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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상문화포털의 크리에이터 문화PD의 영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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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서울의 중심, 현재를 지키는 흥인지문_600년 전의 동대문을 바라보다

[대본]대한민국의수도,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의중심에위치한종로구에서는대한민국의과거와현재,미래를볼수있습니다.특히조선시대의역사를한눈에들여다볼수있는경복궁과창경궁,창덕궁과종묘등도종로구에있죠.그중에서도우리나라의보물제1호.서울도성에딸린8문중하나로정동에위치한흥인지문이있습니다.600년전,한양도성의동쪽성곽문흥인지문1397년도성을쌓을때함께짓기시작하여그이듬해인1398년에세워졌습니다.대략600년전,세워져조선말기까지존속되어오다가1869년에이르러전반적인개축이이루어졌다고합니다.흥인지문의바깥쪽에는석축한쪽에서부터반원형의평면을이룬옹성을쌓아적에대한방비를견고히하였는데요.도성내의여덟개의성문중옹성을갖춘것은이문뿐이라고합니다.같은도성내에있는숭례문과비교해건물의규모나형태는비슷하나,남대문에없는옹성을갖추고있는점이주목됩니다.앞면5칸옆면2칸규모의2층건물로,지붕은앞면에서볼때사다리꼴모양을한우진각지붕입니다.전체적으로흥인지문의건물양식이조선후기의특징을잘나타내주고있습니다.역사문화관광의중심,낙산조선의수도한양을둘러싸는한양도성은현존하는세계도성중가장크고잘보존된문화유산입니다.한양도성구간중가장걷기좋은낙산성곽길을따라600년이넘는역사와탁월한가치를보고느낄수있는데요.서울의한양도성(사적제10호,세계유산잠정목록)은조선의수도한성부를둘러싸고있는네개의산백악산,인왕산,낙산,남산을따라쌓은총길이18.6km의조선시대성곽입니다.혜화문에서흥인지문까지이어지는낙산구간은현재에도많은사람들의사랑을받고있습니다.낙산(124m)은서울의좌청룡에해당하는산으로내사산중가장낮은데요.생긴모양이낙타등처럼생겨낙타산,타락산이라고부르기도해요.역사와현재,그리고미래가공존하는동대문600년전,흥인지문을지나던조선의사람들과600년후,흥인지문을지나는우리.시간이지났어도,함께공존할수있는이유는공간이주는함께라는가치때문아닐까요?

제작
나진희
등록일
2022-12-04
  • 관광
  • 서울

[문화PD] SEOUL RAIL_양천향교 편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양천향교!지방에도 거의 없는 향교가 서울 한폭판에 있다고 하는데요.어떻게 향교가 남을 수 있을지, 문화PD가 미션을 통해 알아본다고 합니다~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2-11-30
  • 관광
  • 경기

[문화PD] 걸어서 설화 속으로' 2편 - 팔보산에 얽힌 보물이야기, 칠보산

[대본]수원에는 세 개의 산이 있습니다.그중 칠보산은 여러 설화가 얽혀있습니다.칠보산은 완만한 경사로를 가지고 있어 동네 주민들이 산책로로 애용하는 산입니다.이전에는 비둘치고개라는 이름으로수원과 화성을 이어주는 산길로 활용되었습니다산길 곳곳에서는 신기한 모양의 바위를 볼 수 있었는데인위적으로 금이 간 바위와여러 기형의 바위가 있었습니다.이 바위들은 보물을 가진 바위라는 이름의 가진바위였고보물이 있다는 소식에 석공이 바위를 자르려고 해서 생겨난 자국입니다.사실 칠보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일곱 개의 보물을 가진 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최근에 불리게 된 이름이었고칠보산의 원래 팔보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여덟 개의 보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사람들은 여덟 개의 보물이 팔보산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만 욕심 많은 사람들은 보물을 훔치는 데에 급급했고일확천금을 노리는 도둑들은 비둘치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재산마저 약탈했습니다.어느 날 근방에 사는 장사꾼 장 씨는 장사를 끝내고 비둘치고개를 넘어야 했는데도적떼를 피해 샛길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그러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닭의 울음소리조그마한 샘터에 황금닭이 빠져 울고 있었습니다.산에 여덟가지 보물이 있어 팔보산이라고 하더니이 닭이 그 중 하나인 보물이구나.라고 말하며 닭을 싸 들고 황급히 내려왔습니다.장 씨는 곧바로 어느 주막으로 들어갔고늦은 밤 혼자 내려온 장 씨가 이상하여 몰래 방안을 확인한 주막 주인은황금 닭을 발견하게 되었고이를 몰래 도적떼에 알려주었습니다.도적떼에게 들킨 장씨는결국 도적떼에게 들켜 살해당하게 됩니다.장 씨를 해치운 도적이 황금닭을 가져가려고 하였으나, 하늘은 어두워지고천둥번개와 함께 기이한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마치 이런 소리 처럼이후에도 지속되는 흉년과 전염병으로 주민들은인간의 욕심으로 인하여 부정을 탔다고 생각했고칠보산 산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습니다.그리고 현재까지도 10월 상달이 되면 재앙과 질병을 없애고풍년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이는 칠보산의 신화이며여담으로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인들이 칠보산이 보물이 묻혀있다는 말을 듣고산 두 군데에 구멍을 뚫었으나 찾지 못하였고현재에는 굴만 남아있다고 합니다.칠보산의 무학사라는 사찰을 들어가 보면하나의 굴을 발견할 수 있는데어쩌면 이것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뚫은 굴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작
김민기
등록일
2022-12-01
  • 문화예술
  • 경기

[문화PD] 캠핑장에 생긴 미술관? 남한강물의 가을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여주 금은모래 작은미술관

남한강물의 가을 윤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여주 금은모래 작은미술관에서 반짝반짝 여강과함께 개관전시회가 열린다. 이에 개관의도와 현 전시의도 및 방문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함께 소개합니다

제작
이선명
등록일
2023-12-11
  • 관광
  • 서울

[문화PD] SEOUL RAIL_하늘공원 편

[대본]안녕하세요 저는 문화PD로 활동하고 있는 서영원입니다. 오늘 월드컵경기장역에 온 이유는 바로 하늘공원을 소개하기 위해서 나왔는데요 앞서 소개한 PD님으로부터 미션도 전달받았거든요. 그래서 이 미션을 수행하면서 하늘공원을 제대로 한 번 탐방하도록 하겠습니다.네 지금 하늘공원 입구에 도착을 했는데요! 6호선 월드컵경기장 역에서는 약 5~10분 정도 걸린 거 같아요. 하늘공원은 약 90m 높이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맹꽁이 열차를 타고 편하게 가는 방법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자 먼저, 하늘공원 입구에서 조금만 옆으로 가면, 이렇게 메타세쿼이아 길이 있는데요! 아까 펼쳐본 미션지에서 포토존 찍기가 있었거든요. 그 장소가 바로 여기 메타세쿼이아 길이어서 사진을 찍고 가보도록 하겠습니다.도심 속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자연으로 가득한 느낌이어서 힐링이 되는 거 같아요. 하늘공원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계단을 오르면 되는데 계단이 많다고 해서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중간에 서울의 풍경도 보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금방 갑니다.네 드디어 하늘공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대문짝만 하게 하늘공원이라는 비석이 놓여 있고요. 벌써부터 도심을 벗어난 자연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 듭니다. 여기 보시면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공간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이용객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느낌이 들고요.길도 이렇게 잘 포장되어 있어서 누구나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 같아요. 길을 따라 조금씩 이동하면 이렇게 갈대밭이 나오는데 하늘공원이 서울의 갈대 명소거든요.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면서 갈대도 더욱 예쁜 모습으로 옷을 갈아입는 거 같습니다.자 여기서 슬슬 미션을 수행해야겠죠? 오늘의 두 번째 미션인 하늘공원 갈대밭 인증샷입니다. 확실히 햇빛을 받으니까 갈대가 더욱 아름답게 나오는 거 같아요. 하늘공원이 지금은 이렇게 멋지고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지만 사실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이곳 하늘공원이 있는 난지도는 1978년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후 5년간 9,200만 톤의 쓰레기가 매립된 곳으로 한때 악취가 진동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서울의 모든 쓰레기를 이곳으로 가져왔고,쓰레기가 쌓이고 또 쌓여서 약 90m 높이의 쓰레기 산이 만들어졌고 메탄가스와 쓰레기 침출수로 환경이 악화되어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지만,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 이곳을 자연 생태계로 복원하기 위해 1999년 10월부터 사업에 들어가 2002년 5월 1일에 개원했다고 합니다.쓰레기를 매립하면서 나오는 침출수는 매립지 주변 지하에 차수벽을 설치하고 집수정 31개소를 설치하여 안전하게 처리 후 한강으로 방류한다고 합니다. 또 여기에서 나오는 매립가스는 이송관에 연결하여 보일러 연료로 사용하고 난방열로 만들어 인근 지역의 아파트와 월드컵경기장 등의 건물에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말 그대로 친환경적인 방법과 아이디어를 통해 서울의 대표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인데요, 이렇게나 아름다운 공원이 과거에 쓰레기 산이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제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 발아래에 쓰레기가 묻혀있다니,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쓰레기 배출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오늘의 미션과는 별개로 공원을 돌면서 쓰레기가 보이면 같이 주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제 길을 따라서 공원의 가장자리 지점에 다다르면 이렇게 전망대가 여러 곳이 있는데요, 해가 지는 서쪽 방향을 볼 수도 있고 성산대교와 함께 서울 여의도를 조망할 수도 있어서 노을과 야경 맛집으로 딱인 곳입니다.오늘의 마지막 미션은 바로 전망대에서 사진 찍기입니다. 네 이렇게 오늘 도심 속 자연 공간인 하늘공원을 탐방해 봤는데요, 과거에 쓰레기 매립지였던 공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우리의 자연을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습니다.저 서영원 PD의 영상은 여기까지였고요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작
서영원
등록일
2022-11-30
  • 관광
  • 경기

[문화PD] 걸어서 설화 속으로' 3편 - 궁예의 눈물이 담긴 포천 산정호수와 명성산

[대본]산정호수 山井湖水,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농업 용수를 사용하기 위해 인공으로 만든 저수지다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인 918년 후고구려, 궁예의 눈물이 모여 호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산정호수를 멀리서 비호하듯 버티고 선 산줄기는 명성산이다 이곳에도 궁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명성산의 옛 이름은 울음산이다 왕건의 군사들에게 쫓기던 궁예가 산으로 도망쳤는데 당시 궁예의 울음소리가 산을 울릴 정도로 커서 울음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彌勒佛임금이 된 궁예는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자기를 버린 신라 왕실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광기를 부리곤 했다지난날의 겸손함과 명석함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해서 신하들을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궁예는 이미 예전의 궁예가 아니었다 우울증과 광기가 심해 사람을 의심하고 성격마저 포악해졌다거기다가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부처님이 내려와 백성을 잘 다스려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바로 미륵불이라고 하였다驕奢淫佚궁예는 점차 타락의 길로 빠져 들게 된다 밖으로는 왕건으로 하여금 후백제의 나주 등을 점령하는 전쟁을 계속하면서호화스러운 황궁을 짓게 하여 백성의 마음을 잃어 가게 된다그리고 누구든 뜻을 거스리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었으며 사치와 방탕한 생활을 말리는 왕후와 두 왕자를 처참하게 죽일 정도였다.궁예의 이런 행동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오는 심적 불안으로 인해 점차 몰락의 길로 빠지게 된다弓裔逃隱궁예가 임금으로서의 자질을 잃어가고 있을 때 신하들이 뜻을 모아 반역을 도모하여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게 된다처음에 망설였던 왕건은 불의를 치는 것은 반역이 아님을 깨닫고 의연히 이를 받아 들인다이 사실을 들은 궁예는 옷을 바꾸어 입고 명성산으로 도망치게 된다弓裔粉骨명성산으로 도망친 궁예는 이틀밤을 숨어지냈다그러나 배가 고파 더 참을 수 없었던 그는 마을로 내려와 보리이삭을 잘라 먹었다그러던 중 농부에게 신분이 드러나 병사들에게 붙잡히게 되고왕건에게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이때가 서기 918년 봄이었다궁예는 그가 세운 왕국과 함께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산정호수와 명성산, 그 뒤에는 슬픈 사연이 얽혀있는 궁예의 눈물길이 있었다궁예의 이런 비극적인 이야기는 지도자는 자기자만에 빠지거나 독선적으로 변하면 결국 화를 당한다는 역사적인 큰 교훈을 남겼다

제작
한도언
등록일
2022-12-01
  • 문화예술
  • 서울

[문화PD] SEOUL RAIL_동대문 운동장 편

[대본]지원PD: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한국문화정보원에서 제 20기 문화PD로 활동하고 있는 김지원이라고 합니다.(화면_이번 영상은 어떤 영상인가요?) 지원PD: 아 이번 영상은 제 영상을 시작으로 저를 포함한 5명의 문화PD들이 서울의 숨겨진 곳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제작된 시리즈물 입니다.우리에게 친숙한 지하철 그리고 지하철 역 주변 장 소의 숨어있는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5명의 PD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제작을 해서 시리즈로 대중 분들께 보여드릴 생각입니다.(화면_지원PD님은 어떤 곳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계획인가요?) 지원PD: 제 주변을 보신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지 모르지만, 제가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공간은 바로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입니다.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은 사실 여러분께 이미 패션과 디자인의 공간 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저는 오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속 여러분이 몰랐을 하나의 정보를 들고 왔습니 다.지원PD: 여러분이 정말 자주 지나치는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이곳에 원래 동대문 운동장이 있었다는 것 을 알고 계셨나요?지금은 다양한 건물과 새롭게 건축된 조형물들에 의해 한 페이지가 돼버렸지만, 사실 이 곳은 1925년 경성 운동장으로 문을 열어무려 82년 동안 서울 운동장을 거쳐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이 름으로 2007년 철거가 되기 전 까지 자리를 지켜왔습니다.지원PD: 1925년 경성 운동장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탄생한 동대문 운동장은 최초의 근대식 종합 운동장으 로 개장했으며처음에는 체육 증진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 정책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사실 동 대문 운동장이라는 이름이 강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동대문 운동장 또한 일제 강점기 시대 에 식민지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곳입니다.지원PD: 이후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 운동장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서울 운동장은 경성 운동장 시대와 달리 다양한 스포츠 경기, 기념식, 문화 행사 등이 개최됐던 하나의 문화 복합 공간이었습니다.지원PD: 특히 저희가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는 손기정, 서정권, 백옥자, 최동원 차범근과 같 은 당시 최고의 인기 스포츠 스타들도 이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다고 합니다.지원PD: 1984년 서울 올림픽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서울 운동장은 동대문 운동장으로 다시 이름이 변경 됩니다.하지만 이후 주변에 다른 운동장들이 건축되고 그곳에서 스포츠 행사가 많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동대문 운동장을 향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어들게 됐죠.지원PD: 그럼에도 1960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1973년 6월 23일 개최됐던 한,일 축구 정기전 개최, 1970년대 고교 야구처럼다양한 행사와 스포츠를 마주할 수 있었던 동대문 운동장은 지금은 한 페이지가 됐지만,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우린 그 흔적을 보관하고 공 유하며 보존하고 있습니다.지원PD: 잠실 운동장, 상암 월드컵 경기장과 같이 다양한 경기장들이 서울 곳곳에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존재감이 줄어들었던 동대문 운동장은2007년 철거되면서 사람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화면_그럼 이제는 동대문 운동장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나요?)지원PD: (장소 이동_ 조명탑 앞) 그렇지 않습니다. 제 옆에 보이는 조명탑이 보이시나요? 사실 제 영상에 는 PD님께서 주신 작은 미션이 하나 있었는데,그 미션이 뭐나면 과거 동대문 운동장에는 5개의 조명탑 이 있었다. 그 중 3개는 철거되고 현재 2개만 남아있는데,김지원 문화PD는 건축된 지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대문 역사공원의 주변 조형물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조명탑의 사진을 찍어 와 라! 라는 미션이었습니다.지원PD: (조명탑 사진) 그리고 바로 이 조명탑이 철거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조명탑 입니다.미션을 수행해야 제가 리워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조명탑이 찾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전히 자리를 잘 지키며 멋지게 서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지원PD: 운동장의 빛을 밝히던 조명탑만 남아있는 동대문 운동장의 흔적은 어쩌면 쓸쓸하고 외롭게 느껴 질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또 다른 건축물이 지어지고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동대문 운동장은 이제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으로 또 다르게 사람들에게 매력을 뽐내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3 마무리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 내부) (화면_낯선 동대문의 모습 어떠셨나요?) 지원PD: 저는 스포츠를 좋아해서 경기장도 많이 다니는 편인데,처음에 동대문 운동장의 이미지를 봤을 땐, 정말 거짓말처럼 느껴졌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서 있는 이곳 동대문 운동장 기념관을 방문하고 흔적이 남아있는조명탑도 보게 되고 여러 가지 기념관 속 정보를 읽어보니 그 당시에도 저처럼 스포츠를 좋아했던 많은 서울 시민들에게 동대문 운동장이 깊은 의미로 다가왔을 거라 생각했습니다.(1차 마무리) (화면_미션 종이 상단에 포스트 잇을 제거해주세요!) 지원PD: (포스트잇을 제거하며) 아 이게 미션 리워드인가요!사실 저희가 미션을 수행하면 5명의 PD가 각 각 알파벳을 하나씩 얻게 되는데, 제가 얻은 알파벳은 (잠시 쉬고) S입니다.이게 무슨 단어가 될 지는 시 리즈 마지막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음 영상들도 기대를 많이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4 아웃트로 (지하철 사물함) 지원PD: 저는 오늘 동대문 역사 문화 공원 역 속 지금은 철거되고 없어진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흔적을 찾기 위해동대문 운동장 기념관과 그 주변 일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자주 스쳐지나갔던 동대문의 낯선 모습,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까지.여러분들에게 동대문의 또 다른 역사에 대해서 작은 호기심을 불어넣었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저는 20기 문화PD 김지원이었고이제 카메라를 또 다른 공간의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실 다음 PD님께 넘겨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작
김지원
등록일
2022-11-30
  • 관광
  • 전북

[문화PD] 전라보물성 탐방기 : 전북 고창 모양성

[대본]제가 방문한 곳은 전북 고창에 있는 모양성입니다.조선시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습니다.고창읍성 高敞邑城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126번지 둘레 1,684m, 면적 189,764㎡ 1965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으로 거칠게 다듬은 자연석으로 쌓은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고, 읍성으로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며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 기지의 역할을 하였다.모양성 내부에는 관아를 비롯해 22개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전란에 모두 소실되어 현재는 일부가 복원되어 있습니다.고창동헌(高敞東軒)과 내아(內衙)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청사와 살림집. 고창동헌 청사에는 백성과 가까이 지내며 고을을 평안히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平近當)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작청(作廳)실무를 담당하던 중간 관리인 아전(衙前)이 집무하는 청사 아이들과 전통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요.모양성에 오면 꼭 해봐야하는 것이 있답니다.성 내부에는 투호던지기 같은 전통놀이나 자연재료로 기념품을 만들어보는 다양한 놀이거리가 마련돼있었습니다.모양성에는 머리에 손바닥만한 돌을 이고 한바퀴 돌면 다리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세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는데요.이 성밟기 놀이는 돌을 추가해 체중을 가중시킴으로써 성을 더욱 다지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고창군에서는 이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매년 모양성제라는 축제와 함께 답성놀이를 재현하고 있습니다.고창모양성제조상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향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1973년부터 열리고 있다.모양성은 읍내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지역민이 애용하는 휴식과 여가의 공간인데요. 특히 어두워진 밤의 모양성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모양성 야간경관조명 가동시간 : 하절기 오후 8시~11시, 동절기 일몰~오후 10시 개방시간대에 가동매년 성을 쌓아올린 조상들의 애국심을 기억하고답성놀이라는 향토 문화를 계승하면서휴식과 여가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모양성마침 제가 방문한 날은 고창세계문화 어울림축제 라는 행사와 판소리 버스킹이 펼쳐지고 있었는데요.판소리 버스킹은 조선 후기 판소리의 대가인 신재효의 생가 안에서 펼쳐져 마치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전라보물성, 모양성을 취재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바로 민속과 풍습을 글이 아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몸으로 체험함으로써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누구라도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어 더욱 빛을 발하는 어울림.그것이 바로 모양성의 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작
도희진
등록일
2022-12-03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조선시대, 서울 zoom-in : 한양도성을 찾아서

[대본]- 자 이제 고려시대 끝났고, 조선시대 누구지?- 나야!- 여전히 서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수도의 성곽 한양도성에 대해서 다뤄보려구. - 한양도성?- 재밌겠다!- 그럼 시작해볼게!- 다같이 조선시대로 줌 인!- 줌 인~!서울의 한 가운데서 한양도성을 만나다. 종로에 위치한 한양도성박물관에서 한양도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1396년 조선의 수도 서울(한양)에 축조된 한양도성은상설전시실 1600여 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수도의 성곽이다.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일부 훼철되기도 했지만,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도시와 공존하는 문화유산이다.상설 전시실 1에서는 한양도성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축소 모형과 영상을 통해오늘날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재조명되고 있는한양도성의 의미와 가치를 배울 수 있다. 도성이란 왕이 거처하는 성으로서 여러 성 중에서 으뜸가는 성, 곧 모든 국가 기능이 집중된 수도를 의미한다. 순우리말 서울은 수도라는 뜻이니, 도성이 곧 서울이었다. 서울은 도성 안의 국가 중추 기능을 보존한 채 성벽을 넘어 현대 도시로 팽창했다. 때문에 현재의 한양도성은 국제도시 서울의 역사를 증언하는 문화유산이다. 상설 전시실 2에서는 조선의 한양 천도와 수도건설, 도성의 축조까지 상설전시실 2한양도성의 탄생과 더불어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모습을 배울 수 있다.뿐만 아니라 도성 안팎에서 살아온 조선시대 서울사람들의 모습을전시 관람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1392년에 개장된 조선왕조가 새 도읍으로 정한 한양은고려의 남경이었으나 성벽조차 없던 곳이었다. 조선왕조는 이 땅의 자연 형상을 따라 성벽을 쌓고 유교적 이상도시론에 맞추어 내부 공간을 채웠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중엽, 일본과 청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도성이 함락되고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으나, 성벽이 무너지면 다시 쌓고 성문이 퇴락하면 고쳐 지으면서도성의 기본 구조는 조선왕조 500여 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한양도성박물관 바로 앞에는 한양도성 중 하나인 흥인지문이 있다. 흥인지문흥인지문은 한양도성의 동문으로 조선 1396년에 건립된 대한민국의 보물이다. 박물관에서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다시 한양도성에 방문해보니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우리 모두 한양도성박물관과 한양도성에서 조선시대의 위대함을 느껴보는게 어떨까. 이밖에도 한양도성박물관 홈페이지에 방문하여온라인전시관온라인전시관을 통해 박물관의 지난 전시들을 만나볼 수 있다.한양도성박물관Seoul City Wall Museum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283 서울 디자인지원센터02-724-0243홈페이지http://www.museum.seoul.kr/scwm/NR_index.do한양도성박물관Seoul City Wall Museum화~일요일, 공휴일09:18:00휴관 매주 월요일, 1월 1일- 한양도성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있는 지 몰랐어!- 와~ 진짜, 그러게!- 나도 앞으로 진짜 자주 한양도성 한번 가봐야 되긴 하겠다. - 좋아!- 그럼 다음 시대는 누구지?- 나야!

제작
박다영
등록일
2022-12-02
  •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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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전태일 기념관_60년 전의 동대문을 바라보다

[대본]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뽑히는 이 곳 이곳은 바로 을지로에 위치한 전태일 기념관입니다. 전태일 선생님의 생전 손글씨가 담긴 이 기념관을 방문해보려고 합니다. 이 곳의 운영시간은 10시부터 5시 반 무료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전태일 기념관 팜플렛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의 이해를 도와주는 팜플렛으로 관람 전 읽어보면 좋습니다. 1층에는 전태일 열사 52주기 추모의 벽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열사를 추억하는 메시지로 벽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노동미술과 함께 관람이 가능한데요 노동에 관련한 미술품들을 함께 관람할 수 있습니다. 초청전시로 12.4일까지만 운영이 될 예정입니다. 또한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미술전시를 진행중에 있는데요 인형에 노동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 각자 전시를 하는 형태입니다. 내가 직접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전시라 더욱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나름대로의 노동의 모습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관람객이 표현할 수 있는 전시, 참 좋은 아이디어죠? 각자의 노동을 표현한 결과물을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전시에 한 일원이 되어 전시에 참여해봤습니다. 다음 2,3층은 전시장과 공연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2층에는 전태일 열사를 추억하는 울림터 공연장이 있습니다. 전태일 기념관 특별기획전으로 꽃다지 노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어요. 한쪽에는 관람객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도 눈에 띄는데요, 건물 외곽이 보이는 구조라 흥미로웠습니다. 그럼 잠시 울림터를 살펴볼까요? 곧 이곳에서 공연이 펼쳐진다고 하네요. 이 울림터를 지나면 전태일 열사의 기념 전시관이 나옵니다. 전시는 전태일의 어린시절부터의 모든 일대기를 글과 영상으로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직접 쓴 편지의 내용부터 평화시장에 관한 역사까지 전시는 관람객의 적극적인 참여전시로 이루어집니다. 과거 평화시장 봉제공장의 실태부터 전태일 열사가 목숨과 맞바꾸고 싶을만큼 간절했던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전시가 끝나며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전태일 기념관을 꼭 들려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작
김지영
등록일
2022-12-04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SEOUL RAIL_광화문 편

[대본]다리를 맞추시오...이거 뭐죠?왼쪽 사진 속 다리를 맞추시오?PD님께서 사진에 있는 다리가어떤 다리인지 직접 맞추시면 됩니다단, 검색은 하면 안됩니다너무 어려운데요?일단은 가고 있는데지금 첫 번째 다리가 하나 나왔습니다새벽다리라고 하는데그런데 이게이건 아닌 것 같아요이거 보면 공사기간 2003년부터야이거는 딱 봤을 때 약간 조선시대란 말이에요그래서 이게 일단은 2003년에지어진 다리이기 때문에 여기는 아닌 것 같아요일단 스킵하겠습니다새벽다리 스킵하고 다음 다리로 넘어가시죠오늘 확실히날이 흐리지만 청계천에 항상 물이 맑거든요PD님은 청계천에 자주 오시나요?저는 청계천에 산책하러 자주 와요또 산책 많이 하세요러닝하시는 분도 계시고일단은 가보겠습니다아이게 약간 TMI일수도 있는데여기가 전태일 다리구나PD님 저거 보이세요?저거이건 미션 다 집어치우고이거 설명 안하고 갈 수가 없어요이 다리가 아닌 게 분명하지만그런데 이 다리를 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이게 전태일다리 라고 하고버들다리라고도 부르는 곳이거든요그래서 이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 PD님도 잘 아시죠?그렇죠들어볼 수 밖에 없죠알아야 하는 사람이고제가 기억나는 게 제가 어릴 때 논술학원을 다녔는데거기서 뭘 가르쳐줬냐면(기습질문) 이 노래 아세요? 혹시?이 노래를 알려주시고 그리고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알려주셨단 말이에요전태일 열사가 그때 당시 활동했던 70년대에는하루 일당이 70원에서 100원 정도였대요70원에서 100원 정도였고그래서 그때 당시 커피 한 잔이 50원그러면은 오늘날로치면 커피 한 잔 5000원이니까이런 꼴이죠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셨던 분이고그 당시의 여공들이 많았어요시다 라고 해서 여공들이 많았는데여공들을 굉장히 잘 챙겨주셨다고 해요그래서 이 분의 그런 (따뜻한) 마음 때문에라도요즘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하시는 것 같아요그리고 당시에 노동환경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70년대에는 환풍시설이 일단 없었어요햇빛도 안들고그런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하는작업장에서 한 16시간씩 일을 하는 거야일당 아까 말씀드렸죠70-100원 받으면서그렇게 일을 하니까 폐질환도 많이 걸렸다고 해요그런 어떤 열악한 노동환경에 계셨던 분이었고그래서 그 때 전태일 열사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저희의 노동운동과노동환경의 개선의 시발점이 되었다이렇게 많이 보고 있습니다너무 힘든 것 같아요너무 지쳐 보이시는데요?너무 많이 걸었어 지금다리가 많다보니까진짜 많이 걸었는데제가 잘못 생각했어요아까 그 방향으로 갔으면 안돼그래서 지금 돌아온 상황이고요지금 이제 아 저 보이시나요?저게 그 세운상가그 유명한 세운상가이번엔 제대로 방향 맞게 가는 건가요?지금 방향이 맞을 거 같긴 해요확...확실하지 않은데일단 가보고 결정해보겠습니다여기는 근데 미션이랑은 상관이 없을 거 같거든요근데 여기도 설명을 하고 지나가야 될 것 같아요세운상가라는 데로 왔는데세운상가...(긴급질문) PD님 세운상가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들어는 봤는데 지나치기만 했지들어가본 적은 없죠그래서 세운상가가 요즘은 또 되게 핫해졌는데예전에는 뭘로 유명했냐면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로 유명했습니다그리고 60년대 70년대유일의 전자상가였다고 해요그래서 1층부터 4층까지는 상가들이 들어서 있었고5층에는 거주공간이 있었죠근데 이게 어느순간부터 조금은 사람들이용산전자상가로 찾아가고또 주거공간도 강남일대로 넘어가니까그 사람들이 많이 없어진 거죠이 일대에서(한동안) 낙후된 곳으로 있다가요즘 다시 호랑O커피 들어보셨나요?들어는 봤는데 가본 적은 없네요호랑O커피가 되게 유명한데호랑O커피처럼 FnB사업을젊은 세대들이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그것 때문에 되게 유명하고다시 이 일대를녹지생태도심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해요그래서 이 공간은 어떻게 보면 근현대사적으로 중요하고현재도 되게 중요한 지역이라 생각합니다PD님 이거 제가봤을 때상상으로 누가 그린 게 아닐까요?(단호) 분명 있는 다리의 사진을 가져온 거에요너무 어려워가지고힌트 좀만 주시면 안되나요?그러면 원래 검색이 금지였잖아요네검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검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대신에 청계천박물관 홈페이지를 참고할 수 있는기회를 드리겠습니다홈페이지만 봐야 하는 거에요?네네 다른 건 절대 보시면 안 되고홈페이지만 참고를 하셔서 진행해주셔야 합니다근데 박물관 홈페이지에 그런 게 있나요?일단은...여기인가?광통교, 도성 제1의 다리 광통교전시관람하기왕의 행차알았다PD님이여기 그림에 있는여기 미션지에 있는 그림과동일합니다광통교로 가보면 되겠네요가보면 이제 알겠죠?이제 미션이 잘 수행이 됐는지그러면 광통교롤 한번 가보겠습니다쉬웠네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여기 있는 다리라고어광통교 여기 보이시죠?광통교. 주변 안내광통교. 현위치저희가 미션 받은 다리는광통교 였습니다!지금 사진이랑 똑같죠여기서 찍었네(?)여기 이 각도네지금 사람이 없어서 조금 분간이 안되는데여기 맞죠?광통교.PD님 제가 궁금한 게왜 그 많은 다리 중에광통교를 저한테 미션을 주신 거죠?이제 광통교의 숨겨진 역사이야기를사실 좀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광통교를 선택을 하게 됐는데이제 저의 미션종이의 그림이 있죠?그림 한번 볼까요?이 미션지에 있는 이 그림이 18세기후반 광통교를 그린 가교보월이라는 그림입니다과거의 광통교는 정월대보름에다리밟기를 하는 명소였는데요다리밟기는 정월대보름에 다리를 밟으면1년 내내 다릿병을 앓지 않는다는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그래서 광통교는 당시 광화문, 종로숭례문을 잇는 도성 제 1의 다리였고그만큼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습니다그러다가 이 다리가 일제 강점기에 훼손이 되고그 이후에는 알다시피 청계천 일대에고가도로가 생기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지는가 했는데또 청계천 복원 사업과 맞물려서2005년에 정통교가 다시 저희의 품으로돌아오게 되었다는 역사이야기가 숨겨져 있었습니다아 그러면 중요한 다리네요그러면 저희가 아까 초반에 봤던다리도 2003년에 지어진 게맞지만 그게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인해...그렇죠그런거였군요?아무튼 저는!광통교 여기를 찾았고그럼 제가그러면 미션을 완료했으니까당연히 미션 리워드가 있어야겠죠?미션 리워드를 까(?)보도록 하겠습니다어 뭐라고 긴장이 될까요?제가 받은 미션 리워드는 E 였습니다다음 분은 어떤 리워드를 받으실 지 모르겠지만그럼 다음 피디님께 이 SEOUL RAIL미션을 넘기도록 하겠습니다이상 문화pd 정희우였고요이만 저는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작
정희우
등록일
2022-11-30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개화기 시대, 서울 zoom-in : 근현대를 잇는 발자취를 찾아서

[대본]문 밖은 새로운 세계였다. 열 것인가, 잠글 것인가. 19세기말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조선에서 최대 고민이었다.개항, 특정한 항구를 열어 외국 선박의 출입을 허용하고 외국과의 통상관계를 공식화 하는 일을 의미한다.19세기 중반 아시아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유럽 열강의 다툼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한중일 3국은 쇄국정책을 유지했으나, 19세기 초 유럽의 적극적인 통상요구로 인해 중국과 일본이 차례로 문을 개방하게 된다.조선에서는 당시 개화세력과 척화세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개화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조일수호조규, 다른 말로 강화도 조약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데 이는 최초의 근대적 불평등 조약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조선은 자주국가로 인정했지만 청의 간섭을 배제해 조선 침략을 쉽게 하려는 일본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조선은 다른 서구 열강과 중국까지도 차례로 문호를 개방하게 된 것이다.오늘은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개화기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 하려한다.덕수궁 화면전환 한글+영어자막덕수궁 석조전은 1910년에 완성된 대한제국의 대표적 서양식 건물로 개화기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석조전은 고종에 의해 황제국이 선포된 후 대한제국 황궁의 정전으로 만들어졌으며 엄격한 비례와 좌우대칭이 돋보이는 신고전주의양식으로 내부에는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춘 근대 건축물이다.문화재청에서는 1930년대 이후 여러 용도의 건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던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하여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고 국민들에게 돌려주고자 2014년 10월,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했다. 때문에 현재 대한제국역사관은 과거 대한제국의 생활사와 근대의 정치, 외교, 의례, 황실사 등을 담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덕수궁 관리소 사이트에서는 매일 오전 9시30분을 시작으로 오후 4시 30분까지 30분간격으로 개항기를 대표하는 대한제국에 관해 해설하는 프로그램도 있기 때문에 미리 꼭 신청하고 찾아간다면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제작
박범준
등록일
20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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