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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마 사에/ 박소영
“1997년 봄, 회사 근처 선로 옆에 하늘색 쓰레기 봉투가 버려져 있었다. 봉투에는 ‘죽은 개’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고, 빨간 목걸이를 한 하얀 개가 죽어 있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책은 이런 물음에서 출발해 동물의 존엄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출발은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한 일본이다. 무책임하게 버려져 살처분 운명을 맞는 동물은 1년에 개 16만 4,209마리, 고양이 25만 5,628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그러나 개인적인 슬픔과 안타까움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유기동물에 관한 사진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곳곳에서 전시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곳에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발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동물의 생명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책은 사진전을 옮겨 놓은 형식이다.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생명을 다한 동물의 최후 초상이 가득하다. 어두운 철창 구석에서 공포에 떨거나, 목을 빼고 주인을 기다리거나, 자포자기한 반려동물들의 모습이다. 눈에 띄는 것은 이들의 목에 걸린 목걸이. 한때 가족에게 사랑 받았던 증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이 들어 손이 많이 간다고, 치매 증세를 보인다고, 임신했다고, 덩치가 너무 커졌다고, 이사를 간다고 친구를 버렸다. 우리는 일본보다 나은가, 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한국 상황을 부록에 실었다. 통계에 따르면 다섯 가구에 한 가구 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니 반려산업 시장규모는 1조원 대에 이른다. 2008년에는 유기동물 7만 8,000마리가 살처분(안락사)됐다고 한다. 실제로는 공식 집계의 몇 배에 이를 것이다. 잔뜩 예뻐만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버리거나 반려동물에 대한 책임은 유보한 채 귀여운 장난감 다루듯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던지는 교훈은 묵직하다. “반려동물에게 인간과의 우정과 신뢰는 삶의 모든 것이다.” ‘동물전문 1인 출판사’의 길을 걷는 책공장더불어에 대한 응원을 추천사에 담는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마이클 가자니가/ 박인균
“인간의 뇌는 동물과 어떻게 다를까, 뇌가 크면 생각도 클까? 인간 사회와 침팬지 사회에서 볼 수 있다는 살해 본능과 공격성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혐오감이라는 감정, 죄책감, 수치심 등은 인간만이 갖는 특성일까? 뇌가 손상되면 불쾌감을 못 느낄 수도 있을까? 동물도 행동과 감정을 모방할까? 예술적 침팬지는? 특히 연필이나 물감을 주면 그림을 그리는 침팬지에 대하여, 고고학적 유물에서 조상들의 예술적 노력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 아름다움의 생물학적 조건은 무엇일까? 음악은 사고력에 영향을 줄까? 음악가의 수학적 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날까?” 이 책은 이러한 호기심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하여 뇌 이론과 실험을 통한 예를 들어 과학적 근거의 답을 제시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 하는 문제들을 구체적이면서도 다양하고도 흥미로운 실험을 통하여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비단 과학자의 입장뿐 아니라 비교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심지어는 예술적 관점으로까지 방대한 접근으로 인간이 갖는 고유한 특성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 뇌신경 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이고 2세대 인지 과학 분야의 개척자이며 뇌의 사회적, 법적, 철학적 의미까지도 연구하는 신경윤리학자이며 세계적 뇌과학자인 저자 마이클 가자니가가 소개하는 뇌과학 입문서이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인 “인간다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인간일까?”에 관한 호기심을 뇌의 다양한 관점을 통한 실험 이야기를 통하여 딱딱한 주제일수 있는 뇌와 관련된 연구를 재미있는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주고 있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토드 부크홀츠/ 이성훈
경제학 서적 중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만큼 오랫동안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차지해 온 책은 극히 드물다. 경제학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무슨 책을 읽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바로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답이 자주 나온다. 이 책에서 보여준 부크홀츠의 글 솜씨는 정말이지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 책의 속편 격인 『토드 부크홀츠의 유쾌한 경제학』에서도 그의 번뜩이는 재치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경제학이 ‘딱딱하고 질긴데다가 맛도 없는 불고기’에 비유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편견을 씻어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다. “경제학,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프롤로그의 제목이 그런 의도를 잘 말해 주고 있다. 부크홀츠의 손을 거치면 어렵고 생경한 경제학 개념이 이해하기 쉽고 친숙한 사례로 바뀐다. 사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경제학 개념들 중에는 경제학 원론 정도는 배워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사례 중심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기 때문에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읽기에 거의 부담이 없다. 요즈음 어떤 수식어 뒤에 경제학이란 말을 붙인 제목의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만큼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볼 수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이 수많은 책들 중에서 스스로 빛을 발할 만큼 독특하고 뛰어나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갖고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성형
이 책은 1992년 외채 위기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의 명암과 최근의 중도좌파 정부에 의한 신자유주의 타개 경험을 다루고 있다. 이 지역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도입하면서 실업의 증가, 고용의 불안, 사회적 양극화 등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경제적 시련과 좌절을 겪었다. 이 책의 제목 ‘대홍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인해 파괴된 삶의 터전을 상징하는 단어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실패로 인해 최근 이 지역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등 무려 10개 국 이상에서 중도좌파 정부 도미노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저자는 자유무역의 강화, 공기업의 민영화 등에 대한 사례 분석을 통해 그 폐해를 낱낱이 밝히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종속, 농촌사회의 붕괴, 사회 불안의 가중, 전기요금의 상승과 잦은 정전과 단전조치 등. 뒤이어 출범한 중도 좌파 정부들은 공공성의 재확립, 실용주의 경제 운용을 통해서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고, 남미 경제 블록화를 추진하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오모리 쇼조/ 이경덕
오랫동안 철학은 우리의 삶과 괴리된 채로 논의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다. 철학은 세계의 본질, 우주의 근원, 존재의 의미를 추상적 개념을 통해서 사유하는 학문이므로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와는 전적으로 단절될 수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철학이 원래 삶의 문제에 근원적 해결을 원했던 만큼이나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다. 저자는 세계와 나, 세계와 의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시도한다. 그는 나와 세계와의 2원론적 분리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세계와의 대결구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원론적 세계관 속에서는 ”이 세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의심한 데카르트적 회의주의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당장 먹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짜일까 아니면 모습에 불과한가? 망원경을 통해서 보는 '상'은 육안으로 보는 '상'과 다른 것인가? 망원경이 렌즈를 통해서 사물의 모습을 왜곡되게 보여주는 것이라면, 육안도 타고 태어난 렌즈일 뿐이다. 저자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이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대 과학적 탐구를 통해서 점검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와 나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보는 1원론자이다. “나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자 하는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책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동선 외
아마도 궁궐만큼 식민지 시대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장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국보 제249호는 경복궁 동쪽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이다. 순조 30년(1830) 이전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본궁인 경복궁을 제외했음에도 얼마나 많은 전각이 있는지 그 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다.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은 이토록 수많았던 궁궐 전각들이 식민지 시대를 거치는 100년 동안 어디로 사라져갔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19세기 말 북궐도형(北闕圖形)에 그려진 경복궁 내 전각 수는 모두 509동이었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남은 전각의 수는 불과 40동에 불과했다. 그 많은 전각들이 어떻게 사라졌으며 어디로 갔는지 체계적 연구가 부족한 것은 의아한 일이다.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든 것은 일제가 조선의 궁궐을 어떻게 대접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심지어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과 임금의 침소였던 회상전이 남산의 일본계 사찰 조계사(曹谿寺)로 팔려나가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데 쓰였던 사실이나, 일본인 상대 요정에 팔려가 기생들의 놀이터가 된 사실, 고종이 평양에 세웠던 황궁인 풍경궁(豊慶宮)이 일제의 군사기지로 전락했던 사실들은 일제의 궁궐 훼철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궁궐 전각들이 파헤쳐진 빈 자리에는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것처럼 일제의 식민 지배 이념에 따른 근대 건축물들이 들어섰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여러 논리로 새로운 건축물들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이제 우리는 이 궁궐들의 빈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을 공동집필한 8명의 건축사가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준호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쉬울 것 같으면서도 쉽지가 않다. 함께 소리를 듣고 있어도 상대방이 내가 듣고 있는 것을 유사하게 듣고 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악보를 통해 듣는 것의 실체를 상호 확인할 수는 있지만 음악전문인이 아닌 일반인들과 악보를 매개로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어려움을 준다. 그러한 이유로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소리의 의미를 만나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택한다. 화자는 음악을 해부하듯 분석하기도 하고, 에피소드를 열거해 맛있게 양념을 치기도 하고, 음악을 만든 작곡가와의 의도와 심리를 서술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들릴 때까지 많이 듣는 길을 택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음악해설가 정준호는 좋은 작품을 고르고, 그것을 연주한 사람들의 연결고리,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사건들, 다른 장르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들, 작곡가가 그 작품의 첫 번째 음을 적기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의 입체적 맥락을 풍부하고 맛깔스럽게 드러내 놓았다. 이 책에서는 따로따로 알고 있던 사실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음악 안으로 녹아들어가는 과정을 읽는 큰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많은 화보가 당장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대신 보완해주고 있고, 음악은 곧이어 들을 수 있도록 CD가 별도로 제작되어 있으니 크게 불편함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많은 음악 해설서가 나왔지만, 보기 드물게 풍부한 텍스트로 다가오는 이 책은 충분히 일반 독자에게 추천할 만한 훌륭한 책이다. 쓴 사람도 쓴 사람이지만 책을 만든 사람의 노고도 적지 않았음이 책의 면면에 드러난다. 15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가 설화 <십자가의 진실>을 바탕으로 프레스코화를 그린다. 화가는 인간의 조상 아담의 죽음에서 동로마 황제 헤라클리우스에 이르는 10개의 벽면에 담은 것이다. 20세기 체코 작곡가 마르티누는 그 그림을 보고 관현악곡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프레스코화>을 쓴다. 그리고 같은 주제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작곡가와 과학자를 거치며 무수히 많은 작품을 낳는다. ‘이젠하임 가는 길’이란 바로 이렇게 찾아가는 아름다운 연결망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는 젊은 작가 이기호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 동안 단편소설 모음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두 권은 펴낸 바 있다. 이 작가는 출발부터가 독자로 하여금 책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하려는 듯 작품을 읽는 동안 웃음이 만발하게 하는 유머로 무장하고 등장했다. 작가 이기호의 작품이 내뿜는 웃음은 기존의 문학적 주제를 가벼이 여기거나 진중히 여기지 않은 데서 오는 게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어떤 것들의 이면’을 새롭게 뒤집어보는 역설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기존 관념이 깨지는 대신 밤하늘에서 터지는 폭죽 다발 같은 자유롭고 속 시원한 웃음을 독자에게 선사했다. 『사과는 잘해요』는 제목에 등장하는 ‘사과’보다는 ‘죄의식’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 작가의 독특한 화법이 여전히 웃음과 가독성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웃을 수만은 없는 둔중한 근원적인 아픔이 남는 작품이다. 우리가 흔히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과’의 집단성과 사회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주인공 격인 시봉과 나는 어린시절부터 복지원에 맡겨지고 그 곳에서 서로를 거울처럼 보며 성장하는데 복지사들의 폭력에 의한 사과를 습관처럼 몸에 지니게 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죄를 자백하라는 강요 앞에선 이 어린 인생들이 겪는 성장통은 특이한 그들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얘기이기도 하다. 폭력의 희생자이면서도 죄를 자백하며 결국 사과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사과는 어느덧 일상화되고 내면에 각인된다. 그러니 복지원을 나온 이들이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사과를 대신 받아내 주는 일을 직업을 삼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고 그 원인을 향해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가 아니라 임무나 직업이 된 사과하기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성찰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사과는 잘해요』라는 소설 제목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 채로 개인들로 하여금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게 만드는 이 거대한 수수께끼 같은 사회를 향한 작가의 재기발랄하고 비통한 풍자적 발언이기도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해왕 외 글, 이수진 그림
한글은 그 우수성과 과학성을 인정받아 1977년도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얼마 전, 문자가 없는 인도네시아 부톤 섬의 찌아찌아 부족에게 우리나라의 훈민정음 학회에서 한글을 가르쳐주고, 교과서를 만들어준 일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다. 나라와 말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삼아 배우고 사용한다는 소식에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한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하면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제대로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글 피어나다』는 어린이에게 한글에 대한 상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책이다.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한글이 왜 과학적이며 이상적인 문자인지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2부에서는 한글의 필요성과 창제 과정, 한글이 백성들에게 전승되고 자리잡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동화에 담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 편의 동화 뒤에는 구체적이고 풍부한 정보가 담긴 부가 자료가 붙어 있어 한글과 관련된 폭넓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한글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예술적으로 응용되고 확장되는가에 대해 미술, 무용, 도예, 등등의 분야별 전문가들의 글과 사진이 실려 있다. 기획력과 구성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한글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흥미롭고 쉽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소 알로이시오/ 박우택
1957년 12월 8일 파란 눈의 젊은 미국인 신부가 일본 동경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전쟁이 끝난 지 4년밖에 안 된 한국을 찾았다. 그의 첫 인상. "당시 한국의 모습은 세상의 종말처럼 보였다." 27살의 이 신부는 어릴 때부터 꿈이던 가난한 자,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려 했던 소 알로이시오. 루뱅의 신학교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신부와 평신도들과의 인연으로 인해 그는 한국과 태국 중에서 한국을 선교지로 골랐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가난한 이들이 많았던 부산교구를 선택했다. 그가 찾아간 부산의 송도, 남부민동, 감천 등은 판자촌 지역. “사방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산동네…. 그래도 아이들의 얼굴은 해맑기만 했다.” 소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것을 보며 이렇게 결심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까지 가난하게 하는 것은 막아야겠다.” 1964년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해 가족 단위의 고아원을 만들었고 무료진료소를 세웠으며 1970년 고아들을 위한 ‘소년의 집’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소년의 집’ 사업은 서울로도 확장됐고 필리핀에까지 퍼져갔다. 몬시뇰이라는 교황청 칭호를 받고서도 그냥 ‘소 신부님’으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그 분을 필자는 어릴 때 성당을 다니면서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이 짧은 글이 작은 감사의 뜻이라도 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 신부님’은 1992년 루게릭 병에 걸려 필리핀 소년의 집 근처에서 영면했다. 이 책은 그가 남긴 짧은 자서전이다.
출처 :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