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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광복 80주년을 맞아, 삶의 터전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마지막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 문화공간 이육사를 직접 방문해, 이 육사의 활동과 삶의 흔적을 따라가보았습니다. 그리고 [청포도] 시에 담긴 마음도 잠시 들여다보며, 지금 우리의 자리에서 그를 다시 기억해봅니다. 이육사가 간절히 기다렸던 손님 광복. 광복을 기다렸던 한 청포도를 찾아서 지금 시작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Pixabay 에 따라 [ 픽사베이 https://pixabay.com/ko/music/, 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Billy_Ziogas,Huynhhoa89]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 Documentary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 - Classical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BackgroundMusicForVideos) - Camelot Master Track (무료-Pixabay/제작자: Billy_Ziogas) - instrumental piano music (무료-Pixabay/제작자: Huynhhoa89) - 사용 폰트 (윤디자인)만세체/(류양희)고운바탕체/(산돌구름)에스코어드림/조선일보명조체/조선100년체/(정선군)정선아리랑체/ 노토 산스체/Anton체/210 디딤고딕체 (상업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이육사문학관, 국가유산청,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문화공간 이육사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12;17 - 00;00;16;19 서울 성북구 종암동. 이 조용한 골목 안에, 00;00;16;19 - 00;00;20;06 한 시인의 흔적이 고요히 숨 쉬고 있습니다 00;00;20;06 - 00;00;24;25 강철 같은 의지로 시를 쓰고, 민족을 위해 싸웠던 이육사. 00;00;24;25 - 00;00;27;12 우리는 지금, 그를 다시 만납니다. 00;00;30;24 - 00;00;35;17 1904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이육사. 본명은 이원록. 00;00;35;17 - 00;00;39;29 그는 조국의 자유를 꿈꾸며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00;00;39;29 - 00;00;45;27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 264번 수인번호를 지닌 채 옥고를 치렀습니다. 00;00;45;27 - 00;00;49;01 그 숫자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은 이유... 00;00;49;01 - 00;00;54;19 (나의)고통과 저항의 흔적을 시 속에 남기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00;01;03;16 - 00;01;10;19 서울 종암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 안에 자리한 문화공간 이육사. 이곳은 시인 이육사의 거처 근처에 세워진 전시관입니다. 00;01;12;15 - 00;01;17;02 1930년대 후반, 끊임없는 투옥과 감시 속에서도 00;01;17;02 - 00;01;20;08 이육사는 서울 종암동에 터를 잡습니다. 00;01;20;08 - 00;01;27;07 V3, 내용 이곳은 그의 마지막 집이자, 광야와 절정 같은 대표작이 탄생한 공간입니다. 00;01;27;07 - 00;01;33;18 V3, 내용 이육사의 시는 단순한 언어가 아닌, 민족의 미래를 향한 간절함이었습니다. 00;01;37;00 - 00;02;07;10 1930년, 이육사는 1월 10일부터 대한청년동맹 간부라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1932년, 윤세주의 권유로 의열단장 김원봉이 설립 중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1기로 입교하였습니다. 1939년, 서울 종암동 62번지로 이사하였고, 1944년, 1월 16일 베이징에서 순국하였습니다. 00;02;10;05 - 00;02;15;11 전시관 안에는 이육사의 시를 직접 따라 써보는 공간도 있는데요. 00;02;17;26 - 00;02;21;08 글씨를 한 자 한 자 눌러 쓸수록, 00;02;21;08 - 00;02;28;15 시를 통해 무언가를 간절히 전하고자 했던 이육사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졌어요. 00;02;28;15 - 00;02;31;09 이육사의 대표 시 청포도. 00;02;31;09 - 00;02;36;03 이 시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9년에 발표되었지만, 00;02;36;03 - 00;02;42;20 단 한 번도 억압이나 식민지라는 말 없이 강한 저항과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00;02;42;20 - 00;02;46;21 푸른 청포도는 그가 꿈꿨던 조국의 미래였고, 00;02;46;21 - 00;02;49;28 기다리는 손님은 바로 광복이었겠죠. 00;02;49;28 - 00;02;53;22 광복 80주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00;02;54;03 - 00;02;58;05 조국을 위해 붓을 든 한 시인의 이야기 00;03;02;14 - 00;03;05;09 이육사의 시가 다시 울리는 지금, 00;03;05;09 - 00;03;08;11 우리는 그 시를 살아갑니다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5-08-08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묻히지 못한 영웅, 독립의 기억을 걷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자유는 단 하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얼굴 없이 싸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만든 결실입니다. 서울 한복판, 조용한 공원 안에 남겨진 기억의 장소, 효창공원. 이곳에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세 의사의 묘역과 함께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지금, 묻힌 역사를 다시 마주합니다.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 menuNo=200020wrtSn=13316936),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본 저작물은 저작자표시 4.0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재)전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공공저작물을 이 용하였습니다.(https://gongu.copyright.or.kr/gongu/authr/authr/viewWrtrPage.do? menuNo=200186authrSn=70197), 작성자:OOO]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의 공공저작 물을 이용하였습니다.에 따라 [주식회사 아이티앤 (https://gongu.copyright.or.kr/gongu/wrt/wrt/view.do?wrtSn=13355229menuNo=200020), 작성자:주식회사 아이티앤]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 습니다. 설화, 기증 박세임, 공유마당, CC BY - 사용 폰트 AppleGothic - apple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의 나레이션은 생성형 AI elevenlabs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정책방송원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이미지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셀수스협동조합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효창공원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00:00:08:18 - 00:00:11:05 1945년 8월 15일, 00:00:11:05 - 00:00:14:00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이했다. 00:00:14:15 - 00:00:17:23 광복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00:00:18:29 - 00:00:24:09 되찾은 땅에 스스로의 이름을 다시 새기는 일이기도 했다. 00:00:24:14 - 00:00:26:16 우리는 광복을 기억하지만, 00:00:27:05 - 00:00:30:02 그 날을 기념하고 있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00:00:30:23 - 00:00:33:22 베란다에 걸린 태극기는 점점 사라지고, 00:00:33:22 - 00:00:38:00 역사의 의미는 일상 속에 조금씩 묻히고 있다. 00:00:39:12 - 00:00:40:28 2025년 00:00:40:28 - 00:00:43:14 올해는 광복80주년이다. 00:00:44:07 - 00:00:47:28 그러나 광복은 단 하루, 한 순간의 결실이 아니었다. 00:00:49:11 - 00:00:51:12 서울 효창공원 00:00:51:12 - 00:00:53:01 이 조용한 공간에는 00:00:53:01 - 00:00:56:15 아직도 그날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00:01:00:27 - 00:01:05:13 1989년, 사적 제 330호로 지정된 이곳은 00:01:06:00 - 00:01:10:08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00:01:10:15 - 00:01:13:15 그 중심에는 삼의사 묘가 있다. 00:01:13:27 - 00:01:18:04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00:01:18:04 - 00:01:20:28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모셔온 00:01:20:28 - 00:01:23:28 항일투쟁의 상징이 된 세 사람이다. 00:01:26:23 - 00:01:29:29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에서 태어나 00:01:29:29 - 00:01:35:27 1931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애국단에 가입했다. 00:01:35:27 - 00:01:40:21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과 함께 일왕을 암살하려 했고, 00:01:41:14 - 00:01:43:23 1932년 1월 8일, 00:01:43:23 - 00:01:48:03 동경 사쿠라다문에서 히로히토를 향해 폭탄을 던졌다. 00:01:48:29 - 00:01:51:11 비록 명중하지는 못했지만, 00:01:51:11 - 00:01:55:12 그 거사는 일본 내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00:01:56:15 - 00:01:59:27 그는 체포되어 같은 해 10월 10일 순국했다. 00:02:01:11 - 00:02:04:23 윤봉길 의사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00:02:04:23 - 00:02:08:00 31 운동 이후 농촌 계몽운동에 힘쓰다가 00:02:08:00 - 00:02:11:17 1930년 망명길에 올랐다. 00:02:11:17 - 00:02:16:00 상하이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 한인애국단에 가입했고, 00:02:16:00 - 00:02:20:15 1932년 4월 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00:02:20:15 - 00:02:26:29 일본의 전승기념식 현장에서 폭탄을 던져 주요 인사들을 살상했다. 00:02:26:29 - 00:02:28:21 그는 거사 당일 체포되어, 00:02:28:21 - 00:02:32:02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00:02:34:26 - 00:02:37:21 백정기 의사는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00:02:37:21 - 00:02:43:02 31 운동 후 상하이로 건너가 무정부주의자연맹에 가입했다. 00:02:43:10 - 00:02:48:29 노동운동과 항일활동에 참여하며 일본의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00:02:48:29 - 00:02:51:19 친일파를 처단하는 데 힘썼다. 00:02:51:26 - 00:02:57:25 1933년 일본 공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체포됐다. 00:02:58:14 - 00:03:02:03 일본법원에서 무기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00:03:02:03 - 00:03:04:14 같은 해 6월 5일 순국했다. 00:03:05:17 - 00:03:07:18 이들의 용기와 희생 00:03:07:18 - 00:03:12:04 그리고 수많은 이름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노력 끝에 00:03:12:04 - 00:03:15:27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다. 00:03:16:09 - 00:03:21:00 한편 효창공원 자체도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00:03:21:20 - 00:03:27:04 이곳은 원래 조선 왕실의 묘역, 효창원이었다. 00:03:27:04 - 00:03:32:08 1894년,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이 불법 주둔하면서 00:03:32:08 - 00:03:35:14 그 가치와 의미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00:03:35:22 - 00:03:40:13 1921년, 일제는 이곳을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00:03:41:07 - 00:03:45:02 그렇게 효창원은 역사성과 규모를 잃고, 00:03:45:02 - 00:03:47:18 지금의 효창공원으로 남게 되었다. 00:03:47:18 - 00:03:53:29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이곳에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심었다. 00:03:53:29 - 00:03:56:10 폐허 위에 피어난 묘역. 00:03:56:10 - 00:03:59:13 이곳은 다시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00:04:00:00 - 00:04:00:18 그리고 00:04:01:18 - 00:04:06:02 삼의사 묘 옆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한 분의 자리가 있다. 00:04:06:24 - 00:04:08:17 안중근 의사. 00:04:08:17 - 00:04:10:28 1910년 3월 26일, 00:04:10:28 - 00:04:13:28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그는, 00:04:13:28 - 00:04:18:26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묘에 모셔졌다. 00:04:19:11 - 00:04:22:11 사형을 앞두고 그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00:04:22:28 - 00:04:25:25 내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었다가, 00:04:25:25 - 00:04:28:24 조국이 독립하면 고국으로 옮겨다오. 00:04:29:07 - 00:04:31:20 그러나 일본은 그의 무덤이 00:04:31:20 - 00:04:34:08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00:04:34:24 - 00:04:38:17 유해는 인도 되지 않았고, 위치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00:04:39:14 - 00:04:42:14 그의 유해는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00:04:43:25 - 00:04:46:20 의열사를 매일같이 청소하며 가꾸는 분께 00:04:47:02 - 00:04:50:12 안중근 의사의 가묘에 대해 물었다. 00:04:51:04 - 00:04:54:10 안중근 의사 분은 가묘라고 하던데... 00:04:53:07 - 00:04:54:10 맞아요. 가묘 맞아요. 00:04:54:10 - 00:04:55:01 아하... 00:04:55:01 - 00:04:57:02 다른 분들은 다 유해가 계시고, 00:04:56:16 - 00:04:57:02 네. 00:04:57:02 - 00:04:59:09 안중근 의사님은 가묘에요. 유해를 못 찾았잖아. 00:04:59:07 - 00:04:59:23 아하 네. 00:05:00:00 - 00:05:01:00 못 찾았잖아. 00:05:01:00 - 00:05:02:14 실제로 못 찾았어. 00:05:03:17 - 00:05:06:04 근데 왜 아무도 모르는지 모르겠어. 00:05:06:04 - 00:05:07:15 안타까워. 00:05:06:04 - 00:05:06:20 그니까요. 00:05:07:15 - 00:05:11:21 그 당시에 어쨌든 간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거를... 00:05:13:03 - 00:05:15:09 그의 말끝에 맺힌 안타까움은, 00:05:15:09 - 00:05:18:24 우리가 잊고 지낸 시간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00:05:19:16 - 00:05:23:21 1945년, 우리는 나라를 되찾았다. 00:05:24:12 - 00:05:27:19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00:05:27:19 - 00:05:31:15 그날의 의미와 희생을 잊지 않는 마음이다. 00:05:31:15 - 00:05:34:15 효창공원은 오늘도 묻고 있다. 00:05:36:00 - 00:05:39:05 지금의 자유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00:05:39:24 - 00:05:41:26 광복 80주년. 00:05:41:26 - 00:05:45:24 우리가 누리는 오늘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5-08-11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이게 실화라고... 삼일절에 아기 낳았다가 독립운동을 전 세계에 퍼뜨린 어느 미국인 역대급 스토리, 결말포함 4분 몰아보기

3.1절, 서울에서 한 미국인 기자의 가족이 겪은 놀라운 실화...!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했고, 그가 남긴 집 딜쿠샤(기쁜 마음의 궁전)는 지금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조용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제 추방, 구두에 숨겨진 선언서, 돌아오고 싶었던 땅, 그리고 그가 끝내 묻힌 자리까지... 이 4분짜리 영상 하나로, 잊혀졌던 실화가 다시 살아납니다. #광복절 #딜쿠샤 #실화다큐 #서울 #명소 #몰아보기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Lance Conrad - Waiting and Hoping Yaniv Hayoun - I Hope Brianna Tam - Pursuit Starluxe - Lift Babies - Baby Sobbing Uncontrollably Historical Army - Rifle Gunshot, Single Shots Bullpup Firearms - Enfield L85, Cocking Gun, Loading Electric Typewriter - Write, Medium speed, Aggressive, Room Brazil Crowds - Demonstration Voices, Shouts, Applause, Chants, Sao Paulo Steps Hardwood - Dress Shoes, Jumping, Landing Elegant Footsteps - Dress Shoes, Scuffing, Dirt Steps Carpet - Sandals Running Foley, male breath, fast and slow, variation continuous Traps and Cages - Prison Cell Door Beautiful Birds - Aves Ambience in Nature - 사용 폰트 부크크 명조체 (주)부크크(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7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Bodoni 72 Smallcaps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Bodoni 72 Oldstyle ITC / Apple (상업적 사용 가능) Apple SD 산돌고딕 Neo Apple (Apple 기기 사용자 상업비상업 사용 가능) Y이드스트릿체 (주)케이티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Sandoll 백종열필 산돌커뮤니케이션 (일반 디자인 상업적 사용 가능) G마켓 산스 TTF (주)이베이코리아 / G마켓 (상업적 사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ElevenLabs, Midjourney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서울역사박물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딜쿠샤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기억하시나요.조선을 사랑한 미국인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보다 더 놀라운 현실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이곳은 딜쿠샤. 1923년, 서울 사직동 언덕 위에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가 지은 붉은 벽돌집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이름을 붙였지요. 이 집은, 한 외국인이 조선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역사의 증거입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탄생한 한 미국인 아기와 구두 덕분에, 진실이 알려질 수 있었지요. 1919년 3월 1일, 서울 거리에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터져 나옵니다. 같은 시각,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서울에 특파원으로 온 미국인 기자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였습니다. 그리고 곧, 병원에 일본 헌병이 들이닥칩니다. 간호사는 황급히 메리에게 다가와 그녀의 이불 밑에 종이 뭉치를 숨겼습니다. 곧 이어 병문안을 온 앨버트가 아기를 안아올리자 떨어진 종이. 그것은 세브란스병원에서 몰래 인쇄했던 독립선언서였습니다. 그날 밤, 앨버트의 동생은 조선을 떠났습니다. 구두 뒷축에는, 독립선언서 사본과 형이 쓴 영문 기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독립 운동에 관한 내용이 미국에 전해지게 되었고, 이로써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었고,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테일러는 조선을 잊지 못했습니다. 1948년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그는 끝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이 땅에 묻혔습니다. 딜쿠샤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졌습니다. 그럼에도 방치된 채 남아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2021년, 서울역사박물관이 복원 과정을 마치며 펜으로 지킨 집 딜쿠샤는 다시 시민들에게 열렸습니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자유를 위해 펜을 든 이방인의 마음은 지금도 이 집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그 집의 이름은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 그곳은, 진실을 전하고 사랑한 땅에 끝내 돌아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오늘, 당신의 딜쿠샤는 어디에 있나요.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5-08-12
  • 문화산업
  • 전체

[문화PD] 강화된 암표 단속, 효과는 굉장했다?

계속해서 진행되어 오고있는 [암표 거래 문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데요. 오늘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양한 해결책들을 소개하고 그 효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암표 근절을 위해 노력해보아요:)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4-12-04
  • 문화산업
  • 전체

[문화PD] 암표 근절, 우리의 인식 개선으로

교묘해지는 암표의 유혹, 암표라는 유혹에서 우리는 피해자, 구매자, 신고자 모두 될 수 있다. 각종 문화산업을 저해시키는 암표라는 유혹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까? 암표 근절! 우리의 인식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 NR 문화PD 김태민 바쁜 현대사회의 직장인들 지친 업무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 하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콘서트 관람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야근과 자신의 상황으로 인해 티켓팅을 실패하는 경우는 종종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 유혹은 찾아옵니다 암표라는 유혹이 각종 문화의 발전을 저해시키는 암표 연예인 콘서트, 팬미팅, 스포츠 경기 등 연예인 콘서트, 팬미팅, 스포츠 경기 등 암표 거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표를 획득하는 암표 암표는 더욱 교묘해지고 피해는 늘어나고 있습니다 Q. 암표거래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인터뷰_ 권대현 네 제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친구들과 갈려고 작년에 예매를 시도했었는데 저는 성공했는데 친구는 실패했어요 그래서 저 혼자 콘서트를 가게 되었는데 빈 좌석이 중간중간 보이더라고요 아이돌 가수 콘서트 티켓은 5배 이상 하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대학생인데 주변에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효도하려고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인터넷 플랫폼에서 몇백만 원으로 티켓값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Q. 암표 거래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고 계시나요? SNS에서 많이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SNS에서 콘서트를 검색하면 티켓 양도라는 이름으로 실물 티켓이랑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판매자가 만들어 둔 오픈 채팅창에서 구매자를 불러 거래한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_ 윤건호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음악 콘서트가 아니더라도 스포츠 경기에서도 암표는 존재하니까요 제 주변에 보면 암표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가수의 팬이거나 스포츠 경기를 보고 싶은 마음에 혹했거나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도 가고 싶은 콘서트가 있었는데 암표가 있더라고요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커서 구매할까도 생각했었는데 너무 비싸기도 하고 암표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포기했어요 암표를 신고할 수 있더라고요 문화예술분야 온라인 암표 신고와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 신고로 한국 콘텐츠 진흥원과 한국 프로 스포츠 협회를 통해서요 각종 SNS에서 판매되고 있는 온라인 암표 사례를 신고할 수 있고요 암표는 매크로를 통해서 다량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서 우리들의 이런 노력이 암표를 극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공정한 입장권 구매 방해와 입장권 우회 구매하는 부정 구매도 금지된다고 합니다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될려고도 하고요 이렇게 벌금과 규정이 강화 될 예정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들의 노력인 것 같아요 암표를 이용하지 않고 신고할려고 하는 노력 인터뷰_ 권대현 Q. 암표 거래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 티켓 재판매는 팬들의 행동 인식이 바뀌어서 진정한 팬이라면 암표 거래를 응하지 않는게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공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요 암표 거래 우리의 선택에 따라 피해자이기도 구매자가 될 수도 그리고 대응하는 신고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암표 구매 우리의 노력으로 암표 거래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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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4-12-24
  • 문화예술
  • 서울

[문화PD] 암표 OUT! 모두의 공연 문화를 지키기 위한 행동

화제의 공연, 인기 스포츠 경기, 가고 싶었던 그 무대. 하지만 암표 때문에 그 기회를 잃었던 거라면?! 암표 거래는 오늘날의 공연 문화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실태를 알아보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암표 거래는 온라인 플랫폼과 개인 간 거래를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부 티켓은 정가의 3배, 5배까지 거래되며, 심지어 위조된 티켓으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암표 거래는 공연과 스포츠 문화에 큰 악영향을 끼치며, 정당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게 만듭니다. 실제로 2020년 359건이었던 암표 거래 신고 건수는 2년 뒤인 2022년 4,224건으로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불법 티켓 거래는 법을 어기는 행위로 관객들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연 기획사의 손해로 이어집니다 또한, 이러한 거래는 공연의 공정성을 해치고 소비자들에게 불공정한 가격을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수적입니다 티켓 예매 사이트에는 암표 거래를 신고할 수 있는 기능이 마련되어 있으며, 경찰청 112 신고 앱을 통해서도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획사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암표 관련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실명 인증 시스템, 거래 패턴 모니터링을 통해 비정상적인 거래를 탐지하고 차단합니다. 일부 공연에서는 신분증 확인을 통해 예매자 본인만 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암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암표 없는 건강한 공연 문화를 위해,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작은 행동이 더 나은 공연 환경을 만듭니다. 암표를 발견하면 주저하지 말고 신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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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5-03-25
  • 문화유산
  • 대전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단재의 발자취를 따라

고지 사항 사용음원: 한국저작권위원회-임다솔의 우리네 소리를 듣다 은 CC BY라이선스로 제공됩니다. 사용폰트 : 고운바탕 ,에스코어드림, 굴림-Regular, KoPubWorld 바탕체-Medium, Noto Sans KR-Regular 사용 생성형 AI :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Kling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단재신채호생가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2025년 바쁜 일상 속.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대전광역시 대전 중구 어남동 이곳은 단재 신채호가 1880년 태어난 생가지이다.독립운동가, 역사학자, 사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신채호 그의 유년시절은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신채호는 조부인 신성우로부터 유학교육을 받게 되었는데요. 손자인 신채호에게 6살 때부터 한학교육을 접할 수 있도록 유학교육을 시켰고, 그래서 이미 10세 전으로 신채호가 통감절요나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을 이미 다 섭렵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신씨 가문의 대단한 천재가 났다. (라는) 소문들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생가지 인근에는 홍보관이 있다. 이곳에는 신채호의 생애와 업적을 전시하고 있다. 제가 평소에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박물관도 다니곤 하거든요.근데 집 주변에 신채호 선생님 생가지가 있다고 해서 관람 차 방문했습니다. Q.신채호를 어떤 인물로 알고 있는지?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라고 알고 있어요.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신채호는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독립전쟁을 강조하는 독립운동을 강력히 추진하였으며, 1922년 의열단의 행동강령 조선혁명선언문을 작성하였다. 조선혁명선언문에서 신채호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줄여서 대답을 한다면, 폭력혁명으로 속박상태에 있는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야 된다 라는 것이었고요. 이런 폭력 투쟁론을 통해서, 제국주의 식민지 경영을 비판하고 그걸 통해서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 모두가 창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상태 그런 상태를 성취해야 된다. (라는 것을)주장을 했던 것입니다. 1936년 신채호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못한 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신채호 선생이 광복 이후 생가로 돌아왔다면 어떨까? 생가지 보고 엄청 놀라시지 않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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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5-08-11
  • 문화유산
  • 경기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디지털시대, 우리가 역사 속 인물을 기억하는 방법

경기도 화성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전시가 열린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을 방문한 김진경 문화PD..! 독립운동가 조문기의 독립운동 정신을 전시를 통해 배우고 언리얼 엔진으로 조문기의 메타휴먼을 제작한다! [고지사항] - 사용 음원 1. On DeadIy Land - 브금대통령 2. In Desert - 브금대통령 3. 6.6 - 브금대통령 **Music provided by - 브금대통령**Track : 6.6 - https://youtu.be/LrtnRjRTADE?feature=shared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Track : On Deadly Land - https://youtu.be/qfbt2catqVg? feature=shared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Track : In Desert - https://youtu.be/DEBEMV27sL4? feature=shared - 사용 폰트 프리텐다드 - 길형진(orioncactus)(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한글재민체3.0 - 박재갑(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KCC손기정체 - 한국저작권위원회(출처(저작자)만 밝히면 상업/비영리목적으로 이용가능, 2025 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OOO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기획전시의 자료를 일부 촬영하여 제작 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내레이션) 독립운동가 조문기는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함께 지낸 외할아버지의 항일애국정신에 영향을 받은 조문기는 일찍이 식민지 국가의 현실을 깨닫고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1945년 3월 한국으로 돌아온 조문기는 유만수와 강윤국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을 조직하여, 친일파 박춘금을 비롯한 친일 거두와 식민통치기관을 처단하는 목표를 세운다. 때마침 박춘금이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은 직접 제작한 시한폭탄을 대회장에 설치하여 박춘금이 연설하고 있을 무렵 폭탄을 터트렸다. 성공적으로 마친 부민관 폭파 의거는 일제의 패망 직전까지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마지막 의거였다. 부민관 폭파 의거 이후, 1945년 8월 15일 조문기가 그토록 바라던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문기는 부끄러웠다. 온전한 한 나라의 독립이 아닌 독립 이후 분단된 나라 그리고 친일파가 권력을 잡고 있는 현실에 독립운동가로서 통일된 자주 독립의 나라를 만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광복 이후, 친일청산은 현시대의 독립운동임을 외치며 친일청산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떳떳한 독립운동가가 될 수 없었던 조문기는 친일청산이라는 과업을 후대에라도 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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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5-08-08
  • 문화산업
  • 전체

[문화PD] 암표에 고통 받는 K컬쳐?? 팔지도 말고 사지도 마세요!

KPOP의 대흥행으로 전성기를 맡이한 K-컬쳐! 하지만 K-컬쳐가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 문화를 위협하는 암표 판매하지 말고 사지도 맙시다! 우리 문화를 아끼고 지켜주세요~ -------------- 케이팝의 대흥행으로 전성기를 맡이한 k-컬쳐 뿐만아니라 국내에선 축구, 야구 등 스포츠 또한 굉장한 인기를 끌고있는데요 그런데 우리가 아끼고 존중해야할 k-컬쳐가 몸살을 앓고있습니다 어려분들은 콘서트티켓, 탑승권, 입장권을 어떻게 구매하시나요? 오늘은 K-컬쳐를 위협하는 암표에대해 이야기해보려합니다 여기서 암표란 웃돈을 주고 이득을 챙길목적으로 거래되는 불법적거래를 의미는데요 이전부터 암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여러 매크컴을 통해 기사화되고있습니다 최근 KTX추석연휴암표와 이번시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야구 암표 또 정가16만원 콘서트티켓이 500만원까지 오르며 큰이슈가 되었었죠 그러다보니 한 유명가수는 직접 암표상과 거래를하며 암표에 대한 강력대응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최근 국가대표티켓을 구할 때 정가 13만원 좌석이 30만원까지 오르며 판매되는 암표를 확인 할 수 있었는데요 무엇보다 단시간에 정말 많은 암표가 올라와있어 큰 심각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런 암표들은 매크로 암표가 확산되며 피해규모가 더욱 증가하고 있습니다 3초만에 다수의 표를 예매해 더많은 암표가 판매되고 있는 현실인데요 그래도 현재 다양한 암표법들과 NFT티켓을 통해 암표 예방을 확산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3월부터 매크로티켓법을 강화로 대량구매되는 티켓에대한 처벌이 강화되고 NFT코인은 블로체인 기술을 접목되어 양도 밑 판매가 불가한 코드를 삽입해 상업적 판매를 제한하고있어 콘서트 및 입장권 티켓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이 없는법이죠 무엇보다 중요한건 암표를 구매하지 않는것인데요 나하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우리의 문화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K-컬쳐를 위협하는 암표 이제는 정말 사라져야할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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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4-12-04
  • 문화유산
  • 서울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그들이 웃는 날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관련 사진들을 모아 AI로 영상 복원하였습니다. 흑백 사진 속 독립운동가들은 다시 움직이고, 그 순간의 표정과 시선을 통해 시대의 숨결을 후대에 전합니다. 지금, 그 역사와 마주해주세요. [고지 사항] - 사용 음원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SunoAI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음원명 815_music (생성형 AI 사용)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 사용 폰트 [무료] 감탄로드고딕체(산돌구름), 코트라손글씨체(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기관 및 상업적 이용 가능 -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생성형 AI ChatGPT, KlingAI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그들이 웃던 날 (대본) 나라를 빼앗긴 후 민족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들의 싸움은 아주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어 모든 이들을 목청껏 소리치게 했다 나라는 저물어갔지만 그 어떤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헌신했다 자신의 재산도 자신의 젊음도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손에 든 것이 무엇이든 처절하게 휘둘렀다 시대에 떠밀려 나라를 떠나왔어도 그 삶이 끝없이 척박했어도 늘 고국 생각 뿐이었다 성별도 상관 없었다 신분도 무의미했다 오직 독립 만을 꿈꿨다 너무 많은 희생 속에서 해방을 맞이하던 날 모두 달려나와 외쳤다 그리고 그들은 그제서야 웃었다 해방된 나라에서 그들의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먼 미래 누군가의 현재를 위해 싸웠다 그들이 웃는다 그토록 갈망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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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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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광복의 기억, 밀양의 골목에서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는 경남 밀양으로 향했습니다. 밀양 아리랑의 선율이 흐르는 이 도시는, 이름 없는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연대가 깃든 항일운동의 역사 현 장입니다. 총과 폭탄을 들고 일제의 심장을 겨눴던 의열단, 그리고 지금도 그 발자취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 는 골목과 기록들. 그들의 결의와 희생이 지금 우리 삶 속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 사용 음원 (저작물명 -저작권자) 국악연주곡_밀양아리랑 피아노ver. - 한국저작권위원회 한국의 미래 - 민지영 절정의 화살 - 김다희 *본 영상에서 활용된 음원 모두 공유마당 https://gongu.copyright.or.kr/ 에서 가져온 공유저작권 음원입니다. - 사용 폰트 나눔 명조, 나눔 스퀘어 - 네이버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 책 확인 완료) 제주고딕 - 제주특별자치도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 인 완료) 카페24 슈퍼매직 - 카페24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2025년 8월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동의를 구한 후 의열체험관 및 의열기념관의 자료를 일부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대본) 우리는 지금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들려오는 이 노래는 오래전부터 세대와 지역을 넘어 누구나 부를 수 있도록 전해져 온 밀양 아리랑입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 노래는 금지된 노래가 되어 민중의 저항과 슬픔, 그리고 희망이 가려지게 됐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기억의 땅, 밀양으로 발걸음을 옮겨 광복의 불씨가 된 투쟁과 노래의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이곳은 경남 밀양에 위치한 의열기념관입니다. 3.1운동 이후, 무장 항일 독립운동을 위해 결성된 의열단. 총과 폭탄을 들고, 일제의 중심을 정조준하며 그들은 자유와 정의를 외쳤습니다. 의열기념관은 2018년 3월 7일날 개관한 공간으로서 큰 특징이 뭔가 하니까 약산 김원봉 장군이 태어난 생가지터에 조성된 것이라 볼 수가 있습니다. 의열단 자체가 초기 창립 멤버가 10분인데 그 중에 4분이 밀양사람이고 그 출발지가 바로 이 공간입니다. 가장 적은 규모로 가장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그런 기획으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의열단입니다. 총과 폭탄을 이용해서 의거를 일으키거나 적진을 파괴하게 되면은 굉장히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근데 이분들 자체가 그 주목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을 같이 결기를 일으켜서 일제에 항거하기 위한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결사대적인 그런 단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이 단체가 요것만 했으면은 큰 의미가 없겠지만은 계속 확대 발전이 됩니다. 1932년도에 가면은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로, 1935년도에 가면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 단체였던 민족혁명단까지 건설이 됩니다. 다음에 이 민족혁명단이 나중에 1938년 10월 10일날, 조선의용대라는 군부대 조직까지 결성되는 그런 단체로 계속 변모 발전해가는 그런 특징이 있는게 바로 의열단이 되겠습니다. 의열단 창립당시 단원이 총 10분인데 그 중에 4분이 밀양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약산 김원봉, 그 다음에는 석정 윤세주, 초산 김상윤, 한봉근 이 4분이 있는데 특히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약산 김원봉 같은 경우에는 앞에 말씀드렸던 의열단 단장,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의 교장. 바로 이웃에 살았던 윤세주 같은 경우에는 2살 터울의 동생이자, 평생 독립운동 동지였었는데 이 분 같은 경우에는 1942년, 태항산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고 중국 한단 국사교과서에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굉장히 유명한 독립운동가입니다. 다음에 초산 김상윤 선생같은 경우에는 여러 차례 의거에 참여했지만은 한번도 잡히지 않은 그런 인물이기도 하고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봉근 같은 경우에는 1926년 12월 나석주 의사가 의거를 일으켰을 때, 당시에 필요한 무기류를 제공해준 그런 인물이 바로 한봉근인데 이 4분의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계속 의열단이 큰 의거가 이어질 수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의열기념관 바로 옆, 이곳에서는 의열단의 활동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습니다. 손 끝에 닿는 작은 조각들이, 당시 그들의 손에 쥐어졌던 결심을 상상하게 합니다. 도심 한복판, 일상의 골목이 한때는 외침의 무대였다는 것을 아시나요? 밀양의 3.1운동은 무려 한 달 이상 이어졌고, 중심지에서 시작된 함성은 인근 마을로 퍼져나갔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나섰던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그날의 발걸음과 목소리가 이 골목 안에 남아 있습니다. 현재 밀양에 독립운동서훈자가 93분입니다. 이 주변에서만 29분이 서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가가 가장 밀집된 지역이 바로 경남 밀양입니다.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 같은 경우에는 독립운동의 성지임과 동시에 모든 독립 투사들의 항일 역정을 한번에 파악하고 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겠습니다. 광복은 선언이 아닌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과 용기가 모여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 밀양의 골목과 기록 속에 아직도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광복 80주년, 오늘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 서서 그 뜻을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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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털
등록일
2025-08-08
  •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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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PD) 광복 80주년 특집 ㅣ 독립운동가 박재혁, 그리고 기록되지 못한 자들

광복 80주년을 맞아, 부산의 독립운동가 박재혁의 이야기로 시작해 역사 속에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생성형 AI로 담았습니다. 역사에 남겨진 이름뿐만 아니라, 남겨지지 못한 모든 독립운동가들께도 깊은 감사와 존경 을 전합니다. [고지 사항] 사용 음원 Longing(그리움) by 이호석, 공유마당 제공, CC BY 국악 배경음악 #139 by 주식회사 아이티앤, 공유마당 제공, CC BY 국악 배경음악 #128 by 주식회사 아이티앤, 공유마당 제공, CC BY SE_01_10_자연다큐멘터리 인트로 by 주식회사 아이티앤, 공유마당 제공, CC BY 사용 폰트 감탄로드돋움체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 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60326division=font), 작성자: 강원특별자치도]의 공공저작물 을 이용하였습니다. 전주완판본체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 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41224division=font), 작성자: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의 공공 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아산 이순신체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 유형에 따라 [공공누리 (https://www.kogl.or.kr/recommend/recommendDivView.do? recommendIdx=41237division=font), 작성자: 충청남도 아산시]의 공공저작물 을 이용하였습니다. 조선일보명조체, 조선100년체, 에스코어드림, 고운바탕 - 기관 및 영리적 사용 가능, 해당 기관 라이센스 정책 확인 완료 사용 생성형 AI 본 콘텐츠는 챗GPT, 하일루오, Imagefx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사용 이미지, 영상 등 자료와 촬영 협조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를 구한 후 부산독립기념관, 부산박물관의 촬영 협조를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본 콘텐츠는 사전 동의를 구한 후 독립기념관의 자료를 사용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오프닝]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김구 선생님이 생각이 나고 또 한용운 선생님도 생각이 납니다. 저는 유관순 열사와 윤봉길 의사가 먼저 생각이 납니다. 아니오. 잘 모르겠어요. 아니오. 자주 돌아다니는 동네인데, 전혀 몰랐습니다. [#1. 박재혁 이야기] 1895년 5월 17일,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난 박재혁. 어린 시절부터 강렬한 민족의식을 지닌 그는, 학창 시절부터 일제에 맞섰다. 부산공립상업학교에 진학해 학우들과 함께 일제가 금지한 역사서 동국 역사를 몰래 등사해 배포했고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의 감시망에 오르게 된다. 졸업 후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상업 활동에 뛰어든 그는, 무역을 하며 중국과 동남아를 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항일 운동가들과 뜻을 함께하게 된다. 이후 상하이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며, 조국 해방을 위한 싸움에 몸을 던질 것을 결심한다. 김원봉의 지시로 부산경찰서 폭파 임무를 맡게 된 박재혁. 일본 경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귀국을 한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거사 준비를 마친 그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의 걱정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섰다. 경찰서장은 사망했고, 박재혁도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됐다. 박재혁은 왜놈의 손에 사형당하느니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싶다며, 옥중 단식 9일만에 순국하였다. 1921년 5월, 대구형무소.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2 잊혀진 그의 이야기]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의거는 의열단의 첫 번째 투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 남아 있는 건 단 두 장의 사진뿐, 그의 이름과 활동이 역사 속에서 조명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3 기록되지 못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딸이었으며, 어떤 이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였던 이들의 이름 없는 헌신 위에 세워졌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이름들, 그리고 끝내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얼굴들. 우리는 지금,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AI 신기술로 그들의 모습을 다시 그리고자 합니다.

제작
문화포털
등록일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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