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터 바로가기
> 문화지식 > 전통문양 용도별문양

용도별문양

여의두화문(14285) 크게보기
여의두화문(14285)
문양구분
(2D)
문양분류
인공물문/여의두문
국적/시대
한국-조선
원천유물명
존덕정 귀접이천장
문양설명
여의두화는 마치 반원 세 개를 연결하고 양쪽 끝 부분을 감아 돌린 듯한 형상으로 소의 코와 비슷하다하여 ‘쇠코’라고 불리게 되었다. 간혹 중심호의 정수리를 뾰족한 연꽃봉오리 형상으로 도안하기도 한다. 주로 양록·하엽의 2빛으로 채색하고 윤곽 형태를 먹선으로 돌려 마감한다. 여의두무늬는 민간에서는 만사형통, 도교에서는 길상(吉祥)·장수(長壽)를 상징하고, 불교에서는 승려의 높은 위덕(威德)을 나타내며 나아가 보살의 지물로도 쓰이는 매우 상서로운 문양이다. 여의(如意)는 범어로 아나룻다(Anaruddha, 阿那律陀)를 번역한 말이다. 본래 여의라는 것은 승려가 독경이나 설법 등을 할 때에 지니는 도구이다. 여의는 대나무, 뿔 같은 것으로 만들거나 금속으로 만들었는데, 한자의 마음 심(心)자를 전서체로 표현한 구름 모양의 머리장식을 붙여 만들었다. 그러므로 ‘여의’란 곧 ‘마음’을 상징하며 그 모양은 ‘구름’으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여의라는 도구는 강론하는 승려가 글을 기록하여 두고 참고하는데 쓰는 홀(笏)과 같은 역할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손이 닿지 않는 등의 가려운 데를 긁을 때에도 요긴하게 쓰여 진다고 한다. 따라서 이 도구에 ‘여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으며 글자 뜻 그대로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여의두문은 중국에서 도교가 흥성할 당시 영지버섯과 서운(瑞雲) 등의 상서로운 형상을 본떠 도안한 것으로 길상(吉祥)을 상징하고 축복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일 신라 시대의 와당과 전, 채화칠기 그리고 불교적인 장식에서 유행되었던 보상화무늬와 보운무늬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본격적으로 공예 미술에 쓰이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이후로 범종과 청자에 많이 등장한다. 조선시대에는 건축 단청과 가구, 도자 등에 빼놓을 수 없는 문양으로 각광받았다.
공공누리 제 1유형 마크 - 출처 표시

한국문화정보원이 창작한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예) 본 저작물은 "문화포털" 에서 서비스 되는 전통문양을 활용하였습니다.