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공감리포트

공감리포트

문화이슈

춘·하·추·동(春·夏·秋·冬) 김치의 계절인사

월별 문화이슈 선택

바로가기

2015 11.26.

‘김치’ 하면 배추, 무 외에 딱히 떠오르지 않고 일 년 내내 김치라고는 배추김치만 먹고 있지는 않은가? 철마다 제 맛 나는 과일이나 채소가 있는 우리나라이니 김치도 절기에 따라 재료부터 담그는 법까지 달라지는 것이 옳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무심했던 계절별 김치의 인사.

춘·하·추·동(春·夏·秋·冬) 김치의 계절인사

춘·하·추·동(春·夏·秋·冬) 김치의 계절인사
- 배추만 김치가 되랴? -

 

 

 

‘김치’ 하면 배추, 무 외에 딱히 떠오르지 않고 일 년 내내 김치라고는 배추김치만 먹고 있지는 않은가? 철마다 제 맛 나는 과일이나 채소가 있는 우리나라이니 김치도 절기에 따라 재료부터 담그는 법까지 달라지는 것이 옳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혹은 무심했던 계절별 김치의 인사.


비닐하우스와 유리하우스 등이 농촌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수박이나 딸기를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우리의 밥상으로 왔다. 특히 냉장고가 나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된 요즈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10월 말부터 김장을 시작하고, 이때 하는 김장의 양은 겨울 한 철 먹고 마는 정도가 아니라 일 년을 두고 먹어도 남을 만큼 꽉 차고 넘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먹던 다양한 채소로 담그는 김치들은 사라지고 바야흐로 1년에 한 번 김치를 담는 김장만 남는 것인지 모른다. 여름에는 열무김치와 얼갈이배추김치를 담가 먹고 장마가 오기 전에 오이지를 담던 풍습이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잊히고 있는 계절 김치를 찾아가보자.

 

 

 


[춘 · 春] : 잠자는 봄을 깨우는 김치

 



부추김치 ⓒ 고은정

 

 

 

봄에 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중에 춘곤증이라는 것이 있다. 춘곤증은 인체가 아직 겨울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봄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데 이 춘곤증을 이기기 위해서는 움츠러드는 몸을 활짝 펴게 하는 매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한국의 오미(五味)에서 말하는 매운맛은 단순히 혀에서 느끼는 통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체에서 하는 역할을 감안해서 구분한 맛이다. 그러므로 춘곤증으로 나른한 봄에는 쓰고 매운맛을 가진 나물들을 먹으면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몸에 쌓인 여러 가지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역할과 동시에 기지개를 켜게 하여 활기찬 생활을 하게 해준다.


농가월령가 등 오래된 문헌에도 ‘입춘오신반(立春五辛飯)이라 하여 입춘 무렵에 먹어온 음식에 대한 기록들이 있다. 입춘 무렵에 먹는 오신채에는 미나리, 달래, 부추, 당귀의 싹, 산갓, 움파 등이 있다. 그러므로 봄에는 매운맛을 지닌 채소를 가지고 담가먹는 김치가 맛있고 좋다. 산갓물김치, 미나리연근물김치, 부추김치, 달래김치 등이 봄을 깨우는 김치로는 최고다.

 

 

 

 

[하 · 夏] :불타는 여름을 식히는 김치


 

 

오이소박이 ⓒ 고은정

 

 
여름엔 겨울 김장김치가 부담스럽다. 젓갈과 양념의 진하고 무거운 맛이 여름 더위에 떨어진 입맛을 다시 찾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김치는 찬 성질을 가진 밀이나 보리로 쑨 멀건 풀죽에 소금으로만 간을 하는 풋김치가 제격이다. 뭐니 뭐니 해도 여름김치 재료의 으뜸은 오이다. 단오가 지나면서 첫물 오이를 따기 시작하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열리는 오이는 무쳐 먹고 볶아 먹고 냉국으로 먹고 소박이로 담가 먹어도 남아돌아 최후엔 오이지가 되기 위해 항아리로 들어간다. 오이무침이나 오이소박이나 모두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면 텁텁하니 맛이 없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열광하는 김치의 원형일지도 모르는 오이지는 고춧가루 없이 담가 밥상에 올릴 때도 송송 썰어 그냥 찬물만 부어 올린다.

 

오이지는 다른 김치와 달리 담그기도 간단하다. 오이를 물기 없이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고 팔팔 끓인 소금물을 식히지 않고 부어 익힌다. 오이가 한창 달릴 때는 오이가 남아돌므로 남은 오이를 소금에 굴려 오이지 항아리 밑에 계속 넣게 되므로 오이지는 먹고 또 먹어도 줄지 않는다. 그렇게 먹다 남은 오이지는 다시 가을 햇살에 말려져 장항아리 속으로 들어간다. 푸성귀 부족한 계절을 위한 저장음식이 되는 것이다.


여름김치로는 오이김치, 가지김치, 부추김치 등이 거의 전부다. 그러므로 여름엔 김치가 뒷전이다. 여름밥상엔 김치가 조연도 못된다. 농가의 텃밭을 채우고 있는 푸성귀들이 수십 가지는 되기 때문이다. 이 푸성귀들은 대부분 성질이 차므로 무더운 여름날 인체를 더위와 싸워 이기게 하는 식재료들이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원하는 이 채소들로 여름 더위를 이기고 가을을 준비한다.

 

 

 

 

[추 · 秋] :건조한 가을에 먹는 김치

 

 

 

좁쌀무석박지 ⓒ 고은정

 

 

처서(處暑)가 지나면 찬 성질을 가진 푸성귀를 맘껏 먹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이미 차가워진 외기에 인체가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치로 먹던 오이는 오이장아찌를 담그고 호박이나 가지는 고지가 되기 위해 가을 햇살 아래 나선다. 그 중 가지는 고지로 만들기도 하지만 김치로 담가 그 찬 성질을 한풀 죽여 먹기도 한다. 가지김치는 가을로 들어서는 문턱에 담가 먹는 특별한 김치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시간은 흐르고 입추(立秋)와 처서(處暑)에 즈음하여 넉넉히 뿌린 씨앗이 싹 트고 자라기 시작하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솎아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남은 싹들이 제대로 기를 펴고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솎은 것들은 버려지지 않고 겉절이로 변신해 밥상에 올라온다. 본격적인 가을로 들어서면 배추와 무의 키는 쑥쑥 크고 몇 차례 솎는 일을 반복하게 되고 그때마다 나오는 것들은 김장을 하기 전에 임시로 먹는 김치가 된다. 그러는 사이 배추는 속이 들어앉고 무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면서 땅 위로 하늘을 닮은 모습을 푸르게 드러낸다. 농부는 언제쯤 배추를 뽑고 무를 수확할 것인지 무 배추와 달력을 번갈아 보면서 고민을 하고 그렇게 가을은 깊어간다.

 

 

 

 

[동 · 冬] :얼어붙는 대지에 온기를 더하는 김장김치


 

 

김장김치 ⓒ 고은정

 

 

무밭에 첫서리가 내린다. 이제 무는 더 이상 밭에 있으면 안 된다. 농부는 무를 뽑아 땅을 파고 묻어두고 무청은 잘라 엮어 그늘에 걸어둔다. 무밭에 첫서리가 내리는 날 배추도 첫서리를 맞는다. 첫서리에 배추의 푸른 잎이 얼어 마음이 조급해지지만 배추가 아무리 불쌍해 보여도 이때 쫓기면서 서둘러 수확하면 안 된다는 것을 농부는 알고 있다. 서리를 서너 번쯤 맞고 배추 스스로 자신의 몸에서 수분을 조절한 후에라야 농부는 배추를 수확하고 김장준비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추에 너무 충분한 수분이 김장을 한 후 물러지게 하므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겨울은 춥다. 온 세상이 얼어붙는 시기라 동물은 동면에 들어가고 식물은 열매로 뿌리로 생명을 저장한 후 지상부가 말라 죽은 지 이미 오래다. 계절이 담긴 음식으로만 밥상을 차린다면 더 이상 푸른 채소가 있을 수 없는 때이다. 그래서 이 시기를 대비해 담그는 김장에 모든 것이 담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추와 무는 물론이고 파, 마늘, 갓, 고추 등과 사과, 배 같은 과일도 함께 들어있는 김장김치가 겨울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일 게다.

 

 

 

- 작성자 : 고은정(음식연구가)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춘·하·추·동(春·夏·秋·冬) 김치의 계절인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OPEN 공공누리

관련기관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