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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쉬레/ 진형준
인도의 수많은 인종을 묶어 오늘날까지 하나의 영혼 속에 살아 숨 쉬게 만든 것은 3000년 전 크리슈나가 창시한 힌두교였다. 크리슈나 이외에도 민족의 종교를 창조한 인물로는 라마, 헤르메스, 조로아스터, 모세, 오르페우스, 모하메드 등이 있다. 베다 시인들은 후대의 어떤 시인들도 넘보기 힘든 위대한 노래를 남겼다. 하지만 시와 예술만이 아니라 문명에 속하는 거의 모든 지혜와 원리가 종교의 품안에서 나왔다. 8000년 전부터 불과 몇 세기 전까지 인류의 정신적 진보는 승려와 사제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영적 선지자들의 종교적 체험을 소설적인 필체로 그려내는 대중 교양서이다. 120년 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아직도 문장들이 젊게 살아 있어 고전적인 저서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하나의 원리로 수렴하고 모든 선지자들이 서로의 가르침을 확증하는 관계에 있다는 관점에서 종교의 여명기에서 예수까지의 역사를 서술한다. 그것은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진리를 찾는 과정이고, 종교를 통해 인류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공통된 정신적 흐름을 구하는 과정이다. 인류 전체, 따라서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신비주의이다. 여기서 신비주의는 영혼이 우주의 비밀을 여는 열쇠이자 초월적인 세계의 일부라는 믿음을 말한다. 이런 믿음을 비웃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지만, 이른바 웰빙에 대한 관심은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영혼에 대한 관심은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완결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수명이 길어질수록 긴 수명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선자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은 영토로는 전 중국의 63% 이상을 차지하되 인구수로는 9%가 채 되지 않는 55개 소수민족들의 신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크게 귀주성, 운남성, 티베트, 신장, 만주, 광서성 여섯 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노래를 통해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담겨 있는 신화의 원형을 제시한다. 신화 탐구서지만 그 어느 여행서보다 흥미진진한 중국 오지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저자는 2007년에 출간한 『만들어진 민족주의-황제신화』에서 중국이 ‘중화문명탐원공정’ 등으로 신화였던 황제를 실존인물로 만드는 이유가 중국 내 소수민족은 물론 한국, 일본 등의 민족까지 황제의 자손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은 한족(漢族)들이 만드는 이런 정치적인 지배이념에 대해 소수민족들의 오래된 신화로 대답하는 듯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소수민족이지만 그들의 노래와 신화 속에는 유쾌함과 결코 좌절하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고 말한다. 자연을 정복하거나 대립하는 대신 자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것이 소수민족들의 철학임도 전해주고 있다. 사마천은 『사기(史記)』의 시작을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의 싸움으로 서술했다. 패배한 치우족의 한 무리는 동북으로 가서 동이족이 되었고, 다른 한 무리는 남방으로 가서 묘족(苗族:마오족)이 되었다. 명나라가 자신들의 지배에 복속하는 숙묘(熟苗)와 그렇지 않은 생묘(生苗)를 분할 통치하기 위해 귀주성에 남방장성을 쌓은 것은 고대 진나라가 동이족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은 목적과 같다. 명사수가 무서워서 숨어 버린 해와 달을 부르기 위해 수탉을 보냈더니 드디어 해와 달이 나왔다는 묘족의 신화는 왠지 우리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생활 풍습은 달랐을지 몰라도 소수민족들의 신화와 생활모습은 인간의 원초적인 상상력과 생명력을 속삭여준다. 오래지 않아 사라질지도 모를 소수민족들의 노래와 신화에는 지금은 원형을 찾기 어려운 옛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남수영
그동안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는 기록물로 보통 인식되는 것이 상례였다. 어떤 지역의 삶과 사람들, 어떤 사건의 객관적 사실들, 어떤 일이나 사고, 혹은 전쟁이 일어난 현장들을 생생하게 있는 그대로 담는 다큐멘터리는 이미 기억 속에서 사라지려던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거나, 가보지 않은 어느 곳의 실상을 전달하는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아왔다. 특히 2차 대전 당시를 비롯한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포탄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그 기록을 담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을까를 늘 상기시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는 팀을 매우 존경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다큐멘터리의 존재 가치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어 흥미롭다.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인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 다큐멘터리라는 과거의 시각과 달리 필자는 다큐멘터리 역시 이미지의 한 형태로서 그것은 사건과 우리의 현재 및 미래를 잇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내는 무엇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예를 들어 21세기 초 가장 충격적이었던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사건이 있었다. 우리가 거듭 반복해서 보게 된 그 사건 현장 다큐멘터리는 사건 배후에 있는, 폭력으로밖에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는 소외집단의 만행을 빈곤하게 반복한다. 상기해 보자면 이것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붕괴의 박제된 이미지였다. 하지만 필자는 그 다큐멘터리 영상의 이미지는 일어난 사실을 증명하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 인식 안에서는 적어도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이를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미 창출로 연결하는 창조적 반복의 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식이 태어나는 이 과정은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 순응하지 않는 우리의 창조적 상상과 연결되어 우리의 미래를 새롭게 연다. 중요한 다큐멘터리 몇 편을 이런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한 마디로 신선하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채호기
채호기 시인은 이미 ‘수련’ 연작들을 통해 이미 탐미적인 한 세계를 이루어낸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언어 자체의 의미를 추구하며 구애자처럼 시를 쓰는 시인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구애는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것이어서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하지만 그럴수록 그 세계는 영원히 부재중일거라는 텅 빈 고독을 동반한다. 맑은 물 아래 또렷한 조약돌들/ 당신이 보낸 편지의 글자들 같네./ 강물의 흐름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편안히 가라앉은 조약돌들/소곤소곤 속삭이듯 가지런한 글자들의 평온함 /그러나 그중 몇 개의 조약돌은/물 밖으로 솟아올라 흐름을 거스르네./세찬 리듬을 끊으며 내뱉는 글자 몇 개 /그게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겠죠 - 「편지」 중에서 - 위에 인용한 시와 같이 시집을 열면 우리가 어느 결에 잃어버린 말과 열정과 사랑의 숨소리가 내면은 격렬하나 표면은 나직한 물살처럼 흘러가고 있다. 이 시집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강물처럼 여겨지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메시지가 아니라 순수하게 언어 자체만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당신, 보이지 않는 당신, 나만 아는 당신, 속으로 깊숙이 전진해 들어가는 시편들을 따라가는 일은 사랑한다, 라는 말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사랑한다 당신을/ 당신을 껴안는다/ 당신은 없다/ 백지위에/ 당신/이 남았다./당신/을 떼어내/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쓰다듬었다/ 동글동글하고 말랑말랑한 당신 - 「당신」 중에서 - 이 불타오르는 여름날, 이 아름다운 시의 에로스를 수혈 받을 수 있다면 거칠고 포악한 것들을 동글동글하게 바꿔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바위덩어리처럼 견고하게 굳어진 이 세계를 너무 단순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이 아름답고 간절한 구애가 그 견고한 세계의 어느 한 귀퉁이에 이 열렬한 깊은 숨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시편들이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는 시집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권정생 글, 허구 그림
용구 삼촌은 서른 살이 훌쩍 넘었지만 지능이 많이 모자란다. 자신의 이름조차 똑바로 알지 못한다. 모든 일에 서툴고 마냥 어린애 같은 그런 용구 삼촌이 어느 날부터 집의 누렁소에게 풀을 뜯기려 못골 산엘 오르내리게 된다. 엄마 아빠는 물론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까지도 그 일을 기특하게 생각한다. 그런 어느 날, 용구 삼촌은 누렁소에게 풀을 뜯기려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곧 오겠지 기다리는데 누렁소가 혼자 돌아오자 애가 탄 엄마 아빠는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온 산을 뒤진다. 못골 산자락의 저수지 물이 푸르게 번득이는 것을 보며 나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두려움을 떨어내지 못하는데 마을 사람들의 찾았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와 내가 달려갔을 때 용구 삼촌은 회갈색 산토끼 한 마리를 가슴에 품고 산비탈에 누워 너무나도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들어 있다. 삼촌을 찾은 나는 안도감과 함께 까닭 모를 슬픔으로 흐느껴 운다. 사람들 기척에 놀란 회갈색 작은 토끼는 공이 굴러 나오듯 삼촌의 품을 벗어나는데 삼촌은 여전히 곤한 잠에 빠져 있다. 새처럼 깨끗하고 착한 마음씨의 용구 삼촌은 지능이 떨어진 바보의 모습이 아닌 자연을 닮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몇 번을 되풀이 읽고 싶게 하는 진하고도 아름다운 감동의 여운을 남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백승선, 변혜정
유럽 구석구석을 참 많이 다녀보았지만 크로아티아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저 크로아티아는 옛 유고 연방의 한 나라였고 축구를 잘하는 작은 나라 정도가 솔직히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최근 여행 좋아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크로아티아 가 보았느냐?”는 질문을 듣는 일이 조금씩 잦아지고 있었다. 이 책, 참으로 잘 만들었다. 한 마디로 크로아티아 같은 책이다. 일반 단행본보다는 작고 문고본보다는 조금 커서 어른 남자의 한 손에 쏙 들어온다. 표지의 스케치풍 일러스트는 아드리아 해 남빛 바다와 크로아티아 특유의 주황색 지붕을 은은하게 잘 담았다. 작지만 보석 같은 나라 크로아티아를 쏙 빼닮은 책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고 그런 여행가이드였다면 교양서 추천 목록에 애당초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여행서보다는 교양서로 분류케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교만하지 않은 시선으로 찍어낸 사진들이다. 저자들은 남쪽의 두브로브니크에서 출발해 플리트비체, 스플리트를 거쳐 수도인 자그레브를 소개하는 것으로 여행을 마친다. 그만큼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네 도시의 구석구석을 마치 눈앞에서 보듯 펼쳐낸다. 사진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한 사람은 찍고 한 사람은 썼다. 사진이 나오고 그것을 재생한 일러스트가 나오고 듬성듬성 글이 나온다. 때로는 에세이, 때로는 기행문, 때로는 시다. 사진이 글을 누르지 않고 글이 사진을 더럽히지 않는다.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움 못지않게 책의 아름다움을 새삼 일깨워준 책이다. 아름다움도 더위를 쫓아준다. 아름다움에 빠지면 더위를 잊기 때문일까? 이 여름, 진심으로 일독을 권한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위르겐 타우츠/ 유영미
‘잉잉’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곤충 꿀벌. 그런데 저자는 꿀벌을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꿀벌 각각은 개별 생명체이지만 군락 전체가 하나의 개체처럼 행동한다는 초개체 개념(꿀벌 군락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이뤄진 거대한 생명체)을 도입하면서 말이다. 꿀벌 초개체를 포유동물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낮은 번식률, 젖과 유사한 왕유 로열제리, 유충을 안전하게 양육하는 벌집이라는 사회적 자궁, 유충의 체온을 섭씨 35도로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 포유동물의 인지능력에 비견되는 꿀벌의 집단 지성이다. 이 책에서는 초개체 꿀벌의 탄생 배경, 여왕벌을 중심으로 한 꿀벌의 생태학, 꿀벌의 시각, 후각, 공간지각, 의사소통 능력,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짝짓기, 벌집의 구조와 기능, 유충의 미래 결정하는 부화의 지혜 등 꿀벌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수집벌, 유모벌, 난방벌, 장례벌, 정찰벌, 여왕벌, 시녀벌이 꿀벌 군락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보면 책 제목처럼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꿀벌이 자외선을 보게 된 진화적 배경, 여왕벌이 짝짓기 비행에서 받아들인 정자를 몇 년 동안 신선하게 유지하는 현상, 꿀벌 유충 성장 프로그램을 좌우하는 육탄당 함유량 등 연구 결과도 신선하고 풍부한 사진자료도 흥미롭다. 아인슈타인은 꿀벌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인간은 그로부터 4년 정도밖에 생존할 수 없을 거라고 경고했다. 그런데 최근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깨끗한 환경의 지표인 꿀벌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 시점에 꿀벌의 은밀한 생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 책장을 덮으면서 꿀벌을 돕는 길이 우리 스스로를 돕는 길이란 저자의 에필로그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폴 크루그먼/ 안진환
경제이론의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고용과 물가를 어느 정도 안정된 수준에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기 변동’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빼버려도 될 정도는 아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어느 경제든 때때로 찾아오는 고용과 물가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최근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공황은 경기변동을 통제하는 우리 능력이 완벽하지 못함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책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경제위기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 크루그먼은 노벨상을 수상할 정도로 학문적 업적이 뛰어날 뿐 아니라, 경제평론가로도 그 명성이 높다. 그의 뉴욕타임즈 칼럼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날카로운 혜안과 치밀한 논리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 책에서도 이와 같은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세계의 경제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불과 몇 년 전의 일이 오랜 과거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2009년 대폭 개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이 책은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현실감을 보인다. 아직도 그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위기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명확하게 분석해 놓은 경우를 다른 데서 보기 힘들다. 대중을 위해서 쓴 책인 만큼, 경제학 전문서적에서 일반 독자들이 느낄지 모르는 절망감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코 심심풀이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경제논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노력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노력한 만큼 얻을 것도 많은 책이라는 믿음을 갖고 정독해 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피에르 클로소프스키/ 조성천
니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었다. 그런 니체의 위상은 어디에 근거하는 것일까? 그것은 ‘지식의 철학’을 걷어치우고 ‘지혜의 철학’을 세우려한 데 있을 것이다. 니체는 근대적 의미의 철학자라기보다 고대의 현자에 가깝다. 수없이 많은 지식을 쌓는다고 해서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느 한 분야의 전문적 소양을 쌓는다 해도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지식은 넘치고 책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지지만 지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밀스런 단순함이 사라질 때 지혜도 사라진다. 니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게 되어 어리석고 병약해지는 시점에 등장했다. 니체가 가르친 것은 서양이 추구한 앎의 의미이자 서양이 받들던 가치의 가치였다. 그런 가르침은 새로운 미래, 새로운 역사에 대한 약속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의 앎, 이제까지의 가치, 이제까지의 습관을 모두 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계획하자, 이것이 니체의 외침이다. 이런 니체의 외침이 20세기 후반기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하이데거의 니체 강의, 들뢰즈의 니체론 등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니체 사상을 현대 사상사 안에 폭발시킨 또 하나의 도화선이 있는데, 그것이 이번에 번역된 클로소프스키의 니체론이다. 철학자가 아닌 소설가, 평론가, 번역가, 영화감독, 화가인 클로소프스키. 그는 바타유, 푸코, 들뢰즈 등과 같은 프랑스 니체주의자들의 구심점이었다. 이 책은 두통과 광기에 시달리는 니체의 인간적인 모습과 영원회귀라는 숭고한 계시 아래 현자의 길을 가는 니체의 모습을 짜임새 있게 엮어가고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조셉 커민스/ 송설희 외
『삼국지연의』는 촉(蜀)의 제갈량에게 패한 오(吳)의 주유가 “하늘은 왜 나를 낳고 제갈량을 낳았단 말인가(既生瑜,何生亮)?”라고 한탄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촉의 유방을 정통으로 삼으려고 했던 나관중의 창작으로서 진수의 『삼국지』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지만 역사상의 라이벌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는 유명한 문구이다. 『라이벌의 역사』는 라이벌들의 갈등과 대결을 통해 그 시대를 생생하게 보게 한다. 장개석과 모택동, 그리고 프랑스의 드 카스트리 장군과 싸운 베트남의 보 구옌 지압 장군을 제외하면 모두 서양인들이지만 한 시대를 주도한 라이벌의 대결은 양의 동서를 뛰어넘는 흥미를 준다. 서로 다른 캐릭터를 가진 라이벌이 동시대를 끌고 가기 위해 경쟁했다는 자체가 흥미롭다. 미국에서는 재벌 집안 출신의 존 F. 케네디가 민주당을 대표하고 채소가게 집안 출신의 닉슨이 공화당을 대표한 것처럼 모순되어 보이는 현상도 적지 않다. 가난한 소금 장수 출신의 장개석이 재벌들을 대변하고 중농 지주 출신의 모택동이 가난한 농민들 대변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는 때로 출신 계급과 지향하는 바가 달랐던 사람들이 주도하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한국인들에게 흥미로운 라이벌은 6·25전쟁의 두 주역이었던 해리 S. 트루먼과 더글라스 맥아더일 것이다. 1951년 4월 11일 새벽 트루먼이 중국과 전면전을 주장하던 맥아더를 극동사령관직에서 해임하지 않았다면 한반도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 책은 한니발과 스키피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처럼 유명한 인물들도 다수 등장하지만 멕시코 혁명의 주역인 프란시스코 판초 비야와 에밀리아노 사파타처럼 잘 모르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처럼 여왕 라이벌도 등장한다. 한 마디로 라이벌의 대결이 만든 세계사 산책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