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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날의 뜻 오늘의 사람들 상록수의 주인공 농촌계몽운동가 최용신을 아세요
여러분들에게 광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저 80년 전 있었던 역사 속 사건에 머물지는 않았나요?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80여년 전, 우리 국민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도 일반 대중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최용신 선생은 계몽운동가로서 두각을 드러낸 일제강점기의 여성이었습니다. 소설 (상록수)를 통해 널리 알려진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 오늘날에도 그 뜻을 이어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광복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다음 저작물들은 공유마당 CC BY 정책에 따라 출처와 라이센스를 표기했습니다. 1. BLACK BOX-South Korea-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2. 국악연주곡_설날_대금-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3. 국악연주곡_홀로아리랑-한국저작권위원회(무료) *CC BY 4. [최종]12월, 광화문 거리 교항곡-안수빈(무료) *CC BY 5. 한국의 미래-민지영(무료) *CC BY 6. 국악 배경음악 #140-주식회사 아이티앤 *CC BY - 사용 폰트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1. KBIZ한마음고딕체L 중소기업중앙회(무료) 2. 수성혜정체 수성구청(무료) 3. Pretendard SIL 오픈 폰트 라이선스 4. pln옥타곤 지우소프트(Adobe Font) #안산최용신기념관 #안산용신학교 #광복80주년 #문화PD 대본 00;00;07;00 - 00;00;15;26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00;00;15;26 - 00;00;20;22 1919년 3월 1일 조선인 대표 33인은 00;00;20;22 - 00;00;25;29 서울 탑골공원에 모여 조선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00;00;25;29 - 00;00;28;29 그로부터 정확히 26년 뒤 00;00;28;29 - 00;00;32;15 조선은 일본의 강제 점령에서 벗어났고 00;00;32;15 - 00;00;37;17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홀로 섰습니다 00;00;37;17 - 00;00;42;12 그러나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는 00;00;42;12 - 00;00;46;19 독립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00;00;46;19 - 00;00;52;19 이제 광복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과거의 일이 된 것일까요 00;00;52;19 - 00;00;58;20 저희는 광복의 현대적 의미를 찾아보고자 여행을 떠났습니다 00;01;06;25 - 00;01;10;03 그렇게 도착한 곳은 경기도 안산 00;01;10;03 - 00;01;15;10 강산이 여덟 번 변할 시간이라던가요 00;01;15;10 - 00;01;20;12 독립운동 당시 조그만 농촌에 불과했던 이 고장은 00;01;20;12 - 00;01;24;03 이제는 어엿한 도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00;01;27;11 - 00;01;31;07 모든 것이 변해 버린 듯한 도시의 한 켠엔 00;01;31;07 - 00;01;36;00 여전히 독립운동가의 흔적이 남았습니다 00;01;39;07 - 00;01;42;25 V5, 1 최용신 기념관은 2007년도 설립이 되었고요 00;01;42;25 - 00;01;47;03 오시는 분들한테 최용신 선생님의 업적이라든가 교육 활동이라든가 00;01;47;03 - 00;01;50;16 이런 것을 다방면에 걸쳐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00;01;50;16 - 00;01;54;13 최용신 선생님의 고향은 원래 안산이 아니고 원산입니다 00;01;54;13 - 00;02;00;21 그곳에서 어린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 있는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시게 되거든요 00;02;00;21 - 00;02;07;24 그러다가 1931년도에 23살 나이에 YWCA의 파견교사로 이곳 안산에 오시게 됩니다 00;02;07;24 - 00;02;11;23 처음에 오셨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고 해요 00;02;11;23 - 00;02;17;01 왜냐하면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이런 험한 일을 할까 라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00;02;17;01 - 00;02;23;03 하지만 선생님의 열정적인 헌신과 봉사 정신 이러한 것이 어우러져서 00;02;23;03 - 00;02;28;11 마을 사람들도 빨리 마음의 문을 열고 선생님과 친해졌다고 이야기하는데요 00;02;54;26 - 00;02;59;13 그때 당시 우리나라 인구 중에 90% 이상이 농민들이었고요 00;02;59;13 - 00;03;02;18 그중에서 80% 이상이 문맹이었다고 합니다 00;03;02;18 - 00;03;06;24 선생님께서는 이 문맹이 빨리 퇴치되어야지만 00;03;06;24 - 00;03;11;12 우리나라가 부강한 나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농촌계몽운동에 몸을 담으셨는데요 00;03;11;12 - 00;03;14;20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선생님은 이곳에 오셔서 00;03;14;20 - 00;03;19;05 여성 인권 교육이라든가 빈민구제 이런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셨습니다 00;03;26;14 - 00;03;30;27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강습활동을 열심히 하시다가 00;03;30;27 - 00;03;37;26 1935년 1월에 안타깝게 수업 시간에 쓰러지셔서 돌아가시게 되는데요 00;03;37;26 - 00;03;41;05 그런데 이때만 해도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00;03;41;05 - 00;03;46;28 최용신 선생님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아무래도 상록수 소설 책을 빼놓을 수가 없고요 00;03;46;28 - 00;03;50;10 선생님께서 너무나 안타깝게 일찍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으니까 00;03;50;10 - 00;03;54;24 그냥 보내면 너무 안타깝다고 해서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자고 이야기하십니다 00;03;54;24 - 00;04;00;02 그래서 그때 당시 각 신문사나 잡지사에 선생님의 일대기가 다 실리게 돼요 00;04;00;02 - 00;04;02;27 상록수의 저자인 심훈이 너무 널리 알려져 있잖아요 00;04;02;27 - 00;04;10;14 그분께서 최용신 선생님의 그 일대기가 실린 신문 기사를 보고 선생님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시게 되셨고요 00;04;23;02 - 00;04;30;01 흔히들 관람객들이 왔을 때도 독립운동가그러면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를 가장 많이 꼽으세요 00;04;30;01 - 00;04;38;04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물론 그러한 분들도 중요하지만 교육만이 우리나라가 살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00;04;38;04 - 00;04;40;17 그래서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을 서셨고요 00;04;40;17 - 00;04;44;26 나중에 인정을 받아서 독립운동가로 추서가 되셨죠 00;04;45;22 - 00;04;51;04 최용신 선생께서 희생하며 교육의 불을 지핀 도시 안산 00;04;51;04 - 00;04;58;09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명실상부한 최대 다문화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00;04;58;09 - 00;05;02;28 독립운동가의 숨결이 머문 장소에 외국인이라 00;05;02;28 - 00;05;09;10 그렇다면 이제 그녀의 민족정신은 사라지고 만 것일까요 00;05;10;17 - 00;05;15;09 시대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 근본적인 맥락은 저는 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00;05;15;09 - 00;05;21;11 그러니까 최용신 선생님이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독립운동, 문맹퇴치운동이라고 했지만 00;05;21;11 - 00;05;24;06 그 밑바탕에는 인간애가 있다고 봅니다 00;05;24;06 - 00;05;30;26 이론적인 것으로는 저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보지 않거든요 00;05;30;26 - 00;05;37;17 국적을 가리지 않고 인종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이 모든 게 가능하다고 봅니다 00;05;37;17 - 00;05;40;06 그게 교육의 본질이 돼야 된다고 보고 00;05;40;06 - 00;05;49;19 그렇다면 최용신 선생님이 하셨던 그런 일이나 지금 우리가 용신학교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나 00;05;49;19 - 00;05;53;22 큰 밑바탕의 맥락은 일치한다고 보고요 00;05;53;22 - 00;05;58;08 안산용신학교는 안산 다문화거리의 중심 00;05;58;08 - 00;06;02;12 일명 만남의 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00;06;02;12 - 00;06;09;23 1987년에 안산중앙실업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이곳은 00;06;09;23 - 00;06;17;12 초창기 일하는 청소년들의 학습을 돕는 야간학교, 즉 야학으로 시작했습니다 00;06;17;12 - 00;06;22;15 이후 교육 대상을 성인과 외국인까지 확장하며 00;06;22;15 - 00;06;27;25 지역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최용신 선생의 이름을 본떠 00;06;27;25 - 00;06;31;05 안산용신학교로 개칭했습니다 00;06;32;02 - 00;06;38;01 용신학교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00;06;38;01 - 00;06;46;29 내국인 학생들에게는 문해교육 그리고 중등 과정까지 학력 보완교육을 하고 있어요 00;06;46;29 - 00;06;52;28 그래서 같은 학교에서 어떻게 보면 두 부류의 학습자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00;06;52;28 - 00;06;59;16 이들을 같이 만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는 프로그램을 많이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00;06;59;16 - 00;07;08;22 직접 같이 만나서 상호 작용을 하면 다문화감수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연구 논문이 있습니다 00;07;08;22 - 00;07;18;28 저는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 연구 논문이 참이라는 것을 항상 검증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고요 00;07;18;28 - 00;07;28;16 예를 들면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기 나라말로 사랑해요, 안녕하세요 이런 글을 예쁘게 쓰라고 하면 00;07;28;16 - 00;07;33;08 글씨만 쓰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나라의 국기도 그리는 근로자 있고요 00;07;33;08 - 00;07;38;03 아주 유명한 관광지 그런 것도 같이 그리면서 00;07;38;03 - 00;07;41;27 굉장히 정성스럽게 글을 쓰는 걸 볼 수 있어요 00;07;41;27 - 00;07;49;06 자기의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 우리가 그것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중요하구나 00;07;49;06 - 00;07;52;27 내국인 학습자들도 신기한 듯이 보면서 00;07;52;27 - 00;08;00;06 아, 우리와 다른 문자가 있고 우리와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00;08;01;02 - 00;08;06;27 이날은 마침 이번 차시 한국어 수업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00;08;06;27 - 00;08;09;19 수업에서는 한국어뿐 아니라 00;08;09;19 - 00;08;14;07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00;08;14;07 - 00;08;18;05 약 3년 전 한국에 온 임올렉 씨 00;08;18;05 - 00;08;21;25 그에게 한국 생활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00;08;21;25 - 00;08;24;29 안녕하세요 임올렉이라고 해요 00;08;24;29 - 00;08;28;17 제가 러시아에서 왔어요 00;08;28;17 - 00;08;31;14 2년 7개월 됐어요 00;08;31;14 - 00;08;35;19 지금 공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00;08;35;19 - 00;08;38;16 염료를 팔고 00;08;38;16 - 00;08;43;14 지게차를 타고 제품을 받아요 00;08;43;14 - 00;08;45;23 지게차 면허는 어떻게 따셨나요 00;08;45;23 - 00;08;52;14 처음에는 러시아 면허증을 한국 면허증으로 바꿨어요 00;08;52;14 - 00;08;56;04 1종 면허증 시험을 봤어요 00;08;56;04 - 00;09;02;18 합격한 다음에 1종 면허증 받았어요 00;09;02;18 - 00;09;04;27 한국에서 일하는 게 힘들진 않나요 00;09;04;27 - 00;09;08;16 당연하죠 힘들어요 00;09;08;16 - 00;09;11;25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 말하면 00;09;17;11 - 00;09;20;24 이해하기가 좀 어려워요 00;09;20;24 - 00;09;26;28 근데 여기 우리 공장에서 상사들이 너무 좋아서 00;09;26;28 - 00;09;29;28 적응하는 거 빨리해요 00;09;31;24 - 00;09;33;26 (누군가를 발견한 올렉 씨) 00;09;33;26 - 00;09;38;12 (든든한 지원군 교장선생님 등장) 00;09;41;08 - 00;09;47;10 교장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겼습니다 00;09;47;10 - 00;09;48;04 이런 것도 찍어요? 00;09;48;04 - 00;09;49;08 먹방! 00;09;49;08 - 00;09;52;00 이거, 다 찍어야 돼요 00;09;52;00 - 00;09;54;25 선생님 이런 거 말 안 했어요 00;09;56;15 - 00;09;58;26 왜 말 안 했어요? 00;09;59;11 - 00;10;02;19 주말에는 수업 없으면 뭐 해요 00;10;02;19 - 00;10;03;25 수업이 없으면 00;10;05;03 - 00;10;07;21 딸이랑 같이 바닷가에 갈 거예요 00;10;07;21 - 00;10;08;29 딸은 나이가 어떻게 돼요 00;10;08;29 - 00;10;10;11 여덟 살 00;10;10;11 - 00;10;16;26 발음이 한국 사람처럼 들려요 00;10;16;26 - 00;10;19;17 알고 보니 딸바보였던 올렉 씨 00;10;19;17 - 00;10;24;06 여느 아빠들처럼 한참을 딸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00;10;26;01 - 00;10;28;01 식사도 마쳤겠다 00;10;28;01 - 00;10;31;24 이제 최용신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00;10;32;16 - 00;10;37;01 최용신 기념관에 오신 것을 너무나 환영합니다 00;10;37;01 - 00;10;39;23 저는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00;10;39;23 - 00;10;44;27 안산시 문화관광해설사 장은정입니다 00;10;44;27 - 00;10;47;20 일제 강점기라고 들어보셨나요 00;10;47;20 - 00;10;56;23 그 당시 조선이 일본에 주권을 빼앗겨서 식민지 생활을 하였던 그 시대거든요 00;10;56;23 - 00;10;58;12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0;58;12 - 00;11;00;22 그래서 이것 알고 있어요 00;11;02;22 - 00;11;10;04 러시아에서 고려인으로 지냈던 그는 관람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00;11;10;04 - 00;11;16;05 최용신 선생의 생애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00;11;17;24 - 00;11;21;14 최용신기념관 관람은 어떠셨어요 00;11;21;14 - 00;11;24;14 V5, 1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펐어요 00;11;24;14 - 00;11;31;28 왜냐하면 그때 밥 없고, 돈 없고 00;11;31;28 - 00;11;34;24 일본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00;11;34;24 - 00;11;38;14 최용신 선생님에 대해 알고 계셨나요 00;11;38;14 - 00;11;41;03 아니요 처음 들었어요 00;11;41;03 - 00;11;45;11 이제 알아요 대단해요 00;11;45;11 - 00;11;53;20 그 어려운 시대에 학교를 만들고 한글 가르치셨다는 게 대단해요 00;11;53;20 - 00;11;58;17 근데 일찍 돌아가셔서 좀 속상해요 00;11;58;17 - 00;12;01;05 제가 사할린에서 왔어요 00;12;01;05 - 00;12;06;19 우리도 8월 15일이 특별한 날이에요 00;12;06;19 - 00;12;14;29 절하고 했는데 (왜 그렇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 알게 됐어요 00;12;14;29 - 00;12;19;12 재미있고, 슬퍼요 00;12;19;13 - 00;12;24;00 오는 8월 15일에 뭐 하고 싶으세요 00;12;24;00 - 00;12;30;27 여기 와서 (최용신 선생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볼 수 있을 거예요 00;12;30;27 - 00;12;37;03 V5, 1 친구랑 같이 여기 영화 보러 올 거예요 00;12;38;18 - 00;12;45;06 최용신 선생님의 민족정신은 다문화인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건가요 00;12;45;06 - 00;12;47;13 아뇨 당연히 해당 사항이 있습니다 00;12;47;13 - 00;12;50;17 왜냐하면 최용신 선생님이 농촌계몽운동을 하고 00;12;50;17 - 00;12;55;28 교육활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이야기했던 것은, 애국심을 이야기했던 것은 00;12;55;28 - 00;12;59;06 강자들을 위한 게 아니고 약자들을 위한 거였거든요 00;12;59;06 - 00;13;05;14 안산은 진짜 다문화 도시잖아요 거대한 다문화 도시라고 해도 진짜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00;13;05;14 - 00;13;08;25 이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긴 하지만 00;13;08;25 - 00;13;13;26 아직도 한글을 몰라서 소통을 못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00;13;13;26 - 00;13;19;08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최용신 선생님처럼 교육활동을 펼친다면 00;13;19;08 - 00;13;24;12 같이 어우러지고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을까 00;13;24;12 - 00;13;32;01 우리는 보통 다문화 사회라고 할 때 인종으로 구별을 하거나 국적으로 구별을 하죠 그런데 00;13;32;01 - 00;13;35;24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00;13;35;24 - 00;13;39;29 인종이나 국적 같은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00;13;39;29 - 00;13;41;27 그리고 다문화 사회라는 것이 00;13;41;27 - 00;13;48;17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이 그냥 물리적으로 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00;13;48;17 - 00;13;52;07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00;13;52;07 - 00;13;57;05 화학적인 작용이 일어나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봅니다 00;14;01;13 - 00;14;06;25 소나무나 향나무 같은 경우에는 사철 푸르러어요 00;14;06;25 - 00;14;10;15 이런 푸른나무를 상록수라고 해요 00;14;10;15 - 00;14;13;08 책 제목이 아까 뭐라고 했죠 00;14;13;08 - 00;14;15;19 책 제목도 상록수였죠 00;14;15;19 - 00;14;21;16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00;14;21;16 - 00;14;24;12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살았잖아요 00;14;24;12 - 00;14;28;04 거기에도 굴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마음 00;14;28;04 - 00;14;33;03 그런 마음이 바로 상록수 정신으로 비유되기도 합니다 00;14;36;05 - 00;14;41;07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의 본질은 00;14;41;07 - 00;14;46;21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었을 것입니다 00;14;46;21 - 00;14;50;16 수십 년이 흐른 현대 사회에서도 00;14;50;16 - 00;14;55;28 누군가는 여전히 억압 속에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00;14;55;28 - 00;15;00;10 최용신 선생께서 현대 사회를 마주하셨다면 00;15;00;10 - 00;15;05;00 바로 그들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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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이게 실화라고... 삼일절에 아기 낳았다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퍼뜨린 어느 미국인 역대급 스토리, 결말포함 4분 몰아보기
3.1절, 서울에서 한 미국인 기자의 가족이 겪은 놀라운 실화...!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집 딜쿠샤(기쁜 마음의 궁전)는 지금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제 추방, 구두에 숨겨진 선언서, 돌아오고 싶었던 땅, 그리고 그가 끝내 묻힌 자리까지... 이 4분짜리 영상 하나로, 잊혀졌던 실화가 다시 살아납니다. #광복절 #딜쿠샤 #실화다큐 #서울 #명소 #몰아보기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Lance Conrad - Waiting and Hoping Yaniv Hayoun - I Hope Brianna Tam - Pursuit Starluxe - Lift Babies - Baby Sobbing Uncontrollably Historical Army - Rifle Gunshot, Single Shots Bullpup Firearms - Enfield L85, Cocking Gun, Loading Electric Typewriter - Write, Medium speed, Aggressive, Room Brazil Crowds - Demonstration Voices, Shouts, Applause, Chants, Sao Paulo Steps Hardwood - Dress Shoes, Jumping, Landing Elegant Footsteps - Dress Shoes, Scuffing, Dirt Steps Carpet - Sandals Running Foley, male breath, fast and slow, variation continuous Traps and Cages - Prison Cell Door Beautiful Birds - Aves Ambience in Nature - 사용 폰트 부크크 명조체 (주)부크크(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Bodoni 72 Smallcaps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Bodoni 72 Oldstyle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Apple SD 산돌고딕 Neo Apple (Apple 기기 사용자 상업비상업 사용 가능) Y이드스트릿체 (주)케이티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Sandoll 백종열필 산돌커뮤니케이션 (일반 디자인 상업적 사용 가능) G마켓 산스 TTF (주)이베이코리아 / G마켓 (상업적 사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ElevenLabs, Midjourney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딜쿠샤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시나요.조선을 사랑한 미국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곳은 딜쿠샤. 1923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가 지은 붉은 벽돌집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지요. 이 집은, 한 외국인이 조선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역사의 증거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탄생한 한 미국인 아기와 구두 덕분에,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같은 시각,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특파원으로 온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칩니다. 간호사는 황급히 메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불 밑에 종이 뭉치를 숨겼습니다. 곧 이어 병문안을 온 앨버트가 아기를 안아올리자 떨어진 종이. 그것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몰래 인쇄했던 독립선언서였습니다. 그날 밤, 앨버트의 동생은 조선을 떠났습니다. 구두 뒷축에는, 독립선언서 사본과 형이 쓴 영문 기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운동에 관한 내용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테일러는 조선을 잊지 못했습니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에 묻혔습니다. 딜쿠샤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치된 채 남아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복원 과정을 마치며 펜으로 지킨 집 딜쿠샤는 다시 시민들에게 열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펜을 든 이방인의 마음은 지금도 이 집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그곳은, 진실을 전하고 사랑한 땅에 끝내 돌아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의 딜쿠샤는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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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의 길, 오늘의 나
80년 전 그날, 오늘 우리가 걷는 이유 1919년의 봄, 아우내 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의 외침. 그 중심에는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작은 생가에서 시작된 저항은 지금도 천안의 땅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 영상은 유관순 열사 생가, 기념관부터 아우내 장터, 독립기념관까지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천안 곳곳에 남겨진 과거 독립운동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기증 저작물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04489menuNo=200020#self 저작권자: 소향 외 11]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유 마당의 CC BY 라이선스에 따라 [공유마 당: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048780menuNo=200020 저작 권자: 임다솔]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사용 폰트 조선100년체 - 조선일보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부크크 명조 - (주)부크크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선스 정책 확인 완 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VOLI의 AI보이스를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과 천안 사적관리소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 니다 대본 00;00;01;05 - 00;00;03;05우리의 시간이 멈췄던 날00;00;04;00 - 00;00;05;49한(恨) 맺힌 침묵을 깨고00;00;09;32 - 00;00;11;29울려퍼졌던 한(一) 목소리00;00;13;05 - 00;00;14;53대한독립만세!00;00;16;03 - 00;00;18;11우리는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00;00;18;36 - 00;00;19;48오늘을 걷습니다00;00;30;19 - 00;00;32;36그들이 외친 독립을 기념하는 곳00;00;33;17 - 00;00;34;44독립기념관입니다.00;00;39;12 - 00;00;41;10나라를 수호하려는 결의와00;00;44;04 - 00;00;45;29피로 지켜낸 태극기00;00;48;02 - 00;00;50;051919년 3월 1일00;00;50;40 - 00;00;52;47모두가 한 마음 한(韓) 뜻으로00;00;53;16 - 00;00;54;59독립을 말하고 있었습니다.00;01;16;25 - 00;01;18;22그날의 현장 한가운데에00;01;18;41 - 00;01;20;34한 소녀도 있었습니다.00;01;25;30 - 00;01;28;16유관순은 그날의 한 뜻을 이어받아00;01;29;59 - 00;01;31;39병천의 작은 집에서00;01;32;19 - 00;01;35;19거대한 저항을 준비했습니다.00;01;37;55 - 00;01;40;55열여섯, 어린 소녀의 저항은00;01;42;10 - 00;01;45;10나라를 빼앗긴 서러움이자00;01;45;22 - 00;01;48;22그녀가 문을 나서게 했던 원천이고00;01;51;11 - 00;01;53;11독립 열사의 길이었습니다.00;01;57;19 - 00;01;59;241919년 4월 1일00;02;04;36 - 00;02;06;55유관순과 3천 군중의 외침00;02;07;35 - 00;02;09;14대한독립만세!00;02;09;56 - 00;02;11;38대한독립만세!00;02;12;12 - 00;02;13;07만세!00;02;13;38 - 00;02;14;33만세!00;02;15;37 - 00;02;18;37두려움보다 절박함이 앞섰던 그 순간00;02;19;31 - 00;02;23;14유관순은 그 함성에 한복판에 서 있었습니다.00;02;24;45 - 00;02;28;44그날의 소리는 오늘도 이곳을 스쳐 갑니다.00;02;29;40 - 00;02;32;52보이지 않아도 들리는 기억 속 그날처럼00;02;36;15 - 00;02;38;20이제 그들의 곁에 휘날리는00;02;38;20 - 00;02;41;21태극기는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습니다.00;02;45;51 - 00;02;46;53유관순00;02;48;37 - 00;02;50;02순국자를 추모하며00;02;52;05 - 00;02;54;40그들의 이름을 마음 깊이 새깁니다.00;02;59;20 - 00;03;02;24그들이 있었기에 피어날 수 있었던 우리가00;03;03;00 - 00;03;04;33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00;03;28;18 - 00;03;30;54그들의 영을 위로하는 추모의 자리에서00;03;33;09 - 00;03;34;57우리는 굳게 다짐합니다.00;03;38;22 - 00;03;39;59피땀으로 지켜00;03;39;59 - 00;03;44;17이 터전을 물려주신 가신 임들의 고마움을 되새겨00;03;44;17 - 00;03;45;24겨레여00;03;45;24 - 00;03;47;06이 나라를 길이 빛내자00;03;50;52 - 00;03;53;07독립 열사의 희생이 이뤄낸 광복00;03;54;37 - 00;03;56;53우리의 다짐으로 지켜낸 80년00;03;58;36 - 00;03;59;09오늘00;03;59;46 - 00;04;02;17우리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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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 menuNo=200020wrtSn=13316936),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저작자표시 4.0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 용하였습니다.(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의 공공저작 물을 이용하였습니다.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55229menuNo=200020), 작성자:주식회사 아이티앤]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설화, 기증 박세임, 공유마당, CC BY - 사용 폰트 AppleGothic - apple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의 나레이션은 생성형 AI elevenlabs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정책방송원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셀수스협동조합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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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단재의 발자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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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민중의 염원과 기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의가치를 재조명한다. 제목 : 마을 신앙의 중심 서낭당 내레이션 성황은 서낭당에 모신 신을 뜻하는 것으로 성황당과 서낭당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어귀나 산허리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돌무더기, 오래된 나무, 작은 당집 그리고 나무와 당집이 같이 있는 형태 등으로 서낭당은 존재했다. 서낭당에는 오방색을 뜻하는 오색띠가 매어져 있거나 금줄이 쳐져 있는데 이러한 것은 복을 부르고 사악함을 쫓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은 서낭당을 개인적 혹은 마을공동체 신앙의 수호신 삼아 섬겼다. 인터뷰 김창호 /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서낭당이 지금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남아있는 서낭당들도 무형문화재라는 입장에서 보존되고 있는 차원인데요. 사실, 서낭당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마을 공동체의 표상과도 같은 것입니다. 서낭제를 통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그 안에서 다음세대에 대한 마을의 전통을 교육하는 것도 일어납니다. 굉장히 순기능적인 여러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이 옛날 같지 않고 아파트와 같은 분할된 가구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으로 변해서 옛날에 한마을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하나가 되었던 모습은 찾기가 힘든데,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라는 입장 이외에도 한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서낭당을 통해서 주어졌던 것인데요. 그런 부분들이 오늘날에도 꼭 필요하고 없어졌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막 성황당 1937년 발표된 정비석의 단편소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 내레이션 우리의 문학과 노래에는 서낭당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만큼 우리 민중들과 가까웠던 것이 서낭당이다. 정비석의 소설 성황당은 후미진 평안도 산골에서 숯을 구워먹고 사는 순이 부부와 그녀를 노리는 사내들의 이야기를 원초적이고 관능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특히, 성황당과 순이의 관계를 통해 토속신앙과 인간의 삶을 신선하고 조화롭게 묘사했다. 자막 깊은 산중에서 숯을 구워 생계를 꾸려가는 현보의 아내 순이는 모든 일을 성황님의 은덕으로 여기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현보를 도와 숯가마에 불을 때던 순이가 더위를 참지 못하여 옷을 벗고 개울에서 목을 할 때, 예전부터 순이를 노리고 있던 산림간수 긴상이 그녀의 옷을 감추고 협박을 한다. 순이는 이에 단호히 대항하고 앙심을 품은 긴상은 순이의 남편 현보를 산림법 위반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다. 이때, 순이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칠성이 찾아와 긴상과 칠성은 순이를 사이에 두고 격투를 벌인다. 며칠 뒤, 다시 칠성이 나타나 순이에게 현보가 3년은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같이 도망칠 것을 종용한다. 그가 가져온 분홍 항라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치마에 마음이 끌린 순이는 칠성을 따라나선다. 그러나 30리쯤 갔을 때 산을 떠나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현보에 대한 그리움, 무엇보다도 성황님의 벌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순이는 칠성에게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순이가 “성황님 ! 성황님 !” 을 외며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방안에서는 “에헴” 하는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밤 따라 접동새와 부엉새 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이 정다운 것이었다. 자막 경상북도 안동시 하회마을 내레이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에서는 두 가지 형태의 서낭당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하회마을 가장중앙에는 삼신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무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회마을이 조성될 때 심은 것으로 여겨지는 나무의 수령은 6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신목을 서낭당 삼아 정월대보름에는 제를 올리며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과 공동의 소망을 빌기도 한다. 인터뷰 손주호 / 대구광역시 지금 만나고 있는 연인과 안 싸울 수는 없겠지만, 싸우더라도 서로 잘 잡으면서 이 운명 끝까지 꼭 가져가고 싶습니다. 김명숙 / 서울특별시 저를 비롯해서 제 가족과 친지, 주위의 분들,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김문배 / 서울특별시 곧 아이가 태어납니다. 아이가 무사히 잘 태어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그것을 빌러 왔습니다. 내레이션 특히, 삼신당은 자식을 귀하게 여겨 후손이 잉태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잘 들어주어 마을 전체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앞산의 중턱에는 또 다른 서낭당인 중당이 조성되어 있다. 서낭당과 같은 마을제당은 주민들의 종교심성을 공유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마을의 신을 중당에 모셔와 제사 지내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해설사 인터뷰 박순화 / 안동문화관광해설사 중당은 국신당을 모셨어요. 국신당은(공민왕의 모신 것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70여일을 몽진을 오셨어요. 홍건적의 난을 피해서, 그래서 안동에는 공민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그 때문에 조성되었지 않나 싶습니다. 풍산류씨들이 하회마을에서 많은 인재가 특히, 영의정 서애 유성룡 대감 같은 명재상이 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막 국신당은 신격화된 고려의 공민왕을 의미하며 특히 안동지역에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신앙되고 있다. 자막 강원도 강릉시 내레이션 강원 강릉시에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 기간 동안 대관령산신을 모셔와 서낭제를 지낸다. 자막 학산서낭당 강릉단오제의 주신 대관령국사성황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의 서낭당으로 매년 음력 4월15일 머물러 굿과 제례를 올린다. 내레이션 강릉고을을 지켜주는 대관령 산신께 제사하고 험준한 대관령 산길의 안전을 기원하며 풍작과 풍어 집안의 태평 등을 기원한다. 제를 시작으로 진행되는 강릉단오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축제로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만나 하나가 되는 만남의 공간이다. 서낭당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섬기는 것은 단순히 기원의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식, 심적인 유대, 연대감을 강화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중이 가깝게 여기는 마을제당이자 개인제당이었던 서낭당. 앞으로도 소중히 지켜야할 우리민족의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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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5
달밤에 떠나는 가족여행, 경복궁 야간개장
바쁜 일상으로 인해 지친 가장들,워킹맘들! 변변한 가족 여행 한 번 떠나보지 못한 가정을 위한 특별한 나들이! 경복궁 야간개장에서 누려보자. 특히, 고풍스러운 야경과 숨겨진 경복궁의 비밀을 영상 속 지은이와 함께지금 당장 만나보자! ------------------------------------------대본------------------------------------------- 내레이션: 문화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지은씨. 5월을 맞아 대대적인 빨간 날이 가득한데요. 우리 지은씨는 쉬지도 못하고 일일, 계속 일뿐이네요. 지은: 여보세요. 엄마, 못가. 지금 일 많으니까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지은: 여보세요. 엄마, 나 바빠. 끊어! 지은: 바빠. 끊어! 지은: 이게 뭐야! 지은: 원래 코를 되찾고 싶으면 경복궁 야간개장으로 오라고? 경복궁? N.A: 가족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 코를 빼긴 저.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저와 함께 경복궁 야간개장으로 떠나볼까요? N.A: 경복궁 야간개장은 2010년부터 봄과 가을에 두 번 광화문에서부터 흥례문, 근정전 그리고 경회루를 밤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입니다. N.A: 제일 먼저 우리를 반기는 광화문은 왕의 덕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뜻을 지닙니다. N.A:광화문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N.A: 가로로 긴 흥례문의 모습에서 경복궁 야경의 아름다움이 시작됩니다. N.A: 자! 그럼 본격적으로 영제교 관련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퀴즈: 네 마리 중 유독 표정을 짓고 있는 천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시민: 메롱 N.A: 흥례문에 들어와 금천 위로 볼 수 있는 영제교. 메롱하고 있는 천록이 인상적입니다. 시민 인터뷰: 저희 큰 아이가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일부러 예약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N.A: 근정문을 나서면 근정전이 웅장한 자태를 보이고 서있는데요. 왕의 근면을 강조하고 의식을 거행하던 법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N.A: 이어서 두 번째, 근정전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퀴즈: 근정전 난간 12지신 조각상 중 빠진 2개를 골라라. 시민: 돼지하고 개 N.A: 문제에서처럼 12지신 중 개와 돼지는 볼 수 없습니다. 참! 용은 왕을 상징하기에 따로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민인터뷰: 아이들에게 경복궁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야간개장이 참 드물어서 아주 어렵게 예약했습니다. N.A: 근엄한 모습이 돋보이는 근정전을 뒤로하고 이제 마지막 남은 한 문제, 경회루로 함께 가보실까요? N.A: 경회루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외국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열던 곳입니다. 퀴즈: 경회루의 2층 마룻바닥 중 두 번째 칸이 12칸인 의미는? 시민: 12달 N.A: 경회루의 내부 구조는 주역의 원리에 따라 각각 천지인, 24절기, 12달처럼 의미를 지닙니다. 시민인터뷰: 경복궁 야간개장을 한다고 해서 마침 (지방에서) 오는 날짜랑 맞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훨씬 더 운치있다고 해야 하나.... 시민인터뷰: 야간에는 (경복궁을) 보기 힘드니까 보고 싶었습니다. 시민인터뷰: 연휴 겸 해서 보러 올라왔습니다. 시민인터뷰: 시간대가 맞아서 오기도 하고 저번에 저 혼자 왔었는데 괜찮았거든요. 가족도 같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N.A: 와! 드디어 문제를 다 풀었네요! 지은: 여보세요. 엄마 내일 뭐해? 내일 시간돼? 아니 우리 가족여행가자고~ 경복궁 야간개장한대! 우리 내일 경복궁 가는거다,
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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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한국문화100] 목판에 새긴 호국의 불심 팔만대장경
거듭되는 북방 오랑캐의 침략을 부처의 힘을 빌려 막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불심이 담긴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의 내용, 규모 그리고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고 정대불사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팔만대장경의 의미가 가진 가치를 알아본다. 제목 : 목판에 새긴 호국의 불심 팔만대장경 내레이션 1950년 발생한 우리민족의 비극 6?25전쟁. 연합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퇴로가 차단된 인민군 약 900명이 가야산 일대에 숨어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군 사령부는 가야산 해인사 공중 폭격 작전을 단행한다. 하지만 당시 편대장 김영환 대령은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일본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것은 교토가 일본 문화의 총 본산이었기 때문이다. 공비소탕을 위해 우리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다.” 라고 말하며 상공에서 기수를 선회해 비행편대에게 폭격금지 명령을 내린다. 대령의 문화유산에 대한 식견과 의지로 지킨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은 바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보관중인 국보 제 32호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이다. 자막 팔만대장경 국보 제 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내레이션 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장, 계율 및 그것을 해설한 율장, 경을 연구해 놓은 논장을 집대성한 불교의 최대 경전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되어 고려대장경으로도 불린다.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에서는 불교가 다양한 분야에서 백성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정신적인 힘이 되어 주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했다.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기존에 만들어져 있던 ‘초조대장경’과 ‘속장경’이 모두 불타버리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의 수호를 통해 외적의 침입을 이겨내고자 만들어진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이러한 팔만대장 경은 현존하는 대장경판 중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최고의 교열 등 교정 작업을 통해 이루어짐으로서 가장 정확한 대장경으로 평가되고 있다. 팔만대장경은 2007년 6월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에 등재되었다. 자막 1011년 거란의 고려침략을 계기로 제작된 초조대장경 1232년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해 소실됨 1236년 이후 16년간 팔만대장경 조성사업 진행 인터뷰 이지범 / 고려대장경연구소 사무처장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몇 가지 근거들을 두고 있는데요. 첫 번째는 고려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계보, 역사성을 두고 하는 말이고 두 번째는 한역대장경으로 세계에서 유일하니까 그 완전함에 있고 또 목판으로 현존하고 있어 희소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막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내레이션 경남 합천군에 위치한 해인사.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보 즉, 불(佛), 법(法), 승(僧) 중 ‘법’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로 통도사, 송광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삼보사찰 중 하나이다. 자막 해인사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보, 불(佛), 법(法), 승(僧) 중 ‘법’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 추사 김정희가 쓴 팔만대장경 현판 내레이션 해인사의 장경판전에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다. 팔만대장경은 목판이다. 가난한 학자와 선비, 일반 백성이 책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목판 인쇄술이 발명되면서 부터이다. 만들어진 목판이 뒤틀리는 것을 막기 위해 3년간 바닷물에 담갔다가 말리고 지속적으로 옻칠을 하는 등 어려운 과정을 거친 나무들이 사용되었으며 경판 양쪽 끝은 마구리를 설치한 후 동판을 붙였다. 긴 세월 보존을 위한 선조들의 노력이 담긴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규모와 과학성을 자랑하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세계적 유산이다. 인터뷰 성안스님 /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팔만대장경은 경판의 수가 81,258장이거든요. 이렇게 많은 경판을 가지고 책을 만들면 6,803권이 나옵니다. 우리가 하루에 1권씩 읽으면 거의 20년이나 걸리는 많은 책(분량)입니다. 많은 사람이 물어 봅니다 그걸 다 읽을 수 있을까. 팔만대장경 경판을 쌓으면 높이가 3,200미터나 됩니다. 백두산보다도 높고, 옆으로 뉘어놓으면 약 60킬로미터, 서울에서 오산까지의 거리가 되고요. 무게는 약 280톤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팔만대장경판의 내용이 뭘까 그것을 다섯 글자로 줄여보니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가 됩니다.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한자가 마음 심(心)자입니다. 팔만대장경의 핵심은 무엇이냐면 어떻게 우리가 따뜻하고 행복하게 존재할 것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인 서로 아름답게 존재하는, 행복이란 것이 실제로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팔만대장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내레이션 목판인 팔만대장경이 현재까지 보관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인사 장경판전이 가진 구조적 우수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장경판전은 팔만대장경과 더불어 국보 제 52호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을 보존하기 위해 적정한 온도와 습도유지, 직사광선의 차단, 원활한 통풍과 환기 등 보존을 위한 요소들을 주도면밀하게 배치한 과학적 건물이다. 신기하게도 이곳에는 수백 년 동안 생쥐 한 마리 들락거리지 않았고, 거미줄이 생긴 적도 없다고 한다. 오후 2시경에는 판전입구에서 연꽃모양의 자애로운 빛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 성안스님 /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첫째는 창틀 크기가 위아래가 다르거든요. 정면에서 봤을 때는 아래가 넓고 위가 좁고 뒤편에서 보면 위가 넓고 아래가 좁습니다. 이렇게 만든 것은 대류현상과 신선한 공기의 유입을 위한 가장 완벽한 건물의 구조입니다. 또 바닥에도 우수성이 있습니다. 바닥에는 숯, 석회, 소금, 모래 같은 것을 강회다짐을 하여서 여름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가을에는 습기를 방출하여 가장 이상적인 습도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자막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내레이션 팔만대장경에는 불교경전내용과 더불어 13세기 중엽의 역사 및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들이 새겨져 있다. 이들 자료는 당대역사와 불교문화 또 출판인쇄술 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종파를 초월한 통합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팔만대장경의 판본은 조선 초기부터 몇 번 인출되어 유통되었으나 현재 전질이 남아 있는 곳은 1865년 인출되어 전해진 월정사가 유일하다. 자막 해인사 대장경 정대불사 [大藏經頂載佛事] 내레이션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의 의미와 정신을 이어가고자 대장경 정대불사를 해마다 행한다. 신성한 경전을 머리에 임으로써 우러나는 경건한 신심을 아울러 취하기 위해 행하여지는 대장경 정대불사는 사실 1년에 한 번씩 대장경판을 햇빛 받게 하려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소중한 우리문화유산 팔만대장경. 선조들이 짊어졌던 호국의 마음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가슴에 담아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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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한국문화100]직지를 통해 증명된 문화강국, 대한민국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이 서양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먼저 만들어졌다는 걸 증명하는 직지심체요절에 대한 소개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내용 타이틀 : 직지를 통해 증명된 문화강국, 대한민국 내레이션 주자인시(鑄字印施), 직지심체요절 하권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있는 말이다. 주자인시는 금속활자로 제작된 책을 일컫는 말로 직지가 금속활자로 제작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2001년 직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선정되었다. 현존하는 인류의 최초 금속활자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직지.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은 인류의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터뷰 이세열 소장 / 직지디제라티연구소 지난 일천 년 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을 꼽는다면 금속활자 인쇄술이라고 꼽을 수 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우리나라에서는 직지와 독일에서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가 간행됩니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특권계층에 의해서 지식인들만 글이(책이) 전파될 수 있었는데요. 금속활자가 발명됨으로 인해서 대량 출판물이 발행되면서 모든사람의 지식이 확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내레이션 사실상 우리나라는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처럼,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시대에 큰 파급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서양은 당시 권력자들만 소유했던 책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금속활자 인쇄를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었고, 르네상스, 종교개혁, 산업혁명, 시민혁명 등의 대 격변기를 맞는 등. 금속활자의 발명은 세계의 인류 역사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터뷰 황정하 학예연구실장 / 고인쇄 박물관 직지가 갖는 의미는 인쇄문화사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 지금 현재 기록상으로 1200년대 초에 상정예문, 남명천화상송정도라는 책을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기록문이 남아 있는 상황이고 그러나 그 실물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직지가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되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1200년대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고 하는 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주는 실물 자료로써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이 금속활자 발명국 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증거 자료가 되겠습니다. 황선주 소장 / 직지문화산업연구소 조선이 건국이되면서 이전의 고려 활자인쇄를 알고 있었거든요. 이전의 고려 활자 인쇄가 없었다면, (조선시대) 태조때나 태종 때 쉽사리 활자인쇄를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지금으로서는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에 대해서 일부만 조금씩 알고 있지만 그것이 조선조에 와서 대대적으로 꽃을 피우고요즘에 와서는 세계적인 IT 강국이 되고, 그런 씨앗이 이미 고려조에 있지 않았나란 생각은 합니다. 내레이션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보다 78년 앞서 제작된 직지. 직지는 현재 조선 시대 병인양요 때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금속활자본 직지의 발견을 통해 증명된 문화 강국 대한민국. 직지는 대한민국의 문화 우수성을 나타내는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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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한국영화를 보다! 남양주종합촬영소
한국영화 1억명관객시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갑니다. 그리고 매해 많은 영화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관객들을 찾아가기 위해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작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중심지에는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있습니다. 그럼 이제 한국영화 중심지로 향해 볼까요? ---------------------------------------------(대본)------------------------------------------- 나레이션) 한국영화 1억명시대!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갑니다. 그리고 많은 영화들이 매해 나오고 있고.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영화들이 관객들을 찾아가기 위해 촬영되고 있습니다. 현장음) 레디 3 3 3 나레이션 ) 액션 나레이션 ) 서울에서 한시간 아름다운 북한강을 타고오르면, 한국영화 촬영중심지인 남양주종합촬영소가 있습니다. 자막)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2000) 감독 : 박찬욱 나레이션 ) 저 노란선 무엇인지 아시겠나요? 네. 박찬욱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촬영한 판문점 세트입니다. 한국영화 583만 관객이라는 흥행신기록을 세웠고, 이 작품은 세계 3대 영화제 중에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자막 ) 미갤/스페인 남양주 종합촬영소에 방문하신소감 인터뷰)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이곳(남양주종합촬영소)에 왔습니다. 이 곳에서 흥미로운 한국의 역사에 대해 들었고, 또한 한국과 북한 사이에 조율역할을 하는 판문점의 모습도 볼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자막) 한국영화에 대해 알고 있으신가요? 인터뷰) 영화 사마리아 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정말 ,음 스페인에서 좀 유명합니다. 그래서 한국 영화로 스페인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았을겁니다. 왜냐면 소녀가 스스로를 죽이고 이 소녀를 위해 남자의 복수가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저도 보았습니다. 자막) 영화 취화선(2002) 감독 : 임권택 자료화면)으아!! 으아 이 개자식들아!! 나레이션)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아흔여덟번째 작품인 취화선 촬영세트입니다. 취화선은 칸느영화제에서 한국영화로 처음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19세기말 종로거리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제 건축방식으로 재현되어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옛정취를 그대로 거닐수있습니다. 자막 )이서영/승환이 가족 경기 이천 어떤계기로 촬영소에 오게 되셨나요? 인터뷰)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영화 만드는곳이라던가 전통한옥들을 보여주기 위해 왔습니다. 인터뷰)좋아하는 한국영화 있으신가요? 한국영화 좋아하죠 요즘 수준이 높아져서, 최근에 본 영화로는 감시자들을 보았습니다. 한국영화 재밌게 잘보고 있습니다. 자막)한국영화에 바라는점 인터뷰)얼마전에 보면 드라마 나인을 보면 시나리오 탄탄하고 재밌었습니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재밌게 만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자료화면) 에헤 고맙습니다. 에헤 그것도 재주라고 넘느냐 그것도 재주라고 넘고 엽전을 바라느냐 자! 샛님네들 진짜 재주 한번 보실랍니까? 옳거니! 그럼 제대로한번 놀아봐라 나레이션) 그리고 이 곳은 1230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남자가 촬영된 장소입니다. 토지 다모 해신 타임머신등의 티비프로그램도 촬영되는 장소입니다. 봄 가을에는 이엉갈이를 하면서 짚풀공예, 똬리만들기 등의 문화예술체험행사를 참여해볼수도 있습니다. 자막) 박정환/ 강원 춘천 어떤계기로 촬영소에 오게 되셨나요? 인터뷰) 마지막 가을을 보내기위해서 드라이브겸해서 한국영화도 좋아해서 촬영소로 구경왔습니다. 자막)좋아하는 한국영화 있으신가요? 인터뷰) 올해 본 한국영화로는 숨바꼭질, 7번방의 선물이 있습니다. 이와과 같이 스릴러영화와 가족영화를 뜻깊게 재밌게 보았습니다. 나레이션) 남양주촬영종합소는 야외세트 이외에도 다양한 영화 스튜디오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모든것을 볼수있는 영상문화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영화의 역사부터 현대3d 영화 제작모습까지 볼수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초의 영화에서부터 일제강점기 춘사 나운규 선생님의 영화 아리랑 필름소실과 같은 아픈 우리나라의 역사 한국영화 발전과 함께 해오신 신상옥 유현목감독님과 많은 감독님들 그리고 어느덧 1억관객시대에 온 지금 한국영화 모습까지 우리나라 영화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있습니다. 인터뷰 )한국영화 화이팅 대박을 위하여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한국영화 화이팅 과자주세요! 하하하 승환아 다시한번 하나둘셋 한국영화 화이팅!
유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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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한국문화100] 마을의 수호신, 장승
마을의 수호신, 장승 ---대본--- 나레이션 마을 입구, 여러 형태의 장승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지역 간의 경계선 표시, 이정표의 역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이러한 역할로 문화유산 장승이 자리 잡혀 있다. 지금부터 수호신 장승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터뷰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이란? 나쁜 잡귀 잡심들을 막아준다든지 풍요를 기원하던지 거리의 이정표 역할, 마을과 마을의 경계표의 역할, 신앙대상물로써 나무나 돌에 사람의 얼굴 모습을 새겨서 마을 입구에 세워 놓은 마을 공동체 신앙대상물입니다. #1. 최초의 기록 (자막) 전라남도 장흥군에 위치한 보림사 장승의 기원에 관하여 뚜렷한 사실은 없지만 여러 가지 학설은 존재한다. 보림사에 있는 보물 158호 보조선사창성탑비의 비명에서 장승에 관한 최초의 기록을 볼 수 있는데 비문에 의하면 건원(乾元) 2년에 경덕왕이 명하여 장생표주를 세우게 했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인터뷰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에 대한 최초의 기록? 장승표주라는 것은 장생이라는 표식을 한 기둥이라는 뜻입니다. 비명에 보면 신라 경덕왕 즉 759년에 장생표주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장승의 기원은 이때부터 최초의 기록되고 있습니다. #2. 석장승 · 목장승 (자막) 소나무나 밤나무를 주로 사용하여 나무로 제작된 목장승, 그리고 돌하루방과 비슷한 외모를 지닌 이 또한 돌을 깎아서 제작된 장승이다. 나무재료의 특성상 목장승은 세월이 흐르면서 원형이 변질되는 단점이 있었고 이를 보안하기 위해서 한번 제작하면 퇴색되지 않는 돌을 재료로 장승을 만들기도 한다. 장승의 생김새가 다양하듯 명칭 또한 시대와 지역 그리고 그 기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다. 장생이라는 이름으로 현존하거나 문헌에 기록된 것으로 보림사 장생표주가 있으며 각 시대별 여러 가지 명칭이 존재한다. 각 지역별로 장승은 돌하루방, 벅수, 장생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고 현재까지도 전라남도에서는 장승을 벅수라 칭하기도 한다. 전남 나주 불회사 불회사에 위치한 이 장승을 보면 각각 남·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남장승은 조각의 선이 깊고 뚜렷하며 수염이 표현되었고, 입 가장자리에는 송곳니가 아래로 뾰족하게 드러나 있다. 몸체에는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란 이름을 새겼다. 여장승은 표정이 온화하고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있고 몸체에는 ‘주장군(周將軍)’이라 이름 붙였다. 이것 이외에도 석장승의 특징으로는 왕방울눈, 매부리코, 뾰족한 송곳니가 어우러진 모습이 대표적이다. #3. 장승의 탄생기(자막) 전라남도 무안에 위치한 장승제작소 장승의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깨끗한 소나무에 먹으로 밑그림을 그린 후 도끼로 큰 조각을 내어 틀을 잡고 세밀하게 장승을 조각한다. 장승은 제작자 뿐 만 아니라 마을 모두가 참여해서 오랜 기간 시간과 정성이 들이며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인터뷰 정덕근/장승 조각가Q.장승 제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 장승은 하나 따질 것이 없이 중요하겠지만, 특히 장승의 얼굴 표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도 표정으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듯이 장승도 마찬가지로 얼굴 표정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관호/문학박사 Q. 장승얼굴의 특징? 특히 장승의 얼굴을 보면 나쁜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무사라든지 역사라든지 장군처럼 무섭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우리 시골 마을사람들의 마음씨가 그러듯이 장승의 얼굴을 보면 시골 할아버지의 푸근한 모습을 담고 있어 오히려 해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레이션 우리의 민속 문화는 오랜 기간 문화적 전통성을 이어오면서 민족문화의 기층을 이루어왔고 기층을 구성하는 민중들의 삶의 감정과 진정성을 표현해왔다. 장승 또한 장승이 지니고 있는 얼굴은 우리네 옛 사람들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장승은 조상들의 삶과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고, 아픔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신상이었다. 한 겨울 찬바람 견디며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서 수호신을 상징하는 장승 장승에는 우리문화의 기반이 되었을 조상들이 일구어 놓은 한조각 구름 같은 기층문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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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4
[한국문화100]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로 두 사람이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이다. 씨름이 진행되는 과정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재조명해본다. -----대본----- 제목 :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 인터뷰 이만기 / 인제대학교 교수 우리 민족에게 씨름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죠. 우리나라의 상고시대부터 5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씨름인데, 농민들이 추수나 단오나 큰 명절이 있을 때 마다 늘 우리 국민들과 백성들과 함께 한민족의 애환과 정과 사랑과 같은 문화를 담은 것이 씨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옛날에 농번기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해왔던 하나의 민속놀이 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어떤 스포츠 보다 정이 많이 가고 지역에 또는 각 마을에 서로 화합을 하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가 씨름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씨름. 씨름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기예의 하나로, 힘과 기술을 겨루어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이자 운동경기이다. 우리민족의 기상이 넘치는 씨름의 힘과 기술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이태현 / 용인대학교 교수 씨름은 두 사람이 샅바라는 도구를 잡고 무릎 위 신체의 일부를 모래에 먼저 닿게 하면 이기는 기술이(경기가) 되겠습니다. 모래 위, 청색 홍색의 샅바가 필요하고 심판이 필요합니다. 경기방식은 양선수가 출전하여 무릎을 꿇고 상대를 향해 마주 앉은 상태에서 다리샅바와 허리샅바를 잡은 다음 왼 무릎을 세워 일어서서 자세를 잡은 후 심판의 시작 신호와 함께 기술을 들어가며 먼저 넘어뜨리면 이기게 됩니다. 씨름의 기술은 대체로 허리기술 손기술 다리기술로 나눌 수 있는데, 손기술은 체구가 작고 빠른 선수들이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고 다리기술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선수들이 많이 사용합니다. 허리기술은 힘이 쌔고 몸이 굵은 선수들이 주로 많이 사용하는 기술인데 손기술의 대표기술로는 앞무릎, 뒷무릎, 오금당기기, 옆무릎 등이 있고 허리기술의 대표기술로는 들배지기, 잡치기, 뒤집기 기술이 있습니다. 다리기술의 대표적인 기술은 밭다리, 안다리, 덧걸이, 호미걸이 등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명쾌히 승부가 나고 어려운 룰보다 사람과 사람이 맞잡고 힘과 기술의 가장 원초적인 방법으로 넘어트리는 것이 씨름이 아닌가 합니다. 그 재미와 박진감이 더 배가 됩니다. 내레이션 최근 씨름은 비슷한 해외 운동들과의 교류를 통해 씨름의 세계화와 씨름인구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외국선수의 국내대회 참여는 씨름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터뷰 루차카나리아(스페인씨름)연맹회장 에르난데스, 루차카나리아 선수 로베르토 씨름과 루차카나리아(스페인씨름)는 다른 점이 별로 없고 기술 역시도 흡사하다. 참여하게 된 것이 영광이 많며 배웠고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교류를 하며 어떻게 발전될 것 같은지 한국 씨름과 계속 교류를 해 나가고 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서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내레이션 하지만 이제 씨름의 힘찬 움직임은 남성들만의 것은 아니다. 한국최초여자씨름단 구례군청 반달곰씨름단을 찾아가 씨름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여자씨름무궁화급(80kg이하) 우승자 / 이다현 그 안에서 생각을 하는 거죠. 내가 지금 들어가서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가 이렇게 잡았고,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어떻게 움직여야 이 사람이(상대가) 이렇게 들어왔을 때 내가 어떻게 빠져야 하고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시합을 나가면 긴장은 되는데 계속 생각했던 것을 생각하고 자기가 준비해왔던 기술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 것을 준비해서 어떤 상황에서 잘 맞게 쓰느냐 그런 것이라서, 그런 긴장감? 그리고 상대가 어떤 것(기술)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상대도 나름 준비를 해서 올 것이고 저도 준비를 해서 가는 것이니까 그 싸움인거죠.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여자씨름대나무급(75kg이하) 우승자 / 박원미 처음에 씨름할 때 앉아서 잡거든요. 앉아서 잡고 일어날 때부터 좀 안되겠다 싶으면 제가 아주 힘들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반대로)정말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을 때는 잡고 제가 편하게 일어나서 자세도 제 자세를 다 잡았을 때 ‘아 이번에는 내가 이길 수 있겠구나’ 라는 자신감이 붙어서 더 큰 기술을 하려는 욕심을 내죠. 인터뷰 반달곰씨름단 / 감독 / 김송환 씨름은 딱 보시면 특수한 상황입니다. 다른 것(운동)은 트랙에서 뛰거나 하는데 씨름은 특수하게 모래밭에서 하는 운동이라 기본적으로 하체는 발달이 되어 있어야 해요. 항상 여기서 씨름을 해야 하고 상대를 들어야 되니까 우선 친숙하게 씨름장에서 하체운동을 하고, 좋은 기술, 남자 선수들 밖에 하지 못하는 기술인데 여자선수들이 한다는 것을 선수적인 입장에서 봐주시고 응원이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레이션 순박하면서도 흥겹고, 누구나 할 수 있으며 다른 투기와는 달리 맨살과 맨살이 직접 닿아 서로의 체온이 오가는 씨름은, 정이 서로 통하는 우리 민족의 성향과 일맥상통하는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힘찬 움직임 씨름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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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한국인의 일생을 닮은, 소나무
대한민국의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소나무, 한반도 산림의 가장 넓은 분포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소나무가 한국인의 정서와 기질을 대변해주는 상징물임을 나타내는 내용 내레이션 흔히 말하길, 한국인은 소나무의 기질을 닮아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생이 소나무의 일생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음은 물론 그 정신이 소나무의 모습과 비슷함을 느끼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역경 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지킨 우리와 절벽의 틈새에서도 성장을 하는 소나무의 모습이 닮았기 때문이다. - 탄생 예전부터 우리들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 솔가지를 매단 금줄을 쳐서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걸 막았고 또한 축복의 의미로도 쓰였다. 이렇듯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소나무와 인연을 맺는다. - 성장 소나무를 자연 상태로 방치해 두면 성장과정에서 여러 가지 장해가 생겨 모양이 틀려지고 그 기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가지치기를 해주고 모양을 유지시키면서 성장을 조절하는 과정은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 백년가약 소나무 꽃이 피는 5월쯤에 노란 송화 가루가 날리기 시작할 때 암꽃이 개화하는데, 이 때 송화가 암꽃과 만나 솔방울이 되지만 소나무의 수분은 바람에 의해 많은 부분을 우연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기와 풍향, 풍속, 습도 등이 모두 적당하지 않으면 수꽃의 꽃가루는 암꽃과 만날 수 없다. 우리의 인생 또한 자신의 인연을 만나기까지는 엄청난 확률의 우연히 필요하듯이 소나무 역시 이런 우연의 인연을 바라며, 바람에 의지한다. - 후손 소나무가 솔방울이라는 값진 열매를 얻는다 하여도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고, 이것은 후손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 죽음 죽어가는 소나무의 껍질을 보고 있으면 노인의 손등을 보는 듯 갈라진 껍질 사이로 인고의 세월을 느낄 수 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소나무와 인연을 맺고 소나무가 주자재로 사용했던 한옥에 살다 생을 마친 뒤에도 소나무로 짠 관에 묻혀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마지막 순간 까지도 소나무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 이처럼 소나무는 인생의 출발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나무라고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좋아하는 나무이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하여 한반도의 1,000여 종류의 나무 중 유일하게 우리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상징으로 대변되고 있다. 농경사회와 현재 지식정보사회에 이르기 까지 지난 2,000년간의 한국인의 기상을 나타내는 소나무. 소나무는 빈부격차, 남녀노소를 떠나 우리 민족을 통합하는 대표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늘 사랑 받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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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상,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한국인의 미래 상을 알 수 있는 상징이므로 오늘날의 반가사유상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문화재적 가치와 함께 미적 가치를 살펴보자. --대본--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나레이션 한 해 600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는 이곳에서 신라시대 유물 공개됬다. 그 중 하나! 천년의 머금은 미소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이다. 한 다리를 다른 쪽 무릎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모습 이러한 자세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며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5mm도 되지 않는 청동의 두께..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생동감을 극치를 보여주는 얼굴 반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하여 ’반가’, 한 쪽 손으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 하여 ’사유’, 더해서 이를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역사 ! 당당하면서도 곧고 늘씬한 모습 화려한 보관과 우아한 곡선미 신비로운 고졸한 미소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상이다 인터뷰 신소연 / 국립중앙박물관 Q. 국보 제 78호 반가사유의 특징? 78호 반가사유상 같은 경우에는 화려한 보관과 몸에는 장식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보관에는 해와 달이 있기 때문에 일월식 보관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으며 차분하면서도 장식구가 있으므로 화려한 느낌을 주는 보살상입니다. 자막 국보 78호와 국보 83호의 반가사유상 출토지, 발굴연도, 발굴인 알 수 없음. 한가지 정확한 사실 삼국시대의 대표적 불상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나레이션 같은 듯 허나 같지 아니하고 다른 듯 허나 다르지 아니한다. 반가사유상은 치유의 상징이다. 자막 천년의 미소 반가사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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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제주의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소재선정이유 : 제주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조물. 제주의 장승이라고 불리는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에 어떤 역할과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모습을 표현 한국문화100 돌하르방 편- 대본 ? 자막 : 천혜의 아름다운 땅, 제주 세계 7대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는 세계적인 휴양 관광지로 사랑 받고 있다. 제주 하면 떠오르는 상징물 중 하나인 돌하르방에 대해 알아보자. ? 인터뷰 : 송시후 / 경기도 부천시 질문 ; 돌하르방 얼굴보니까 어때요? 답 : 귀여워요. ? 송관철 / 경기도 부천시 돌하르방 보면 코가 커서 묵직한 느낌이 듭니다. 힘이 센 할아버지 같은 느낌! ? 문성원 / 서울특별시 아주머니들이 (돌하르방)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어요. ? 김혜지 / 경기도 부천시 머리랑 몸이 일대일 비율이여서 되게 귀엽게 생긴거 같아요. ? 홍은혜 / 서울특별시 제주도에 세워져 있는 것? 특산품? 특산물?? ? 자막 :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1971년 돌하르방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 ? 자막 : 제주사의 기록이 담긴 ‘탐라기년’에 조선시대 1754년(영조 30년) 옹중석(돌하르방)이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에 의해 성 앞에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음. ? 내레이션 : 제주의 돌하르방, 아이들의 입에서 할아버지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1971년 제주 민속자료 2호로 지정되면서 제주도 문화재 위원들이 부르기 쉽고 관광의 활성화를 위해 돌하르방이라 명명 하게 되었다고 한다. ? 문헌에 나오는 원래의 명칭은 옹중석, 제주사의 기록을 담고 있는 '탐라기년'의 내용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영조 30년(1754년), 제주도를 관장하는 김몽규 목사가 옹중석을 성 앞에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 실제 민간에서 불렸던 이름은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제주의 돌하르방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 자막 : 돌하르방은 민간에서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두릉머리 등으로 불리워짐. ? 인터뷰 : - 제주문화연구소 김유정 소장 돌하르방의 기능은 읍성 수호에요. 성 밖에서 성 안에 들어오는 문앞에 세웠기 때문에, 모든 밖에서 들어오는 왜구나 전염병이나 기타 안좋은 기운들을 막기위한 하나의 수호신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성 앞에 이렇게 마주 보게 삼문(동서남문)에 세웠죠. 영조 30년 1754년에 김몽규(金夢奎)목사가 (제주도에)와서 만들어 세웠다고 했기 때문에, 그 때 김몽규 목사는 육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여기(제주도)에 발령 받아 와서 육지에서 본 것을 직접 석공을 불러다가 설명을 해서 (돌하르방을)만들었기 때문에 사진이 없던 시대에 말로만 들어서 만들다 보니까 3개의 지역(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돌하르방이 다 다릅니다. 제주목은 눈이 크고, 정의현은 키가 중간형이고, 대정현의 돌하르방은 너무 작아서 아주 코믹할 정도로 이것이 돌하르방일까란 생각이 들정도로 형태가 다른 모습이 나타납니다. ? 자막: 돌하르방은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과 같은 의미를 지님. ? 자막: 제주목 24기, 정의현 12기, 대정현 12기 각 지역 동서남 3곳의 성문앞에 총 48기가 배치 되어 있었음. ? 내레이션 : 육지의 장승, 왕릉의 문무인석, 제주도의 자생적인 석상들이 만나서 세워진 돌하르방. 제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 세 곳의 마을에 총 48기가 동서남문 성문 앞 입구에 세워져 성문을 지켰던 성물이었다. 마을의 성문을 드나드는 제주사람들을 늘 지켜봐주었고, 언제어디서나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제주인의 삶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 인터뷰 : - 북촌돌하르방공원 김남흥 원장 돌하르방의 태생적인 배경을 뒤로 해서 가만히 살펴보면 당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 받기 위해서 세웠던 (돌하르방)석상이거든요. 제가 돌하르방을 조각하고 이 석상을 공원안에 전시를 하는데, 자연발상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뭐였냐면 처음 돌하르방 하나를 재연하는데 드는 소요일수를 쟤 봤어요. 혼자 힘으로 조각을 했을때, 45일 걸려요. 그럼 당시에 48기가 (동시에)작업이 되었다면 한 두사람 가지고 절대 될 일이 아니네. 돌하르방을 작업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조된 의견 아래서 적극적인 협조 없이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그러니까 돌하르방을 만드는 자체가 좋은 의미가 담겨져 있고, 그 뜻에 부합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축제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던 작업이었구나. 그러다 보니까 그들에겐 늘 희망의 대상(돌하르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 자막 : 제주도의 의미가 담겨 있는 문화적 아이콘, 제주도민에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를 지켰고, 지키고 있고, 앞으로 지켜나갈 수호신이다. ? 내레이션 : 제주의 전통의 의미를 담은 문화적 아이콘, 돌하르방 과거 제주는 벼농사, 작물 수확이 어려웠던 변방지 이자 유배지 였다. 사방이 바다로 막힌 제주 땅을 벗어나고픈 제주도민의 불안한 심리를 위로 받고자 만들어진 희망의 석상. 돌하르방은 제주도민의 희망이었고, 앞으로도 희망을 가져다 줄 아름다운 제주의 수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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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100] '활의 나라' 대한민국
’활의 나라’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며 활에 담겨 있는 우리 민족 정신을알아보자. --대본-- 나레이션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활을 잘 다루는 민족으로 우리민족을 가리켜 동이라고 불렸다. 활은 강하지만 유연한 무기였으며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였다. 무와, 예를 함께 갖춘 무기, 활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터뷰 정진명 / ‘활 이야기’ 저자 활쏘기를 이야기를 하는 건데 활은 순 우리말입니다. 화라지, 회초리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가느다란 나무를 뜻합니다. 가느다란 나무를 뜻으로, 탄력을 내기 위해선 가느다란 나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옛 부터 가느다란 나무에 끈을 묶어 화살을 쏘았기 때문에 이름을 ‘활’이라고 하였고 동작을 활쏘기라고 했습니다. 나레이션 육군박물관 이곳은 군사전문박물관으로써 각종 우리나라의 무기가 전시되어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활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활인 각궁을 비롯해 다양한 우리 전통 활과 화살을 볼 수 있다. 인터뷰 김성혜 / 육군박물관 부관장 활은 자신을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강력한 적에 향해서 멀리서 쏘는 무기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왜적이 침입했을 때 칼보다는 멀리서 쫒아버리기 위해 활이 만들어 졌습니다. 우리나라 군사에게 항상 갖추는 필수품이 칼도 있지만 각궁 이였습니다. 각궁에는 소소, 소지자의 이름, 성명을 쓰여 있는데 특히 강도장 윤동신이 사용했던 이 활은 병인양요시기에 프랑스군들이 탈취해서 당시 뺏겼다가 나중에 다시 찾아온 이 활은 역사 깊은 활입니다. 나레이션 무형문화재 주장응 선생은 우리 전통 각궁을 제작하면서 활에 담겨 있는 우리 고유의 정신을 지키고 있다. 우리 전통 각궁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터뷰 주장응/ 무형문화재 궁인 Q. 각궁의 제작기간은? 4개월 걸립니다. 봄부터 재료 준비를 시작으로 1년 정도 걸립니다.10월부터 2월 말까지 4개월에 걸쳐 제작과정이 걸립니다. 나레이션 우리 전통 활 각궁은 다양한 재료 사용으로 오랜 시간의 제작 기간이 필요하다. 각궁은 활의 탄력성을 높여주는 물소뿔과 접착제로 사용되는 민어부레, 뽕나무와 참나무, 쇠심줄 마지막으로 대나무까지 많은 재료가 사용되어지고 있다. 궁장의 세심한 제작 과정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재료의 사용으로 각궁은 긴 사거리와 탄성을 지니게 된다. 이로써 우리 전통 활 각궁은 복합궁의 형태로 완성되어 진다. 나레이션 서울시에 위치한 국궁장, 공항정 옛 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 활쏘기 국궁이 현대에는 스포츠 수단으로 이용 되고 있다. 국궁은 단순한 스포츠에서 벗어나 활의 정신을 계승하여 심신단련과 예를 지키는 운동이기도 하다. 인터뷰 주비/ 대한궁도 협회 고문 Q. 활쏘기에 있어 규칙이 있나요? 우리나라는 예부터 선비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이라서 국궁인들이 지켜야 할 9가지 개훈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 예의 엄수라고 있는데 사대에 섰을 때 옆에 분들에게 활을 배웁니다. 인사를 하고 활을 쏘고 서로 예의를 갖추고 동진동퇴를 하고 있습니다. 나레이션 작지만 그 속에 강인함이 담겨있는 우리 전통활 각궁 활을 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마음을 바로 잡는다는 과정의 연속이다 즉 이것은, 우리 전통 활쏘기에 담겨있는 우리 선비들의 가르침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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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한국문화100]의지와 슬기가 배어있는 아름다운 민중문화 제주도 돌담
의지와 슬기가 배어있는 아름다운 민중문화 제주도 돌담 제주도의 멋진 돌담에는 애환과 역사가 있다. 그 돌담에 관한 이야기. ----대본---- 자막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섬, 제주도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하여 삼다도로 불리는 곳 화산 폭발로 생겨난 현무암 섬, 제주 거친돌과 황무지가 많은 척박한 환경 그 속에서도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제주인의 애환 그 삶의 의지와 슬기에 대한 이야기, 제주도 돌담 돌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게 제주인의 삶 그 많은 돌과 바람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제주인에게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 그 옛날 제주도 돌담의 모습 돌담을 쌓기 시작한 이유 첫째, 방목중인 말과 소가 무단으로 들어와 곡식을 먹는 것을 방지 둘째, 거센 바람에 집과 밭을 보호 하기위한 방편 셋째, 사유재산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한 용도 넷째 비가 많이오는 제주에는 잘썩는 나무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 적당 그리고, 오늘날은 제주도 전역의 아름다운 조경을 담담하는 역할까지 인터뷰 Q.제주도 돌담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주변의 동그란 돌들을 아무렇게나 쌓아가지도 높이를 올리는데 사실은 아무렇게나 쌓은게 아니라 그 돌의 귀와 귀를 맞물려서 무너지지 않도록 조여주기 때문에 강풍이 불어도 견딜 수 있는 장력이 생기는 것이죠. 그래서 돌담이 과학적이고 큰 바람에도 강하게 견딜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습니다. 내레이션 아름다운 제주의 환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돌담. 돌담속에 스며있는 제주민들의 혼과 역사 제주도 돌담은 민중의 의지와 슬기가 담겨있는 아름다운 민족문화다. 촬여엥 도움을 주신 분들 제주 문화 연구소장 김유정 문화체욱관광부 KCISA 한국문화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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