다듬이질 문화를 알아보자. *나레이션 달 밝은 가을 밤, 창호지 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청아한 소리. 또닥.. 또닥.. 옛사람들은 우리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가 익숙하다 경쾌한 소리에 담겨있는 우리 다듬이질에 대하여 알아보자. 한국 고유의 문화 다듬이질. 다듬이질은 우리의 고유한 옷감 손질법으로 옷감의 구김살을 펴기 위하여 다듬잇돌에 옷감을 올려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을 뜻한다. 옛 우리 여성들은 한나절 꼬박 시부모님 공양과 자식 뒷바라지를 하며 가사노동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밤이되면 우리 어머니들은 다듬이질을 하며 타향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렸다. 다듬이질운 대표적인 여성노동의 한 형태였으며 어머니들의 애환이 담겨 있다. 어릴 적 대청마루에 누워서 본 어머니의 다듬이질하는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전라북도에 위치한 창포마을은 오래전부터 청아한 다듬이 소리가 울러 퍼지고 있는 곳이다. 세월의 변화와 더불어 다듬이질 문화는 사라졌지만 이곳 창포마을에서는 다듬이질 소리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화음을 이루는 듯한 다듬이질 소리가 울려 퍼지며 다듬이연주단만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다듬이질 소리의 청랑한 선율을 통해 현대인들은 옛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에게 다듬이질은 생활과 삶 그 자체였다. 현대문명이 발전하면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 우리네 정서의 상징, 다듬이질. 다듬이질은 선조들의 생활문화였으며 옷감을 다듬는 것 뿐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우리 전통문화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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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
[한국문화100] 진돗개 진서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진돗개는 다른 개와 달리 여러 가지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종개이다. 민첩하고 슬기로우며 특히,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진돗개의 모습을 살펴보고 우수한 한국의 토종개 진돗개가 가진 특별함을 알아본다. 내래이션 단정하고 고운 발, 가지런한 치아, 쫑긋한 귀, 탐스러운 꼬리. 보시는 바와 같이 아름답고 우아한, 안녕하세요, 저는 진돗개 진서랍니다. 전주에서 살고 있어요. 진돗개여서 진, 서곡마을에서 태어나서 서, 진서에요. 오늘도 왠지 따분한 날이네요 흠~ 앗 주인님! 함께 밖으로 산책이나 합시다! 눈에 익은 뒤태가 여기도, 저기도, 아! 또 여기도. 눈이 마주치자 우렁찬 목소리로 백구도 황구도 인사하는 진돗개의 고향, 여기는 보배섬 진도입니다. 장난치는 녀석들도 길 건너의 녀석도 진도에는 다양한 종류의 진돗개들이 살고 있는데요. 여기 귀여운 강아지들의 모습도 보이네요. 저 진서의 고향도 이곳 진도라고 합니다. 진돗개는 진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그 혈통과 야성을 순수하게 유지하면서 토착화된 우리나라 고유의 개라고 하는데요, 진돗개는 어떻게 진도에서 살게 되었을까요? 진도군은 진도개사업소를 운영하며 보다 체계적으로 진돗개를 보호하고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도개사업소는 진돗개 홍보관, 훈련장, 메디컬센터, 테마파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진돗개연구와 혈통관리를 통해 진돗개 보존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진도와 함께해 온 진돗개, 그러고 보니 진돗개와 진도개 두 가지로 불리는 것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아, 그렇군요.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보호되어 온 진돗개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당연히 저 진서도 천연기념물이란 사실! 애견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120년 전통의 유명한 명견대회 크러프츠가 진행 되는데요. 2013년 올해, 처음 출전한 진돗개가 수입 종 부문 예선 2위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해외에서도 진돗개는 인기가 많아요. 진도에서도 해마다 진돗개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진도개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합니다. 함께 가볼까요? 친구들! 진서도 같이 가요! 이곳은 진돗개 페스티벌 최고의 인기 견! 멋진 진돗개 강토군의 묘기 시범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둘, 하나둘 우와, 강토군 정말 대단한데요? 진돗개 페스티벌에서는 진돗개 경주와 진돗개 묘기 등 다양한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돗개 진서와 함께 진돗개의 고향으로 떠나본 여행 어떠셨나요? 진돗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셨나요? 충성심이 뛰어나고 깨끗하며 용맹하고 대담한 여러분의 가족이자 문화유산인 진돗개. 앞으로도 진돗개 그리고 저 진서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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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3
[한국문화100] 천년의 약속이 흐르는 곳, 경주
내래이션 수많은 보물과 이야기, 유서 깊은 역사가 숨쉬고 있는 신라의 천년 고도, 경주. 통일신라 전성기, 경주는 백만 인구의 세계적인 대도시였다. ?세월이 흘러 현대화된 경주는 이제, 한국 사람이라면 여러 번 가보게 되는 문화와 관광의 도시가 되었다. 엄청난 크기의 고분들은 도시 가운데 있어도 빌딩을 압도하고, 스러지지 않는 역사의 공기는 천년을 흘러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저마다 소중한 사람들과 추억을 쌓아가는 곳. 소나무 숲길과 어우러진 산책터를 걸으며 와도 와도 또 다른 감동을 느끼는 것은 이 곳이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는 역사의 샘이기 때문이다. 경주에 놀러오면 빼놓을 수 없는 것 하나.? 바로 경주빵! 경주 어딜 가도 만날 수 있는 경주빵은 50여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명품 간식이다. 방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단팥 앙금이 너무 달지 않아 아이들 간식은 물론 외국인에게 소개하기도 좋은 100점짜리 기념품. 경주에 오면 즉석에서 만들어진 갓 구운 빵을 한입 가득 넣어보는 것, 꼭 잊지 말자! 저마다 서로에게 바람과 기대를 안고서 경주로 발걸음한 많은 사람들. 호수와 궁이 조화로운 이곳, 안압지에서 아름다운 연못 주변을 거닐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은 아름답게 꽃피어난다. 안압지는 왕이 잔치를 열거나 손님을 모셨던 장소로서? 물 위를 유영하는? 오리와 기러기 떼를 보고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붙인 이름이다. 천년 전, 동북아 최고의 선진 문명국이었던 신라. 그 고고한 문화와 깊은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밤과 낮. 두 번 가보아야할 곳이 또 있다. 바로 첨성대. 첨성대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써 신라인들은 천문 연구에 관심이 많아 일식을 29번이나 관찰했을 정도의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또한 첨성대는 구조, 돌 하나에도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어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신라인들의 멋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한두번 가서는 경주의 깊은 혼을 만났다고 할 수 없다. 사계절마다, 여행을 함께 했던 사람마다 매번 느낌이 다른 것은 천년을 번영했던 고대왕국의 향취가 경주 구석구석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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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
[한국문화100] 돌격하라! 거북선
거북선이 바다에서 뛰어난 활약을 평칠 수 있었던 구조적 특징에대하여 소개합니다. *나레이션 한산도 앞바다. 400여년 전 당시 우리나라 전통배 특성인 방향 선회능력이 큰 성과를 거뒀던 곳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그 유명한 학익진 전법이 펼쳐졌는데요. 이때, 돌격선으로 사용되었던 거북선은 함대의 선두에서 적진으로 쳐들어가, 적의 지휘선을 공격하여 혼선을 주는 돌격선으로 큰 활약을 펼쳤습니다. 거북선의 층별 구조는 돌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꾼과 포수의 역할을 철저히 구분하여 설계되었을 것입니다. 거북선을 3층 구조로 가정했을 때, 먼저 1층은 주거 및 생활 필수품, 항해 장비와 무기류 등의 저장 창고로 2층은 기동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노젓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3층은 화포의 공격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 하였을 것입니다. 거북선의 승선인원은 빠른 항해를 위해 노를 젓는 노 군이 약80명 포수 및 사수인 전투원이 50명, 그리고 선장, 장교, 키잡이역할을 수행하는 인원이 20명 총 150명 정도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자신있게 언급했듯이 거북선은 임진왜란 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승리를 뒷받침한 강력한 물적 토대 중에 하나였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일찍부터 수군이 발달했던 조선. 창의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거북선을 제작하였고, 조선 수군의 돌격선 거북선은 전방의 최전선에서 위기의 처해있던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내었습니다. 조선 수군의 돌격선 거북선,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대한민국 100대민족문화상징 선정이유 :한국인이 만든 세계적인 철갑선으로 세계 유수의 조선국인 해양강국의 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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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
[한국문화100] 탈을 쓰고 탈난 것을 탈잡아 노는 춤놀이
내래이션 다른 어느 탈보다도 각각 그 극중의 캐릭터답게 생긴 하회탈. 이는 오랜 시간동안 여러 사람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가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탈마다의 특징적인 생김새만 보고도 그 탈의 인생 내력을 알아낼 수 있을까? 이제부터 함께, 탈의 상징 세계로~ 출발! 점잔과 체면 따위는 훌훌 벗어던지고 보잘 것 없는 이야기라도 당당하게 털어놓는 탈춤 한마당. 탈춤 한판은 위선과 허위를 시원하게 벗겨버리고 저마다의 삶을 숨김없이 드러내도록 한다. 능청스러운 공격으로 현실에 대들고 따지면서 주저앉은 삶의 활력를 다시 얻는 것. 저마다 웅크렸던 몸과 마음은 푸근한 웃음으로 건강하게 되살아난다. 서로 자신이 잘났다고 허무맹랑한 싸움을 벌이는 양반과 선비. 이들은 부네를 차지하기 위해 또 한판 다투며 지배층의 위선과 가식을 철저히 드러내고 있다. 파계승은 여인을 탐하며, 숨겨왔던 욕정을 이겨보려 하지만 결국 종교의 계율을 어기고 세속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즐기게 된다. 하인인 초랭이는 한껏 너스레를 떨며 이러한 위선을 비웃는다. ‘비틀 비틀 이매 걸음’이라는 말도 있다. 우스꽝스러운 몸동작과 바보같은 얼굴로 보는 이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이매탈. 종인 초랭이가 하인인 이매에게 면박을 주기도 하지만, 이매는 착하고 순한 성격이다. 인간적인 춤멋이 녹아 있는 우리의 탈춤. 하회탈은 세계의 2만개가 넘은 탈 중에서도 인간의 희노애락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 관객이 직접 놀고 직접 향유하는 판. 탈춤 마당에서는 모든 것을 풀어헤치고 저마다 이야기에 끼어들며 절로 흥겨운 신바람이 난다. 탈춤은 신분 제도의 억압 속에서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풍자극으로써 큰 장이 서던 곳에서는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삶과 떼놓을 수 없는 생활의 일부. 탈춤은 묵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여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생활과 생활 사이의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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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한국문화100] 인류최고의 건축물, 석굴암
천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석굴암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알아보는 영상입니다. 내레이션 국보 24호 석굴암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때인 751년에 건축된 예술작품입니다. 석굴암은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을 한눈에 보여주는 문화재로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요. 힘든 세상을 사는 신라인들은 불국, 즉 부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불국사와 석굴암을 함께 건축하였습니다. 석굴암은 동양적인 우주상인 천원지방 사상에 입각하여, 부처님이 모셔진 방은 하늘과 같은 둥근 모양의 돔 형식으로, 인간들이 예불을 드리는 방은 땅과 같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표현 한 다음, 정중앙에는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완벽하게 표현한 본존불상을 조각하여 위치시켰습니다. 바깥쪽의 전실에는 세상을 지키는 수호신인 팔부신중이 각각 네 사람씩 새겨져 있고, 부처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문장인 금강역사가 부처님께 가는 통로에는 사방을 지키는 사천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본실이 나오는데 가운데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리하고 불법을 널리 세상에 펴는 보살들과 십대제자가 둥근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징적인 부처님 바로 등 뒤에 있는 관음보살상은 통일신라 관음보살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불자들이나 학자들 사이에서는 미스 통일신라라고 불린다고 하는데요. 이렇듯 우리가 보고 있는 석굴암 내부의 불상들은 가장 훌륭하고 가장 정교하고 가장 아름답게 조각된 예술작품인 것입니다.석굴암에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측면 뿐 아니라 많은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둥근 돔 천장은 세계에 딱 2개,석굴암과 약 2세기경에 만들어지는 로마의 판테온인데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건축물인 석굴암을 보면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그 완벽함에 할 말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신라인들은 습기가 많은 석굴암 내부에 이끼가 피지 않도록 바닥 밑에 지하수가 흐르도록 제습장치를 조성하는 등 다양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이상향을 완성하기 위한 정성과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동양무비,비교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지닌 석굴암은 120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신라인들의 염원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인류 최고의 건축물 석굴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소재선정이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불교조각의 최고 조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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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김치로 나누는 우리의 김장문화
대한민국 대표 채효 발효식품 김치! 매끼 밥상에 빠질 수 없는 반찬 김치를 겨울철 한번에 담가 저장하는 김장에 대해 알아보고 겨울철 마다 김장을 통해 김치를나누는 우리의 정 문화를 담은 영상 *김치의 선정이유! 한국인이 창조해낸 야채 발효식품의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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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와의 만남, 오일장
[100대 민족문화상징 선정 사유] -조선시대 사회 경제사의 상징이자 오늘까지 이어지는 풍속의 문화 첩첩의 산자락을 힘겹게 넘어가며 소박하게 일궈낸 만남의 공간. 훈훈한 정과 시끌벅적한 사람 냄새가 물씬한 시골 장터……. 산골마을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판 뜨겁게 어우러진 곳. "자연과 사람 그리고 문화와의 만남이 즐거운 곳, 오일장" 이른 아침,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한 정선오일장, 아스라한 기억 속에 사라져가는 풍경들이 아직은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한가득 봇짐을 꾸려 마치 그 옛날 보부상처럼 장터로 나선 할머니의 모습이 정겹고……. 바쁜 밭일을 마다하고 기어이 장터 한편을 차지한 그 소박한 이유를 들으니 더 애틋하다. 주름 깊은 얼굴에 해맑게 번지는 곰살가운 미소가 반갑고, 손마디 굳은살 박이도록 지었을 짚신 한 짝 선물로 어린 시절 추억할 수 있으니 또한 정겹다. 손수 준비하는 탓에 차려놓은 자리가 다소 소박하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는 시골 장터. 콩고기~, 그런데, 이곳 저곳 둘러보아도 아라리 고장, 정선의 진짜 명품은 따로 있다는데……. 여기 저기 쌓여 있는 바로 이것. 강원도 정선의 최고 명품은 바로 곤드레와 취나물 되시겠다. 누구나 한 번 맛보면 절대 못 잊는 청정 자연의 선물이라는데……. 이른 새벽, 천리길 마다않고 장터를 찾아온 부산사나이를 기쁘게 하는 것은.... 기분 좋아서 하나 더 챙겨주는 할머니의 훈훈한 인심, 덤! 덤! 덤! 때로는 능력에 따라 조금 더 얻어가는 쏠쏠한 재미까지... 어쩌면 덤은 훈훈한 우리네 장터 인심을 가장 잘 대표하는 문화가 아닐까.... 평소 한산하기 그지없던 장터지만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정선오일장 관광열차"가 도착하는 정오가 되면, 오일장 곳곳은 어느새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댄다. 매월마다 2일, 7일로 끝나는 장날이 되면 하루 3~4천명 이상이 찾는다는 전국 최대 규모의 전통시장, 정선오일장. 쉼 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에 슬~슬 신이 난 건 어물전 아주머니의 구수한 입담도~~~ 오일장 터줏대감인 약초상점 주인장의 호기 섞인 물건 자랑도 이곳 오일장에선 모두가 그냥 지나치면 아쉬운 좋은 구경거리다. 실랑이 하듯 한참을 밀고 당기는 끝에 어느새 지갑이 열리는 흥정은 서로가 즐거운 이곳 장터만의 놀이문화가 아닐까~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정선오일장을 찾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고랭지 기후가 키운 신토불이 열매며 더덕, 송이 등 각종 특산물들이 장바닥 가득 넘쳐난다. 시골 장터의 제철 먹거리는 단연 자연과 만나는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닐까……. 이런 즐거움을 어떻게 놓칠 수 있으랴~~~ 여기서도 스~윽~ 저기서도 스~윽, 주인장의 후한 인심 끝에 특산물을 맛보려는 손길은 바쁘다. 바빠~~ 1966년 처음 문을 연 정선오일장은 2012년 국내 최고 관광지를 대표하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 될 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역시 "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고향의 그리운 맛 느끼게 해주는 토속음식이 있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빈대떡, 취떡, 감자떡에 옥수수가 익어가고 강원도 특유의 메밀전병 익는 소리에 예상치 못한 식욕이 솟는다. 시끌벅적한 사람들과 고소한 냄새,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그 풍경은 시골장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선물이다. 어느새 장터의 명물이 된 엿장수의 다듬이 소리에 도심을 떠난 삶의 여유와 흥이 살아난다. 그러나 진짜 정선장의 색다른 모습 중 하나는 오일장 상인들이 준비한 민속체험과 전통공연이다. 그 옛날 풍성한 잔치 준비에 빠지지 않던 떡메치기는 도시 사람들에겐 여전히 쉽게 접하지 못할 진귀한 경험이 된다. 구수한 입담과 사람 냄새 가득한 정선오일장 장을 찾아온 객지 인들이 을 위해 오일장 상설무대에서 아리랑 공연을 펼치고, 구경하는 이들로 장터가 북적댄다. 정선 사람, 외지 사람 모두가 떠들썩한 축제로서의 장날. 흥겹게 들려오는 ’정선 아리랑’이 어우러진 오일장은 물건을 파는 시장이 아닌 인간미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이 된다. 정선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아리랑 가락에 담아 공연하는 정선아리랑극 ‘어머이’는 꼭 챙겨봐야 할 또 하나의 문화 나눔이다. 그 옛날 한 고장의 사회,,문화, 경제의 중심이자 소통의 공간이었던 시골장터, 이제 지역을 알리는 새로운 광광자원 변신하며, 사람들이 찾아들어 옛 활기를 되찾은 시골장터.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구경나온 사람들과 소문을 듣고 관광 온 사람들까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더없이 소중한 경험을 안겨주며 한마당 장터에서 허물없이 어우러지며 모두가 즐거움을 나누고 소통하는 소중한 만남의 공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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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약방의 감초같은 된장과 청국장
발효된 장 문화의 대표적인 건강식품 된장과 청국장된장과 청국장을 담그는 방법과 효능,청국장의 균주를 활용해 만든 쿠키에 대해 소개한 영상*된장과 청국장 선정이유!발효된 장 문화의 으뜸으로 건강 음식의 대표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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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맛과 영양까지 좋은 핫소스 고추장
맛과 영양까지 갖춘 우리의 전통 핫소스 고추장! 전통 방식을 통해 담그는 고추장에 대한 소개와 40년 전통 고추장 장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영상. *고추장 선정이유! 고추와 장 문화가 창조해낸 한국 특유의 장(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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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
[한국문화100] 정겨운 우리의 집, 한옥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지칠때 우리는 자연과, 자연으로 만들어진 집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나뿐인 나쁜 집이 아니라, 조화로운 좋은 집인 우리의 한옥. 한옥에 묻어나는 소박한 인간다움과 한국의 감성적 멋을 느껴보세요. *소재선정이유 :우리 민족의 전통적 주거 양식 내래이션 한국의 가옥 한옥, 미국의 집을 아메리칸 하우스, 프랑스의 집을 프렌치 하우스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집만은 한옥이라 부른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 천천히 전체의 모습을 바라보면 한옥의 짙게 베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땅위에 자리 잡고 지긋이 앉은 품새는 집주인의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하나의 인상을 이루고 있다. 아무리 부잣집이라도 기와로 전체를 채우지 않았다. 남겨두고 비워내어 그 텅 빈 공백으로 모자람을 채웠다. 한옥과 마주하는 것은 사람과 마주하는 것, 한옥을 바라본다는 것은 처음만난 그 집의 인상과 인사하며 그 집에 깊게 서린 고즈넉한 기운을 읽어내는 것이다. 소담한 만물이 서로 어울리며 보듬고 있는 곳, 산에 기운을 담고 물을 얹는 자리, 자연 속에서 한옥은 한그루의 나무로 서있다. 흘러가는 계절 따라 물소리, 새소리, 나뭇잎소리가 잔잔히 숨 쉬며 노래한다. 자연친화적이요, 건강 지향적이다. 한옥은 햇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구조.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로 인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온돌, 즉 구운 돌에 의해 바닥에서 데워진 따뜻한 공기는 자연히 대류현상을 일으키고 끊임없이 순환하는 쾌적한 공기는 혈액순환을 도우며 인체의 면역력을 높인다. 또한 황토벽과 창호지는 스스로 숨을 쉬며 습도를 조절할 뿐만 아니라 반투명한 햇빛을 오묘하게 살려내 은근하고도 포근한 한국의 감성적 문명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을 닮아 있는 집, 한옥. 곳곳에 숨어있는 선들의 모양새는 넘실대는 산등성이를 타고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손을 맞잡으면 자연히 친해지듯 한옥과 자연은 아주 오래된 지기처럼 서로 닮은 모양으로 나란히 어깨동무하고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웅장하고도 부드럽게 그리고 분별없이 둥글게 어울린 집, 한옥은 나뿐인 나쁜 집이 아니라, 조화로운 좋은 집이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평화로운 고향. 아른아른 퍼져나가는 그리움처럼 한 해를 기다려온 가을의 기운이 드디어 온 세상에 황금색 물감을 터뜨렸다. 마을을 감싸 안은 원 안에서 큰 것은 큰 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자신의 터를 지키고 있다. 한옥에 산다는 것은 먼 자연조차 내 정원으로 삼는 것. 문과 창은 하나의 액자가 되고, 액자 속에는 자연이 살아 있다. 여닫이문과 미닫이문의 한지가 포근히 햇빛을 끌어오면 움직일 때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이 마음속에 잦아든다. 한옥에 산다는 것은 크고 작은 그림을 삶 속에 이고 사는 것. 창문 하나하나에는 보기 좋은 풍경을 담기 위해 고민한 정성스러운 흔적이 묻어난다. 물 흐르듯 막힘없는 한옥,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 언제나 바깥과 함께하는 기분으로 이쪽과 저쪽을 구별하지 않고, 너와 나를 편 가르지 않는다. ‘골목 참 정겹다’ 수많은 사람들의 방향모를 발걸음 그 속에서 우리는 한옥을 그리워합니다. 넓은 길에서 치이고, 걸리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좁은 길에서 마주하고, 풀고, 신세지며 살아갑니다. 반듯하고 네모진 길이 아니라 엉성하고 둥그런 골목 안에서 사람도 집도 자연도 한데 어울려 살아갑니다. 오순도순 닮아가는 정겨운 집, 한옥은 우리의 좋은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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